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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교 속에 자리 잡은 이색 박물관

[박물관과 미술관 기행 1] 영월 인도미술박물관

등록|2013.10.24 11:02 수정|2013.10.24 11:02

▲ 인도미술박물관 ⓒ 이상기


국내 인도 관련 박물관은 두 군데 있다. 하나는 인도박물관으로 서울 서초동에 있다. 다른 하나는 인도미술박물관으로 강원도 영월 주천면에 있다. 인도박물관은 인도의 종교, 문화와 예술, 생활 등을 소개한 종합박물관이다. 이에 비해 인도미술박물관은 인도미술을 통해 인도인의 삶을 소개하고 인도 사회를 알려주려는 사회교육 박물관이다. 지난 여름 강원도 평창의 모임에 참석했다가 돌아오는 길에 주천면 금마리에 있는 인도미술박물관을 방문할 수 있었다.

인도미술박물관은 2012년 5월 폐교된 금마초등학교를 리모델링해 개관했다. 1981년부터 인도미술에 매료되어 30년간 인도의 문화와 예술을 연구한 미술가 박여송 관장이 수집한 예술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이곳에 전시된 인도미술은 그림(Paintings)과 조각(Sculptures) 그리고 공예(Crafts)로 나눠진다. 그림이 평면적이라면 조각과 공예는 입체적이다. 이들 전시물은 네 개의 전시실로 나뉘어 전시되고 있다. 그리고 조각과 공예작품 일부는 복도에 전시되어 있다.

▲ 인도미술박물관을 찾는 사람들 ⓒ 이상기


인도미술박물관은 전시만 하는 게 아니라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헤나 페인팅 체험, 의상체험, 홍차 체험 등을 통해 인도문화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요가와 명상, 인도영화 상영 프로그램을 마련해 지역주민들과 교류하고 소통하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인도미술박물관은 현장밀착형 사회교육기관 역할도 하고 있다.

필자도 인도미술 작품을 감상하면서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작품 감상 후에는 차를 마시며 박여송 관장으로부터 인도미술박물관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박여송 관장은 인도미술의 특징을 다양성(Diversity) 속의 통일성(Unity)이라고 말한다. 개개의 예술은 다양하지만, 그 속을 관통하는 힌두교의 종교관이 보이기 때문이다. 박 관장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그러한 인도의 전통과 종교관을 알아주길 바라고 있다.

전시실 복도에서 만난 시바 이야기       

▲ 춤추는 시바 나타라자 ⓒ 이상기


전시실 입구 복도에는 촐라(Chola)왕조시대 만들어진 춤추는 시바신상이 놓여 있다. 시바는 브라크마, 비슈누와 함께 힌두교의 3대신이다. 파괴의 신이며 동시에 예술과 요가의 수호신이다. 춤추는 시바신은 나타라자(Nataraja)로 불린다. 나타라자는 남인도 시바신전에서 볼 수 있는 대표적인 조각품이지만, 현재는 인도문화를 상징하는 작품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래서 이곳 인도미술 박물관 전시실 입구에도 나타라자가 서 있는 것이다.

나타라자는 탄다바(Tandava) 춤을 추고 있다. 탄다바는 우주의 창조와 파괴의 순환과정을 보여주기 위해 시바신이 추는 격렬한 춤이다. 탄다바는 현재 이슬람 세계에서 유행하는 탄두라 춤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청동으로 만든 나타라자 옆 제1전시실 입구에는 코끼리(Ganesha)를 탄 목조 시바신이 지키고 있다. 코끼리 가네샤는 예술과 학문의 수호신으로 지혜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크리슈나의 연인 라다 ⓒ 이상기


가네샤는 또한 시바의 전진에 방해가 되는 장애물을 제거한다. 전시실 안으로 들어가면 벽에 걸린 파타치트라(Pattachitra)를 만날 수 있다. 파타치트라는 서벵골 지방에서 볼 수 있는 두루마리 형태의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피리 부는 목동의 모습을 한 크리슈나(Krishna)가 보인다. 크리슈나 옆에는 그의 연인인 라다(Radha)의 모습도 보인다. 그 여인들은 크리슈나에게 연꽃을 바치고 있다.    

그림과 조각에서 느끼는 전통성과 신비성

▲ 칼람카리 그림 ⓒ 이상기


파타치트라는 종려나무 잎이나 천 그리고 종이에 그리는 인도의 전통회화 작품이다. 벽의 한 가운데는 천으로 만든 커다란 칼람카리(Kalamkari) 그림도 보인다. 역시 신화적인 라마야나(Ramayana)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한쪽으로는 이들을 현대적인 기법으로 표현한 그림도 보인다. 제목이 남과 여, 비나(Veena)를 든 여인이다. 비나는 기타 비슷한 인도의 전통악기다. 그 외 곤드(Gond) 부족의 그림도 보이고 파드(Phad) 그림도 보인다. 여기서 파드는 긴 형태의 천 조각을 말한다. 

제2전시실에는 마두바니(Madhubani) 그림과 왈리(Warli) 그림이 주를 이루고 있다. 마두바니는 비하르 주의 지역 이름이다. 처음에는 마두바니 지역 여성들이 벽이나 마룻바닥을 장식하기 위해 그렸으나, 현재는 천, 종이, 캔버스 위에 그리는 예술작품이 되었다. 왈리 그림은 인도 서쪽 뭄바이 북쪽 마하라쉬트라에 사는 왈리, 코카나, 도디 부족의 여성들이 그린 쌀가루, 분필 그림이다. 왈리 그림은 신화적인 이야기를 표현하지 않고, 일생생활과 사회적인 활동 등을 표현한다. 파종과 수확, 출생과 결혼, 삶과 죽음 등이 대표적인 소재가 된다.

