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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절벽, 코끼리가 정말 돌이 돼버린 걸까

[일본 가는 길 111] 일본 오키나와 만자모 기행

등록|2013.11.07 10:25 수정|2013.11.07 14:47
일본 오키나와(沖縄)를 남북으로 가르는 관광 버스는 히가시시나카이(東シナ海, the East China Sea) 해안을 마음껏 달리고 있었다. 차창 밖으로 빗물이 부딪쳐 흐르고 그 빗물이 점점이 맺힌 뒤쪽으로 넓은 바다가 보였다.

만자모행 버스줄기차게 내리는 비가 여행길을 심란하게 한다. ⓒ 노시경


일본의 하와이로 불리는 작은 섬, 오키나와는 푸른 바다를 끼고 아름다운 해안 절경을 자랑한다. 나와 아내가 머문 이곳은 오키나와의 바닷가 중에서도 가장 널리 알려진 곳으로  오키나와 서해안에 길게 이어지는 해안선의 3대 곶 중의 하나이다. 높이 20m의 류큐 석회암 절벽을 자랑하는 만자모(万座毛). 이름에서 '모(毛)'는 과거 오키나와 언어로 '빈터'라는 뜻이다.

만자모는 1726년에 이곳을 순시한 류큐왕국(琉球王國)의 13대 국왕인 쇼케이왕(尚敬王, しょうけいおう)가 만 명이 앉아도 충분한 벌판이라고 극찬하여 유래된 명칭이다. 류큐의 왕이 친히 연회를 즐기러 이곳에 올 정도로 만자모는 아름다운 곳이다. 그 아름다움으로 인해 오키나와 팔경 중의 한 곳으로도 선정된 만자모는 오키나와 여행의 필수적인 관광코스 1번지이다.

만자모 입구만자모 입구에 들어서자 다행히 비가 그쳤다. ⓒ 노시경


아침부터 나의 마음을 심란하게 했던 빗줄기는 만자모에 도착하자 거짓말같이 개었다. 혹시나 해서 우산을 들고 나갔지만 비 개인 하늘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주차장에서 기념품 가게들을 지나 만자모를 향해서 걸었다. 주차장 입구에는 18세기에 오키나와 대표 여류 시인 온나나베(恩納ナベ)가 왕 일행을 환영하며 지었던 노래가 새겨진 가비(歌碑)가 있다. 가비의 내용은 물론 왕의 선정을 칭송하는 내용이다. 왕국에서의 왕은 어디를 가나 이렇게 극진한 대접과 칭송을 받는 존재였으니 야망을 가진 사람들은 참으로 해보고 싶은 자리였을 것 같다.

만자모바다를 바라보는 절벽의 정경이 압권이다. ⓒ 노시경


만자모 바닷가로 걸어갈수록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바람이 조금씩 불어오고 있다. 바닷바람에 씻겨 몸 속에 들어오는 공기는 상쾌하기만 하다. 바닷가 절벽 너머로는 아스라한 바다가 펼쳐져 있다. 높은 절벽에서 바로 밑으로 내려다보이는 푸른색 바다가 장관이다. 바닷가의 파도를 만난 석회암은 긴 세월 동안 침식되어 기괴한 모습의 절벽을 만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절벽은 푸른 바다와 한 몸인 듯 어우러져 있다. 바다가 마중 나온 경치를 보자 가슴이 뻥 뚫린다. 넓은 바다를 보면 시원하고 들뜬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인류가 원래 바다로부터 진화한 동물이기 때문일까?

만자모 나무뒤로 드러누운 나무가 해풍의 세기를 짐작하게 한다. ⓒ 노시경


초원 위의 나무들은 바닷바람을 맞아 모두 누워 있다. 나무만 본다면 내가 마치 멕시코의 한 초원에 와 있는 듯하다. 마치 소설 속에 등장하는 듯한 키 작고 말라 붙은 나무들이 만자모의 바다와 잘 어울린다. 바닷바람을 맞으며 드러누운 이 키 작은 나무들은 만자모 평원 위에서만 자라는 특별한 식물들이다. 산책로에 설치된 설명문을 보니 이 만자모 주변의 식물군락은 오키나와 현으로부터 '만자모 석회암 식물군락'으로서 오키나와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태풍이 올라와 비바람이 부는 날에는 뒤로 누운 이 나무들의 분위기가 꽤나 으스스할 것 같다.

