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퇴원 8개월... 그들에게 생명권은 없었다
사천중앙병원으로 전원한 진주의료원 환자들을 만나다
사람들이 내쫓긴다. 집에서, 일자리에서, 수십 년 된 생의 터에서…. 그리고 2013년 공공병원에서 환자가 쫓겨났다. 지난 9월 25일 경상남도민과 진주시민에게 공공의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하여 설립된 경상남도청 산하 지방의료원인 '진주의료원'이 청산됐다. 과도한 적자와 강성노조, 의료서비스 공급과잉 지역 등이 청산의 이유다. 103년의 역사가 단 8개월 만에 무너졌다.
진주의료원 입원환자 203명은 어떻게 됐을까. 저항할 힘 없이 그저 쫓겨나야 했고, 쫓겨나는지조차 몰랐던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공공의료를 찾은 환자들은 대개 행려환자, 무연고자,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환자다. 더구나 진주의료원에 머물렀던 환자들의 대부분 요양과 돌봄이 필요한 노인층이었다.
지난 10월 12일, 진주의료원 환자 15여 명이 전원해 있는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중앙병원'을 찾았다. 어렵게 잡은 약속이었지만, 병원 입구를 들어서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였다.
그들의 삶은 어떠해졌는가
인터뷰 도움에 나선 진주의료원 근무 경력 14년 차인 간호사 김미선(39)씨. 그는 두 손에 죽이 가득 담긴 도시락을 들고 사천중앙병원을 찾았다. 2층, 3층, 4층…. 미선씨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각 병실을 익숙한 듯 방문했다. 환자들의 건강상태부터 체크하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이 여전히 그들에게 매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진주시 내에서 재취업이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진주의료원 출신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이다. 그래도 환자 걱정이 먼저다. 미선씨의 말이다.
"그나마 여기로 전원한 환자들은 괜찮아요. 대부분 장기입원환자들이라서 언제 또 병원을 옮겨야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보호 아래 치료를 받을 수 있거든요. 문제는 자기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하거나, 치료비, 적응의 문제로 집에서 치료하기로 선택한 환자들인데. 전수조사하면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안 닿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되셨을지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환자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가능하고, 스스로 숨 쉴 수조차 없어 호흡기를 달고 사는, 그런 연약한 상태였다. 보호자가 있는 환자와의 인터뷰만 간신히 진행할 수 있었다.
조그만 대화 소리에도 온몸을 흔들어가며 버거워하던 문점동(71)씨. 그의 병명은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다. 그의 보호자인 아내 박미애씨는 문드러진 마음을 게워내기라도 하듯 말을 쏟아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보여도 정신은 멀쩡하단 말여. 다 듣고, 느끼고. 적응하느라 힘들었지. 자기네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환자겠지만. 이렇게 누워있어도 우리에겐 가장이고, 큰 존재란 말여. 처음에는 억수로 호의적이었는데. 옮기고 나선 지원이나, 보조 같은 건 전혀 없었어.
퇴원하라고 전화 왔을 때,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가 없다, 어느 병원이라도 1년 정도만이라도 지낼 곳이 있으면 옮기겠다, 그러니깐 그쪽도 장담 못 한다 그러더라고. 오죽했으면 사천까지 왔겠어. 사는 곳에서 1시간씩 걸리는 곳이라 택시로 2만 원씩 내면서 여기 와. 진주 시내에서는 장기환자라서 한 달이라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
사천중앙병원으로 전원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대부분 상황 변화에 따른 적응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기와 같다. 3월부터 약 2개월 이내에 이루어져야 했던 갑작스러운 전원은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그 여진은 건강상태의 악화로 이어졌다.
2년 전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라는 병을 얻은 박명옥(44)씨. 서울 삼성병원에서 진주의료원으로 온 지 1년. 시누이와 올케 사이로서 그를 간호하고 있는 근행수씨 역시 병원을 나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루에 두세 통이 걸려 왔다. 병실 내에 다른 환자에게 오는 전화까지 합하면 병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의료진, 환자들이 하나둘 떠났다. 빈 병실 안에서 불안은 더욱 커졌다. 지난 4월 11일 신경정신과 담당 의사가 사천중앙병원으로 옮겨갔다. 그를 따라 병원을 나왔다. 행수씨는 연신 미숙씨의 손을 쓸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전원 후에 세 번이나 응급 상황이 생겨서 경상대 병원까지 갔다왔어예. 응급의학과 선생님은 진주의료원하고, 경상대만 있어가지고. 이런 환자가 장시간 차로 움직이는 게 얼마나 위험한데. 거기다 길까지 막혀봐. 예전에는 아기같이 표현을 많이 했는데. 요번에 응급 처치 조금 늦게 된 이후로는 이제 못하는 기라.
