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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선거 내 '기호'에 따른 차별

[헌법 이야기] 기호가 투표용지 처음에 있어 혜택을 보는 건 문제

등록|2013.11.14 09:17 수정|2013.11.14 09:17

▲ 1960년 대통령 선거 투표 용지. 출처는 선거관리위원회사(1963~1993). ⓒ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투표용지 상의 후보자 이름순서가 유권자의 투표결정에 영향을 준다는 것은 오랫동안 논란거리였다. 후보자 이름이 투표용지 처음에 있어 혜택을 본다는 "초두효과(primacy effect)"가 대표적이다. 이 이론은 특히 유권자가 후보자의 이름 인지도, 후보자의 정당 같은 후보자에 대한 정보가 충분하지 않을 때 합리적 선택을 하지 않는다는데 근거를 두고 있다.

우리나라에선 투표용지 게재순위(기호)의 결정방법은 국회에서서 의석을 가지고 있는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국회에 의석이 없는 정당이 추천한 후보자, 무소속후보자 순으로 정하고 있다. 이들의 구체적인 기호결정 방법은 국회의석이 있는 정당은 국회의석수 순으로, 의석이 없는 정당은 정당명칭의 가나다순으로, 무소속후보자는 성명의 가나다순으로 하고 있다. 다만 교육감 후보자는 추첨으로 결정한다.

정당·의석수를 기준으로 기호배정 하도록 한 공직선거법이 헌법재판의 대상된 사례(2009헌마286)가 있다.

홍길동은 제5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 정당의 추천을 받지 않고 인천 계양구청장 후보로 출마할 예정이었다. 후보자의 투표용지 게재순위를 정함에 있어서 정당 추천 후보자가 무소속 후보자보다 우선하도록 하고 있는 것은 청구인의 평등권, 공무담임권, 행복추구권 등을 침해하는 것이라며 2009년 5월 26일 헌법소원을 청구했다.

2011년 헌법재판소는 홍길동의 주장을 기각했다. 헌법재판소는 "정당·의석수를 기준으로 한 기호배정 규정은 후보자의 선택을 제한하거나 다수의석을 가진 무소속 후보자의 당선기회를 봉쇄하는 것이 아니다, 단지 후보자에 대한 투표용지 게재순위를 결정하는 방법에 관한 규정일 뿐, 공무담임권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할 것이므로, 이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정당·의석수를 기준으로 기호배정을 하는 건 소수정당이나 무소속 출마자에게 불리하다. 

외국의 사례를 살펴보면, 호주의 경우 기호효과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고 알파벳순으로 정하던 투표용지상의 순위를 1984년에 무작위 방식으로 전환했다. 미국에서도 몇몇 주에서는 투표구마다 후보의 기재순서를 바꾸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에는 기표식이 아니라 자서식(후보자나 정당의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투표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정당·의석수를 기준으로 기호배정하는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고민해 볼만하다.
덧붙이는 글 여경수 기자는 헌법 연구가입니다. 지은 책으로 생활 헌법(좋은땅, 2012)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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