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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작 일곱 번의 면접이 전부라니, 우울하지 않니?

[소설-엘라에게 쓰는 편지] 9편

등록|2013.11.05 09:12 수정|2013.11.05 18:03
Dear 엘라

엘라 나 요즘 우울해. 늘 우울했지만 이렇게 대놓고 말한 적은 없었던 것 같아. 엘라 요즘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그동안 본 면접을 세어봤더니 한 달에 한 번 꼴로 봤더라고. 나는 그동안 그렇게 괴로웠는데 고작 일곱 번이 다라니. 나도 참 대책 없이 살았던 것 같아.

요즘에는 인턴을 하고 있어. 집에 있으니까 눈치도 보이고 돈도 없어서 시작한 게 한 달 정도 되었어. 그동안은 알바하면서 면접 보는 게 불가능하니까 안 했던 건데 이건 취업 준비하면서 하려고 하는 거거든. 돈은 얼마 안 되지만 그냥 용돈 쓰고 엄마한테도 좀 줄 수 있고 괜찮은 것 같아. 그다지 큰 건 안 바라. 이거 어차피 경력으로도 인정도 안 되거든. 면접 있으면 한 달에 세 번인가까지 월차를 쓸 수 있어. 벌써 한 번 썼지.

암튼 이번 여름은 참 긴 것 같아. 내가 그 이야기 했나? 나는 원래 빗소리를 좋아하는데 이번 여름은 그 빗소리가 좀 무기력하게 들려. 왠지 이 비도 자기 힘으로 내리는 게 아니라 하늘에서 뿌리는 것 같은 기분이랄까? 내 기분이 우울하니 별 이야기를 다 하네. 그래도 좋은 건 내 방 창문을 열어놓으면 뒤에 나무가 우거져 있어서 풍경도 좋고 바람도 시원해. 다만 방충망에 구멍이 나서 테이프로 붙여놨는데 벌레가 좀 드나들고 밤에는 모기가 들어와서 짜증나는 거 빼고는 괜찮아. 아빠는 모기가 들어온다고 캐노피를 사왔는데 예쁜 게 아니라 진짜 야외에서 쓰는 거 그런 거야. 창문 열어놓고 거기 안에 들어가서 책 읽으면 진짜 좋아. 밖에 있는 것 같아.

삶은 참 무기력하고 빡빡한데 나름 재밌게 지낸 것 같기도 해. 근데 인턴이라고 만만히 봤는데 집에 오면 피곤해서 거의 탈진상태야. 낮에는 이력서도 못 쓰고 계속 병행하기는 힘들 것 같아. 9월 공채 시작되면 그만 둬야 할 것 같기도 해. 하반기 공채에는 빡세게 해서 꼭 일해야지.

이제는 공연 일 할 수 있을지도 잘 모르겠어. 그래서 그냥 좋은 회사 들어가서 일하는 게 먼저인 것 같아. 물론 공연 일 할 수 있으면 좋지. 지금도 같이 넣고는 있는데 이제 올인은 하지 않으려고. 이 여름이 지나면 모든 게 다 슬슬 정리되겠지?

이상하게 이 여름이 전환점이 될 것 같아. 이제 취직이라는 게 뭔지 좀 알 것 같거든. 면접스터디도 꽤 여러 번 하면서 내가 별 거 아니라는 것도 느꼈고 이제 지겨운 토익시험도 졸업했고. 그리고 일반 회사든 공연 회사든 안 가릴 거야. 솔직히 이제 지쳐서 더 고집부릴 힘도 없어. 엘라, 그렇다고 나를 너무 쉽게 현실과 타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진 말아줘. 이게 내 최선이고 한계인 것 같아. 빨리 너를 만나서 이야기 하고 싶어. 시시콜콜한 것 까지. 보고 싶다.

P. S 이 여름은 너랑 참 잘 어울리는 것 같아. 푸르고 시끌벅적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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