그때 지는 지대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야가 어떻게 했냐면, 그 소금 미꾸라지 있죠? 꼭 그거 만치 밤마다 몸을 비틀며 난리를 치는 거라. 얼굴은 울상을 해서. 얘가 제대로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보고 있는데 내가 피가 말라 다 죽겠드라고. 진주의료원에서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 거제. 가야 된다고 하고, 전화도 많이 오고. 근데 보호자가 불안하면 환자도 불안해지거든. 도에서 전화가 와가지고 반도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예. 거기는 신경과가 없거든. 우리 애는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꼭 필요한데. 환자 상태는 전혀 모르면서 무조건 병실이 비어있는데 있음 거기로 가라고…."
진주의료원 이갑상 할아버지 이야기
"병원 혼자 떠돌아다니는데 보니 안타까워 죽겠드라", "갑상 할배는 요새 도통 안 보이던데", 병실마다 한 번씩 언급되는 이가 있었다. 이갑상 할아버지(79)다. 미선씨가 준비해 온 죽은 그의 것이었다. "아부지 잘 계셨죠? 아까도 왔었는데 어디 갔었으요?" 미선씨의 모습에 갑상 할아버지의 작은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그는 무연고자다. 사실 직계가족은 있다. 그러나 연락은 닿지 않는다. 그 시간이 오래됐다. 그의 마음속 딸은 간호사 미선씨란다.
"아부지 죽 드이소. 또 점심 굶었지요? 요새 건강은 어때요?"
"내 홱까딱 뒤짚혀가지고 경대 가서 수술받았다. 배 봐봐라. 수술 자국이 이만하다."
그들의 대화는 어느 부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미선씨는 그 앞에서는 웃으며 뒤로는 눈물을 닦았다. 붙잡은 손을 놓을세라 갑상 할아버지는 미선씨의 손을 꽉 잡고, 쓰다듬었다. 그 모습은 깊은 어둠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희미한 빛 같았다.
"갑상 아부지가 진주의료원 계실 적부터 소화를 잘 못해서 밥을 못 먹었어요. 죽만 보면, 아부지 죽 잘 사 먹고 있을까. 집에서 죽 끓이면, 또 아부지 생각나서 챙겨서 찾고 그랬어요. 10년 넘게 봐오니깐 아부지 사정도 다 알고, 가족 같고, 안쓰럽고 그래요."
갑상 할아버지의 병명은 심장협심증과 전립선염이다. 고장 난 심장은 이따금 각 신체장기에 원활하게 피를 보내지 못한다. 온몸이 마비될 때 그의 환자복은 땀에 흠뻑 젖어 바닥으로 물이 줄줄 떨어진다. 입술은 거무죽죽한 보랏빛으로 변색되고, 살가죽은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인 것처럼 쭈글해진다. 평상시에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 갑상 할아버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
그의 어머니도 진주의료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어머니 병 수발 기간까지 따지면 23년. 세상 속 어느 하나 의지할 곳 없는 갑상 할아버지에게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은 마지막 비빌 언덕이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진주의료원이 폐업하니 나가 달라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버텼다. 진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경남도직원이 병실로 찾아왔다. 병원을 나가라고 했다. 갑상 할아버지는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에 욕으로라도 저항했다. "난 갈 곳이 없거든, 그래서 뭐든 해야겠더라고."
병원 내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찾아가던 3월 18일. 갑상 할아버지는 협심증 응급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챙기고, 병실문을 나섰다. 동행하기 위해서다. 미선씨는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시한폭탄을 염려했다. "우쨀라고 그러는지 참으로 걱정되가지고, 가지말라 말렸는데도 도통 말을 안 듣더라고예." 할아버지의 심지는 굳었다. 그는 경찰과 도 직원들로 사수된 경남도청 앞으로 걸어갔다.
"이 자아슥들아! 나보고 어딜 가라는 게야!"
