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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소비자를 위한 유기농 가이드북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

등록|2013.11.19 10:32 수정|2013.11.19 12:02
3년 전 경북 상주로 귀농해 포도농사를 짓고 있는 유통(가명·37)씨는 올해 높은 가격을 받을 거라 예상했지만, 수매가격이 작년의 절반에 그치고 말았다. 원인은 올해 태풍 피해가 없었기 때문. 더불어 날씨도 좋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포도농가들도 농사가 다 잘됐다.

유씨는 중간유통이 없는 소비자 직거래도 해봤지만, 판매량에 한계가 있고 정상적인 물건을 가지고 트집을 잡는 소비자들 때문에 속앓이를 겪고 난 뒤에는 지인 등 자신이 알고 있는 사람과만 직거래를 한다.

유씨와 같은 사례는 과일농사를 짓는 이들뿐만 아니라 채소농사를 짓는 농민들도 똑같이 겪고 있다. 올해 날씨가 좋아 배추 농사도 잘 되었다. 배추를 갈아엎어야 할 만큼 가격이 하락했다. 이런 일들이 자주 반복되는 이유는 뭘까? 농부와 관련 전문가들이 펴낸 <유기농을 누가 망치는가>를 읽고 나면, 이런 현실에 경각심을 갖지 않을 수 없다.

"농촌에 무관심한 나라, 농민을 위한 정책이 없다"

▲ 농부와 각 분야 전문가 들이 말하는 유기농의 진실 ⓒ 시금치

대표적인 도매시장인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는 여섯 개의 대형청과회사가 있다. 이들은 산지에서 올라온 농산물을 경매를 거쳐 전국으로 유통한다. 경매진행방식은 이렇다. 생산자의 물건를 견본으로 확인할 수 있도록 박스 하나를 개봉하여 품질과 수량을 확인한 뒤 등급을 매긴다. 이게 경매의 시작이다. 이후 도매상들이 선택한 농산물에 대한 경매를 진행하고, 이때 가격이 결정된다.

빛과 같은 속도로 경매가 끝나면 농산물들은 순식간에 백화점과 재래시장 등으로 보내진다. 낙찰된 가격에서 유통회사가 경매수수료 7%를 떼고 생산자 지역의 농협에 입금하면, 농협은 여기서 출하수수료 3%를 떼고 농민의 통장에 입금한다.

농민의 입장에서 보면 경매방식은 생산한 농산물을 모두 판매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물건에 특별한 문제가 없다면 모두 사야 하는 것이 도매시장에서 약속된 거래방식이다. 판매가 끝난 농산물에 대한 책임도 농민에게는 없다. 그저 열심히 농사만 지으면 되는 아주 편리한 방식이지만, 치명적인 단점은 가격을 생산자인 농민이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풍년이 되면 산지의 농산물이 시장으로 나가지 못하고 갈아엎는 사태가 빈번하게 일어나는데, 그 이유는 가격폭락으로 인해 인건비는 고사하고 운송비도 안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흉년이 들어 생산량이 줄어든다고 해도, 농민의 이익이 커지는 건 아니다. 이때 경매시장의 가격은 올라가지만 생산량이 줄어든 만큼 전체 소득도 줄어든다. 또 언론에서는 농산물 가격이 많이 올랐다며 호들갑을 떨고, 정부는 농산물을 수입하거나 도매가격을 올리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기도 한다.

도매시장은 농산물이 남아서 생기는 가격폭락에 대한 대책이 전혀 없다. 물론 생산량이 줄어들어도 농민에 대한 소득보전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이 문제는 합리적인 유통정책을 만들지 못하는 정부 탓이라고 볼 수 있다.

농산물 유통시장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들이 생산자와 소매상 사이에 있는 중간상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을 농민과 동고동락하는 동업자라고 한다. 농산물값이 폭락하면 농민 뿐만 아니라 중간유통 상인들도 피해를 본다.

'농산물값이 폭등하기만 하면 우선 중간상인들부터 도마에 올리곤 하는데요. 이는 학교폭력이 만화나 게임 때문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희생양을 만들어 위기를 모면하려는 일종의 마녀사냥이라고 생각합니다.' - 본문 중에서

"비료, 농약 팍팍 치고 잘 골라낸 유기농산물"

또 다른 유통시장인 생활협동조합은 농민의 생산비를 보전해주는 등 일정한 가격을 유지하기는 하지만 필요한 물량만을 받아주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할 순 없다. 힘들게 정성껏 지은 유기농산물도 판로를 찾지 못하면 도매시장으로 갈 수밖에 없으며 유기농에 대한 가치는 전혀 쳐주지 않고 일반농산물로 취급되기도 한다.

