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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정통 오페라, 웅장함 기대했다면

[리뷰]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 초청, 오페라 <나부코>

등록|2013.11.20 17:39 수정|2013.11.21 14:28

▲ 솔 오페라단 `나부코'. 이탈리아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을 초청해 니탈리아 정통 오페라 스타일을 보여주었다. ⓒ 문성식


솔 오페라단(단장 이소영)이 베르디(1813~1901)탄생 200주년을 맞아 베르디 오페라 <나부코>를 예술의 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지난 15일부터 17일까지 공연했다.

오페라 <나부코>는 구약성서의 바빌론과 히브리인의 이야기에 바탕을 두고있다. <나부코>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통치 아래 음울했던 이탈리아인에 희망을 안겨주었으며, 또한 두 번째 오페라의 실패와 아내 그리고 두 아이의 죽음으로 참담했던 베르디에게도 인생의 성공을 가져다주었다.

<나부코>는 국내에서 자주 공연되기 힘든 대규모 오페라. 솔 오페라단은 이탈리아 모데나 루치아노 파바로티 시립극장을 초청해 2011년 <나비부인> 연출에 이어 두 번째 내한인 쟌도메니코 바카리 연출로 이태리 정통 오페라를 선보이는 의도를 보였다. 세 번째 내한인 세계적인 바리톤 파올로 코니가 나부코 역을, 딸 아비가일레 역은 소프라노 에바 골레미, 안젤라 니콜리가 맡아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나부코>는 생각보다 덜 웅장한 무대에 짜릿한 전율을 줄 만큼 충만스러운 열창이나 연기는 아니었다. 일반적인 톤의 편안한 노래와 연기라고나 할까. 이탈리아의 여느 극장에서 저녁에 들을 수 있는 '지방색'이 묻어나는 익숙하고 부담 없는 분위기, 적당한 연출과 음악, 연기. 외국 초청이라고 무언가를 크게 기대했다면 다소 실망했을 것이다.

▲ 1막에선 히브리 왕의 조카인 이즈마엘레(레오나르도 그라메냐)가 바빌로니아 공주 페네나(미켈라 나델라)를 구해줄 궁리를 하고 있다. ⓒ 문성식


그렇다고 <나부코>가 엉성한 무대였다는 의미가 결코 아니다. 요사이 모던한 오페라 무대들을 보다가 정통 이탈리아식의 군더더기 없는 무대 미술이 어색했을 수도 있다. 1막 '솔로몬 성전'에선 이 오페라의 내용을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면, 대사와 노래만으로 복잡하고 빠른 인물소개와 바빌론과 히브리인들 사이의 종교적, 정치적 갈등 상황을 파악하기에는 힘들다.

합창 오페라로 잘 알려진 오페라인 만큼 주요 독창들을 시각적으로나 청각적으로 받쳐주는 합창은 아주 중요하다. 하지만 1막에서의 합창은 너무 무덤덤하게 서 있는 그 모습과 합창에서 김이 빠진다. 솔로몬 왕의 권력과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는 특히 남성 합창이 중요한데, 여성 합창은 무난했어도 남성 합창은 일치되지 않은 음정과 약한 파워 면에서 다소 아쉬웠다.

2막 '바빌로니아 왕궁'에서는 1막보다 성악가들의 연기나 합창도 좋아졌으며, 음악이나 스토리 측면에서 이해와 집중이 쉬웠다. 또한 무대배경도 1막에선 기대보다 웅장함이 덜 느껴지고 평면적인 단순하단 느낌이었는데, 2막에선 정통 이탈리아풍의 원근법이 살아나면서 배경 그림이 마치 입체적인 실제인 것 같은 오묘함을 느낄 수 있었다.

