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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능 '제6과목'에 잠 못 드는 아이들, 이런 거였어?

'사설 스포츠 토토'에 빠진 청소년들... 회원가입 쉬워 무방비 노출

등록|2013.11.01 19:11 수정|2013.11.01 19:11
"여기서 '사설 스포츠 토토'를 해봤거나 지금도 하고 있는 학생들 손 좀 들어볼까?"

지난 달 24일 수도권에 위치한 한 고등학교 교실. 급작스런 기자의 질문에 서로 알 수 없는 눈빛을 교환하며 눈치를 보던 학생 몇 명이 슬그머니 손을 들자, 이내 다른 학생들도 손을 들었다. 대략 40명이 정원인 이 반에서 6명의 학생들이 불법인 사설 토토를 해봤다고 했다. 무려 10%가 넘는 수치였다.

"그렇다면 이 중에서 손익을 합쳐 이익을 본 사람 있어?"

방금 전 질문을 했을 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이전과는 극명하게 대비가 되는 반응이었다. 학생들 중 그 누구도 미동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럼 왜 끊지 못하고 지금도 지속적으로 하고 있냐는 의문 섞인 물음에 학생들은 "처음에는 많이 땄어요"라고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대부분 사설 스포츠 토토가 불법인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 안 걸리겠지…" 하는 마음이 더 큰 것 같아 보였다.

사설 토토에 빠진 청소년들... "베팅하면 잠이 안 와요"

▲ 그렇게 베팅을 해놓고 나면, 정작 자야 될 새벽에 의식이 깨어 있다. 자칫하면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돈을 딸 수도 있다는 기대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 sxc


'사설 스포츠 토토'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허가를 받은 합법적 베팅인 '프로토(Proto)'와는 달리 개인이 직접 사이트를 제작하여 회원을 모집한다. 이와 같은 사설 도박 사이트는 주로 해외에 서버를 두고 점조직으로 운영되고 있어서 단속하기도 쉽지 않다. 더욱 문제인 것은 회원가입에 제한이 없다는 점이다. 휴대폰 번호와 자신이 개설한 계좌번호만 있으면 성인인증을 안 해도 일사천리로 가입이 이뤄진다. 그만큼 청소년들도 아주 쉽게 '사설 토토'에 발을 담글 수 있다는 것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최근 이런 스포츠 토토 도박에 빠져든 청소년들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여타의 도박들과 마찬가지로 청소년들은 조금만 더 신중하게 하면 돈을 딸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습관적으로 '불법 도박'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돈을 잃게 되는 좌절을 맛볼지라도, 변심한 애인이 다시 돌아오기를 바라듯이 희망을 끝내 버리지 못한다. 올해 초 방송인 김용만도 불법 스포츠토토에 13억 원을 쏟아부은 것으로 알려져 세상을 놀라게 했다. 이번 취재는 이에 대한 개인적인 관심에서 이루어졌다.

청소년들이 성인들도 쉽게 끊지 못하는 '도박'이라는 굴레에 휘말려 든 것도 문제지만, 사실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자신이 베팅한 경기를 보느라, 새벽녘까지 잠들지 못한다는 것. 이날 만난 학생들에게 다시 물었다.

"오늘 오전 수업은 뭐였어?"
"자느라 수업 못 들었어요."

공부가 아닌 도박을 하느라 자연스럽게 올빼미족이 된 학생들. 이들에게 학교는 잠을 보충하러 오는 곳이다.

"베팅을 해놓으면 자고 싶어도 잠이 안 와요. 잠에 들었어도 축구 경기 하는 시간에는 꼭 깨요."

합법적인 프로토(Proto)와는 달리 '사설 토토'는 프리미어 리그(Premier League)와 같은 대중적인 리그뿐만 아니라, 각 나라에 존재하는 아마추어 리그의 경기 또한 베팅 목록에 포함되어 있다. 스마트폰만 있으면 학교에서도 누구의 간섭을 받지 않고 얼마든지 할 수 있다.

그렇게 베팅을 해놓고 나면, 정작 자야 될 시간에 잠을 못 이룬다. 자칫하면 돈을 잃을 수 있다는 불안감과 돈을 딸 수도 있다는 기대 심리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는 시각은 오전 5시께, 뒤늦게 자려고 누워봐야 잠이 올 리 없다.

돈을 잃은 경우라면 분노와 절망감을 가득 안고 꾸역꾸역 어떻게든 학교를 간다. 하지만 수업에 들어간 뒤에도 이들 손에는 필기도구가 아닌 스마트폰이 들려있다. 베팅을 할 마땅한 경기가 없는 날에는 수업 시간에 잠을 잔다.

"몰래 알바하거나 엄마한테 교재비 받아서 베팅해요"

'사설 토토'를 하는 학생들은 보통 일주일에 10~20만 원을 투자하고 있다고 했다(한 번 베팅할 때 최소 금액은 5000원). 이들에게 "그 많은 돈이 도대체 어디서 나느냐"고 묻자, "몰래 아르바이트 하거나 엄마한테 교재비 달라고 해요, 그걸로 또 베팅하고…"라고 말한다.

책값을 명목으로 도박 자금을 마련한다는 학생들은 생각보다 '사설 토토'에 중독돼 있는 것 같았다. 이날 만난 학생 중 몇은 1년이 넘도록 사설 토토를 하고 있다고도 했다. 더욱 문제인 것은 불법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보다는 잃었던 것을 다시 되찾고야 말겠다는 회수 의지가 훨씬 강하다는 것이다.

이들 중 일부는 주위 친구들에게 돈을 빌려서까지 베팅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빚이 쌓이고 쌓이다 보면 어느새 금액은 학생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까지 도달한다. 하지만 그 빚을 해결한다는 이유로, 학생들은 또다시 베팅을 한다.

"오늘은 필승 경기가 많아서 베팅 안 하면 호구예요."

걱정도 잠시, 오늘 열린 경기에 대해 서로 의견을 공유하는 학생들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학생들 얼굴은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오늘 경기 분석 다 했냐?"

사회과학 연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쓰일 법한 단어인 분석이라는 말이 '사설 토토'를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이들에게 있어 분석이란, 경기를 베팅하기에 앞서 특정 경기가 열리는 날의 기후나 선발 및 결장 선수, 그 외에 변수가 될 만한 정보를 미리 알아보는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선 수능 영역 제6과목이란 우스갯소리가 나올 정도로 꼼꼼하고 치밀하게 사전 정보를 공부한다.

"바르셀로나라고 무조건 이기는 법은 없거든요. 전 메시 없으면 무조건 베팅 안 가요."

이제 곧 야간 자율학습을 할 시간이라 인터뷰를 얼추 마무리하고 자리를 뜰 무렵, 학생들도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저희 야자 잘 안 해요. PC방 가야죠. 분석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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