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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그믐 '납점' 쳐서 꽃 모양 나오면, 당신은...

[서평] 주기율표에 숨겨진 기상천외하고 유쾌한 비밀들 <원소의 세계사>

등록|2013.11.13 15:13 수정|2013.11.14 09:15

▲ 지금까지 밝혀진 116개 원소를 주기별로 정리한 원소 주기율표 ⓒ 위키피디아 공용 이미지


세상은 물질의 집합체입니다. 물질들이 모여 물건이 되고, 물건들이 모여 세상을 이룹니다. 자동차 한 대만 하더라도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부품들로 구성되어 있고, 부품 하나하나는 또 다시 하나 이상의 물질들로 구성됩니다. 우리는 물질 고유의 특성을 갖는 최소 단위를 분자라 하고, 분자는 원자의 결합으로 구성됩니다.

물(H2O)은 두 개의 수소 원자와 한 개의 산소 원자가 결합될 때 물이라고 하는 물질이 갖는 고유 특성을 갖게 됩니다. 두 개의 수소가 한 개의 산소와 결합을 하면 물이 되지만, 같은 수소라 할지라도 한 개의 수소(H)가 한 개의 염소(Cl)와 결합을 하면 물과는 특성이 전혀 다른 염산이 됩니다. 이러한 결과는 각각의 원소가 어떤 원소와 어떻게 결합되느냐에 따라 천양지차의 특성을 띠는 물질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세상에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물질들이 존재합니다. 과학이 발달하면서 지금까지는 없었던 물질, 그동안에는 없었던 특성을 나타내는 물질들이 다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그러한 물건, 그 물건들의 특성을 뒷받침해주는 분자들을 다시 쪼개고, 나누고 분해할 수 있는 최소의 단위는 원자(원소)입니다.

물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물 분자는 H2O이고, 물 분자를 분해하면 두 개의 수소(H)와 한 개의 산소(O)로 구분됩니다. 수소(H)와 산소(O)는 더 이상 나뉘지 않는 최소 단위로 하고 이런 최소의 단위를 우린 원자라고 합니다. 결국 세상의 물질들을 쪼개고 쪼개고 또 쪼개고, 나누고 나누고 또 나누어 분해하면 최종적으로 116개의 원자들이 이렇게 저렇게 결합한 결과로 정리됩니다.

따라서 세상을 이루고 있는 물건 수가 제 아무리 많고, 물질의 수가 엄청나게 다양한 것 같지만 결국 이것들을 이루는 근본은 부처님 손바닥을 벗어나지 못하는 손오공처럼 원소주기율표, 116가지 원소 범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현재까지 발표된 원소는 116가지이며 앞으로도 제2, 제3의 원소 또한 밝혀 질 거라 생각됩니다. 한 장으로 된 원소주기율표에는 116가지 원소가 주기율에 따라 정리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원소에는 원자번호, 원자기호, 원자이름, 원자질량, 상태(고체, 액체, 기체), 전기음성도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과학시간이나 화학시간에 배우는 원소는 지극히 공적이고 딱딱합니다. 무조건 외워야 하는 암기 대상에 불과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각각의 원소들도 그들의 이름이 원소주기율표에 오르기까지는 나름대로 이력이나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비소(As)에서 아연(Zn)까지... <원소의 세계사>

▲ <원소의 세계사>┃지은이 휴 앨더시 윌리엄스┃옮긴이 김정혜┃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2013.10.31┃2만원 ⓒ 임윤수

<원소의 세계사>는 각각의 원소들이 뒷담화처럼 품고 있는 문화적 궤적을 재미있게 꾸리고 있습니다. 

백금은 18세기 유럽의 화학자들에 의해 원소로서 인정을 받았고, 그 다음에는 '여덟 번째 금속'으로 '신분 상승'했다. 고대 이래로 알려진 7대 금속에 새로운 식구가 생기는 매우 흥분된 일이었다. 7대 금속이란 금, 은, 구리, 주석, 납, 수은, 철 등을 일컬었다.

