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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담임'과 만세삼창까지 했는데... 이럴수가

[공모-입시가 뭐길래] 날 떨어트린 그 대학, 대체 왜 그랬니?

등록|2013.11.19 09:54 수정|2013.11.19 09:54
1994년, 고3 첫 등굣날이었다. 고2때 단짝과 같은 반에서 만났다.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담임선생님을 서로 기다리고 있었다. 남학생이라면 누구나 기대하듯 아름다운 여자 담임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우리 둘은 "설마 학생주임 선생님이 우리 담임이 되는 건 아니겠지?"라며 낄낄 대고 있었다. 잠시 뒤의 불행도 예상하지 못한 채….

공포의 담임선생님을 만나다

▲ 고3 나의 담임선생님은 무시무시한 학생주임이었다. 이미지는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한 장면. ⓒ 싸이더스


교실 문이 드르륵 소리와 함께 열렸다.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석부를 들고 들어오는 사람은 바로 우리가 설마 하던 그 학생주임 선생님이었다. 그는 우리 학교에서 무섭기로 소문난 선생님이었다. 마치 그의 몸은 격투기 선수와 같았고, 공포의 당구큐대까지 늘 옆에 장착하고 다니시는 분이었다.

암울했다. 살다 살다 이런 불행이 있나. '올해 1년은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울고 싶을 정도였다. 하지만 나의 선량한 짝꿍은 마음을 고쳐먹게 해줬다. '담임선생님이 무서우면 반 분위기가 좋을 거야, 고3인데 마음 다잡기 더 좋을 거야'라며 나를 토닥여줬다. 나는 그 친구의 위로로 기운을 내 고3생활에 적응해나가기 시작했다.

고3 담임 선생님이 얼마나 무서웠는가 하면, 1년 동안 우리 반 친구들은 야간자율학습을 '땡땡이' 치지 않았다(합법적으로 야간자율학습에 빠지는 운동부를 제외하고는).

무서운 선생님들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 같은 게 있다. 무서운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과목은 지루하고 암기할 게 많았다. 예외 없이 우리 담임 선생님 과목 '한국지리'도 그랬다. 그분은 자신만의 암기법도 알려주셨다. 그런데, 그 방법이 더 외우기 힘들고 복잡했다. 우리 담임선생님은 항상 말씀 하셨다. "담임과목의 담임인 반에서 성적이 제일 잘 나와야 한다"고. 그러면서 더욱 열정적으로 혼신의 암기법을 알려주셨다. 물론 우리들은 쩔쩔매며 우왕좌왕 외워대곤 했지만.

절친 짝궁의 공부포기

▲ 고3 나의 절친 짝궁이 공부를 포기했다. 이미지는 영화 <명왕성> 중 한 장면. ⓒ SH필름·JUNE필름


그해 초 나와 짝궁은 열심히 공부했다. 내 짝은 특히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수시로 밤을 새워 아침에 와서 졸기 일쑤였다. 그렇게 미친 듯이 공부하던 친구가 어느 날부터 공부에 손을 놓기 시작했다. 난 걱정이 돼 그 이유를 물었다. 친구는 내게만 조용히 통증이 가득한 가정사를 털어놓았다. 그 친구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따로 결혼해서 사신다고 했다. 처음엔 의붓아버지와 같이 살았는데 첫째 형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여동생을 데리고 나와서 어렵게 산다고 전해줬다.

그래서 더 열심히 공부하던 친구는 어느 날 술 취한 자신의 형의 눈물을 보았다고 했다. 늦은 시각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형을 우연히 만났다고 했다. 그렇게 만난 형은 자신도 못 알아볼 정도로 만취했다고 한다. 친구는 "나도 대학가고 싶다"고 흐느끼며 혼잣말을 하는 형을 봤다고 했다. 그 순간 자신이 더 이상 짐이 될 순 없다고 느꼈단다. 그래서 자신은 4년제 대학이 아닌 취업을 빨리 할 수 있는 전문대를 가야겠다고 결정했다며 슬그머니 공부에서 멀어져갔다.

그렇게 나와 마음을 맞추며 열심히 공부하던 짝은 자리를 비웠다. 함께하는 친한 친구가 뒤처지니 나 또한 기운이 빠지기 시작했다. 나는 당시 독서실에서 숙식하며 학교를 다녔는데, 내 어깨도 마음도 가라앉기 시작했다. 그래도 기운을 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보듬어주신 괴짜선생님의 엉뚱한 거짓말

그래도 내가 지치지 않고 끝까지 공부할 수 있었던 건 괴짜 수학선생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그 선생님은 1년 내내 우리에게 희망과 열정을 주셨다. 운동부까지 수학을 공부하게 만들 정도였으니. 수능 보기 1주일 전인가? 그 선생님이 말씀하셨다.

