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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뒷전인 요즘 엄마들? 속이 뜨끔했다

[두근두근 엄마되기 9] 23주차

등록|2013.11.01 11:17 수정|2013.11.01 11:17
벼르고 있던 공부를 2주 전부터 시작했다. 서울 구로구 온수동에 있는 나임평생교육원에서 여는 발도르프 강좌 중에서 영유아 단기과정을 공부한다. 이곳에서 꼭 발도르프 강좌를 듣고 싶었는데 그러려면 하루 종일 시간도 내야 하고, 수강료도 부담스러워서 망설였다. 그동안 남편에게 평소에 발도르프 배워보고 싶다고 노래만 부르다가, 이번 강좌에 대해 설명하니 흔쾌히 들어보라고 한다.

발도르프는 우리나라에서 한때 유명했던 프뢰벨이나 몬테소리 같은 교육 철학이다. 발도르프는 다른 철학과 달리 아이를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존재로 보지 않는다. 한 아이를 미래의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 '한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그래서 재촉하지 않는다.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며 그 아이의 때가 오길 '기다리고', 또 '존중'한다.

▲ 발도르프를 배우고 아이들과 함께 풀어내며 아이들과 만나는 것이 내 천직이라는 것을 알았다. ⓒ 해오름


나는 십대를 온전히 '수능'을 위한 시간으로 보내고서 대학생 때는 방황했다. 그때 발도르프를 배우며 나를 알게 되었고 내가 하고자 하는 것을 찾게 되었다. 이렇게 말하면 발도르프가 만능인 것처럼 들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우선 아이들과 행복하게 지내는 것을 배웠다. 그리고 옛날에는 학교 선생님에게 실망해 '선생짓'은 안 하며 살겠다고 만날 엄마한테 반항했는데, 지금의 나는 아이들을 만나는 것이 천직이라 믿고 살고 있다.

매주 토요일, 나는 발도르프 영유아 과정을 들으면서 홈런이와 행복한 공부를 하고 있다. 태교를 위한 공부를 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아쉬웠는데, 수업을 듣다 보니 이것이 결국 홈런이를 위한 공부와 별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다.

▲ 수공예 시간에 배우며 만든 인형. 홈런이와 좋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다. ⓒ 곽지현


수공예 시간에는 인형을 만들면서 홈런이가 이 인형과 좋은 친구가 되기를 바라며 공들여 바느질한다. 노래 시간에는 아이가 아침에 일어나면 불러주는 노래, 아이의 손을 잡고 손목과 손가락에 팔찌와 반지를 끼워주는 것처럼 아이의 손을 부드럽게 만지며 불러주는 노래, 낙엽이 떨어질 때 불러주는 노래를 배웠다. '잘 배워뒀다가 나중에 홈런이한테 꼭 해줘야지'하며 평소에도 연습하고 있다. 그리고 연습한 날 저녁엔 남편을 모르모트(?) 삼아 연습한다.

이렇게 즐겁기만 하던 어느 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정희 선생님(<한겨레> 베이비트리에 연재도 하고 계시니 관심이 있다면 한번 보셔도 좋겠다)의 '발도르프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수업 시간이었다. 여느 때처럼 난 즐겁기만 한 마음으로 앉아 있었다. 그리고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내가 그래도 발도르프에 대해 10년 가까이 듣고 본 게 있으니 좀 알지'하는 거만한 생각도 하며 앉아 있었다.

예상했던 바와 같이 대략적인 발도르프의 특성을 설명하셨고, 난 알고 있던 것도 있었지만 다시 한 번 들으면서 또 감탄을 했다. 그러다가 이 선생님이 유치원 교사들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유치원 교사들은 자부심을 가져야 해요. 왜냐? 중, 고등학생이 선생님 때문에 확 변해요? 안 변해요. 대학생들이 교수님 보고 행동을 따라하고 행동이 변해요? 아니잖아요. 그런데 영유아들은 교사의 영향을 많이 받아요. 아이들은 자기가 좋아하는 어른들을 잘 따라 하잖아요. 여러분들이 사뿐사뿐 걸으면 아이들도 그것을 따라할 테고, 뒤뚱뒤뚱 걸으면 아이들도 따라 해요. 여러분이 하는 대로 아이들은 모방하는 거예요. 그러니 수업 시작하자고 목청 높이며 불러 모으거나 정돈하는 법을 가르칠 필요가 없어요. 그냥 여러분들이 행동으로 보여주면 되는 거예요. 그럼 선생님을 좋아하는 아이들은 따라하게 되어있으니까."

