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5세 '일본군위안부 피해' 할머니, 역사관 건립기금 기탁
통영 김복득 할머니, 2000만 원 전달... 평생 아껴가며 재산 모아 환원
올해 아흔다섯 살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일본군위안부역사관(가칭) 건립 기금으로 거액을 내놓았다. 김복득(95·통영) 할머니가 4일 '경남 일본군위안부 역사관 건립기금'으로 2000만 원을 내놓았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대표 송도자)은 이날 오전 김복득 할머니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기금 전달식을 열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김 할머니는 아픈 역사의 산 증인으로, 이제 제대로 일어설 수도, 걸을 수도 없는 몸으로 하루하루 병마와 싸워오는 중에도, 할머니께서 또다시 큰마음을 냈다"고 밝혔다.
김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금 등으로 내놓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2012년 4월 고통의 삶 속에서도 아끼며 모았던 재산 2000만 원을 통영여자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또 김 할머니는 통영 남망산공원에 일본군위안부를 기리고자 세워진 '정의비' 건립을 위해 거액을 내놓기도 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지난해 장학금을 기부하신 뒤, 언론을 통해 지역은 물론 전국에 알려져 우리 사회에 큰 의미를 던지면서 할머니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으로 감동을 자아냈다"고 소개했다.
이 단체는 "김 할머니는 당당한 자아와 자존감을 갖는 계기가 되어 고통을 치유하는 좋은 결과로도 이어졌다"며 "이제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역사관 건립을 위해 그동안 강한 절약정신으로 모은 대산을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금 전달식에서는 '학생들이 전하는 할머니 응원 편지'가 소개되기도 했다.
김복득 할머니는 1918년 통영 태평동에서 태어나 22살 되던 해인 1939년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취업사기) 통영 강구안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할머니는 그 뒤 다시 중국으로 갔고, 이후 대련에서 3년, 필리핀에서 4년간 '후미코'라는 이름으로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했다.
김 할머니는 1945년 해방 무렵 군함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항으로 갔다가 다시 부산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 왔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 김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은 <나를 잊지 마세요>를 펴내 지역 모든 학교에 배포했으며, 일본어판으로 번역해 일본 관계 기관에 우편 발송하기도 했다.
송도자 대표는 "김복득 할머니의 헌신에 또다시 무한한 감동과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며 "아직도 할머니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시켜드리지 못한 데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함께, 할머니의 이 고귀한 뜻을 받들어 가장 많이 피해가 난 지역인 경남에서 하루속히 역사관이 건립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모두가 나서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일본군위안부할머니와함께하는 통영거제시민모임(대표 송도자)은 이날 오전 김복득 할머니와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통영시청 브리핑룸에서 기금 전달식을 열었다.
▲ 일본군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득 할머니. ⓒ 윤성효
김 할머니는 평생 모은 재산을 장학금 등으로 내놓기도 했다. 김 할머니는 2012년 4월 고통의 삶 속에서도 아끼며 모았던 재산 2000만 원을 통영여자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기부했다.
또 김 할머니는 통영 남망산공원에 일본군위안부를 기리고자 세워진 '정의비' 건립을 위해 거액을 내놓기도 했다. 통영거제시민모임은 "지난해 장학금을 기부하신 뒤, 언론을 통해 지역은 물론 전국에 알려져 우리 사회에 큰 의미를 던지면서 할머니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으로 감동을 자아냈다"고 소개했다.
이 단체는 "김 할머니는 당당한 자아와 자존감을 갖는 계기가 되어 고통을 치유하는 좋은 결과로도 이어졌다"며 "이제는 생이 얼마 남지 않음을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이시면서, 우리 아이들에게 마음 놓고 뛰어놀 수 있는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기 위해 역사관 건립을 위해 그동안 강한 절약정신으로 모은 대산을 내놓았다"고 덧붙였다.
이날 기금 전달식에서는 '학생들이 전하는 할머니 응원 편지'가 소개되기도 했다.
김복득 할머니는 1918년 통영 태평동에서 태어나 22살 되던 해인 1939년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취업사기) 통영 강구안에서 배를 타고 부산으로 갔다. 할머니는 그 뒤 다시 중국으로 갔고, 이후 대련에서 3년, 필리핀에서 4년간 '후미코'라는 이름으로 위안부 생활을 강요 당했다.
김 할머니는 1945년 해방 무렵 군함을 타고 일본 나가사키항으로 갔다가 다시 부산을 거쳐 고향으로 돌아왔으며, 위안부의 진실을 알리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여 왔다.
경남도교육청은 올해 김 할머니의 일대기를 담은 <나를 잊지 마세요>를 펴내 지역 모든 학교에 배포했으며, 일본어판으로 번역해 일본 관계 기관에 우편 발송하기도 했다.
송도자 대표는 "김복득 할머니의 헌신에 또다시 무한한 감동과 존경의 마음을 표한다"며 "아직도 할머니의 인권과 명예를 회복시켜드리지 못한 데에 대한 뼈아픈 반성과 함께, 할머니의 이 고귀한 뜻을 받들어 가장 많이 피해가 난 지역인 경남에서 하루속히 역사관이 건립될 수 있도록 우리 사회 모두가 나서기를 소망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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