"사실 나 너희들한테 거짓말했다. 실은 1년 만에 수학수능점수 올리는 거 거의 불가능하다."

그 이유가 학력고사와 달리 수능의 특성상 종합사고력이 필요하기도 하고 시험이란 게 당일의 컨디션이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란다. 그러면서 너무 부담 갖지 말고 컨디션 조절 잘 하라고 당부하셨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분의 그날의 말씀이 선한 거짓말이셨던 거 같다. 어찌 1년의 시간 동안 공부한 게 효과가 없으랴? 다만, 1년 동안의 공부가 회한이 남을지도 모르는 시점에 그것에 흔들리지 말고 컨디션 조절해서 좋은 마음으로 시험보라는 말씀이셨던 것 같다.

학력고사와 수능을 겪은 세대들은 대개 아주 추운 날 시험을 치르곤 했다(요새는 좀 아닌 것 같지만). 시험장의 풍경은 어디나 다 비슷하리라. 이날도 시험지를 덮고 자는 사람도 있었고 시험 후에 우쭐대며 웃고 떠드는 사람, 울고불고 하는 사람도 있었다. 

본고사 보는 유명대학으로 '배짱 지원'

▲ 나는 담임선생님을 늦지 않게 만나기 위해 부리나케 뛰었다. 이미지는 영화 <두사부일체> 중 한 장면. ⓒ 필름지·제니스엔터테인먼트


나는 수능 점수가 생각보다 조금 더 잘 나왔다. 그래서 그런지 두 군데 대학에는 안전하게 지원했고, 한 군데는 소위 '배짱지원'을 했다. 내가 배짱지원을 한 곳은 서울에 있는 유명한 대학이었는데, 본고사를 치렀다. 막상 시험장에 가보니 학교는 어찌 그리 크고 아름다운지, 입이 쩍 벌어지는 규모였다.

'TV속에서 보던 캠퍼스가 바로 여기구나! 정말 예쁜 여학생들도 넘쳐나고…. 아, 낙원이 따로 없구나!'

본고사 날, 들뜬 기분이라 시험을 어떻게 치렀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날의 시험과목은 아마 논술과 영어 정도였던 것 같다. 꼭 합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품었다.

그렇게 합격 발표를 기다리던 어느 날, 집 전화가 격정적으로 울렸다. 본고사를 본 학교에서 연락이 온 것. 제출한 서류 중 미비한 서류가 있다고, 추가해서 제출하라는 전화였다. 난 방학 중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무시무시한 담임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그날따라 날씨는 왜 이렇게 추웠던 건지.

"뭐? 진짜야? 추가서류 가져오라고 했다고? 선생님 지금 학교로 바로 갈 테니까 너도 교무실로 바로 와!"

난 전화를 끊자마자 엉덩이에 불이나게 학교로 달려갔다. 그 무서운 담임선생님은 나의 얼굴을 보시더니 전에 전혀 본 적이 없는 온화하고 행복하고 기쁨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소리치셨다.

"선생님들 저희 반에서 OO대 한 명 보냈습니다! 합격입니다. 아~, 기분 좋다! 합격이다! 만세! 만세! 만세!"

담임선생님은 기분이 한껏 '업'되셔서 내 손을 잡고 교무실에서 만세를 불렀다. 만세삼창까지 했다. 담임선생님의 무서움도 잠시. 순간 나는 얼굴이 당근처럼 새빨게지며 무척 창피했다. 하지만 나도 갑자기 자랑스러운 제자가 된 것 같아 기분은 날아갈 듯했다. 그날 공포의 담임선생님과 나는 만세삼창을 섞은 춤까지 췄다. 선생님은 서울의 그 대학교까지 태워다 주셨고, 집에 오는 버스터미널까지도 손수 태워주셨다.

그 후로 어떻게 됐을까. 아쉽게 떨어진 건지 예비합격이었는지 그 뒤로 그 학교에서는 연락이 없었다. 서운함이 있었지만 새로운 대학교에서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재미에 금방 다 잊어버렸다. 하지만 가끔 생각난다. 그 추운 겨울날, 교무실에서 그 무서운 담임선생님과 만세삼창까지 하게 만든 그 학교. 지금도 우리나라에서 잘 나가는 그 대학교. 정말 다시 그 대학교에 전화해서 어떻게 된 건지 묻고 싶다.

'그때 왜 그런 거니? 응답하라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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