이런 마법과 같은 내용과 함께 정신차리라는 듯 내 뒤통수를 후려치는 말도 있었다.

"요즘 집에서 엄마들이 질적으로 풍족한 사랑을 주지 않아요. 그래서 유치원 교사들은 그 허전함을 채워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에요. 어쩜 요즘 엄마들은 자기계발에 대한 강박에 사로잡혀 아이는 뒷전인지... 게다가 아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어쩔 줄을 몰라 하는 엄마들도 많아요. 영유아 시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부모가 알아야 하는데 말이지. 그래서 유치원 교사들의 역할이 더 커졌다고 생각해야 해요."

초롱초롱하게 선생님의 눈을 보며 경청하던 나는 이때부터 애꿎은 공책에 낙서만 했다. 너무 부끄러웠다. 왜냐하면 나도 그 '강박'이 있었으니까 말이다. 겉으로는 발도르프가 좋고, 기회가 좋아 강의를 듣는다고 했지만 불안했다. 내가 홈런이를 키우고 나서 내가 돌아갈 수 있는 자리가 있을지가 걱정되었다. 그래서 이 기회에 수업을 듣고 수료증을 또 하나 받아 놓으면 조금 안심이 되니 이 수업을 들을 결심을 했던 것이다. 물론 홈런이를 위해 더 없이 좋은 공부라고 생각했지만, 결국엔 나를 생각해서 시작한 공부였다.

이 세상엔 일을 하면서도 현명하게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도 많다. 정말 훌륭하고 존경스럽다. 거의 '신'급이라고 할까. 하지만 나는 양쪽 다 완벽하게 소화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난 일과 육아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하겠지. 일을 그만두기 전까지만 해도 나는 육아를 선택하겠다고 자신 있게 말하고 다녔다. 그런데 막상 일을 그만두고 나니 내가 '가고 있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과 불안이 더해져 '육아는 일 년 정도만 잠깐 하고 일을 해야지' 결심했다.

나에겐 무엇이 더 중요할까 가만히 생각해본다. 몇 푼 더 벌어서 그 돈을 아이를 맡기는 데 쓰면서, 내가 하고 싶은 일 한다고 아이를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일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할까? 아니면 30년 후에 이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잡아 자신의 의지로 무언가를 해내는 바로 그 한 '사람'을 키워내는 일이 더 중요할까?

아직도 그 둘 사이에서 갈팡질팡한다. 불안은 조금 더 다스려봐야겠다. 홈런이가 안정적이고 풍족한 영아시기를 보낼 수 있도록 홈런이와 온전히 함께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것은 알지만 결정이 어렵다. 조금 더 고민할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이 세상에서 한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것만큼 위대한 일도, 힘든 일도 없는 것 같다. 그래도 내가 이런 공부를 한 덕분에 남편에게도 '전파'하고, 둘이 합심해서 홈런이가 이루려는 뜻을 이룰 수 있도록 홈런이를 건강하게 키워보자고 남편과 이야기한다.

▲ 조카들 생일 선물로 만들고 있는 공이다. 발도르프 유치원에서는 선생님들이 뜨개질을 하거나 바느질을 한 장난감을 생일 선물로 준다고 한다. ⓒ 곽지현


요즘은 뜨개질을 열심히 하고 있다. 이번엔 홈런이를 위한 것이 아닌 내 주위 사람을 위한 것이다. 조카의 생일이 얼마 남지 않아 수업 때 배운 털실 공을 만들고 있다. 양모 100% 털실에 양모 솜을 넣어 만든 장난감이다.

나는 공부하며 만든 것이니 이런 장난감이 아이들에게 참 좋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이 장난감이 조카에게 환영받을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도 좋은 걸 내 아이에게만 해 주는 것보단 주위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내가 한 공부를 나누고 싶다. 얘들아, 내 인생 두 번째 뜨개질이니 실력은 조금 부족하겠지만 털실 공 많이 아껴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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