한껏 목청을 높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았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오랜 약투병 생활로 약해져 으깨지고, 부서진 손톱이 너덜너덜 달라붙어 있는 손을 움켜쥔 채 그는 안간힘을 썼다. 옆에서 지켜보던 미선씨는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만 같았다. 그를 달래 박스가 펼쳐진 찬 바닥으로 앉혔다. 이걸 보고 또 어떤 언론사에선 "환자들 이용해서 감정 호소한다"라고 보도하겠지, 이런 씁쓸한 생각이 나 울컥했다.
그의 용기는 헛짓이었을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기적은 없었다. 거의 마지막까지 진주의료원에 남아있던 갑상 할아버지도 사천중앙병원 요양 병동으로 전원했다. 요새 그는 복도를 혼자 서성여 떠돌이라 불린다. 계단을 산처럼 오르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 미선씨를 찾기도 한다. 배로 늘어난 병원비, 응급수술 후 심해진 증세, 언제 병원을 옮겨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 그러나 그 무엇보다 외로움이 그를 지치게 한다.
생명권은 없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 진주의료원의 휴·폐업 결정 이후 타의적으로 전·퇴원하게 된 환자,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1차 실태 조사를 했다. 전화 대상자는 자발적 전·퇴원 환자를 뺀 104명. 응답자는 42명이었다. 그중 29명만이 입원기관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고, 나머지 13명은 입원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29명 중 22명이 스스로 옮겨갈 병원을 물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10명이 입원거부를 당하는 등 불편을 겪거나, 입원을 거부당해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기도 했다. 자택치료 중인 환자 13명 중 5명은 입원을 거부당해 입원을 포기한 경우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 3월 18일 "진주의료원을 폐업해도 환자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병원을 옮겨서 비용이 추가발생하면 전액 예산에서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응답자 중에서 경남도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환자는 없었다.
지난 9월 9일부터 23일까지 진주의료원에서 강제퇴원 당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2차 실태 조사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현재까지 29명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육성은 모두 고통스럽다. "퇴원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다른 병원에서는 잘 안 받아주기 때문에 하루하루 걱정이었다.", "불안해서 살아서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서 나가는 게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폐업 발표 후 면사무소에서 걸려오는 전화와 불안감으로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전수조사에 나서며 근래까지 환자들과의 연결을 유지해오던 간호사 이영빈씨. 지난 10월 5일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호소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서 그를 만났다. 곁에서 상황을 지켜본 영빈씨에게 '폐업의 과정과 환자들의 건강상태 악화 및 죽음의 연관성'을 물었다. 질문에 담긴 폭력성이 느껴져서일까.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문을 뗐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이 100으로 주어졌다고 해봐요. 그 사람은 100만큼 살 수 있던 거예요. 그런데 이번 일로 99, 98 정도만 살게 된 건 아닐까요? 더 살 수 있던 하루를 빼앗긴 것은 아닐까요?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어요. 그건 생명의 값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일 거예요. 어차피 죽을 거였고, 늙은 사람들이었으니깐, 세상에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니깐,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근데 어떻게 그래요?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죄스러워요. 죽은 사람들은 잊혀지겠죠. 아니 잊혀졌잖아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선되면서 곧바로 12월 20일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진주의료원이 왜 이렇게 됐느냐에 대해 10일 만에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월 26일 폐업 방침을 발표했다. 병원 내의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소통은 없었다.
그는 진주의료원 관련 국회 국정조사를 거부한 데 이어, 지난 10월 30일 열린 경남도 국정감사에서 "진주의료원은 국정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요지부동 태도로 일관했다. 지난 10월 한 토크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주의료업 폐업에 대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진주의료원이 없어졌다고 공공의료가 없어진 게 아니라 공공병원 '하나'가 없어진 거예요." 그 하나가 없어지는 8개월 동안 환자들의 생명권은 송두리째 뽑혔다. 미선씨의 의문은 묵직하다.
