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쏭달쏭' 안도현 판결문, 실제는 이랬다
안도현 시인 유죄 판결... 재판부는 어떻게 배심원 평결 뒤집었나
▲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및 후보자 비방 혐의로 불구속 기소된 안도현(52·우석대 교수) 시인이 7일 전주지법 1호 법정에서 일부 유죄 판결을 받은 직후 법정을 빠져나오면서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연합뉴스
안도현 시인이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의 기분이 이럴까", "재판부가 배심원들과 나를 조롱했다", "법과 정의는 죽었다"며 통탄했다. 심하게는 재판장을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충신'에 비유하며 통렬히 비판했다. 배심원들 전원(7명)이 무죄 평결을 내렸는데, 국민참여재판을 진행한 재판부가 7일 유죄 판결을 내렸기 때문이다.
전주지법 제2형사부(은택 재판장)는 7일 오전 10시에 열린 안도현 시인에 대한 국민참여재판 선고공판에서 검찰의 공소사실 중 박근혜 후보에 대한 허위사실공표 혐의에 대해서는 무죄를, 후보자비방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로 판결했다. 다만 "'피고인의 후보자비방은 죄가 있지만 처벌하지 않는다'는 게 법원의 최종 판단"이라면서 벌금 100만 원의 형의 선고를 유예했다.
안도현 시인 "재판부, 권력자에게 누 끼치지 않으려..."
그러자 안도현 시인은 판결 직후 트위터에 재판부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글들을 쏟아냈다.
안 시인은 "재판부가 결국 국민참여재판 배심원들의 전원일치 무죄 평결을 뒤집었다"며 "배심원들과 나를 무시하고 조롱한 것으로 본다. 국민의 상식적인 눈높이를 거스른 것이다"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법이라는 거미줄에 걸린 한 마리 나비의 기분이 이럴까"라고 비유하며 재판부에 강한 유감을 표시했다. 안 시인은 "재판부는 재판을 한 게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곡예를 하면서 묘기를 부렸다. 애매한 선고를 내리기까지 언어유희로 일관했다"고 맹비난하며 "최고 권력자에게 누를 끼치지 않으려는 충신을 보는 것 같았다. 법과 정의는 죽었다"라고 통탄했다.
그는 또 "명백한 사실에 바탕을 둔 것이라도 박근혜에게 질문하면 안 된다. 질문하면 비방죄가 성립된다. 아, 그래서 검찰은 박근혜를 조사하지 않고 질문조차 하지 않았던 것이었구나!"라고 검찰을 꼬집었다.
안 시인은 "재판부는 배심원 선정과정을 주재했으면서 이제 와서 배심원들을 의심하고 깎아내리면서 무죄 평결을 뒤집었다. 이것이야말로 감성판결이며 정치적 판결이다"라고 규정하며 "재판부에 모욕당한 배심원들께 위로를 드린다"는 말을 남겼다.
▲ 안도현 시인이 판결 직후 트위터에 올린 글 ⓒ 신종철
안도현 시인은 왜 재판부에 강한 불신을 드러내는 이런 말을 했을까. 재판부의 판결 내용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날 재판부는 배심원 평결과 다른 판결을 내린 것에 대해 많은 부분을 할애해 설명했다. 그런데 안 시인이 '언어유희'라고 질타했듯이 알쏭달쏭한 부분이 실제로 있다.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은 전원일치로 허위사실공표죄 위반 부분뿐만 아니라 후보자비방죄 위반 부분에 대해서도 모두 무죄 평결을 했다. 즉, 공소사실은 모두 죄가 되지 않으므로 피고인을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내용의 평결을 했다"고 밝혔다.