▲ 왈리 그림: 수확의 춤 ⓒ 이상기


왈리 그림은 기원전 2500~3000년의 고분벽화에서도 발견된다. 더 나가 선사시대 동굴벽화와의 유사성도 언급된다. 왜냐하면 농경, 사냥, 춤 등 원시적인 삶의 모습을 단순한 형태로 표현하기 때문이다. 왈리 예술은 자연과 인생의 순환 과정을 담담하고 세밀하게 표현한다. 그래서 왈리 예술은 단순하면서도 기하학적이다. 왈리 예술은 1960년대 말 70년대 초에야 서방에 알려졌지만, 현재는 인도 민중예술을 대표하는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 

이곳 제2전시실에는 라자스탄에서 만들어진 남녀 조각상이 있다. 남자는 터번을 쓰고 콧수염을 길렀다. 여자는 머리를 뒤로 가지런하게 넘겼으며, 강인한 인상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또한 코끼리를 타고 있는 시바와 샥티(Shakti) 조각상도 있다. 샥티는 시바의 부인이지만 브라흐마의 우주 창조에 힘을 보태준다. 그러므로 그녀는 힘과 에너지의 상징으로 표현된다.

불상과 힌두신상 그리고 토속적인 공예품들

▲ 비하르 지방의 마투라 불상 ⓒ 이상기


제3전시실에는 불상과 힌두신상처럼 고등 종교의 조각이 있을 뿐 아니라, 나가족과 곤드족의 원시적인 조각이 전시되어 있다. 불상은 인도 북동쪽 비하르 지방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굽타 시대의 마투라 불상으로 보인다. 마투라 불상은 밝은 색 사암에 미소를 띤 둥근 얼굴을 표현했다. 또 다른 불상도 역시 낙천적인 얼굴에 생동감 넘치는 자세로 앉아 있다. 그 옆에는 마투라의 여인이 있는데, 풍만한 몸매를 에로틱하게 표현했다.

이곳에는 또한 마투라에서 만든 힌두신상 비슈누와 락슈미도 있다. 락슈미(Lakshmi)는 비슈누의 아내로 부(Wealth)의 여신이다. 그리고 미술관 입구에서 본 춤추는 시바신 나타라자도 있다. 나타라자 옆에는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Parvati)가 있다. 이들 옆에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불상도 있는데, 오리사(Orissa) 지역의 것이라고 한다.

▲ 바스타르 금속공예 ⓒ 이상기


나가족과 곤드족의 원시조각은 이들 신상에 비해 예술성은 떨어지지만, 그들이 던져주는 메시지는 훨씬 더 직설적이고 강렬하다. 나가랜드(Nagaland)에서 나온 목조각들은 사냥꾼과 전사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판넬 조각에도 그들이 잡은 동물과 전사들이 새겨져 있다. 이곳에는 또한 인도 여러 지역에서 수집한 탈 조각 작품도 여럿 보인다.

곤드족은 인도 중부 마디아 프라데쉬 주에 사는 드라비다족 사람들이다. 이들이 만든 조각품이 바스타르 금속공예품(Bastar metal works)이다. 대표적인 작품으로 전사와 악사, 말 탄 사람, 등잔, 벽걸이, 창틀과 창문 등이 있다. 그 중 창틀과 창문에 그려진 동물상이 인상적이다. 나무로 된 창틀의 동물이 돋을새김으로 정적으로 표현되었다면, 쇠로 된 창문의 동물과 인간은 입체적으로 아주 역동적이게 표현되었다. 나가족에 비해 곤드족의 예술이 훨씬 더 차원이 높다.

인도미술박물관을 나오며

▲ 힌두신상 비슈누와 락슈미 ⓒ 이상기


제4전시실은 복도를 따라 마련되어 있다. 그러므로 좁은 통로 양쪽으로 조각품이 걸려 있다. 그렇지만 앞의 전시실처럼 작품이 지역별, 장르별, 종교별로 분류되어 있지는 않다. 나는 이곳을 지나며 또 다시 인도미술품에 대해 복습을 한다. 나타라자도 보이고, 부처도 보이고, 자수도 보이고, 목공예도 보이고, 그림도 보인다. 전체를 한 바퀴 돌고나니 이제 인도미술이 조금은 보이는 것 같다.

그러나 천의 얼굴을 가진 나라, 불가사의한(incredible) 나라, 신이 인간만큼이나 많은 나라, 인도의 실체를 어찌 몇 시간 만에 알 수 있단 말인가? 장님 코끼리 만지기 수준이다. 나는 인도 미술작품을 감상하면서 인도의 문화와 예술을 조금 유추해 보았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작은 인도미술박물관이 우리에게 '인도로 가는 길'을 안내해 준다. 인도는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

<인도미술박물관 안내>

주소: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송학주천로 899-6 (금마1리 1087-1)
전화: 033-375-2883, 010-6564-7531
홈페이지: http://blog.naver.com/indianart
개관: 오전 10시-오후 6시(11월-2월: 오후 5시)
덧붙이는 글 (사)한국박물관협회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 중앙박물관 후원으로 박물관 미술관 100번 가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문화와 예술을 알자는 뜻에서다. 그래서 필자도 박물관과 미술관을 소개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이색적이고 전문적인 박물관과 미술관에 우선순위를 둘 것이다. 그것은 이들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해 다양한 문화와 예술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가끔 국내외 유명박물관도 소개하려고 한다. 매주 1회 이상 연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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