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자전거족들의 유럽여행, 어땠을까

[서평] 김정희의 <자전거 유럽여행>

등록|2013.11.13 10:24 수정|2013.11.13 10:24

책겉그림〈자전거 유럽여행〉 ⓒ 더블엔

자전거족과 그의 아내, 그 자전거족의 남동생. 그렇게 셋이서 유럽 여행을 떠났다. 스페인의 바르셀로나를 시작점으로 프랑스· 벨기에·네덜란드·독일·스위스·이탈리아 그리고 그리스를 거쳤다. 2012년 4월부터 3개월간 유럽 8개국을 돌았단다. 비행기나 전철 혹은 트럼을 타고 다닌 길목이 아니라 순전히 자전거 여행이었다.

무척이나 흥미진진하지 않을까? 두 바퀴에 온갖 짐들을 싣고 떠나는 여행길, 상상만 해도 낭만적일 것 같다. 그곳에 텐트를 치고 밥을 해 먹는 숲 속 야영까지 벌인다면 그야말로 금상첨화일 것이다. 하지만 그게 결코 쉬운 건 아니다. 온갖 짐들을 자전거 세 대에 나눠싣고 다니는 것, 혹시라도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라면 허탕을 쳐야 하니 말이다. 그래도 무모한 도전정신으로 뛰어든 그 여행길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김정희의 <자전거 유럽여행>은 바로 그 여행의 뒤안길을 돌아보게 한다. 이 책은 유럽 곳곳의 도시와 시골의 작은 마을들, 숲과 호수, 바다의 풍경과 길 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과 만난 그 추억을 되새기게 해준다. 뿐만 아니라 저자의 뛰어난 사진 실력과 술술 읽히는 맛깔스런 글 솜씨는 유럽의 역사와 문화와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더욱더 풍성하게 해준다.

"오늘의 주행거리는 대략 100km. 은근이 오르막이 많았지만 다행히도 달리는 내내 등 뒤에서 바람이 불어줘서 쉽게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 후 처음으로 장거리를 달렸더니 컨디션이 많이 떨어진 것 같았다. 생각 같아서는 그대로 호스텔에서 푹 쉬고 싶었으나 함께 나가 거리구경을 조금 한 후 식사를 했다."(본문 68쪽)

이른바 스페인의 바르셀로나에서 겪은 하루를 기록한 것이다. 그곳에서 만난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대성당'과 '카사 바트요' 그리고 '타워 아그바' 등은 바르셀로나의 밥줄과도 같다고 한다. 물론 그곳에서 섹시함을 자랑하며 접근하는 여성들 때문에 자칫 지갑까지 날릴 뻔한 일도 소개한다. 어딜 가나 눈에 홀릴만한 일들은 많은 것 같다.

"큐브하우스에는 주민들이 주거하고 있으며, 일부를 리모델링해서 호스텔로 사용하고 있다. 지어진 것은 1984년이지만 이 파격적인 디자인은 무려 1970년대에 나왔다. 벽이고 바닥이고 모두 기울어져 보이는데 과연 내부는 어떻게 되어 있을지 무척이나 궁금해졌다."(본문 214쪽)

네덜란드의 로테르담 명물인 '큐브하우스'에 관한 이야기다. 유럽에 이런 집이 있다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바깥의 모양만 큐브처럼 생긴 줄 알았는데, 그래서 장식용인 줄 알았는데, 이 책을 보니 내부에는 실제로 주민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곳 네덜란드가 더 멋지게 다가온 것은 잔잔한 풍차마을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더 멋진 광경은 네덜란드 전역이 오렌지색 물결로 넘실거렸다는 것이다. 시내와 거리는 물론이고, 심지어 배 위에서도 오렌지색 옷을 입고 춤을 추는 무리들이 넘쳐났다는 것이다. 그들 사이로 지나가는 세 사람의 샛노란 옷들이 너무 튀는 느낌이었다고 하니, 네덜란드를 여행할 때는 필히 오렌지색 옷을 준비해야 핀잔을 듣지 않을 것 같다.

"로마에서 이곳까지 둘러보고 오는 가이드코스가 상시 운영될 만큼 이곳 포지타노는 꽤나 인기 있는 휴양지다. 해안 절벽을 빼곡하게 수놓은 각양각색의 건물들,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달라 보이는 에메랄드빛 지중해의 모습에 카메라를 놓지 못했다."(본문 489쪽)

이른바 아말리 해안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곳은 포지타노에서 동쪽으로 약 25km 정도 이어지는 해안을 통틀어 부르는 명칭인데, 2011년 내셔널리지오그래픽 선정 '죽기 전에 가봐야 할 50곳' 낙원부문 1위를 차지한 곳이다. 저자가 찍은 그곳 해안의 사진들을 보니, 정말로 죽기 전에 가보고 싶은 유혹이 밀려든다.

이 책을 읽다보니, 언젠가 눈여겨봤던 김훈의 책이 떠오른다. 그가 자전거 여행을 하면서 느낀 인문학적 성찰 말이다. 차량의 홍수시대에 살고 있는 길목을 가로질러 떠나는 자전거 여행은 고되지만 서정이 가득하다고 했다. 그 페달을 밟아 나가는 자전거 위에서 그는 수도승처럼 산과 들을 응시하고, 이순신과 추사의 정신을 생각했다.

어쩌면 이 책도 그와 성격이 비슷할 것이다. 자전거 여행길이 고되고 힘들지만 남다른 서정을 안겨준다는 것 말이다. 다만 낯선 유럽 땅에서 페달을 밟는 느낌은 김훈과는 전혀 남다를 것이다. 여기에는 더 많은 성찰보다 더 많은 낭만과 풍류가 들어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다 저자의 멋진 사진첩까지 잔뜩 들어 있으니 말이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