나는 아내와 함께 바닷가를 향해 단정하게 정돈된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만자모 들판 사이로 뚫린 산책로는 마치 자연의 품 안으로 들어가는 듯한 산책로다. 나는 아내와 함께 천천히 주변의 절경을 감상했다. 바닷가 절벽을 따라 연결되는 산책로는 바닷가의 일망무제 전망을 보여주고 있다. 호텔이나 개인의 저택이 들어서지 않고 이 바닷가 절벽이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는 사실이 반가웠다. 바닷가 앞의 작은 평원은 '자유'라는 단어를 떠올리게 한다. 이곳은 오키나와의 경치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며, 나의 마음에도 들어오게 되었다.

만자모 평원바닷가 절벽 위에 작은 평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 노시경


길게 구불구불 이어진 류큐 석회암 절벽 위는 마치 칼로 자른 듯이 평평한 평지의 구조를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천연 잔디가 꽤 넓게 펼쳐져 있다. 바다를 향해 넓게 트인 평원의 공간이 시원스럽다. 짙푸른 바다와 함께 어울리는 넓은 초록 잔디가 일품이다. 천연 잔디가 깔린 드넓은 초원과 독특한 모양의 절벽이 어우러지는 모습은 어느 나라에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이국적인 풍경이다. 넓은 초원은 이곳이 오키나와의 명승지임을 한껏 자랑하고 있다.

바닷가 절벽 위의 작은 평원을 지나면 산책로가 끝나는 곳에 석회암이 만들어낸 비경이 드디어 드러난다. 산호초가 쌓여 만들어진 석회암이 다시 지상으로 융기하여 히가시시나카이(東シナ海) 해안으로 불쑥 튀어나와 있다. 이 벼랑은 오키나와의 상징과 같은 코끼리 바위이다. 우리가 감상하려는 만자모의 아름다운 절벽 중 가장 사랑을 받는 절경은 바로 이 코끼리 옆 얼굴과 코 모양의 절벽이다.

코끼리 바위석회암 바위를 뚫은 파도의 역작이다. ⓒ 노시경


한 번만 딱 봐도 누구나 코끼리 코를 닮았다고 할 절벽이다. 멀리서 보나 가까이서 보나 정말 코끼리 같이 생긴 절벽이다. 이 절벽은 돌이 되어버린 코끼리인가 싶을 정도로 코끼리를 닮아 있다. 이 코끼리는 자신의 코를 강조하려는 듯 옆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코끼리는 정말 아름다운 바닷가에 살고 있었다.

이 코끼리 코는 태평양의 세찬 파도가 석회암 바위를 침식시키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실제로 코끼리 바위를 자세히 보고 있으면 세차게 덮치는 파도가 간간이 코끼리 코 사이로 드나드는 것을 볼 수 있다. 코끼리 코는 오키나와에 상륙하는 수많은 태풍의 세찬 파도들을 수 만 년의 세월동안 만났을 것이다.

만자모 여행자들오키나와 여행 1번지를 즐기고 있다. ⓒ 노시경


바닷물이 코끼리 바위에 다가와 조금씩 부딪치면서 찰랑거리고 있다. 가끔씩 파도가 와서 절벽의 바위를 한 번씩 철썩 때린다. 비가 오는 날이라서 그런지 파도는 거칠다. 날씨가 흐린데도 바닷물은 검푸른 빛을 잃지 않고 있다. 흐린 날씨 속에서도 바닷물이 속이 보일 정도로 깨끗하게 보이는 것은 그만큼 이곳 바다가 깨끗하기 때문일 것이다. 절벽 아래 잡초들은 바람에 흔들리며 바다의 파도를 바라보고 있다. 많이 봐 온 바다이지만 왜 이 오키나와의 만자모 앞바다가 이리도 평화롭게 보이는지 모르겠다. 코끼리 바위 쪽의 숲 속으로도 사람의 발길이 닿은 평원 위의 길이 있지만 버스에 돌아가야 시간이 있어서 깊숙이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만자모 바위석회암 바위가 파도의 침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 노시경


절벽의 바위나 절벽 밑의 돌은 거무튀튀한 게 제주도의 현무암과 모양이나 색깔이 너무나 닮아 있다. 제주도의 바위는 화산이 분출하면서 생긴 현무암 바위이고 오키나와는 산호가 쌓여 만든 석회암 바위인데도 이렇게 바위 모양이 비슷할까 싶다. 현무암이나 석회암이나 모두 무른 돌이기 때문에 바닷물의 침식에 모양이 깎였기 때문일 것이다.