"사실요. 전 정말 답답한 게요. 강성노조다, 직원들이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근무 태만이었다, 뭐 이런 이유로 청산한다고 했잖습니까. 그 사람들 말마따나 저희가 잘 못한 거면요. 저희만 내쫓으면 되잖아요. 근데 왜 환자들까지 이렇게 쫓겨냅니까. 그게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납득할 수가 없어요. 적자가 문제면, 잠시 문을 닫고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적자를 고쳐갈 수도 있었잖아예. 그 적자란 게 공공의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것이었고, 건물 이전하면서 불거진 거예요. 조사해보니깐 다른 의료원들도 저희만큼, 더 많은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무조건 청산한다는 게. 그것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게. 혹시 홍 도지사가 한 번만 병원을 방문해서 어떤 환자들이 머물고 있는지 직접 봤다면, 이렇게까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서로 대화도 좀 하고 의견도 들어보면서, 조금만 다른 방법으로, 아니 천천히 라도 진행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진주의료원 입원환자 203명은 어떻게 됐을까. 저항할 힘 없이 그저 쫓겨나야 했고, 쫓겨나는지조차 몰랐던 그들의 안부가 궁금했다. 공공의료를 찾은 환자들은 대개 행려환자, 무연고자, 경제적 어려움이 있는 환자다. 더구나 진주의료원에 머물렀던 환자들의 대부분 요양과 돌봄이 필요한 노인층이었다.
지난 10월 12일, 진주의료원 환자 15여 명이 전원해 있는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중앙병원'을 찾았다. 어렵게 잡은 약속이었지만, 병원 입구를 들어서지 못하고 한참을 서성였다.
그들의 삶은 어떠해졌는가
인터뷰 도움에 나선 진주의료원 근무 경력 14년 차인 간호사 김미선(39)씨. 그는 두 손에 죽이 가득 담긴 도시락을 들고 사천중앙병원을 찾았다. 2층, 3층, 4층…. 미선씨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각 병실을 익숙한 듯 방문했다. 환자들의 건강상태부터 체크하는 모습에서 그의 마음이 여전히 그들에게 매여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진주시 내에서 재취업이 힘든 상황이라고 한다. 진주의료원 출신이라는 주홍글씨 때문이다. 그래도 환자 걱정이 먼저다. 미선씨의 말이다.
"그나마 여기로 전원한 환자들은 괜찮아요. 대부분 장기입원환자들이라서 언제 또 병원을 옮겨야 할 지 모르지만, 그래도 보호 아래 치료를 받을 수 있거든요. 문제는 자기를 받아주는 병원을 찾지 못하거나, 치료비, 적응의 문제로 집에서 치료하기로 선택한 환자들인데. 전수조사하면서 환자와 보호자에게 연락을 취했지만, 연락이 안 닿는 분들이 많았어요. 그분들이 어떻게 되셨을지 생각하면 암담합니다."
▲ 진주의료원 입원환자였던 문점동 할아버지와 그의 아내 박미애 할머니. 미애 할머니는 거주지와 병원거리가 멀어 곤혹스러워 했다. ⓒ 김미선
환자들은 대부분 거동이 불가능하고, 스스로 숨 쉴 수조차 없어 호흡기를 달고 사는, 그런 연약한 상태였다. 보호자가 있는 환자와의 인터뷰만 간신히 진행할 수 있었다.
조그만 대화 소리에도 온몸을 흔들어가며 버거워하던 문점동(71)씨. 그의 병명은 외상성 지주막하 출혈이다. 그의 보호자인 아내 박미애씨는 문드러진 마음을 게워내기라도 하듯 말을 쏟아냈다.
"저 사람이 저렇게 보여도 정신은 멀쩡하단 말여. 다 듣고, 느끼고. 적응하느라 힘들었지. 자기네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환자겠지만. 이렇게 누워있어도 우리에겐 가장이고, 큰 존재란 말여. 처음에는 억수로 호의적이었는데. 옮기고 나선 지원이나, 보조 같은 건 전혀 없었어.
퇴원하라고 전화 왔을 때, 우리는 갈 수 있는 데가 없다, 어느 병원이라도 1년 정도만이라도 지낼 곳이 있으면 옮기겠다, 그러니깐 그쪽도 장담 못 한다 그러더라고. 오죽했으면 사천까지 왔겠어. 사는 곳에서 1시간씩 걸리는 곳이라 택시로 2만 원씩 내면서 여기 와. 진주 시내에서는 장기환자라서 한 달이라도 받아주는 데가 없어."
