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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원의 '불법파견' 흑역사

정부 출연기관에서 자행되고 있는 불법파견과 부당해고... 정부가 나서야

등록|2013.11.08 12:06 수정|2013.11.08 12:06

▲ 한국원자력연구원. ⓒ 오마이뉴스 장재완


정부출연연구기관인 한국원자력연구원(아래 원자력연구원)에는 '하나로'라는 이름의 국내 유일의 연구용 원자로가 있다. 하나로는 핵분열 반응 시 발생하는 중성자 등을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시설로 그 성능이 세계적인 수준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초 현대자동차에서 양산 계획을 밝힌 수소연료전지자동차의 개발에도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된 바 있다.

연구용이기 때문에 규모가 작긴 하지만 방사능 물질을 다루고 있고 대도시 대전에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그 관리의 중요성은 일반 원자력 발전소와 다를 바 없다. 항상 일정한 조건으로 운전되는 원전과는 달리 연구용 시설은 여러 가지 변수가 많기 때문에 예상치 못한 사고의 위험은 도리어 더 클 수도 있다. 그런데, 현재 이러한 위험을 무릅쓰고 하나로의 운영 업무를 맡고 있는 이들 대다수는 원자력연구원의 정직원이 아닌 하청업체에 고용된 직원들이다.

이들을 비롯한 70여명의 원자력연구원 하청 노동자들은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지난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들의 고용 형태가 합법적인 하청인 아닌 '불법파견'이었음을 밝히는 것이 그들의 요구이고, 그 과정에서 부당하게 해고된 노동자들의 복직이 또 하나의 요구이다.

공공기관에서 자행된 불법파견

이야기는 지난해 8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자력연구원 하청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불법파견 상태라는 사실을 알고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줄 것을 요구하고, 정부에도 진정서를 제출한다.

현행법상 하청과 파견의 구분은 업무 지시를 하청업체가 하느냐 원청업체가 하느냐에 따라 구분된다. 원자력연구원의 경우 원자력연구원에서 직접 업무 관리를 한 점, 하청업체가 여러 번 바뀌었음에도 10년 넘게 계속 근무하는 노동자가 다수인 점 등 불법파견의 전형적인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또한 10년 넘게 같은 업무를 하는 노동자를 계속 비정규직으로 고용했다는 것 또한 엄연한 불법이다.

그러나 노조의 이러한 요구에 사실상의 사용자인 원자력연구원은 해고 통보로 응수한다. 지난 1월 말, 하청업체 중 하나인 한신엔지니어링 직원 2명에 대해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를 통보한 것이다. 2명 모두 노조원이었다는 점에서 해고를 통한 노조 탄압이 의심되는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이 과정에서 원자력연구원이 노동자들에게 노조 탈퇴를 종용한 정황도 드러난 바 있다. 이에 노조는 원자력연구원 앞에서 천막 농성을 시작하게 되고, 언론에도 관련 내용이 보도되기 시작한다(관련기사 : "원자력연구원 내에 부당노동행위 만연").

정부도 인정한 불법파견·부당해고

▲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한국원자력연구원 비정규직 지회(지회장 임홍철)는 지난 2월 13일부터 한국원자력연구원 입구에서 부당해고 철회, 부당노동행위 중단, 비정규직 정규직전환 등을 촉구하며 천막농성에 돌입했다. ⓒ 오마이뉴스 장재완


노조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원자력연구원은 또 다른 하청업체인 코라솔 소속 직원 12명에 대해 추가적으로 해고를 통보한다. 이에 한신엔지니어링 및 코라솔 소속 해고 노동자들은 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를 주장하며 구제신청을 내었고, 충청남도 지방노동위원회로부터는 부당해고 판정이 내려진 상태이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원 측이 이에 불복하여 사안이 중앙노동위원회로 넘겨졌다. 설사 중앙노동위원회에서 같은 판결이 나오더라도 원자력연구원은 강제이행금만 지불하면 되기 때문에 복직을 강제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다.

법정 싸움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이던 와중에 지난해 11월에 노조에서 제기했던 불법파견 진정에 대해 최근 고용노동청에서 불법파견을 인정하고 시정명령을 내림으로써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된다. 앞서 노동위에 제소한 부당해고 건은 민사소송의 성격을 지니고 있는 데 반해 불법파견 건은 형사고발 해당 사항이기 때문에 이행하지 않을 경우 사용자에 대한 처벌이 더 무겁기 때문이다.

원자력연구원도 이 결정에는 승복하여 직접고용으로 전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긴 했지만 그 과정에서 또 한 번의 꼼수를 부린 것이 드러났다.

시정 명령에도 노조원 전원해고

현행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파견법)'에 따르면 고용된 지 2년이 지난 파견 노동자에 대해 사용자가 '직접 고용할 의무(고용의무)'가 있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는 2007년에 개정된 조항으로 개정 전에는 '이미 고용된 것으로 간주(고용의제)'하는 것으로 되어 있었다. 원자력연구원의 전체 73명의 하청 노동자 중 23명은 파견법 개정 이전에 입사했기 때문에 고용의제 적용 대상인 반면, 나머지 50명은 파견법 개정 이후 입사자여서 고용의무가 적용되게 된다.

그러나 이는 법률 용어상의 구분일 뿐 모두 직접고용 대상자임에는 차이가 없다. 그러나 원자력연구원은 이 둘을 별개로 보고 고용의제 대상자는 즉각 무기계약직으로 직접 고용하는 반면 고용의무 대상자는 1년 단위 계약직으로 전환한 뒤 2년간의 근무 평가를 통해 무기계약직 전환을 판단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어쨌든 둘 다 일단 직접 고용한다는 점에서 법적 책임을 피해갈 수 있으리라는 판단이었겠지만, 이러한 구분 및 차등 대우는 법적 근거가 매우 희박하다. 더욱이 노조 측은 노조원 28명 중 20명이 고용의무 대상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조치가 '노조원 솎아내기'의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이 방침에 대해 대전지방노동청에서도 시정권고를 내렸지만, 원자력연구원은 비노조원들과 개별적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지난달 말 도급업체와의 계약을 전격 해지함으로써 개별 계약을 거부했던 노조원 15명을 해고하였다. 이로써 노조원 28명이 모두 해고된 상태이며 현재 원자력연구원 앞에서 농성 및 출근 투쟁이 진행되고 있다.

이제는 정부가 나서야 할 때

현재까지 진행된 원자력연구원과 노조 간의 공방을 보면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노사 갈등의 거의 모든 양태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문제는 이러한 일들이 사기업도 아닌 공공기관에서 벌어졌다는 것인데, 정부가 공공기관의 비정규직 문제, 고용 불안정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연일 대책을 발표하고 있는 마당에 이와 상반되는 행보를 보인 것이다.

이제 공은 정부로 넘어갔다. 말로만 대책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진정성을 가지고 이번 사태 해결에 적극 나서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청년과학기술자모임이 운영하는 블로그(yesa.tistory.com)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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