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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지?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소설-엘라에게 쓰는 편지] 3편

등록|2013.10.22 11:10 수정|2013.10.22 16:27
Dear 엘라

엘라 잘 지냈지? 오늘은 좀 덜 우울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아.

지난주 토요일에 취업스터디를 처음 다녀왔어. 사실 다들 4학년 때 하는데 나는 졸업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해 본거야. 내가 현실을 몰라도 너무 몰랐지.

돌이켜보면 4학년 때 나는 너무 뜬구름을 잡고 있었던 것 같아. 전공수업이 싫어서 맨날 도서관으로 숨었지. 맨날 여행 책이나 보고 있고. 캐나다를 잊지 못해서 정신 못 차렸던 것 같아. 과외도 두 개나 하고. 그때 선배 오빠가 지금 과외 할 때가 아니라고 했을 때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70만 원이 어찌 보면 학생한테는 큰돈일 수는 있지만, 사회에 나가면 푼돈일 텐데 거기에 빠져 시간을 낭비했다니. 지금에 와서 느끼는 거지만 내가 참 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어. 

암튼 졸업하고 나서 처음 가는 스터디였는데 사람들은 다 좋았어. 근데 그 사람들 이력서보니까 내가 참 엉망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어. 내가 잘하는 건 끽해야 영어회화인데 적으려고 보니 내 점수는 900점도 안 되는 거야. 근데 그 중에 로스쿨 간다고 준비하는 법대생이 있었는데 어학연수는 갔다 오지도 않았는데 토익점수가 960이더라. 기가 팍 죽었어. 한편으로는 아직도 토익시험이나 보는 내가 한심하기도 하고. 나는 805점이라는 점수가지고 왜 이렇게 의기양양했던 걸까? 왜 아무도 나한테 말해주지 않은 거지? 난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외활동 좀 하고 외국물 좀 먹은 걸로 내가 안 뽑히면 누가 뽑히겠냐는 생각을 했던 게 참 부끄럽다. 암튼 모의면접하면서 노래를 불렀어. 그것도 씨엔블루 노래를. 사람들이 잘 부른다고는 안 하더라. 솔직한 사람들 같으니. 암튼 압박면접도 하고 나름 실제랑 비슷했던 것 같아. 모의면접은 아직 두 번 밖에 진행을 안 했는데 그 중에 한 명은 되게 내성적이라 그런지 면접 볼 때도 목소리가 덜덜 떨리더라. 모의면접인데. 그리고 굉장히 조용조용한 성격인 게 엄청 티 났어.

모의면접관들이 그러더라. 좀 활달해져야 한다고. 근데 나는 잘 모르겠어. 사회에는 꼭 활발한 사람만 필요한 거야? 그 사람은 고쳐서 나아질 것 같지 않던데. 차라리 성향에 맞는 일을 하는 게 더 낫지 않아? 그런 사람이 필요한 직무가 있을 텐데. 아무튼 사람들이 너무 안 좋은 피드백만 주니까 나는 좀 그랬어. 아직도 현실을 몰라서 그러는 건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같은 처지라 그런지 말하기도 편하고 좋았어. 졸업했다는 걸 창피해하지 않아도 되니까. 굳이 취업준비생이라고 하지 않아도 되니까. 누가 거기서 나에게 손가락질 하겠니?

그나저나 그날 빈 강의실에서 모임을 가진 건데 너무 춥더라. 밥시켜서 먹는데 추워 죽을 뻔 했어. 거기서 안 모였으면 좋겠는데. 공짜라 참아야 하는데 모르겠다. 열심히 나가긴 해야지. 근데 모르지 뭐. 또 모임이 와해될 지도. 스터디모임은 길어야 한 두 달이고 그 기간 넘어가면 없어진대. 암튼 그래도 좋았어.

엘라는 어땠어? 보고 싶다. 아직 그리워. 우리 졸업파티 하던 날 날씨가 진짜 좋았는데. 해변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그 때 먹은 핫도그가 그립다. 한국에서는 그런 핫도그가 없잖아. 칠리소스 듬뿍 뿌리면 완전 맛있는데. 아직도 크레이지 찰리 표정이 생각난다. 혀 쭉 빼물고. 그날 우리 농구했던 것도 기억나. 그날따라 슛이 잘 들어가서 그런지 몰라도 선생님이 놀래가지고 나보고 선수했냐고 그랬었는데. 웃기다 그치? 한국에서는 농구 안 한 지 십년도 넘었는데.

너랑 함께하던 그때가 그립다. 보고 싶고. 어떤 날은 캐나다 냄새가 날 때가 있어. 너도 그래? 그러면 나는 어쩔 줄 모르겠더라. 길가다 멍하니 서서 추억에 뒤덮이는 나를 보면 당황스러워. 아무튼 너도 잘되길 바라. 나보다 일찍 취업준비를 하던 너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것도 내가 철이 없어서 그런 거니까 이해해. 엘라 그럼 또 편지할게.

날짜는 적혀있지 않았지만, 이건 취업준비를 하던 초창기라는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왜냐면 편지는 그래도 아직은 희망을 이야기 하고 있었기에. 꿈이라는 걸 간직하고 있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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