▲ 진주의료원에서 사천중앙병원으로 전원한 박명옥씨. 약한 면역력의 그는 갓 태어난 아기처럼 예민했다. ⓒ 김혜승
사천중앙병원으로 전원한 환자와 보호자들은 대부분 상황 변화에 따른 적응의 어려움을 겪었다고 말했다. 환자들은 사소한 것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기와 같다. 3월부터 약 2개월 이내에 이루어져야 했던 갑작스러운 전원은 충분히 고통스러웠다. 그 여진은 건강상태의 악화로 이어졌다.
2년 전 전신성 홍반성 루푸스라는 병을 얻은 박명옥(44)씨. 서울 삼성병원에서 진주의료원으로 온 지 1년. 시누이와 올케 사이로서 그를 간호하고 있는 근행수씨 역시 병원을 나가달라는 전화를 받았다. 하루에 두세 통이 걸려 왔다. 병실 내에 다른 환자에게 오는 전화까지 합하면 병실은 아수라장이었다. 의료진, 환자들이 하나둘 떠났다. 빈 병실 안에서 불안은 더욱 커졌다. 지난 4월 11일 신경정신과 담당 의사가 사천중앙병원으로 옮겨갔다. 그를 따라 병원을 나왔다. 행수씨는 연신 미숙씨의 손을 쓸어가며 말을 이어갔다.
"전원 후에 세 번이나 응급 상황이 생겨서 경상대 병원까지 갔다왔어예. 응급의학과 선생님은 진주의료원하고, 경상대만 있어가지고. 이런 환자가 장시간 차로 움직이는 게 얼마나 위험한데. 거기다 길까지 막혀봐. 예전에는 아기같이 표현을 많이 했는데. 요번에 응급 처치 조금 늦게 된 이후로는 이제 못하는 기라.
그때 지는 지대로 얼마나 고통스러웠으면, 야가 어떻게 했냐면, 그 소금 미꾸라지 있죠? 꼭 그거 만치 밤마다 몸을 비틀며 난리를 치는 거라. 얼굴은 울상을 해서. 얘가 제대로 표현을 못 해서 그렇지. 보고 있는데 내가 피가 말라 다 죽겠드라고. 진주의료원에서 마음이 안정이 안 되는 거제. 가야 된다고 하고, 전화도 많이 오고. 근데 보호자가 불안하면 환자도 불안해지거든. 도에서 전화가 와가지고 반도병원으로 가라고 하더라예. 거기는 신경과가 없거든. 우리 애는 신경과 의사 선생님이 꼭 필요한데. 환자 상태는 전혀 모르면서 무조건 병실이 비어있는데 있음 거기로 가라고…."
진주의료원 이갑상 할아버지 이야기
▲ 진주의료원 입원환자였던 이갑상 할아버지. 현재 사천중앙병원으로 전원해 있다. 진주의료원에서 보호자 없이 10년을 보냈던 그에게 간호사 미선씨는 딸같은 존재다. ⓒ 김미선
"병원 혼자 떠돌아다니는데 보니 안타까워 죽겠드라", "갑상 할배는 요새 도통 안 보이던데", 병실마다 한 번씩 언급되는 이가 있었다. 이갑상 할아버지(79)다. 미선씨가 준비해 온 죽은 그의 것이었다. "아부지 잘 계셨죠? 아까도 왔었는데 어디 갔었으요?" 미선씨의 모습에 갑상 할아버지의 작은 얼굴에 웃음꽃이 폈다. 그는 무연고자다. 사실 직계가족은 있다. 그러나 연락은 닿지 않는다. 그 시간이 오래됐다. 그의 마음속 딸은 간호사 미선씨란다.
"아부지 죽 드이소. 또 점심 굶었지요? 요새 건강은 어때요?"
"내 홱까딱 뒤짚혀가지고 경대 가서 수술받았다. 배 봐봐라. 수술 자국이 이만하다."
그들의 대화는 어느 부녀와 다를 바가 없었다. 미선씨는 그 앞에서는 웃으며 뒤로는 눈물을 닦았다. 붙잡은 손을 놓을세라 갑상 할아버지는 미선씨의 손을 꽉 잡고, 쓰다듬었다. 그 모습은 깊은 어둠 속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희미한 빛 같았다.
"갑상 아부지가 진주의료원 계실 적부터 소화를 잘 못해서 밥을 못 먹었어요. 죽만 보면, 아부지 죽 잘 사 먹고 있을까. 집에서 죽 끓이면, 또 아부지 생각나서 챙겨서 찾고 그랬어요. 10년 넘게 봐오니깐 아부지 사정도 다 알고, 가족 같고, 안쓰럽고 그래요."