이어 "재판부와 배심원 쌍방의 의사가 충돌한 경우 과연 어느 일방의 의사를 우월적 지위에 두고 타방의 의사를 이에 기속시킬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는 법의 지배의 이념을 우선할 것인가, 아니면 민주적 정당성을 우선할 것인가의 이념적 가치의 갈등, 대립이 저변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또 "현행 헌법과 법원조직법,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체계 하에서 이 사건 국민참여재판 판단의 궁극적 주체는 법관으로 구성된 법원이고, 따라서 이 법원이 국민참여재판 판결의 최종적 책임을 지게 될 것이므로 권고적 효력만을 가진 (배심원) 평결은 이와 어긋나는 이 법원의 심증을 법률적으로 기속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러나 일반 국민의 눈높이에 따른 배심원의 의견은 국가권력의 원천인 국민의 뜻과 의지를 표출하는 것으로 봐야 하고, 다소 지역적, 감성적으로 보이고, 때로는 정치적 색채가 짙어 보이더라도 이를 존중해 판결에 최대한 반영해야 한다"며 "더욱이 배심원의 의견이 다수의견을 넘어 전원일치의 의견이라면 그 뜻과 의지를 판결에 그대로 반영함이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재판부는 "이렇게 하는 것이 사법의 민주적 정당성과 신뢰를 높이기 위해 국민의 의사에 따라 도입한 국민의 형사재판 참여에 관한 법률의 입법취지에 부합하는 것이고, 민주사회의 시대적 요청에 따르는 것"이라며 "이로써 이 사건 국민참여재판의 배심원 평결은 이 재판부에 대해 사실상의 기속력을 가지는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죄가 되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재판부, 왜?
그런데 재판부는 다른 설명을 이어갔다.
재판부는 "다만 배심원의 의견이 법관의 직업적 양심과 근본적으로 충돌할 경우에는 전원일치의 배심원 의견이라 하더라도, 법관의 존재 이유로서 포기할 수 없는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 한해서만 기속력을 가진다고 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공소사실은 피고인의 트윗 게재행위가 드러난 사실관계를 기초로 법리적으로 봐 그 내용이 사실적시에 해당하는지, 허위사실인지, 허위에 대한 인식이 있었는지, 낙선목적과 비방의도가 있었는지, 공익목적의 위법성조각사유가 있는지 여부 등이 쟁점인 사건으로서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으로 구성된 배심원이 법리적 관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기가 쉽지 않고, 사안의 성격상 배심원의 정치적 입장이나, 지역의 법감정, 정서에 그 판단이 좌우될 수 있는 여지가 엿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다면, 법의 지배 이념의 축으로서 법령의 해석과 적용은 확립된 법리에 따라 통일적으로 평등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법적 안정성 원칙에 비춰 이 사건에 대한 법관의 직업적 양심의 본질적 부분은 적어도 공소사실의 유무죄에 대한 법적 평가 부분"이라며 "따라서 공소사실의 유무죄에 대한 법적 평가 부분에 관한 배심원의 의견은 재판부를 기속할 수 없고, 나머지 양형 부분에 한해 사실상 기속력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일반인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설명도 했다.
재판부는 "그러므로 배심원의 전원일치 무죄 평결 내용 중 공소사실이 모두 무죄라는 법적 평가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 즉, '공소사실로 인해 피고인을 처벌하지 않는다'는 법률효과 부분에 한해 이를 최대한 판결에 반영함이 상당하다"며 "이로써 '피고인의 행위는 죄가 되나, 이로 인해 피고인을 처벌하지는 않는다'는 일응 모순적으로 보이나, 실제 양립가능한 결론으로 귀착한다"고 말했다.
이어 "'죄는 되나 처벌하지 않는다'는 이 법원의 최종 판단에 걸맞은 선고는 형 면제이다. 그러나 형사재판에서 형 면제 선고는 적용 법률에 형 면제를 선고할 근거가 있거나 법률상 자수, 자복, 친족관계 등 형 면제 사유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것인데, 이 사건에서 형 면제를 선고할 법적 근거나 사유가 보이지 않는다"며 "따라서 배심원 평결을 최대한 존중해 이를 양형에 반영해야 하는 법원으로서는 현행법의 테두리 내에서 '죄는 되나 처벌하지 않는다'에 가장 근접한 형에 해당하는 선고유예 이외 다른 형을 선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덧붙이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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