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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온다던 '믿기지 않는 행운'은 사실...

[공모-관상 또는 사주이야기] 타로점 믿고 로또에 빠졌다 폐인될 뻔

등록|2013.11.04 08:20 수정|2013.11.04 08:20
2001년, 나는 급하게 돈이 필요했다. 그냥 쉽게 친한 대학친구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부탁했다. 친구는 "얼마나 필요하냐?"면서 "혹시 주말에 시간을 낼 수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연히 가능하다"고 했다. 친구는 바로 내가 필요한 금액만큼 벌 수 있는 주말 알바를 소개해줬다.

그 친구가 소개해 준 알바는 올림픽공원 자판기 아르바이트였다. 올림픽공원과 경륜장 내 캔자판기와 커피자판기의 재료를 채우고 수금을 하는 일이었다. 나는 주말에 경륜경기를 보러온 사람들이 이용하는 커피 자판기를 관리했다. 겨울쯤부터 시작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내가 일하는 금·토·일은 주말에 하는 경륜 경기 준비로 바빴다. 주말엔 하루에 2~3번씩 재료를 채우고 수금하는 일을 반복했다. 겨울이라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찾았고, 그때문에 일할 때도 좀 번잡했다.

공단에선 경륜장을 찾는 사람들을 위해 오전에만 서비스로 커피를 나눠 줬다. 길게 줄을 선 사람들에게 커피를 나눠 주며 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대다수가 좀 깔끔하지 않은 차림새였고, 개중엔 도박판에서 밤을 새고 나온 듯한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평소에 책이나 신문은 안 보지만 경륜(경기용 사이클 자전거로 전용트랙을 돌며 시합하는 경기) 예상 잡지를 보며 밤새 공부했다"는 둥, "밥 사먹을 돈까지 아껴서 경륜경기에 배팅을 할 거라"는 둥, "오늘 돈 따면 멋지게 놀러갈 것"이라는 등의 이야기를 나눴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들인데도, 마치 계속 알고 있었던 사람들인 것처럼 스스럼 없이 웃고 떠들며 얘기를 나눴다. 다들 밝게 웃고 있었지만, 눈빛에선 알 수 없는 절망감이 엿보였다. 경륜을 하러 온 그날만은 기적을 기대하는, 희망을 품는 듯한 얼굴이었다. 당시엔 도박과도 같은 경륜에 정신이 '쏙' 빠진 사람들을 보면 우습기도 했고, 마음 한 구석이 안타깝기도 했다.

경륜장 알바 하다 처음 본 타로점, 내 점괘는...

"처음에 친구 따라 왔다가 돈 딴 이후로 계속 오게 됐지 뭐…."

당시 내가 경륜장을 찾는 사람들에게 자주 들었던 말이다. 도박엔 초심자의 행운이 있다고 하는데 그들도 그런 행운이란 이름의 큰 불행과 맞딱드린 것 같았다. 자신들을 경륜장에 처음 데리고 온 친구를 원망하면서도 경륜배팅을 끊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나 이런 밝은 얼굴도, 분위기도 경기가 시작되면 사라졌다. 그곳엔 나이 많은 어른에 대한 예절이나 예의는 없었다. 자판기 앞에서 새치기라도 하면, 자신보다 나이가 많아 보여도 가차 없이 육두문자를 내뱉었다. 여자라고 해서 양보해주지도 않았다. 돈에 눈이 멀어서, 돈에 찌들어서, 돈에 이리저리 치어서 사람들이 거칠고 흥분한 상태였다.

그렇게 알바를 하던 어느 날, 인원이 더 필요하다며 알바생들을 구하기 시작했다. 일단 힘을 좀 써야 하는 일이기에 나보다 좀 어린, 남자 위주로 구했다. 한 명은 체격이 좋고 한 명은 작고 빠릿빠릿한 친구였다. 두 친구 모두 성실하고 진득하고 신뢰감이 있었다.

그 중 작고 빠릿빠릿한 친구는 어릴 적 동화에서 본 것 같은, 장난기 많은 키 작은 마법사 같은 분위기를 풍겼다. 그가 어느 날 자판기 재료 창고사무실로 큰 책을 하나 가져왔다. 그 친구는 "집 다락방에 갔더니 먼지가 가득 쌓인 오래된 책이 하나 있어서 할리우드 영화에서 마법사가 마법 책을 꺼내듯 먼지를 후~후~ 불어가며 먼지를 털어서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가 들고 온 책은 타로카드 점 책이었다.

당시는 드라마 <겨울연가>에 타로카드가 나오기 1년 전쯤이었다. 그가 말하길, 타로카드에는 점은 보는 규칙이 있단다. 일요일엔 점을 보면 안 되고, 점보는 대가로 돈을 받아도 안 된단다. 뭐 그런 여러 가지 규칙이 책에 적혀 있다고 했다. 타로카드는 카드를 쭉 늘어놓고, 선택한 카드의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다.

