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장은 욕설, 고인은 "죄송"... 눈시울 붉힌 노동자들
[현장] 목숨 끊은 삼성전자서비스 노동자 추모문화제... 삼성 사과·대책 마련 촉구
▲ '삼성자본에 타살된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 두정센터 앞에서 최근 목숨을 끊은 최씨를 추모하고 삼성전자를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 이주영
삼성전자서비스 천안 두정센터 앞. 촛불을 든 100여명이 아침부터 내린 비로 젖은 길 위에 앉아 "동지를 살려내라"고 외쳤다. 사람들이 입은 우비 안으로 삼성 로고가 박힌 회색 점퍼가 비쳤다. 이들이 자리한 곳은 고 최종범(33)씨의 일터였다. 최씨는 지난달 31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천안 두정센터에서 협력업체 수리기사로 일하던 그는 지난달 30일 오후 10시께 노조 동료들과 운영하던 단체 대화방에 "그동안 삼성서비스 다니며 너무 힘들었어요. 다들 너무 힘들어서 옆에서 보는 것도 힘들었어요"라는 글을 남겼다. "전태일님처럼 그러진 못해도 전 선택했어요. 부디 도움이 되길 바라겠습니다"라고도 말했다. 약 하루 뒤, 그는 천안의 한 도로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최씨가 당일 새벽 차 안에서 자살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관련기사 : 그는 왜 죽음을 택했나?).
2일 오후 6시 30분 '삼성자본에 타살된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아래 대책위)는 이곳에서 최씨를 추모하고 삼성전자를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대책위는 금속노조 충남지부와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천안분회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최씨, 고객 평가 때문에 사장에게 모욕적인 질책 받아"
▲ '삼성자본에 타살된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 두정센터 앞에서 최근 목숨을 끊은 최씨를 추모하고 삼성전자를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 이주영
서울·경기·부산 등 각 지역에서 일하는 협력업체 직원들도 함께한 이날 문화제에서는 최근 언론에 공개된 녹취록을 듣는 시간이 마련됐다. 협력업체 사장과 최씨의 대화가 녹음된 파일이었다. 이 사장의 욕설과 함께 "죄송합니다"라는 최씨의 말이 스피커를 통해 울려 퍼졌다. 이를 듣던 몇몇 참석자는 한숨을 쉬거나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동료들은 최씨가 일하던 협력업체 사장의 과도한 질타가 그를 죽음으로 내몬 한 원인이라고 주장했다. 천안 두정센터의 이아무개 사장은 지난 7월 삼성전자에 고객 불만이 접수됐다는 이유로 최씨에게 폭언을 퍼부으며 질타했다고 전해졌다. 그와 같이 일했다는 한 참석자는 최씨가 "고객 평가 때문에 사장에게 인격 모욕적인 질책을 심하게 받았다"고 귀띔했다.
삼성전자서비스센터 직원들이 노조를 결성한 이후 조합원 탈퇴 종용, 표적감사 등이 거듭되면서 최씨가 압박을 받았을 수 있다는 증언도 나왔다.
삼성전자서비스는 협력업체에게 일을 맡기기로 계약해놓고 실제로는 운영이나 노무 관리를 직접해왔다는 '위장도급' 의혹을 받아왔다. 수리기사를 포함한 협력업체 직원들은 지난 7월 노동조합을 만들고 관련 문제 해결과 처우개선을 요구했다. 최씨도 노조 조합원이었다. 천안서비스센터는 수리기사 90여명 중 최씨를 포함한 노조원 8명만을 상대로 지난달부터 감사를 진행해왔다.
"사장은 죄 없다? 위험 무릅쓰고 일하게 만든 장본인이 이제 와서 모른 척"
▲ '삼성자본에 타살된 최종범 열사 대책위원회'는 2일 오후 삼성전자서비스 천안 두정센터 앞에서 최근 목숨을 끊은 최씨를 추모하고 삼성전자를 규탄하는 문화제를 열었다. ⓒ 이주영
삼성전자서비스는 지난 1일 애도의 뜻과 함께 최씨가 몸담았던 협력업체 사장 명의의 편지를 공개했다. 이 사장은 "고인의 죽음을 둘러싸고 여러 가지 소문과 억측이 나오고 있어 누구보다 정확한 사실을 알고 있는 제가 해명을 하는 것이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고인은 올해 1월부터 9월까지 월 평균 약 410만 원, 최근 3개월 동안에는 505만 원 정도의 급여를 받았다"고 말했다. 욕설이나 감사에 대한 해명은 하지 않았다.
라두식 심상전자서비스지회 수석부지부장은 "평소 회사의 입장을 이해하려던 최씨와 달리, 사장이란 사람은 그의 죽음이 본인과 관계없다고 발뺌했다"며 "자기와 함께 일했던 사람인데 어떻게 그동안 있었던 문제에 대해 한 마디 사과조차 하지 않을 수 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기수 천안센터분회장은 "(최씨는) 사장의 지시에 따라 5층 난간에 혼자 올라가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해서 달던 아이였다"며 "그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일하게 한 장본인이 이제 와서 모른 척 한다"고 힐난했다.
김 분회장은 또 "성수기에는 수리 건수가 많아서 월 500만 원을 못 벌면 바보 소리를 듣는다"며 "그마저도 자동차 기름 값, 휴대전화 요금 등을 내고 나면 200만 원도 채 안 남을 때가 많다"고 회사 입장에 반박했다.
참석자들은 최씨뿐만 아니라 노조 조합원인 삼성전자서비스센터 협력업체 직원들이 모두 같은 고통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그러면서 구조적 문제를 만들어낸 삼성이 책임지고 개선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장희 삼성전자서비스지회 부지회장은 "전국의 서비스센터 노동자들이 과도한 노동 때문에 힘들어 하고 있고, 특히 노조원들은 삼성의 치밀하고 악랄한 노조 파괴 시나리오로 인해 극도의 어려움에 내몰리고 있다"며 "최씨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우리들이 삼성 노동자의 인권과 노동권을 지켜갔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날 추모제에는 민주당 은수미·우원식 의원 등도 참석했다. 우 의원은 "헌법적 권리인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게 하는 기업에서 일하는 여러분들이 얼마나 힘든지 짐작이 간다"면서 "이런 극단적 선택 하게 만드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희들이 함께 하겠다"고 말했다. 은 의원은 "불법파견 논란을 빚은 현대자동자도 최소한 최저임금은 보장하면서 일을 시키는 반면, 삼성전자서비스는 최저임금조차 보장 안 해준다는 증언들이 나온다"며 "노동권을 보장하지 않은 근무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끝까지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대책위는 가족들과 협의해 삼성이 직접 사과를 하고 보상·재발방지 대책을 밝힐 때까지 발인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정했다. 이들은 오는 4일 회의 열고 향후 활동 계획을 확정키로 했다. 또한 같은 날 서울에서 삼성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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