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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6분’의 반전 드라마와 유시민이 든 진실의 촛불

[서평] 유시민이 펴낸 진실이야기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등록|2013.11.14 15:08 수정|2013.11.14 15:08

유시민의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의 진실 ⓒ 돌베개

오해와 왜곡, 그리고 거짓의 탁류가 소용돌이치는 어지러운 시대에도 누군가는 진실을 찾아야 한다. 어둠이 오직 빛에 의해서만 사라지듯, 거짓은 진실로만 무너뜨릴 수 있다.(책을 펴내며 3쪽)

드디어 유시민이 책을 내었다. 올 한 해 정말 '거짓의 탁류' 속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진실을 갈망했던가. 국가 기관인 국정원이 인터넷 댓글 작업을 통해, 야당 후보를 저열하게 흠집 내고 여당 후보를 턱없이 추앙했던 불법 선거개입 사건을 감추기 위해,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공개한 것은 또 다른 불법이었다. 불법을 행한 것은 범죄행위이고, 이 범죄를 덮으려고 거짓과 불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그래서 세상이 무척 어두웠다. 그런데 마침 이 가을날에, 잎사귀가 떨어져 근본인 뿌리로 돌아가는 이즈음에, 가을 하늘처럼 청명한 책 한 권, 유시민의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말대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에 대한 해설이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 책은 단순한 해설서가 아니라 6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이미 세상을 떠나고 없는 두 망자의 만남을 복기하고 진실을 찾아가는 짧은 여정이었다.

이미 공개된 대화록을 귀하고 현명하게 다루어야

이 책은 총 8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앞부분에서는 노무현 대통령이 NLL을 포기하였다는 거짓말의 실체를 밝히고, 이어서 대화록 유출이라는 범죄를 재구성해낸다. 책의 중간 부분은 친미와 자주의 문제, 북핵 문제, 작계 5029와 통일 문제, 그리고 남북교류와 선언의 역사, 노무현 대통령이 구상한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등 남북과 국제 문제에 대한 쟁점을 다룬다. 책의 후반부는 246분 동안 남북정상이 만나서 드라마처럼 펼쳤던 회담 과정과 두 정상의 인간적인 면모를 보여주며 마무리한다.

먼저 저자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을 특별하고 희귀한 문서라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그동안 남북의 국정 최고책임자들 간에 직간접으로 오고 간 대화의 내용 중에 '완전히' 공개된 사례는 이 대화록이 유일무이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대화록을 매우 귀하고 현명하게 다루어야 한다고 했다.

말하자면 대화록 유출과 정치적인 이용 등의 범죄행위와는 별도로, 이 대화록에 담긴 정상들의 발언을 최대한 깊고 정확하게 해석하고 조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대화록엔 남북관계의 어제와 오늘, 상대방에 대한 인식, 이해관계의 대립과 접근 가능성, 두 정상의 인격적 특성까지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담겨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참으로 말도 많고 탈도 많았지만 기왕 공개되었으므로, 이 문서를 오히려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전화위복의 소중한 자료로 삼고자하는 저자의 애정을 함께 읽을 수 있었다.

노무현의 NLL 포기? 터무니없는 거짓말

그렇다면 노무현은 정말 NLL을 포기하는 발언을 하였는가. 이는 정말 터무니없는 거짓말이라고 일축한다. 내가 보기에 NLL의 논란과 관련 있는 문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서해 공동어로구역 설정인데, 이것은 김정일 위원장이 제안했지만, 이는 이미 전두환 대통령 때 북에 제안했던 사안이며, 김영삼 대통령도 제안했고, 김대중 정부 때도 논의했다. 박근혜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위원장의 공동어로구역 제안을 그냥 무작정 받아들였다면 혹 NLL을 포기했다는 오해를 살 수도 있었겠지만, 노 대통령은 공동어로구역 같은 소극적인 대안보다 더욱 포괄적이고 강력한 대안을 만들어 역제안을 했다.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 설치 구상이 그것이다. 다시 말해서 노무현 대통령은 '평화의 바다'를 꿈 꾼 것이다. '10·4 공동선언'을 보면 다음과 같은 합의사항이 적혀 있다.

