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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개골과 척추뼈를 닮은 집, 모델하우스가 아니랍니다

[사표 쓰고 떠난 세계일주 24] 건축가 가우디의 도시, 바르셀로나

등록|2013.10.30 16:48 수정|2013.11.11 15:08
이드리스가 마드리드로 돌아가면서 다시 혼자가 됐다. 숙소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수많은 여행객이 들이닥쳤지만, 또다시 새로운 관계를 쌓기가 번거로웠던 나는 모처럼 홀로 바르셀로나 거리로 나섰다. 바르셀로나 하면 으레 축구를 떠올리게 되지만 사실 바르셀로나는 세계문화유산의 성지와도 같은 곳이다. 아마도 가장 젊은 세계문화유산의 성지.

여행하면서 마주치는 세계 곳곳의 문화유산들은 언제나 놀랍지만, 바르셀로나의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Antoni Gaudi)'가 빚어낸 건물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아닌 공간의 초월이라 할 정도로 압도적인 신비감이 묻어난다.

가우디가 만든 세계문화유산, 그 압도적인 신비감

▲ 람브라스 거리 곳곳에서는 가우디의 건축물을 모티브로 한 예술품을 판다 ⓒ 김동주


숙소를 나서 제일 먼저 찾아 나선 곳은 보행자 전용거리인 람브라스 거리였다. 아직 여름이 살짝 걸쳐있는 느낌이 드는 10월 초의 거리는 날씨가 흐려도 여전히 더웠다. 높게 치솟은 야자수들 때문인지 어쩐지 여전히 여름 휴가철의 느낌이 드는 람브라스 거리는 평일 오전이라서 그런지 모처럼 여유로운 모습이었다.

광장까지 이어지는 길을 따라 줄줄이 늘어선 가게들과 거리에 화가들, 그들은 하나같이 가우디의 흔적을 만들어서 팔고 있었다. 아직 가우디의 건물을 직접 보지 않았지만, 람브라스 거리 내내 이어지는 '가우디 열풍'은 어쩐지 이 천재 건축가의 뒤를 따라서 걷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했다.

▲ 미로처럼 구불구불한 곡선이 인상적인 건물, 카사밀라(Casa Mila) ⓒ 김동주


처음으로 발견한 가우디의 건물은 '카사 밀라(Casa Mila)'였다. '카사'는 집이라는 뜻이니 한국식으로 하자면 밀라아파트쯤 될까. 사거리의 한쪽 모서리에 우뚝 솟은 카사밀라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예쁘다거나 들어가고 싶다가 아닌 '만지고 싶다'였다. 그는 어떻게 실제로 사람이 사는 집을 이토록 '만지고 싶게' 만들 생각을 했을까.

물결치는 듯한 구불구불한 외관과 마치 동굴과도 같은 출입구, 도저히 산타가 아닌 요정들이 드나들 것만 같은 환기탑과 굴뚝들을 보면 과연 이곳이 '모델하우스가 아니라 진짜 사람이 사는 집이 맞나?'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그 동굴의 입구에 들어서면 마주치는 엘리베이터를 발견하는 순간 환상에서 빠져나오지만 말이다.

▲ 가우디의 건물은 만지고 싶은 충동이 들게한다. ⓒ 김동주


지금으로부터 정확히 100년에 지어진 카사밀라는 겉에서 보면 마치 만화 속에 등장하는 건물 같지만 내부는 매우 현대적이었다. 관람객을 위해 언제나 열려있는 방은 고풍스럽고 현대적인 유럽의 느낌을 그대로 담았고 하늘이 뻥 뚫린 독특한 건물 내부에 있는 두 개의 안뜰에는 다양한 식물들이 자라난다. 계단과 건물 밖 발코니를 장식한 철장식은 마치 미역 줄기와도 같이 복잡하게, 또 아름답게 얽혀진 모습이다. 어쩐지 카파도키아의 기암괴석과도 비슷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어쩐지 가우디가 만든 이 집은 마치 하나의 생명체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서 만지면 움찔하고 움직일 것만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는 코너마다 가득 묻어나는 사람의 손때는 이런 생각을 한 게 나뿐만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옥상에 올라 예술품이나 다름없는 환기구들과 거리 풍경을 멍하니 내려다보던 나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또 다른 가우디의 건물을 발견하고 얼른 발걸음을 옮겼다.

▲ 가우디가 설계한 또 다른 연립주택 카사바트요(Casa Batllo). ⓒ 김동주


'카사바트요'는 참 예쁜 건물이었다. 정말 예쁘다. 카사밀라도 이 카사바트요를 보고 감명받은 '밀라'라는 사람이 가우디에게 의뢰해서 지어진 집이라고 한다. 사람이 만들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깔의 유리 모자이크로 장식된 외관과 파도를 떠올리게 만드는 가우디 특유의 곡면은 어지럽게 눈을 현혹시켰다.

가우디는 '건축은 자연의 일부여야 한다'라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는데 카사바트요를 보고 바다가 떠오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다. 혹자는 카사바트요의 독특한 외곽의 기둥을 두고 사람 뼈를 모티브로 했다고 하기도 한단다. 발코니는 두개골 같고 옥상은 척추 뼈, 창문은 신장의 단면 그리고 사람의 다리뼈 같은 2층 기둥까지. 듣고 보니 정말 그렇다.

▲ 카사바트요의 화려한 내부와 옥상 환기구. ⓒ 김동주


카사바트요의 내부는 더욱 화려하다. 천정에 달린 화려한 샹들리에와 외계의 문양처럼 보이는 무늬로 채색된 스테인드 글라스들, 파도의 모양대로 구부러진 창들은 감히 따라 하기도 힘들 만큼 독창적이었다.

