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김장 100포기를 어떻게 하셨어요?"
[공모-김장] 팥죽과 함께 먹던 동치미 국물, 잊을 수 없네요
▲ 시장에 파는 김치 재료들시장을 돌면서 본 김치 재료들. 어머니가 해준 그 김장김치 맛이 그리워 집니다. ⓒ 변창기
바야흐로 김장철입니다. 울산도 예외가 아닙니다. 이맘때가 되면 시장마다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팝니다. 아내는 집에서 10포기 하는 것도 힘겨워 했습니다. 산동네 살 때 기억이 납니다. 어렸을 때 기억이라 가물가물합니다. 산속이라 차량도 드나들 수 없는 산속이었는데 어머닌 어떻게 100포기 넘는 김장을 담갔을까요?
"니가 초등학교 6학년 때였지 아마. 말도마라. 그 땐 왜그렇게 김장을 많이 했는지... 시장에서 배추를 사서 리어카로 실어 날라 김장을 했어."
4인 가족 김장치고는 너무 많았던 거 같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겨우내 먹을 반찬으로서 김치만한 게 없다고 생각했던 거 같았습니다. 김치만 있으면 다양한 다른 요리들이 가능하니까요. 어머닌 날이 따뜻해져 김치가 쉬면 그 김치로 다양한 요리를 선보였습니다. 돼지김치찌개, 김치볶음, 김치볶음밥, 갈치찌개, 명태찌개, 고등어 조림까지.
저는 시간을 내어 어머니를 만나 김장 이야기를 물어 보았습니다. 어머니는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면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30년도 넘은 일이라 잘 기억이 날까 염려했었지만 어머닌 그날을 생생하게 기억했습니다.
"그때 그 김장 담느라고 꼬박 3일이 걸였었어. 요즘은 그렇게 하라면 못하지. 그땐 어떻게 그렇게 했나 몰라."
어머닌 그해 초겨울 배추 100포기를 비롯하여 알타리무 김치도 했었고, 동치미도 담갔었습니다. 깊고 큰 물통을 구해 거기다 소금을 풀어넣고 배추를 담가 절였습니다. 그후 갖가지 양념을 섞어 배추를 버무렸지요. 배추 속으로 쓸 양념으론 고추가루에다 갓, 파, 양파, 마늘, 생강, 배채, 무채, 당근채에다 새우젖을 곱게 갈아 넣었습니다. 그 모든 양념류에 찹쌀풀을 쑤어 넣고 버무린 것으로 배추김치와 무우김치를 담갔습니다. 우리 가족은 강원도 같은 내륙에서 나고자라 멸치젓갈로 만든 김치는 비린내가 나서 먹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가족 입맛에 맞게 젓갈 대신 새우젓을 넣고 김장김치를 담갔었습니다.
양념한 배추를 단지에 넣을 땐 사이사이 생 무를 큼지막하게 썰어 넣었습니다. 무김치를 좋아했던 우리가족은 아직도 그 무김치 맛을 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김치를 다 버무리고 난 날 저녁엔 돼지고기를 사다 수육을 만들어서 갓 담은 김장김치에 싸먹었는데 그 맛은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또한, 삭힌 동치미 국물도 맛있었습니다. 산 바위틈에서 나오는 물로 만든 동치미 국물은 시원했으며 아삭아삭 씹히는 무우맛도 일품이었습니다. 동짓날 쑤어 먹던 팥죽과 그 동치미를 곁들여 먹으면 죽여줬습니다. 어머닌 동짓날 팥죽을 쑤면 위쪽이 얼은 동치미 얼음을 깬 후 무와 함께 내놓았습니다. 겨울날 식은 팥죽과 얼음 둥둥 뜬 동치미를 함께 먹으면 온 몸이 오들오들 떨렸습니다. 그럼에도 두어그릇 뚝딱 해치우곤 했었습니다. 김장김치의 추억을 생각하다보니 그런 일도 새록새록 떠오르네요.
우리동네 시장을 돌아다녀 보았습니다. 김장 담글 때가 되었는지 배추와 무를 많이 팔고 있었습니다. 과거 김장을 100포기나 했던 어머니 손맛이 생각납니다. 어머니가 담근 그 김장김치는 마을에서 인기가 대단했습니다. 어머니는 김장김치를 한 후에 가까운 이웃에 한포기씩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 김치 맛을 본 이웃분들이 김치 맛이 좋다며 좀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었습니다. 한포기 더 달라며 얻으러 오기도 했고요. 이웃의 어느 댁에선 몇 차례 몰래 갔다 먹다가 들켜 혼쭐이 나기도 했었지요.
"창기씨 어렸을 때 어머니가 한 그 김장김치 얻어 먹은 것 말이야. 난 지금도 그 김장김치 맛을 잊을 수가 없어. 어떻게 담갔는지 좀 배우고 싶을 정도라니까."
얼마 전 지인을 만났는데요. 오랜 세월 저와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그 지인도 그렇게 말할 정도이니 어머니의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분도 저만큼이나 그시절 어머니의 김장김치 맛을 잊지 못하고 있나 봅니다. 며칠 전 만나 그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어머니에게 김장김치 맛보고 싶다고 하니 이젠 그렇게 만들 수 없다고 했습니다. 칠순이 다되신 어머니, 이젠 몸도 마음도 삶의 여정에 지쳤나 봅니다. 그냥 건강하게 늙어가시기를...
덧붙이는 글
'김장' 응모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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