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위성 탓에 이석채 추락? 박근혜 당선 뒤 '레임덕'
이석채 회장 사임 이후 KT호의 운명은?... 후임도 '낙하산 인사' 거론
▲ 이석채 KT 회장이 지난 10월 30일 오후(현지시각) 르완다 키갈리 세레나호텔에서 아프리카 8개국 IT장관들과 간담회를 하고 있다. 이때만 해도 이 회장은 사임 가능성을 일축했다. ⓒ 사진공동취재단
"국민기업인 KT가 고의로 사실을 숨기겠나. KT는 그런 회사 아니다."
4일 오후 광화문 KT 사옥 15층 기자실은 수많은 취재진들로 발 디딜 틈 없었다. 최근 국정감사에서 제기된 무궁화 위성 헐값 매각 의혹에 대해 KT 자회사 부사장급 임원이 해명하는 자리였지만 전날 이석채 KT 회장 사임과 맞물려 큰 관심을 끌었다.
KT는 이석채 회장 재임 기간인 지난 2010년과 2011년 수천억 원을 투자한 국가 자산인 무궁화위성 2호와 3호를 정부 허락도 없이 홍콩 회사에 팔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김영택 KT sat 부사장은 "제작 당시에는 공사(한국통신) 자산이었지만 매각 시점이나 현재는 민영화된 KT 자산"이라면서도 "국가기업으로 출발해 '국민기업'인 KT가 고의로 사실을 숨겼겠나"라면서 은폐 의혹을 부인했다. 자사 유불리에 따라 '민영기업'과 '국민기업'을 넘나드는 KT의 왜곡된 위상이 고스란히 드러난 장면이었다.
'조기 사퇴설' 결국 현실로...'MB 낙하산' 인공위성에 부딪혀 추락?
이 회장은 대표적인 이명박 정부 낙하산 인사로 분류돼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줄곧 '조기 사퇴설'에 시달렸다. 표면적으로 수백억 원대 업무상 배임 혐의에 대한 검찰 수사가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 회장이 남은 임기를 채우리라고 보는 이들은 많지 않았다. 실제 지난 8월 청와대 사퇴종용설이 흘러 나왔을 당시 당사자들 부인에도 '명예로운 퇴임'이라는 말에 무게가 실렸다.
KT는 지난 5월 초 기자간담회까지 열면서 조기 사퇴설을 진화했지만 KT 내부의 '레임덕'까지 막을 순 없었다. 이 회장 스스로 지난 9월 사내 행사에서 무궁화 위성과 부동산 매각 관련 의혹을 직접 언급하며 "바깥에다 끊임없이 회사 중상모략하고 임원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공개적으로 지적했을 정도다.
실제 참여연대가 지난 2월 검찰에 고발한 스마트 애드몰 사업이나 OIC랭귀지비주얼, 사이버MBA 투자 문제도 내부 고발이 발단이 됐고, 지난 10월 초 추가 고발한 부동산 39곳 헐값 매각건도 마찬가지였다. 이밖에 2009년 대규모 구조조정에 이은 문제 사원 퇴출 프로그램(CP 프로그램) 운영과 KT 노동자들의 잇따른 자살·KT스카이라이프 노사 갈등 등 노무 관리 문제, 제주 7대 자연경관 국제전화 사기 사건과 국무총리실 민간인 불법사찰 당시 대포폰 제공 등도 이 회장에게 큰 굴레로 작용했다.
방통위 한 상임위원은 최근 사석에서 이통3사 휴대전화 보조금 단속 문제를 언급하면서 "KT가 좀 안 됐다"고 혀를 찼다. 그는 "지난번 영업정지 이후 조사원들에게 물으니 '다른 회사(대리점)들은 조사 가면 다 깨끗이 치워두는데 KT는 서류를 그냥 내준다'고 하더라"면서 "본사에서 빌려준 돈에 대한 압박이 심해서 그런 것 같다"고 덧붙였다.
방통위는 지난 7월 보조금 차별 관련 이통3사에 670억 원 과징금 부과하면서 KT를 '주도 사업자'로 지목해 7일간 영업정지란 중징계를 내렸다. 이처럼 KT가 '주도 사업자'가 된 데는 이처럼 대리점 차원의 민심 이반도 한 몫 한 셈이다.
차기 KT 수장은 군부 출신?... MB 이후 '정권 전리품'으로 전락
▲ KT공대위와 KT·계열사 노조 조합원 20여 명이 지난해 6월 28일 오전 11시 KT 광화문 사옥 올레스퀘어 앞에서 이석채 회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는 모습. ⓒ 김시연
벌써 관심은 누가 차기 KT 수장이 될지에 쏠리고 있다. 문제는 마땅한 내부 후보가 없는 가운데 지금까지 후임으로 거론되는 인사들 역시 '박근혜 낙하산'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이다.
차기 회장은 KT 사내외 이사들로 구성된 CEO추천위원회를 거쳐 주총에서 결정하지만, 대부분 이 회장쪽 사람들로 검찰 수사 선상에도 올라 있어 운신의 폭이 좁다. 현재 KT는 민영기업이긴 하지만 국민연금이 1대 주주여서 정부, 특히 청와대쪽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그동안 이 회장 사퇴를 압박해온 시민단체들도 후임 인사에 대한 우려를 동시에 나타내고 있다.
참여연대와 KT 새노조는 이날 논평에서 바람직한 KT CEO로 '정치권 줄대기에 기초한 낙하산이 아닌 통신 전문가' '단기 실적주의에 빠져 자산을 마구잡이로 매각하는 수익경영이 아니라 통신공공성을 중심으로 하는 통신전문회사로의 비전을 갖춘 인사' '노동 인권을 존중하고 국민들의 통신비 고통에 귀 기울이는 CEO'를 제시했다.
하지만 현실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이날 "총자산 24조 원에 자회사 등 관계사 사장 자리가 30개, 1억 이상 연봉을 받는 임원 자리가 100여 개인 거대기업 KT가 '정권의 전리품'으로 인식되는 불행한 현실"이라며 "이 회장 이후 더 강력한 군부 출신 CEO가 올 것이란 우려"까지 나타냈다.
야당도 눈을 부릅뜨고 있다. 최민희 민주당 의원은 이날 성명을 통해 "언론에서는 10여 명에 이르는 KT 차기 회장 후보자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면서 "KT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이들 중 정치인 낙하산 인사는 철저히 배제되어야 하고 현 정권과 가까운 친박 인사도 배제 대상"이라면서 청와대 개입을 경고했다.
이석채 회장은 취임 초기 KT-KTF 합병과 아이폰 도입 등 굵직한 결정들로 관심을 끌었다. 하지만 외부에 영입한 인사들과 내부 임직원들의 갈등을 제대로 조율하지 못하면서 결국 비수가 되고 말았다.
누가 차기 CEO가 되든 기존 'MB 낙하산'을 '박근혜 낙하산'으로 물갈이하는 데 그친다면, 4~5년 뒤 이석채 회장과 똑같은 운명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 거꾸로 이번 CEO 결정은 이명박 정부 시절 남중수 전 사장 사임에서 비롯된 'KT 낙하산' 악순환을 끊는 첫 번째 기회이기도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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