마찬가지로 뻥 뚫린 내부 천장을 따라 시선을 옮기면 흡사 놀이공원같다. 마치 반지를 낀 손가락과 같은 옥상의 환기구는 화룡점정. 과연 그 누구라서 이런 집에 살고 싶지 않을까. 꿈틀거리는 생명체 같은 그의 작품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단어가 주는 옛스러움과 고귀함 이상의 '환상'이 느껴진다.

'집'은 인간이 살아가는 실용적인 공간이다. 벽에 걸어두고 보는 그림도 아니고, 감미롭게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도 아닌 이 건물을 가우디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작품'으로 만들었다. 그는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영감을 주었을까. 아니 만약 내가 건축학도였다면 귓등에 꽂아두었던 연필을 당장 부러뜨렸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와 같은 천재는 두 번 다시 나오지 않을 테니까.

자신이 지은 최후의 역작에 묻힌 천재 건축가

가우디의 진면목은 구엘공원(Parque Guell) 부터다. 일찍이 가우디라는 천재를 알아본 직물업계의 거장 '구엘'은 자신의 재산을 가우디가 천재성을 발휘하는데 투자했다. 구엘공원은 그 덕분에 생겨난 또 다른 세계문화유산이다.

▲ 가우디 종합선물세트와도 같은 구엘 공원(Parque Guell). ⓒ 김동주


생동감이 넘치는 정원을 따라 난 계단 위의 세상에서 내가 처음 발견한 것은 전망대 역할을 하는 빈 공터였다. 그곳에 서면 흐린 회색 하늘빛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자신의 색을 빛내고 있는 다양한 가우디의 건축물이 한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마치 동화 속에 들어온 것마냥 아주 설레면서도 아름다운 모습이어서 한참을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 구엘공원의 다양한 모습들. ⓒ 김동주


360도를 빙 둘러 뻥 뚫린 그 장소에는 먼발치를 바라보면 딱 하나의 건물만 보인다. 마치 만화 속의 건물을 세트로 만든 것 같은, 중세의 성곽에서나 봄 직한 창살과 하늘을 찌를 듯한 높은 첨탑, 아직도 공사가 진행 중인 가우디 최후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잭과 콩나물에 나오는 거인들이 금방이라도 뛰쳐나올 것만 같은 그 미지의 세상이 나를 향해 손짓하고 있는 것 같아 나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 가우디 최후의 역작, 사그라다 파밀리아(Sagrada Familia). ⓒ 김동주


사그라다 파밀리아가 가까워질수록 드는 생각은 '실제가 아니라 허상이 아닐까'였다. 스타워즈에 나오는 홀로그램이나 거대한 스크린에 영사되고 있는 허구. 가우디의 나이 서른 살 때인 1882년 공사를 시작해서 1926년 그가 죽을 때까지도 세 개의 입구 중 단 한 곳만 완성되었고 오늘까지도 계속해서 건설 중인 이 불가사의한 교회는 완성되기까지 과연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릴지 알 수가 없다.

'파사드'라고 불리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세 입구는 각각 4개의 첨탑이 세워져 총 12개의 탑이 세워져 있는데 각각의 탑은 12명의 사도를 상징한다. 건축에 필요한 돌이 부족해서 공사가 중단되었을 정도라고 하니 그 규모가 어느 정도인지 상상을 초월한다. 과연 이토록 복잡하고 거대한 건물이 한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 있나 싶은 의심이 계속해서 들었다.

▲ 감히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섬세하고 수려한 조각들. ⓒ 김동주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그라다 파밀리아는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성당은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타라고나 대성당의 예에서 보았듯이 처음 시작한 사람이 마지막 완성까지 보았다면 그 만큼의 웅장함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언젠가 가우디가 한 그 말은 현실이 되었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평생 건축에만 몰두하다 74세에 전차에 치여 사망한 그는 너무나 초라한 행색 탓에 아무도 이 거장을 알아보지 못해 너무 늦게 병원으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는 죽어가는 그 순간까지도 이 사그라다 파밀리아를 생각했을까. 결국, 그는 로마 교황청의 배려로 성자들만 묻힐 수 있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지하에 묻혔다.

▲ 절제된 화려함의 진수를 보여주는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 ⓒ 김동주


사그라다 파밀리아의 내부에 들어서서 그 까마득한 천장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실내 디자인과 장식 조각, 심지어 의자와 화장대까지 가우디의 손길이 닿지 않은 것이 없는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자니 한없이 만지고만 싶다. 어쩌면 가우디의 심장은 회색이 아니었을까. 뜨거운 사랑도, 청춘의 푸르름도, 부귀와 영화도 건축을 향한 그의 혁명을 막지 못했다.

아마도 그의 몸에 흐르는 뜨거운 건축 혼들이 모두 심장으로 몰려들었다면 그의 심장은 저 차가운 콘크리트처럼 오묘하게 빛나는 회색 빛이었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직 착공을 시작하지도 않은 파사드 앞에 서서 잠시 그의 모습을 상상했다. 어쩌면 그의 영혼을 잠시라도 엿볼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날 밤 나는 마드리드에 있는 이드리스와 세비야에 있는 헤수스에게 한 통의 메일을 보냈다. 한국에서 오는 친구와 브라질에서 만나기로 해서 갈 수 없노라고. 우리의 재회는 언제가 또 다른 나라에서나 이루어지겠지만, 즐거운 추억을 가지고 가게 되어 고맙노라고 전했다. 아프리카를 횡단하고 중동을 거쳐 유럽의 끝 스페인에 닿은 여행은 이제 또 하나의 미지의 대륙 남미로 향한다.
덧붙이는 글 2012년 7월부터 올 4월까지 200일간 5대륙 22개국을 여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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