몇 년 전 유기농사를 짓는 농촌마을을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양배추를 받아온 적이 있다. 극구 사양했지만 어차피 팔지 못하는 것이라며 가져가라고 한다. 양배추에 무슨 하자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단순히 크기가 작다는 이유로 대형마트나 생협에서 거절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유기농산물은 일반 농산물처럼 크고 때깔도 번지르르하다.

'더 큰 걸 좋아하니 비료를 줘야하고, 비료를 더 주면 병해충이 더 잘 생기니까 농약을 더 자주 쳐야해요. 이렇고 돌고 도는 겁니다.' - 본문 중에서

친환경 유기농산물이란 타이틀을 달려면, 화학농약이나 비료를 쓰지 않아야 한다. 때문에 일반농산물에 비해 크기나 때깔이 볼품 없고 벌레먹은 흔적이 남는 게 정상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유기농비료와 친환경농약이 많다. 그래서 그것들을 이용해 크게 키워서 상품성이 있는 것만 골라서 출하한다.

건강한 먹거리로 대표되는 웰빙(well-being) 바람으로 유기농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때에 대형마트와 백화점에 흠집 없고 때깔 좋은 유기농산물이 진열되었다. 소비자들이 유기농산물도 크고 때깔 좋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서 생협으로까지 그 파장이 넘어왔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농민들은 유기농산물에 대한 가치와 긍지를 갖기보다는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을 생산해내지 않으면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는 상황에까지 내몰리게 된 것이다.

'(유기질 퇴비와 비료)질소를 지나치게 많이 먹고 큰, 소비자가 좋아하는 '크고 좋은 채소'는 질산염을 많이 함유하게 돼요. 말하자면 소비자는 잘못된 기준을 가지고 있어서, 농산물을 살 때 뒤적뒤적해서 몸에는 가장 안 좋은 걸 가장 좋다고 여기고 골라 가는 거지요' - 본문 중에서

"유기농은 가치에 붙이는 이름이다"

많은 소비자들이 유기농을 선택하는 이유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사용하지 않는 안전한 농산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은 일부분이다. 유기농은 자원순환의 원리를 실천하는 농업으로서, 다양한 생물들을 보전하면서 흙을 살리고 지속가능한 농업이 되도록 하는 것이다. 사용이 허용된 유기질 퇴비와 비료라고 하더라도 과도하게 투입하면 흙은 질소거름(작물을 크게 키우는 비료)에 중독되어 건강하지 못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은 물론이고 흙과 지하수도 오염시킨다.    

우리나라에서도 2001년부터 제대로 된 유기농 인증이 시작되었지만, 다른 나라들과 비교했을 때 심사와 인증 방법이 크게 다르다. 우리나라의 경우 농사과정은 무시하고 실험실에서 나온 결과만으로 판별한다.

'우리나라의 유기식품 심사 방법은 한마디로 '실험실 만능주의'라고 표현할 수 있다. 실험실주의를 달리 표현하자면 '결과 중심주의'라고 할 수 있다… (중략) 그들(외국)은 인증을 위한 심사에서 실험실 분석을 하지 않는다. 분석은 단속의 도구로만 드물게 쓰일 뿐, 유기농인지 아닌지 판가름하는 도구로 쓰이지 않는다. 심사원은 논,밭,목장을 찾아가 직접 흙을 만져보고 작물과 동물의 상태를 관찰한다.' - 본문 중에서    

농산물이 어떤 방식으로 재배되고 있는지 현장을 찾아 확인하는 것이 아니라, 실험실에서 샘플검사를 한 뒤 유기농 인증을 내주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흰 가운을 입은 검사원이 검사도구를 이용해 유기농 인증마크를 주는 것이 과학적이라고 믿는 소비자가 있는한, 우리는 계속해서 이상한 유기농산물을 식탁에 올리게 될 것이다. 유기농의 가치는 실험실에서 과학으로 증명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농촌을 다니다 보면 자주 듣는 말중에 이런 말이 있다.

"도시사람들은 어리석은 바보야. 작고 흠집 있는 것이 진짜 유기농인데 크고 번지르르한 것만 찾는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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