▲ 진주의료원 입원환자였던 갑상 할아버지의 손이다. 작은 손에는 성한 손톱이 없었다. ⓒ 김미선
갑상 할아버지의 병명은 심장협심증과 전립선염이다. 고장 난 심장은 이따금 각 신체장기에 원활하게 피를 보내지 못한다. 온몸이 마비될 때 그의 환자복은 땀에 흠뻑 젖어 바닥으로 물이 줄줄 떨어진다. 입술은 거무죽죽한 보랏빛으로 변색되고, 살가죽은 진공청소기가 빨아들인 것처럼 쭈글해진다. 평상시에는 너무 멀쩡해 보이는 갑상 할아버지는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산다.
그의 어머니도 진주의료원에서 임종을 맞았다. 어머니 병 수발 기간까지 따지면 23년. 세상 속 어느 하나 의지할 곳 없는 갑상 할아버지에게 공공병원인 진주의료원은 마지막 비빌 언덕이었다. 그러다 지난 3월 진주의료원이 폐업하니 나가 달라는, 날벼락 같은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버텼다. 진주의료원에서 근무하는 경남도직원이 병실로 찾아왔다. 병원을 나가라고 했다. 갑상 할아버지는 피가 거꾸로 솟는 심정에 욕으로라도 저항했다. "난 갈 곳이 없거든, 그래서 뭐든 해야겠더라고."
병원 내에서 홍준표 경남도지사를 찾아가던 3월 18일. 갑상 할아버지는 협심증 응급약인 니트로글리세린을 챙기고, 병실문을 나섰다. 동행하기 위해서다. 미선씨는 그의 심장에 박혀 있는 시한폭탄을 염려했다. "우쨀라고 그러는지 참으로 걱정되가지고, 가지말라 말렸는데도 도통 말을 안 듣더라고예." 할아버지의 심지는 굳었다. 그는 경찰과 도 직원들로 사수된 경남도청 앞으로 걸어갔다.
"이 자아슥들아! 나보고 어딜 가라는 게야!"
한껏 목청을 높였지만,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작았다. 다리는 후들후들 떨렸다. 오랜 약투병 생활로 약해져 으깨지고, 부서진 손톱이 너덜너덜 달라붙어 있는 손을 움켜쥔 채 그는 안간힘을 썼다. 옆에서 지켜보던 미선씨는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만 같았다. 그를 달래 박스가 펼쳐진 찬 바닥으로 앉혔다. 이걸 보고 또 어떤 언론사에선 "환자들 이용해서 감정 호소한다"라고 보도하겠지, 이런 씁쓸한 생각이 나 울컥했다.
그의 용기는 헛짓이었을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일절 대응하지 않았다. 기적은 없었다. 거의 마지막까지 진주의료원에 남아있던 갑상 할아버지도 사천중앙병원 요양 병동으로 전원했다. 요새 그는 복도를 혼자 서성여 떠돌이라 불린다. 계단을 산처럼 오르며 시간을 보낸다. 가끔 미선씨를 찾기도 한다. 배로 늘어난 병원비, 응급수술 후 심해진 증세, 언제 병원을 옮겨야 할지 모르는 불안함. 그러나 그 무엇보다 외로움이 그를 지치게 한다.
생명권은 없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난 4월 30일부터 5월 7일까지 진주의료원의 휴·폐업 결정 이후 타의적으로 전·퇴원하게 된 환자, 보호자들을 대상으로 1차 실태 조사를 했다. 전화 대상자는 자발적 전·퇴원 환자를 뺀 104명. 응답자는 42명이었다. 그중 29명만이 입원기관에서 치료를 이어가고 있었고, 나머지 13명은 입원치료조차 받지 못하고 있었다.
입원치료를 받고 있는 29명 중 22명이 스스로 옮겨갈 병원을 물색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10명이 입원거부를 당하는 등 불편을 겪거나, 입원을 거부당해 제때에 치료받지 못하기도 했다. 자택치료 중인 환자 13명 중 5명은 입원을 거부당해 입원을 포기한 경우였다.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지난 3월 18일 "진주의료원을 폐업해도 환자는 끝까지 책임지겠다"며 "병원을 옮겨서 비용이 추가발생하면 전액 예산에서 지원하겠다"라고 밝혔다. 응답자 중에서 경남도로부터 지원을 받았다는 환자는 없었다.
