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76km, 6시간 자전거 탔더니, 엉덩이가...

힘들어 젓가락질도 못하지만 비어가던 추억 곳간은 꽉 채웠다

등록|2013.11.14 09:35 수정|2013.11.14 09:35
"형님, 젓가락질 할 수 있어요?"
"아직 자연스럽지는 않지만 많이 좋아졌다."

나이 쉰 살 넘어 웬 젓가락 타령. 얘기인즉 이렇다. 지난 2일 토요일, 동네 청년회에서 '자전거 타고 소풍'이란 행사를 열었다. 장소는 영산강변 자전거도로.

▲ 폼은 프로. 추억과 고통이 넘나들기 시작한 곳. ⓒ 이경모


후배에게 구입한 지 얼마 안 된 비싼 자전거와 헬멧을 빌려, 내친김에 자전거 길로 유명한 승촌보(왕복 56km-4대강 사업으로 지어진 영산강에 있는 보 )까지 다녀오기로 했다. 오랜만에 타게 된 자전거는 나를 추억의 바퀴 밖으로 달리게 했다.

국민(초등)학교 때 마을에서 가장 부러워했던 친구는 자전거가 있는 친구였다. 자전거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한 번만 태워달라고 했던 모습과 자전거 타는 것을 가르쳐준 고마운 친구의 얼굴은 물론 친구가 뒤에서 잡아주고 있는 줄 알았는데, '너 혼자 운동장 한 바퀴를 돌았다'는 친구에 깜짝 놀랐던 순간 등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또 30여 년 전 자전거를 빌려 아내, 친구와 함께 벚꽃비를 맞으며 광주 송정리간 길을 달렸던 아련한 추억도 되살아났다.

▲ 영산강 자전거 동로 풍경1. ⓒ 이경모


억새풀이 손을 흔들어주고 쑥부쟁이 향기가 코끝을 간질이는 자전거 길은 나를 추억 속으로 데려갔다. 그런데 아련한 추억을 더듬는 시간은 오래 가진 못했다. 자전거 안장과 닿는 엉덩이 부분이 아프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엉덩이 보호대가 달린 반바지를 속에 입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런데다가 초행길이어서 길이 헷갈리기 시작했다.

물이 흐르는 방향으로 가면 목적지에 다다를 것이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영산강의 지류는 여러 곳이었고, 물은 강을 돌아 흐르기도 하고 물이 합해지는 곳에서는 방향이 바뀌기도 했다. 물론 자전거 도로에 안내 표시가 있었지만 표시만 보고 찾아가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스마트폰에 내비게이션이 있었지만, 자전거 도로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단순하게 계산해 보면, 승촌보에 도착할 시각인데 승촌보는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길을 잘못 들어선 것 같아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다른 길로 자그마치 9km를 더 왔다고 한다.

▲ 영산강 자전거 도로 풍경2 ⓒ 이경모


▲ 영산강 자전거 도로 풍경3 ⓒ 이경모


▲ 영산강 자전거 도로 풍경4 ⓒ 이경모


어렵게 목적지인 승촌보에 도착했지만 엉덩이는 점점 아파오고 날도 저물어 갔다. 우리 가게까지 가려면 30km는 더 가야했다. 갑자기 아찔한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자전거에 랜턴이 달려있어 길을 밝혀주긴 했지만 엉덩이가 아파서 자전거를 오래 탈 수 없었다. 결국 자전거를 끌고 타기를 반복했다.

"사장님 얼굴이 왜 그래요?"

눈이 동그래진 직원이 달려와 묻는다. 가게에 도착하니 현기증이 났다. 자전거를 탄 거리는 76km. 6시간 30분을 탔다. 광주에서 광양시청까지의 거리다. 엉덩이 양쪽에 주먹만 한 크기로 부어올라 앉는데 힘들었고 손은 젓가락질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리는 그나마 축구와 등산을 해 다져졌는지 많이 아프진 않았다.

"형님, 자전거 놔둘게 며칠 지나서 타세요. 엉덩이에 굳은살이 생겨 타실만 할 겁니다."
"아니다 자전거 가져가라."

후배가 내 앞에 있지도 않은데 손사래를 치며 어서 자전거를 가져가라 했다. 2주가 지났지만, 아직 몸이 제상태로 돌아오진 않았다. 그러나 자전거 바퀴 속을 돌아 나온 추억 속의 풍경들은 비어가는 추억의 곳간을 많이 채워줬다.
덧붙이는 글 월간잡지 첨단정보라인 12월호에 싣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