남과 북은 해주지역과 주변해역을 포괄하는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를 설치하고 공동어로수역과 평화수역 설정, 경제특구건설과 해주항 활용, 민간 선박의 해주직항로 통과, 한강하구 공동 이용 등을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본문 161쪽)

이 내용만 보더라도 서해평화협력특별지대는 북한이 훨씬 많은 것을 양보해야 가능한 일인데, 어찌하여 NLL을 포기했다고 하는가. 노무현 대통령은 NLL을 지켰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그냥 지킨 것이 아니고 NLL을 건드리지 않으면서도 서해상의 군사충돌을 예방하고 남북 모두 경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안을 만들어 북의 동의를 받아냈다고, 이것이 진실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유출은 심각한 기밀누설 범죄

그러면서 이 책은 정상회담 대화록 유출 범죄를 다시 처음부터 재구성해 들어가며 그것이 어떤 맥락에서 어떤 목적으로 이루어졌는가를 밝혀내고 있다.

최초 발설자 정문헌은 국정원이 허위로 끼워 맞춘 발췌본을 읽고 폭로하였고, 그리고 2012년 10월 김무성 선대위 총괄본부장에게 정문헌은 대화록의 존재와 내용을 구두로 알린다. 김무성은 12월 14일, 대선일 5일 전에 부산 서면 유세장에서 대화록 전문을 낭독했다. 그런데 이 대화록 전문이 어떻게 박근혜 후보 선거대책본부로 들어갔을까. 이는 국가정보원에 대화록 유출의 공범이 있다고 보았다.

결국 대화록 유출 범죄 용의자는 정문헌, 김무성,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최소 한 명의 국정원 직원이라고 지목하였고, 여기에 더하여 권영세, 원세훈, 이명박, 그리고 경우에 따라서는 박근혜 대통령까지 용의선상에 올릴 수 있음을 강조한다.

덧붙여서 저자가 정문헌, 김무성의 집안내력과 화려한 인맥을 소개하고 있는데, 이들이 자신들과 마찬가지로 대통령의 딸이라는 화려한 집안 배경으로 대통령이 된 박근혜 대통령을 위해 범죄행위도 서슴지 않은 것을 보면, 모든 것을 다 갖춘 대한민국 주류들의 신념이란 오직 더 오래 더 많이 가지려는 탐욕의 다른 이름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이렇게 법치가 완전히 실종된 현 정치상황에 대해 비판하며, 법치주의에 대한 분명한 개념 정리로 분노를 에둘러 표현했다.

법치는 '법으로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법이 다스리게 하는 것'이다. 독재자들은 권력을 가진 통치자가 피치자를 법으로 다스리는 것을 법치라고 생각한다. 통치자 자신은 법의 구속을 받지 않으면서 오로지 피치자만 법으로 구속한다. (…) 법치는 법이 통치자와 피치자를 모두 구속하는 것이다. 통치자가 법으로 피치자를 다스리는 게 아니라 법이 통치자와 피치자 모두를 다스리는 것이다. 법치주의는 국가권력을 가진 사람의 자의적인 통치를 막기 위한 것이다(본문 83-84쪽)

친미와 친미주의는 다른 것이다

하지만 이 책의 핵심은 대화록 유출 범죄의 재구성이 아니다. 저자는 정상회담 대화록 전문을 여러 번 매우 꼼꼼하게 읽고 분석하여, 두 정상 간의 대화 속에 담긴 '자주론'에 대한 공방과 북핵문제 해결 방안, 남북이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던 역대 대통령들의 노력 등, 대화록 유출을 계기로 우리가 짚어보아야 할 매우 중요한 생각거리들을 제공하고 있다. 여기에 NLL 포기라는 거짓말은 낄 자리조차 없다.

예를 들면, 김정일 위원장이 노무현 대통령 면전에서 남측은 큰 나라(미국)의 장단만 맞추며 자주성이 없다고 하자, 노무현 대통령은 이 '자주' 문제에 대해 김정일 위원장의 견해를 조심스럽고 끈질기게, 그리고 진지하게 반박하고 설득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온다. 즉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친미국가임을 인정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자주성이 없는 것은 아니라며, 점진적, 상대적 자주론을 내세워 결국 김정일 위원장이 '옳습니다' 하고 수용하는 반응까지 이끌어낸다.