여행자들이 몰려 있는 코끼리 절벽을 지나쳐서 시계 방향으로 길게 한 바퀴를 돌면 또 다른 절경이 펼쳐진다. 이곳 역시 오키나와에서는 놓치면 안 되는 절경이다. 우리가 보고 있는 절벽의 북쪽 건너편에는 이 절경을 독점하고 싶어 하는 한 호텔과 리조트가 있다. 특히 이 호텔은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이 2000년 G8 오키나와 정상회의 때 묵으면서 호텔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호텔이다. 호텔은 듣던 바와 같이 하얀 보트를 본따 만들어서 날렵하고 바다를 향해 나아갈 것만 같다.

바다가 보이는 호텔곶 위에 자리한 호텔의 모든 방에서는 바다가 보인다. ⓒ 노시경


이 호텔은 바다를 향해 튀어나온 곶 위에 위치해 있으니 모든 객실에서 바다가 시원하게 보인다고 한다. 보통 바닷가의 숙소에 가서 전망 좋은 '오션 뷰(Ocean View)'로 달라는 수고는 이 호텔에서는 필요 없을 것이다. 저 숙소에 누워서 코끼리 절벽과 바다를 감상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잠깐 상상해 보았다. 만자모 주변에는 만자해수욕장을 비롯해서 좋고 이름난 해변이 많아 오키나와에서의 숙박지로는 이곳이 최고가 아닐까 싶다.

만자비치(万座ビ-チ) 앞에는 열기구 풍선 크기 만한 석회암 바위섬 2개가 둥둥 떠 있다. 바다 위에 외따로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유명 조각가가 바다 속에 돌조각을 설치해 놓은 것 같다. 원래 바다 속에 있던 산호가 퇴적된 후 육지에 올라와 석회암 바위가 되었다가 다시 바다 위에 홀로 서서 바닷물의 침식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바위섬 앞으로 빨간색 제트 스키를 즐기는 사람들이 시원하게 바닷물을 가르고 있다.

특이한 자연경관에 이름을 붙이고 그 이름에 이야기 만들기 좋아하는 일본 사람들이 독특하게 생긴 이 바위섬을 그냥 두었을 리 없다. 이 바위섬을 오키나와 사람들은 부부암이라고 부른다. 원래 이 바위섬은 금줄인 시메나와(しめなわ, 注連縄)로 연결되어 있는데, 시메나와는 일본 신교에서 악한 기운이 신성한 구역 안에 들어오지 말라는 뜻으로 장식하는 금줄이다. 이 신성한 시메나와가 연결하고 있는 두 바위섬은 아무리 파도가 쳐도 관계가 끊어지지 않는다고 해서 부부암으로 불리게 됐다.

부부암남편섬과 부인섬이 사이좋게 마주보고 있다. ⓒ 노시경


조금 더 큰 바위섬이 남편섬이고 더 작은 바위섬이 부인섬이다. 이 부부암은 강력한 태풍 속에서도 줄이 끊어지지 않아서, 이성의 인연을 만나게 해 주고 부부 사이의 금실을 좋게 해준다고 소문이 나 있다. 그래서 일본 각지에서 온 많은 여행자들은 해변에서 이 부부암을 바라보면서 자신의 인연을 계속 이어달라고 기도를 한다.

그런데 웬일인지 우리가 갔을 때에는 부부암 사이에 금줄이 이어져 있지 않았다. 오늘 비가 와서 금줄을 치운 건지 금줄을 바꾸기 위해서 잠시 내려놓은 건지 알 수가 없다. 금줄이 보이지 않는 바위섬을 보고 우리가 굳이 부부애를 위해서 기도를 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부부암을 보고 기도하는 것보다는 부부 간에는 평소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아주 평범한 생각을 떠올려 보았다.

이 아름다운 바닷가는 역설적으로도 자살을 하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이 아름답고 푸른 바다의 절정의 아름다움을 느끼며 바다에 뛰어든다는 것인가? 세찬 파도 속에 몸을 맡기며 아름다움 속으로 뛰어든다는 역설인가? 하지만 이 아름다운 절경을 보면서 생을 마감한다는 것은 너무나 슬픈 일이다. 나는 자살하려는 사람들이 부부암의 이어진 줄을 보면서 자신의 인연을 새롭게 만들어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끊어진 부부암의 줄을 빨리 연결했으면 좋겠다.

나는 아내와 손을 꼭 잡고 오키나와 바닷가의 마지막 산책로를 아쉬움 속에 걸었다.
덧붙이는 글 제 블로그인 http://blog.naver.com/prowriter에 지금까지의 추억이 담긴 세계 여행기 약 300편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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