'믿기지 않는 행운'이라니... 사실일까

▲ 타로카드 ⓒ rgbstock


그 친구는 자판기 창고에서 같이 일하는 직원들의 점을 먼저 봐줬다. 나도 알바생이었기 때문에 직원들이 다 볼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물론 카드 점을 믿지는 않았지만, 재밌을 것 같아서 꼭 보고 싶었다. 특히 자신의 점괘를 듣곤 놀라거나 고개를 끄덕이는 직원들을 보니 더욱 기대가 되었다. 난 주말에만 일하는 데다, 항상 바빠서 점을 볼 기회를 잡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내 차례가 왔다. 그 친구는 내가 고른 수십 장의 요상한 그림카드를 이리저리 능숙하게 배열했다. 그러더니 깜짝 놀라며 나의 점괘를 말해주었다. 내 점괘를 종합한 결과, '믿기지 않는 행운'이란 뜻이 나왔단다. 그 친구는 흥분한 얼굴로 지금까지 이런 최고의 점괘를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나도 덩달아 흥분했고 기분도 무척 좋아졌다. 그후 나는 그 점괘를 믿고 싶었고 정말 믿게 되었다.

이후 알바를 그만둔 지 2년 정도 됐을 어느 겨울날, 길을 걷던 중 우연히 '인생역전'이란 문구가 적힌 로또 광고물을 보게 됐다. 당시 난 강남에서 직장생활을 하던 중이었다. 당시 난 직장에 다닌 지 얼마 안 돼 이런 저런 어려움을 많이 겪고 있었다. 그 때문에 어깨도 많이 처져 있었다. 마음도 몸도 고달팠던 그 겨울, 그날 난 불현듯 예전 그 친구가 봐줬던 타로카드점이 생각났다. 순간 확신했다. 믿기지 않는 나의 점괘 '믿기지 않는 행운'이 바로 로또일 거라고.

그날부터 난 미친 듯이 로또를 구입하기 시작했다. 자동차 조수석 수납함을 열면 로또용지가 우수수 떨어져 내릴 정도로 말이다. 직감으로 로또 숫자를 조합해 보기도 하고 바둑알에 번호를 새겨서 번호를 조합해 보기도 했다. 옷 살 돈, 밥 사먹을 돈 등을 아껴가며 로또 용지 속 숫자들을 칠했다.

한동안 계속된 나의 복권 구입은 나의 생활에 적지 않은 타격을 주었다. 금전적인 것을 떠나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음을 나 자신이 느낄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꾸준히, 오랫동안 로또를 샀지만, '믿기지 않은 행운'은 오지 않았다. 제일 높게 나온 게 5등 이었으니…. 아무리 좋은 꿈을 꾸어도 마찬가지였다. 당시 나의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내가 찾아낸 믿기지 않는 행운은...

▲ 로또복권 ⓒ 박기훈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역시나 당첨이 되지 않아서 울적한 기분에 술을 한 잔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다. 늦은 시각, 불 꺼진 가게 유리창 위로 나의 모습이 비쳤다. 그 유리창 위로 자판기 알바시절 무료커피를 마시며 경륜경기를 기다리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내가 비웃었던 그 우습고 안타까웠던 사람들의 눈빛이 내 눈에 있는 게 아닌가? 그 안타깝고 절망적인 눈빛들….

그 겨울의 불 꺼진 유리창에 비친 내 모습과 경륜게임에 미쳐있던 사람들과 무슨 차이가 있었을까? 그 후로 난 로또를 끊었다. 그리고 마음의 평안을 되찾았다. 나의 점괘? 믿기지 않는 행운?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아주 천천히 깨닫게 되었다. 그 행운은 내 노력으로 이루어 가는 꿈이며 그 꿈에 다가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그 행운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노력이 결과에 생기는 결과물인 것임을 알게 됐다. 이제 난 더 이상 노력 없는 믿기지 않는 행운이라는 이름의 공짜 행운은 기대하지 않는다.

로또 복권을 끊은 이후 난 내 얼굴이 바뀐 걸 느낀다. 나의 얼굴이 로또에 빠졌던 10여년 전보다는 훨씬 좋아졌다는 것을. 한 마디로 관상이 바뀐 것을 느낀다. 웃음이 늘었고 수다가 늘었고 좋은 사람과의 만남이 늘었다. 그리고 나에게 올 믿기지 않는 행운을 위해 노력하며 즐겁게 산다.

이 글을 읽는 이들도 나와 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리고 혹여나 복권 등에 중독된 분이 있다면, 허황된 기대보다는 자신의 노력으로 이룰 수 있는 꿈을 꾸길 바란다. 그러면 어느 순간 당신의 삶에는 항상 '믿기지 않는 행운'이 가득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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