이렇게 김정일 위원장을 설득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반미 발언'을 두고 새누리당 의원들이 그토록 격한 분노를 터트린 것에 대해 저자도 견해를 덧붙인다.

대한민국은 역사적으로 형성된 '친미국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한국인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반드시 친미주의자일 필요는 없다. (…) 반미국가만 자주를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친미국가도 자주를 할 수 있다. 그런 말이다. 여기에 도대체 무슨 문제가 있는가. 우리 속담에 "보지 않는 데에서는 나랏님 욕도 한다."고 했다. 남북은 수백만 명이 죽고 다치는 참혹한 전쟁을 벌였다. 반세기가 넘도록 이념적, 군사적으로 대립했다. 그런 두 국가이 정상이 역사상 두 번째로 마주 앉은 게 2007년 정상회담이었다. 그 자리에서 북을 설득하게 위해 미국 흉을 좀 본 게 무에 그리 잘못된 일인가.(본문 105쪽)

'친미'는 우리나라를 위해 미국과 친한 것이고, '친미주의'는 미국을 모시는 것이다. 미국은 우리의 우방(친미)이지만 무조건 섬기거나 숭배해야 할 대상(친미주의)은 아니다. 게다가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 중국, 일본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얘기를 주고받으며 흉을 보는 장면도 나온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은 북이 경제적으로 중국에 편입되는 걸 견제하는 발언을 많이 하는데, 이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아 결국 중국 좋은 일만 해준 셈이 되었음을 반증한다.

이제 남과 북이 내려놓아야 할 두 가지 정서

이 책의 뒷부분에 저자는 본격적으로 246분간의 정상회담 대화록을 분석하고 있다. '자주'의 문제부터 남북경제협력 문제, 서해문제, 매우 파격적인 회담 모습, 짧은 시간에 공동선언을 탄생시킨 반전과 정면 돌파의 드라마들, 그리고 최고 권력자들 간의 유머감각 등을 총체적으로 보여준다. 흥미진진하다. 저자의 표현대로 마치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생동감을 준다. 이는 유시민이라는 탁월한 문장가의 필력 때문이기도 하지만, 노무현 대통령의 낭만적인 기질과 김정일 위원장의 활달함이 만나면서 다른 외국 정상들의 모습에서 볼 수 없었던 우리 민족만의 정서에 동화되어갔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책을 마무리하면서 가장 기본적이고도 슬픈 질문을 던진다. 왜 우리는 60년이 지나도록 분단과 전쟁이라는 과거의 비극에서 풀려나지 못하는가? 어떤 힘이 지금 남과 북을 불행한 과거에 가두어두고 있는가?

저자는 두 가지를 말한다. 북은 '혁명의 신화'에 붙들려 있고, 남은 '난민촌 정서'에 갇혀 있기 때문이라고! 이미 오래 전부터 북은 혁명기지가 아니며, 인민들이 식량난으로 죽어가는 고난의 땅이 되었다. 북은 '남조선'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혁명해야 할 상황에 직면했다. 그리고 대한민국도 이제 북의 침공을 받는 난민촌이 아니다. 처음엔 부족했던 국가의 정통성도 국민들 스스로 만들어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아니라 도리어 북이 '난민촌'이 되었다. '난민촌 정서'는 북에 대한 두려움, 미움, 복수심 등의 부정적 감정을 말하는데, 이 정서를 내려놓지 않으면 민족의 불행은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책을 덮는다. 책을 덮으니 표지에 키가 거의 비슷한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이 웃으며 악수하는 표지 사진이 보인다. 그들은 이제 가고 없다. 대화록만 남았다. 책 속엔 유시민이 던지는 진실의 돌직구가 있다. '이 책은 내가 든 나의 촛불'이라고 말한 유시민, 그도 슬픔을 깊이 아는 낭만주의자다. 그의 눈에 그렁그렁 맺히는 눈물을 본다. 그러나 슬픔을 알아야, 눈물을 알아야 진실에 다가갈 수 있다. '246분'은 그런 시간이다.
덧붙이는 글 <노무현 김정일의 246분>, 유시민, 돌베개, 2013년 10월 21일, 1만 3천 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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