모든 시민은 기자다

윤무부 박사가 오줌을 참았던 이유는...

[서평] 고2 박진석 학생이 그림일기를 그리듯이 쓴 <새와 함께 꿈을 꾸다>

등록|2013.10.21 12:06 수정|2013.10.21 12:06

▲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새끼 새들을 관찰하는 순간은 긴장과 희열입니다. ⓒ 임윤수


행복도 전염이 됩니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 표정을 보면 한결같이 행복해 보입니다. 좋아하는 일을 잘하는 사람들의 살아가는 모습은 보는 사람들도 행복하게 합니다. 가장 행복하게, 가장 잘사는 방법은 좋아하는 일을 잘하며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누구나 좋아하는 일은 하며 살아가는 건 아닙니다. 좋아한다고 해서 다 잘하는 것도 아닙니다. 여기 좋아하는 일을 아주 잘하고 있는 청소년이 있습니다. 경남 남해해성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중인 박진석 학생은 새를 무척 좋아합니다. 짝사랑하듯이 좋아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새박사로 널이 알려진 경희대학교 명예교수인 윤무부 박사로부터 '미래의 조류학자'로 찜을 당할 만큼 새에 대해 많이 알고 있고 새에 대한 열정 또한 대단합니다.

미래의 조류학자가 쓴 <새와 함께 꿈을 꾸다>

<새와 함께 꿈을 꾸다>를 지은 박진석 학생은 고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고등학생입니다. 또래의 고등학생들 대개가 보내는 하루하루는 안 봐도 비디오입니다. 내신과 성적 경쟁에 내몰리고, 스펙 쌓기와 포트폴리오 작성에 필요한 자료를 구축하기에 여념이 없는 피동적인 나날들일 거라 생각됩니다. 

▲ <새와 함께 꿈을 꾸다>┃글·사진 박진석┃펴낸곳 자연과 사람┃2013.09.24┃1만 7000원 ⓒ 자연과사람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당연히 그런 시절을 보내야 할 거라 생각되는 고등학생 2학년이 좋아하는 새를 관찰하고, 그렇게 관찰한 결과를 그림일기를 그리듯이 잘 엮어서 낸 책이 <새와 함께 꿈을 꾸다>입니다.

책을 읽는 내내 두 표정의 얼굴들이 마음에서 어른댑니다. 하기 싫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공부를 하고 있을 학생들 표정과 좋아하는 일(새 관찰)을 신명나게 잘하고 있는 박진석 학생의 얼굴입니다.  

책은 호기심 많고 재주가 뛰어난 학생이 아주 잘 그린 그림일기처럼 생동감이 넘쳐납니다. 새를 좋아하게 된 동기부터 새를 관찰하며 겪은 체험, 경험으로 터득한 지식들이 현장 사진들과 함께 담겼습니다. 새에 관한한 일거수일투족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는 게 책의 전부분에서 물씬 느껴집니다.

1분 후 새끼가 똥을 싸려고 하자 날아와서는 똥을 물어가 버립니다. 2분 후 먹이를 주고 똥을 물었지만 떨어뜨리고 맙니다. 잡시 뒤 직박구리 한 마리가 어슬렁거리자 빨리 날아가서 몰아냅니다. 그 후 계속 1~5분 간격으로 먹이를 물어 나릅니다. 먹이는 토해서 먹이며 어떤 때는 먹이를 주고 둥지에 가만히 앉아 있기도 합니다.

시계를  보니 자율학습 10분 전입니다. 아쉽지만 이제 관찰을 멈추고 공부 준비를 하기로 합니다. 자습실로 들어가려고 하자 근처에서 저를 보고 있던 선배님들이 제비가 언제쯤 떠나갈지 물어옵니다. - <새와 함께 꿈을 꾸다> 26쪽

하기 싫은 공부에 얽매여 있는 학생이라면 하릴없이 책상에 엎드려 있을 시간이 자율학습 10분 전입니다. 하지만 박진석 학생은 분을 재가며 제비를 관찰하고 있습니다. 호기심 가득한 시선과 신명나는 표정이 읽는 제 머릿속에 저절로 그려집니다.

