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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한 달 남았는데, 취소도 환불도 안 된다고요?

델프 취소기한 너무 짧아... "프랑스에 응시자 명단 넘어가서 어쩔 수 없다"

등록|2013.11.17 16:40 수정|2013.11.18 15:09
지난 7일 공정거래위원회(아래 공정위)는 토익, 토플, 제이피티 등 7개 주요 어학 시험 응시생이 접수 7일 이내에 취소할 경우 전액 환불해주도록 하는 조치를 내렸다. 이전에는 접수일 7일 이내에 취소가 가능하긴 했지만, 시험에 따라 10%~60%의 취소수수료를 내야 했다. 이로써 응시자가 접수한 지 7일 이내에 취소를 하면 주관사는 어떤 수수료도 부과하지 못하게 됐다.

이번 조치가 지금까지 응시생들이 감수한 불합리한 대우를 고쳐나가는 데에 좋은 계기가 될 것은 분명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는 지적이 많다. 취업 준비생들이 가장 많이 응시하는 토익 시험의 경우, 시험일 4주 전에 접수가 마감된다. 접수 마감일 후 일주일 이내 취소는 60% 환불, 그 뒤 일주일 이내 취소는 50% 환불, 그 뒤부터 시험 전일까지(2주)는 40%를 환불해준다는 규정이 있기 때문이다. 토익시험 주관사인 와이비엠측은 이를 1차, 2차, 3차 취소 기간으로 부른다.

이번 공정위 조치로 1차 취소 기간에 시험을 취소한 응시생의 경우 100% 환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2차와 3차 기간의 취소 수수료는 와이비엠 스스로 약관에 큰 변화를 주지 않는 이상, 여전히 부과될 것이다.

델프 취소 시간, 다른 어학시험에 비해 상대적으로 짧아

▲ 와비엠시사영어사 누리집 갈무리 화면 ⓒ 와비엠시사영어사


그러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예 취소할 수 없는 시험이 있다. 바로 프랑스어 자격 시험인 델프(DELF)다. 델프 시험은 일정 기간이 지나면 아예 취소가 불가능하다. 토익과 제이피티 등은 시험 전날까지, 토플이 시험 4일 전까지, 오픽(OPIC)이 시험 2일 전까지, 에이치에스케이 등은 시험 5일 전까지 취소가 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델프를 주관하는 한국알리앙스프랑세즈(www.afcoree.co.kr)의 문의 게시판에는 종종 '수수료 얼마예요? 수수료 지불할 테니까, 취소 좀 해주세요'라는 문의 글이 올라오지만, 대답은 한결 같다.

'이미 프랑스로 시험 명부가 넘어가서 취소는 불가합니다.'

물론 다른 시험들과 마찬가지로 시험 접수일자 내에서는 시험 취소가 가능하고, 접수가 마감되고 일정 기간 취소 기간을 두기도 한다. 그러나 너무 짧다. '시험 접수 마지막 날로부터 첫 번째 금요일 12시 정오까지 취소 시 100% 환불'이라는 규정에 따라보자. 만약 시험 접수가 화요일에 끝났다면, 그 주의 금요일 정오까지 취소할 수 있으니, 접수 기간 외의 취소 기간이 3일 정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시험 접수 마지막 날이 목요일이었다면, 접수 취소를 위해 확보할 수 있는 시간은 18시간밖에 안된다.

올해 국내에서 치렀던 세 번의 델프 시험에서, 5월 시험은 수요일에 접수가 마감돼 취소할 수 있는 시간이 44시간 정도 됐다. 그리고  2월 시험과 11월 시험 모두 목요일 오후 6시에 접수가 마감되었다. 그래서 접수 마감 시점 이후 18시간 안에 취소하지 않으면 환불은 아예 불가했다.

이번 11월 델프 시험은 11월 16일, 취소 가능일은 10월 11일 금요일 정오까지였다. 시험일까지는 5주가량의 시간이 남아 있었다.

"프랑스에 명단 넘고 시험지 받아오는 거라, 변경 어렵다"

취소는 불가능합니다델프를 주관하는 한국알리앙스프랑세즈의 문의 화면 캡쳐. ⓒ 한국 알리앙스프랑세즈


델프 시험은 연인원 7500명 정도가 보는 시험으로 토익이나 토플과 달리 응시생들이 많지는 않다. 그래서 이러한 문제 대해 불만의 목소리가 크지 않은 편이다. 그러나 델프 응시생들의 불만은 크다. 서울의 H대학교 불문과에 다니는 신형철(24)씨 역시 이에 동의한다.

"예전에 저 같은 경우는 시험 접수 기간 내에 취소해서 취소에 성공하긴 했어요. 그런데 갑자기 더 중요한 일정이 생겨서 시험 취소하려다가 못하는 친구들 많이 봤어요. 델프 같은 시험은 응시료가 보통 10만원을 훌쩍 넘잖아요. 이번 11월에 보는 델프 B2 응시료가 18만 원이니까 갑자기 사정이 생겨서 어쩔 수 없이 시험을 못 보는 애들 같은 경우엔 타격이 크죠."

시험을 시행하는 한국 알리앙스프랑세즈의 한 관계자는 11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접수 기간이 끝난 후, 명단을 프랑스에 넘기고, 거기서 시험지를 받아오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확정된 응시 명부에서 변경이 어렵다"면서 "그래서 취소 가능 기간이 지나면 아예 취소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시스템은 프랑스에서도 마찬가지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환자 등 어쩔 수 없는 사정 때문에 시험을 못 볼 경우, 관계 서류를 제출하면 응시료의 50% 정도를 환불해 주는 세부 규정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델프 시험 홈페이지에는 이 내용이 적혀 있지 않았다. 담당자에게 '환자 등의 취소에 대해서 절반의 환불이 가능하다면, 개인 사정으로 취소하는 이에게 소액이라도 환불해 줄 수 있지 않나'라고 묻자 "시험에 관한 모든 규정을 주관하는 곳은 프랑스 대사관"이라고 답했다.

스페인어 자격시험 델레, 마감 후에도 10일 동안 취소 가능

모든 제 2외국어 시험이 델프의 경우와 같진 않다. 스페인어 자격 시험인 델레(DELE)는 델프에 비해서는 비교적 합리적인 환불 규정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접수 마감 후에도 10일 동안 취소가 가능하고 이때 응시료의 100%를 환불해준다. 그 뒤로 10일 간은 취소를 요구할 시 응시료의 50%를 환불해준다. 시험 15일전부터는 환불이 불가하지만, 이는 면접관과 일 대 일 말하기 시험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시험일 15일에서 일주일 전쯤에는 면접관 섭외가 끝난 시점이라 어떤 이유에서도 환불이 불가하다고 한다.

주한 스페인 문화원 관계자에 따르면, 델레 역시 명부를 스페인 본국으로 넘기고, 문제 역시 스페인 본국에서 출제하여 받아오는 식이다. 연 인원 7500명 정도가 응시하는 델프와 달리 연 인원 2500명 정도가 보는, 상대적으로 소규모인데도 환불 규정이 응시자에게 더욱 유리하게 짜여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스페인 문화원 관계자는 "델프와 델레가 치러지는 시스템의 구체적인 차이는 잘 모르겠으나, 델레의 경우는 원래부터 그렇게 해왔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에는 다양한 종류의 제 2외국어 및 자격증 시험이 존재한다. 시장 원리와 사적 계약의 자유도 중요하다. 하지만 어학시험이든 자격시험이든 응시생 대부분이 학생, 취업준비생 등 상대적 약자임을 고려할 때, 넒은 범위의 시정조치가 필요함은 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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