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꼴찌를 세계적인 정치가로 만들어준 힘, 독서

영국을 대표하는 윈스턴 처칠의 독서습관

등록|2013.10.27 18:59 수정|2013.10.27 18:59
"책과 친구가 되지 못하더라도, 서로 알고 지내는 것이 좋다. 책이 당신 삶의 내부로 침투해 들어오지 못한다 하더라도, 서로 알고 지낸다는 표시의 눈인사마저 거부하면서 살지는 마라."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가이자 영국 국민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 윈스턴 처칠의 수상록 <폭풍의 한가운데>에 쓰여 있는 말이다.

처칠은 제7대 말보로 공작 존 스펜서 처칠의 삼남 랜돌프 헨리 스펜서 처칠과 미국의 부호 레너드 제롬의 딸 제니 제롬 사이에서 남들보다 2개월 앞선 조산아로 태어났다. 처칠은 초·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말썽꾸러기였고 학교성적은 꼴찌였다. 그의 생활기록부에 따르면 '품행이 나쁜 믿을 수 없는 학생으로, 의욕과 야심이 없고 다른 학생들과 자주 다투며, 상습적으로 지각하고 물건을 제대로 챙기지 못하며 야무지지 못하다.'고 했고, 성적도 하위권이었지만 영어와 역사 과목만은 뛰어났다. 저명 정치인의 이름을 따서 학교 이름을 짓는 전통은 거의 없는 영국임에도 오늘날 처칠의 이름을 딴 초등학교만 10개가 넘는다는 사실은, 적어도 처칠의 학창 시절만 놓고 보면 아이러니컬하다.

처칠은 제 1차 세계대전 때에는 영국의 해군 장관을 맡았고,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영국의 총리를 지냈다. 그는 진실되고 화려한 언변으로 영국 국민들을 단합시켰고, 전장의 병사들을 독려함으로써 독일군의 영국 침공을 효과적으로 막아냈으며 전후 스탈린의 소련에 맞서 반소 진영의 선두에 서기도 했다. 1, 2차 세계대전 동안 전쟁의 최고 정책을 지휘했던 경험과 실천적 행동은 글을 쓰는 데 무엇보다 커다란 밑바탕이 되었다. 결국 처칠은 그 자신의 경험을 기초한 '제 2차 세계대전(The Second World War)'으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해로우 학교를 졸업하고 삼수 끝에 1893년 샌드허스트 사관학교에 입학하여 '병서'에 관심을 갖고 흥미를 느끼면서 열심히 공부하여 150명 중 8등의 성적으로 사관학교를 졸업했다. 처칠은 쿠바와 인도 등의 임지를 전전했지만 별다른 전공을 세우거나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했다. 처칠은 승진보다는 종군기자에 더 관심이 많았다. 그는 기자로 활동하고 책도 쓰면서 대중적 관심을 끌었고, 특히 1899년 남아프리카 보어전쟁에서 포로가 되었다가 탈출하여 전쟁 영웅으로 각광 받았다. 이런 인기를 바탕으로 25세에 보수당 후보로 출마, 하원의원에 당선됐다. 보수당의 보호관세정책에 반대하여 1904년 자유당으로 옮겼고, 1906년부터는 자유당 내각의 통상장관, 식민장관, 해군장관 등을 두루 역임하며 승승장구했다.

1939년 9월 1일 폴란드 침공을 시작으로 파죽지세로 승승장구하는 나치 독일군의 승세로 영국은 고립무원이었다. 그때 유화 정책으로 일관하다가 낭패를 본 네빌 체임벌린 총리가 사임하면서 마침내 처칠은 1940년 5월 10일 영국총리에 취임하게 된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선물해준 <보물섬>이 독서의 계기가 되어 매일 5시간씩 책을 읽었던 처칠, 그 결과 영국의 위대한 정치가로 변신하며 노벨문학상까지 수상했던 그의 독서습관은 어떠했을까.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생산적 독서'를 했던 처칠의 독서습관

첫째. 읽은 내용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라. 처칠은 "책은 많이 읽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독서한 내용 중 얼마나 자기 것으로 소화해서 마음의 양식으로 남느냐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또한 "활용할 수 있을 정도의 깊이 있는 정신작용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독서는 오히려 빈 수레와 다를 바 없다"고 말한다.

하루에 5시간씩 책을 읽었던 방대한 독서량과 깊이 있는 독서의 내공 덕으로 그의 저서 <폭풍의 한가운데> <나의 청춘기> <제2차 세계대전> <50년 후의 세계> 등은 수많은 지혜와 교훈이 담겨있어 리더를 꿈꾸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읽어야 할 필독서가 되고 있다.

둘째, 외국어로 책을 읽어라. 처칠은 색다른 독서의 즐거움을 맛보기 위해서는 외국어로 책을 읽으라고 권유한다. 그는 "외국어로 독서를 즐기는 과정 자체는 정신적인 근육 활동에 의존하는 것으로 어순의 변화와 뉘앙스의 차이 등이 정신에 새로운 활력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이런 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독서를 즐길 수 있는 수준만큼의 외국어 실력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셋째, 흥미를 느끼는 분야의 책을 집중적으로 읽어라. 처칠은 초·중·고 시절에는 라틴어와 수학 등 싫어하는 과목들 때문에 공부에 흥미를 잃어 꼴찌를 면할 수 없었지만, 사관학교에 진학해서는 '병서'에 흥미를 느껴 공부를 했기에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는 사관학교에 필요한 햄리의 <작전>, 프린스 크래프트의 <보병 포병 기병 해설>, 메인의 <보병 사격술>과 함께 미국의 남북전쟁과 보불전쟁 등을 다룬 역사서 등을 많이 읽었다. 이런 책에 흥미를 가지면서 자그마한 '병서 도서관'이라고 할 정도의 개인 서재를 갖게 되었는데, 이것이 공부에 흥미를 갖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넷째, 제1의 필독서를 만들어라. 처칠은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를 제1의 필독서로 삼고 평생을 가까이에 두고 읽으면서 지혜와 교훈, 통치술과 처세술을 배웠다고 한다. 이 책은 로마 제국의 역사를 최초로 개관한 역사서로 역사가이자 작가인 에드워드 기번이 집필준비와 출간까지 20여 년에 걸쳐 완성한 책이다. 서기 2세기부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으로 동로마제국이 몰락한 15세기까지 1,400여 년의 시간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균형잡힌 시각으로 로마제국의 쇠망 과정을 그려냈으며,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에 대한 통찰력 있는 시선을 보여준다. 또한 로마의 쇠퇴와 몰락이라는 주제를 통해 진보의 의미에 대해서도 성찰하고 있다.

위스턴 처칠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늘 꼴찌였지만 하루도 빼먹지 않은 것이 독서였다. 독서를 하면서 그는 꼴찌에서 사관생도로, 군인에서 정치가로 대변신을 준비했을 것이다. 그 시작은 아버지의 독서리스트를 읽으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