박진석 학생이 좋아하는 일을 잘 할 수 있기 까지는 부모님과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도움이 컸을 겁니다. 윤무부 교수님의 격려도 크게 힘이 됐을 게 분명합니다. 공부만 하라고 닦달하는 부모, 성적만을 강요하는 선생님, 어린 학생의 호기심 정도로만 평가하는 새 박사 윤무부 교수였다면 박진석 학생의 꿈은 많이 축소됐거나 좌절됐을 수도 있을 겁니다. 이렇게 좋은 결과(책)로 영글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됩니다.    

청소년 꿈, 좋아하는 일 잘하도록 도와주면 이뤄져

청소년의 꿈을 인정하고, 함께 가야할 길을 함께 걸어주며 격려해주는 것이 얼마나 커다란 결실을 맺게 되는가를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라 생각됩니다.

어미가 먹이를 가지고 오자 새끼들이 입을 쩌억~ 벌리고 어미를 향해 울기 시작합니다. 1분 뒤, 어미가 가자 다시 조용해집니다. 팔색조가 간 후에 박사님께서 뭔가가 불편해 보이십니다.
"박사님, 어디 불편하세요?"
"오줌이 마려운데 새가 올까봐 못 움직이고 있어."
그 말을 듣고는 박사님의 열정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 <새와 함께 꿈을 꾸다> 37쪽

새를 좋아하는 고등학생이 새 분야의 최고 권위자인 윤무부 교수님과 탐조를 함께 하며 느꼈을 기쁨과 기분이 생생하게 그려집니다. 교실에서 수업을 하는 것과는 다른 탐조. 자신의 롤모델일 수 있는 새 권위자가 탐조하는 마음가짐을 몸소 일러주고 있으니, 이런 가르침이야 말로 가장 열정적인 수업, 살아있는 지식을 가장 싱싱하게 전달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책에서는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소곤거리듯이 펼쳐집니다. 새들의 모습은 사진으로 담아내고, 새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일기장에 써놓은 비밀이야기처럼 펼쳐집니다. 때로는 긴박감이 돌고, 때로는 맘까지 평화롭게 하는 느긋함 속에 새들이 살아가면서 연출해 내는 생태계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집니다.

오후 자습 시간, 창밖을 보니 콩새 한 마리가 보입니다. 참새들과 함께 있는데 덩치 덕에 바로 알아보았습니다. 털이 반짝거리는 것이 마음에 쏙 듭니다. 시험이 끝나면 학교에 카메라를 들고 와서 촬영하기로 하고 눈에 담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며칠 뒤에 만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 <새와 함께 꿈을 꾸다> 213쪽

너무 학술적이지 않아 가볍게 읽다 보면 어느새 조잘거리고 있는 새들의 생태계에 빠져드는, 묘한 매력이 있는 내용입니다. 책에 실린 220여장의 사진,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담아낸 사진들은 사진을 전공하지 않은 고등학생이 찍은 사진이라고 하기엔 믿기지 않을 만큼 좋습니다. 

숨소리 죽여 가며 셔터 누를 순간을 기다리는 긴장감, 처음 보는 광경에 어쩔 줄 몰라 하던 기쁨과 호기심, 허탕 친 탐조에 어깨까지 묵직해진 순간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좋아하는 일을 잘하고 있는 박진성 학생이 엮어낸 <새와 함께 꿈을 꾸다>는 고교 2년생이 전달해 주는 풋풋한 행복감이며 미래의 조류학자를 그려보게 하는 희망 바이러스가 될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새와 함께 꿈을 꾸다>┃글·사진 박진석┃펴낸곳 자연과 사람┃2013.09.24┃1만 7000원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