그러나 실제로는 2000년 전 남미의 원주민들이 백금을 발견했다. 플래티나(Platina)라고 불리는 자연 상태의 백금은 다른 귀금속이나 철이 함유됐지만, 그래도 순도가 매우 높은 작은 알갱이나 덩어리 형태로 발견된다. 플래티나라는 말은 백금의 겉모습이 은과 상당히 닮았다는 이유로 은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플라타(Plata)'에서 유래했다. - <원소의 세계사> 47쪽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어떤 원소는 어떻게 발견되었고, 각각의 원소들 이름은 어떻게 결정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조금은 비현실적인 이야기들이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드라마틱하게 펼쳐집니다. 아주 심오할 거라고 생각하던 것들이 그렇게 소홀히 결정된 것인가 하고 놀라는 경우도 읽을 수 있습니다.

책에는 주기율표의 발전사가 담겼습니다. 116개의 원소가 태고부터 알려졌던 게 아닙니다. 과학자(화학자)들이 한 원소를 발견하기까지의 과정은 집념이고 행운입니다. 목숨을 건 분투이며 도전입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117번째의 원소를 발견하기 위해 누군가는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을 거라는 걸 어림할 수 있습니다.  

주기율표에 실린 원소들은 결혼한 부부가 낳은 자식과 같은 결과입니다. 부부가 결혼을 해 자식을 낳기까지에는 숨겨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보리밭이나 물레방앗간에서 나눈 뜨거운 밀회도 있을 수 있고, 가슴 설레는 속삭임도 있을 겁니다. 티격태격 싸우며 얼굴이 붉어질 사연도 있고, 구애를 하느라 조금은 치사해 보이는 행동을 했을 수도 있을 겁니다.

원소의 출생비밀, 모든 원소들은 어디서 왔을까?

책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들은 어떤 원소가 탄생하기까지의 연애사이며 주기율표에 가려진 뒷담화 같은 내용입니다. 어떤 원소에 담긴 사연, 어떤 원소 이름이 갖고 있는 의미에서 새길 수 있는 문화 궤적은 신화를 넘나드는 픽션입니다.  

납의 원광이 풍부한 중부 유럽의 일부 지역에서는 용융된 납 소량을 물에 떨어트림으로써 미래를 점치는 풍습이 크게 성행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물에 떨어진 납은 아주 다양한 모양으로 굳고, 이러한 모양을 토대로 사람의 운을 점치는 것이다. 특히 독일인들은 섣달그믐에 납 붓기 의식인 블라이기센 bleigiessen을 행한다. 가령 납이 꽃을 닮았다면 새해에는 새로운 친구를 사귀게 될 것이다. 또한 돼지 모양은 성공의 징조이고, 배 모양은 긴 항해를 떠날 운이다. -<원소의 세계사> 286쪽

(안티모니라는 이름은) 독일 출신의 수도사인 바실리우스 발렌티누스 Basilius Valentinus와 관련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그는 약간의 안티모니를 돼지에게 던져준 다음 결과를 관찰했는데, 이것을 실컷 먹은 돼지들이 살찐 것처럼 보였다고 한다. 그러자 발렌티누스는 동료 수도사들에게도 이것을 먹이면 몸이 좋아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시도는 참담한 결과를 맞았다. 그들 모두가 안티모니아에 중독되어 죽은 것이다. 그 이후로 이 약은 '수도사를 죽인다'는 뜻의 안티모이네antimoine로, 영어로는 안티몽anti-monk으로 불리게 됐다. -<원소의 세계사> 457쪽

원소가 아우르고 있는 역사에는 어느 나라의 풍습까지도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가장 과학적인 결과물이 가장 비과학적이라 할 수 있는 도구, 점을 치는 데 사용되는 도구였다는 기록이야말로 과학과 비 과학을 넘나드는 원소 세계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한 원소의 정체가 온전히 드러나기까지 있었던 비극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런 비극을 겪으며 낳은 과학적 결과가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하나하나의 원소들에 대한 지식이며 안전입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떤 원소가 갖고 있는 두 얼굴, 즉 사람을 죽이는 총알에 쓰이는 납, 인쇄 활자에 사용되는 납의 양면성에서 파괴와 창조의 두 얼굴도 보게 됩니다.

재미없고, 딱딱하고, 실생활과는 조금 거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각각의 원소들이 품고 있는 이런 사연 저런 배경을 엿보다 보면 원소의 세상이 점차 흥미로워집니다. 또 다른 어떤 사연을 쌓아가며 다가오고 있을 117번째의 원소가 저절로 기대됩니다.
덧붙이는 글 <원소의 세계사>┃지은이 휴 앨더시 윌리엄스┃옮긴이 김정혜┃펴낸곳 (주)알에이치코리아┃2013.10.31┃2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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