지난 9월 9일부터 23일까지 진주의료원에서 강제퇴원 당한 환자들을 대상으로 2차 실태 조사가 진행됐다. 그 과정에서 현재까지 29명이 세상을 떠난 것으로 확인됐다.
환자와 보호자들의 육성은 모두 고통스럽다. "퇴원해야 한다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다른 병원에서는 잘 안 받아주기 때문에 하루하루 걱정이었다.", "불안해서 살아서 나가는 것보다 차라리 죽어서 나가는 게 좋겠다는 심정이었다.", "폐업 발표 후 면사무소에서 걸려오는 전화와 불안감으로 차라리 죽었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전수조사에 나서며 근래까지 환자들과의 연결을 유지해오던 간호사 이영빈씨. 지난 10월 5일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호소하기 위해 마련된 행사에서 그를 만났다. 곁에서 상황을 지켜본 영빈씨에게 '폐업의 과정과 환자들의 건강상태 악화 및 죽음의 연관성'을 물었다. 질문에 담긴 폭력성이 느껴져서일까. 그는 한참 말이 없었다. 그리고 말문을 뗐다.
"어떤 한 사람의 인생이 100으로 주어졌다고 해봐요. 그 사람은 100만큼 살 수 있던 거예요. 그런데 이번 일로 99, 98 정도만 살게 된 건 아닐까요? 더 살 수 있던 하루를 빼앗긴 것은 아닐까요? 명확한 인과관계는 없어요. 그건 생명의 값을 어떻게 보느냐의 차이일 거예요. 어차피 죽을 거였고, 늙은 사람들이었으니깐, 세상에 필요한 사람들이 아니니깐, 중요한 문제는 아니라고 하겠지만. 근데 어떻게 그래요? 곁에서 지켜보면서 그렇게 단정 지을 수 없다는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죄스러워요. 죽은 사람들은 잊혀지겠죠. 아니 잊혀졌잖아요."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당선되면서 곧바로 12월 20일부터 업무보고를 받았는데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진주의료원이 왜 이렇게 됐느냐에 대해 10일 만에 파악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2월 26일 폐업 방침을 발표했다. 병원 내의 사람들은 뉴스를 통해 소식을 접했다. 소통은 없었다.
그는 진주의료원 관련 국회 국정조사를 거부한 데 이어, 지난 10월 30일 열린 경남도 국정감사에서 "진주의료원은 국정조사 대상이 아니다"라는 요지부동 태도로 일관했다. 지난 10월 한 토크프로그램에 출연해 진주의료업 폐업에 대해 이런 말을 하기도 했다. "진주의료원이 없어졌다고 공공의료가 없어진 게 아니라 공공병원 '하나'가 없어진 거예요." 그 하나가 없어지는 8개월 동안 환자들의 생명권은 송두리째 뽑혔다. 미선씨의 의문은 묵직하다.
"사실요. 전 정말 답답한 게요. 강성노조다, 직원들이 월급은 많이 받으면서 근무 태만이었다, 뭐 이런 이유로 청산한다고 했잖습니까. 그 사람들 말마따나 저희가 잘 못한 거면요. 저희만 내쫓으면 되잖아요. 근데 왜 환자들까지 이렇게 쫓겨냅니까. 그게 너무 안타깝고 그래서 납득할 수가 없어요. 적자가 문제면, 잠시 문을 닫고 시간을 두면서 천천히 적자를 고쳐갈 수도 있었잖아예. 그 적자란 게 공공의료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안고 가는 것이었고, 건물 이전하면서 불거진 거예요. 조사해보니깐 다른 의료원들도 저희만큼, 더 많은 곳도 있었어요.
그런데도 무조건 청산한다는 게. 그것도 이렇게 급작스럽게 진행되는 게. 혹시 홍 도지사가 한 번만 병원을 방문해서 어떤 환자들이 머물고 있는지 직접 봤다면, 이렇게까지는 못하지 않았을까. 서로 대화도 좀 하고 의견도 들어보면서, 조금만 다른 방법으로, 아니 천천히 라도 진행했다면 좋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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