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건조기로 말린 곶감 맛, 알아내기 쉽지 않죠"

곶감 만들기는 '상강'인 10월 23일부터 30일 사이가 최적기

등록|2013.10.21 17:19 수정|2013.10.21 17:54
호남의 소금강으로 불리는 대둔산(878m) 가는 길. 완주군 고산면, 동상면 등과 함께 '감(柿)의 고장'으로 알려진 운주면 소재지를 지나니 골짜기가 나타난다. 여기도 감나무, 저기도 감나무 산골풍경이 그림 같다, 잎을 다 떨구고 앙상해진 나뭇가지에 탱글탱글 매달린 주홍빛 감들은 하늘을 더욱 높고 푸르게 한다. '가을도 어지간히 깊었구나!' 소리가 절로 나온다.

▲ 전북 완주군 운주면 산북리 도로변에 있는 감 가게 풍경. ⓒ 조종안


▲ 아저씨가 서툰 솜씨로 감을 깎고 있다. ⓒ 조종안


새색시 볼처럼 곱고 예쁜 빛깔의 감들이 주렁주렁 늘어뜨린 어느 가게 앞에서 차를 멈추었다. 가을 햇살에 주황빛 속살을 드러낸 감들이 눈을 즐겁게, 풍요를 느끼게 하였고, 입안에 군침이 돌았기 때문이었다. 가까이 다가가니 중년의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손으로 감을 깎고 있다.

"기계로 하면 쉬운데 왜 힘들게 손으로 깎으세요?"
"(아주머니가 웃으면서) 팔이 아프니까 기계를 돌리고 싶지만, 모든 게 때가 있잖아요. 감(柿)도 깎는 시기가 있습니다. 날이 더울 때 깎으면 곯아서 바닥으로 떨어지고, 추울 때 깎으면 곶감 맛이 떨어져요. 저쪽 구석에 있는 게 기계인데요. 상강(霜降)인 23일부터 본격적으로 사용할 겁니다. 감을 깎는 최적기는 상강에서 일주일 후까지죠."

서른여섯에 운주면으로 시집와서 8년째 곶감을 만들고 있다는 김민주(44)씨. 그의 설명 중 "아직은 감 깎는 시기가 아닌데 손님이 찾으니까 어쩔 수 없이 손으로 깎는다"는 대목이 호기심을 자극한다. 언제든 껍질을 깎아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말리면 쫀득쫀득 맛있는 곶감이 되는 것으로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 김씨의 '곶감 예찬'은 이어진다.

"자연 상태에서 햇빛과 바람으로만 한 달(30~40일) 마르면 반건시, 두 달(50~60일) 마르면 곶감이라고 하는데요. 몸에서 하얀 분이 나와야 알짜 곶감으로 쳐줍니다. 그런데 요즘은 사람들이 반건시를 더 선호해서 분이 나오기 전에 거둬 냉동했다가 팔지요. 건조기로 말려도 노래지고 보기에도 좋지만, 맛은 떨어집니다. 그러나 그 맛을 알아내기란 쉽지 않죠."

김씨가 감 깎는 최적기라고 말하는 '상강'은 매년 양력 10월 23~24일에 드는 가을의 마지막 절기(節氣). 이 무렵이면 들녘의 추수도 거의 끝나간다. 첫서리가 내리고 단풍이 빛을 더해간다는 이즈음에 감도 거두어 곶감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 그렇다면 매년 12월 중순 이후 출시되는 곶감이 그해의 첫 상품으로 으뜸 곶감이 된다는 계산이 나왔다.

곶감 모양과 포장에서도 세월의 변화 느껴

▲ 일을 하다말고 일어나 상자에서 감을 꺼내는 김민주씨 ⓒ 조종안


김씨가 엊그제 딴 단감이니 맛이나 보라며 권한다. 한 조각 잘라서 입에 넣으니 구수한 설명만큼이나 느낌이 사각사각. 입안에 단맛이 감돈다. 집에서 먹을 단감을 조금 사서 발길을 돌렸다. 여전히 골짜기를 수놓고 있는 감나무들을 보니 기억에서 사라졌던 추억들이 하나씩 떠오른다.

지금이야 곶감을 사시사철 먹을 수 있고 추석 명절 선물로 주고받지만, 옛날에는 첫눈이 내린 후에야 구경할 수 있었다. 주전부리가 귀하던 시절, 부드럽고 단맛이 입안에 감도는 곶감은 치아가 부실한 노인과 아이들에게도 인기가 좋았다. 아이들은 제사상 거두기를 기다렸다가 곶감을 제일 먼저 손에 쥐었다. 

예로부터 감은 숙취와 감기 예방에 좋은 과일로 알려진다. 그래서 그런지 고급 요릿집은 물론 술안주가 실속 있게 차려 나오는 작은 대폿집에도 단감(홍시)과 곶감 몇 개는 기본으로 빠지지 않았다. '술을 마시기 전에 곶감을 한두 개 먹으면 아무리 마셔도 취하거나 이튿날 속이 쓰리지 않는다'며 극성스럽게 권하는 할머니도 있었으니.

모양도 달랐다. 요즘엔 동글동글하게 만든 곶감을 예쁜 그림이 그려진 상자에 담아 거래한다. 하지만 예전에는 양쪽을 장구통처럼 도톰하게 눌러 만든 곶감을 대꼬챙이나 싸리나무 꼬챙이에 10개씩 꽂아 장작처럼 수북하게 쌓아놓고 접으로 팔았다. "꼬깜 사이소, 꿀보다 만난 꼬깜이요!"를 외치며 고샅을 휘젓고 다니던 50년대 곶감 장수들 모습도 시나브로 떠오른다.

곶감의 생긴 모양과 포장에서도 세월의 변화를 실감하는데, '곶감 빼먹듯 한다'는 속담도 이제는 '곶감 꺼내먹듯 한다'로 바꿔야 하지 않을까 싶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