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박근혜 시대, 저항의 목소리 모인다

'백기완의 민중비나리' 시 낭송회 개최... 시인 80여 명 2013년 저항시선집 발간

등록|2013.11.11 19:07 수정|2013.11.12 13:16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열사 대책위' 결성4일 오전 서울 서대문 민주노총 대회의실에서 '삼성전자서비스 최종범 열사 대책위 결성 기자회견이' 백기완 선생, 민주노총 신승철 위원장, 금속노조 전규석 위원장, 삼성전자서비스지회 위영일 지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서울대 황정하 열사 추모식에 가서 한 말씀을 하라는데, '할 말이 없다, 미안합니다'하고 그냥 왔어요. 황정하 열사에게 너무 미안한 거야. 30년 동안 나는 도대체 뭘 했냐고. 군사 독재에 항거한 열사 앞에서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어."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의 목소리는 항상 갈라지지만 힘이 실려 있다. 앉았다 일어설 때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때도 있지만 목소리만큼은 변함이 없다. 얼마 전 있었던 황정하 열사 30주기에 갔던 일화를 얘기할 때도 백 소장은 흐느끼듯 갈라지는 목소리로 절규했다. 황정하 열사는 지난 1983년 11월 8일 한미일 군사동맹에 반대하며 '민족의 생존과 번영을 위한 민주화 투쟁'을 외치다 서울대 교내 시위 도중 추락해 8일 후 세상을 떠났다.

군사독재에 맞서 목숨을 던진 열사에게 백 소장은 미안함을 느꼈고, 그것은 지금의 시대가 그때와 다르지 않다는 것에서 기인한다. 오는 29일 예정된 '백기완의 비나리'에도 열사를 향한 미안한 마음이 담겨 있다고 한다. '백기완의 비나리'는 그가 직접 쓴 시 15편을 낭독하는 자리다. 단순히 '시 낭송회'라고 하지 않고 '비나리'라는 말을 붙인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11일 서울 명륜동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난 백 소장은 "글을 모르던 무지랭이들의 시였던 비나리를 되살리고자 한다"며 "비나리는 자기 자신과 주변에게 희망을 읊조리며 기운을 어르고 북돋는 민중들의 주체적인 시"라고 소개했다. 또 "민주주의를 후퇴시키고 민중들의 생존권을 짓밟는 박근혜 정부 1년에 맞서는 저항의 쇳소리가 필요하다"며 "내가 먼저 소리를 질러 볼테니 함께 듣고, 그런 기운을 나눠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비나리는 사전적으로 고사나 굿을 지내면서 부르는 소리를 말한다. 그러나 백 소장은 "비나리는 생명이 아닌 것이 생명을 죽이는 것에 대한 생명의 몸부림"이라며 "비나리는 저항 문학이고 저항의 정신이 곧 비나리의 정신"이라고 말했다. 백 소장은 "쇳소리는 입에서 쇳내가 날 정도로 일을 해야 하는 무지렁이들이 내는, 죽음을 넘고 하늘까지 이고 일어서는 저항의 소리"라며 "그것이 곧 비나리"라고 설명했다.

지금 비나리가 필요한 이유에 대해 백 소장은 "신자유주의가 우리 사는 세상을 지배하면서 모두 다 소시민적 갈등과 절망과 타락에 빠져 있다"면서 "사람이 사람을 저버리고 사람됨을 잊고 다들 속으로 병들어가는 이때 비나리가 나와야 한다"고 했다.

간담회에 참석한 송경동 시인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지 아직 1년도 되지 않았지만 시대는 이미 과거를 향하고 있다.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공안탄압이 시작됐다"며 "온갖 삶의 현장에서 비나리가 필요하다, 노동자·서민·민중이 함께하는 자리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백기완의 비나리는' 오는 29일 오후 7시 30분 서울 조계사 내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열린다. 행사에서는 심보선, 진은영, 송경동 시인이 연대시를 읽고, 참석자들은 민중민주주의 선언을 채택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심경림, 백무산, 나희덕, 이문재 등 시인 80여 명이 저항시집 '우리 시대의 민중비나리'를 발간할 예정이다. 70~80년대 저항의 문학이 박근혜 시대에 다시 시작되고 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