▲ 17일 공연에서 아비가일레 역의 안젤라 니콜리. 4막에서 죄를 뉘우치고 동생 페네나에게 화해를 청하는 장면. ⓒ 문성식


3일 공연의 마지막날인 17일 공연 2막에서 아비가일레 역의 안젤라 니콜리의 독창에 모두들 브라보를 외쳤다. 그녀는 동작이나 시선처리, 고음역까지 편안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처리했다. 중후한 저음의 대제사장 자카리아 역의 바리톤 크리스티안 파라벨리에게도 브라보는 돌아갔다.

2막 마지막에 나부코가 자신은 '왕이 아니라 유일신'이라면서 모두에게 자신을 숭배하라고 하자 벼락이 내리쳐 나부코를 쓰러뜨리는 장면은 극중인데도 정말로 신이 벌을 내리는 것 같은 느낌을 주며 몰입감을 준다. 바리톤 파올로 코니는 자신만을 알고 살다가 결국 종교를 받아들이는 솔로몬 왕 나부코 역을 그 중후한 목소리와 연기로 표현해 만족감을 주었다.

3막 바빌론의 공중 정원은 솔로몬 왕의 왕관을 스스로 집어 쓴 아비가일레가 왕좌에 앉아 시작한다. 호화찬란한 금색 왕좌에 휘황찬란하게 번쩍이는 왕관을 쓴 그녀의 모습이 위엄있어 보인다. 시각적인 만족이 느껴져서일까. 1막에선 부족하게 느껴졌던 합창도 좋았다.

3막 2장 시작은 드디어 우리에게 '히브리 노예들의 합창'으로 잘 알려진 '날아가라, 내 마음이여, 금빛 날개를 타고(Va, pensiero, sull'ali dorate)' 합창이다. 조국의 해방을 간절히 바라는 히브리인들의 마음을 나타내는 부분인데, 장엄함을 기대했으나 다소 경쾌한 편이었다. 미뉴에트처럼 힘보다는 부드러움을 강조한 것이 인상적이다.

4막 바빌론 왕궁의 방은 붉은 조명에 뒷배경 그림이 감옥을 원형의 원근법으로 표현하고, 그 앞에 장막이 길게 드리워져 있는데, 조명과 색채의 미학이 좋았다. 오페라 <나부코>의 특징은 합창도 많지만, 1막 이후 4막까지 진행될수록 각 인물들의 솔로가 많아진다. 나부코, 아비가일레, 페네나의 솔로 등이 극 후반부로 치닫는 사건의 진행을 알려준다.

▲ 3막에선 나부코(파올로 코니 분)의 왕관을 뺏어쓴 아비가일레(에바 골래미 분)가 노예의 딸인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고 분노의 열창을 펼친다. ⓒ 문성식


4막 2장 페네나의 독창에서는 소프라노 박혜진이 형장에 끌려가는 페네나의 슬픔과 조국에 대한 안타까움을 잘 표현했다. 페네나의 사형 집행 찰나, 나부코가 그녀를 구해주고 신전이 쓰러져 연기에 휩싸인다. 이 때, 검은 옷에 초라해진 아비가일레가 무대 뒤쪽에서 등장해 자기죄를 고백하고 동생에게 화해를 청하며 죽는다.

나부코 역시 위세당당하던 이전의 모습에서 벗어나 겸허하게 자신을 낮추며 자카리아에게 무릎을 꿇고 종교를 받아들인다. 4막의 전체적인 노래 선율은 주님의 찬양을 나타내며 느린 선율 위주이다. 어떤 이에겐 주님 찬양에 대한 당위성이나 서사가 부족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모두들 '여호와 만세'를 외치면서 극은 끝난다.

이번 공연의 내한 단체인 루치아노 파바로티 극장의 극장장인 알도 시실로가 지휘한 프라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반주는 무난하게 성악을 잘 받쳐주며 큰 탈 없이 부드럽고도 장중한 연주를 선보였다. 국내 몇 안 되는 오페라 합창단 중 하나인 스칼라 오페라합창단은 무난하기는 했지만 좀 더 오페라적인 힘과 연기에 몰두해야 할 필요성이 보인다. 사실, 가만히 서 있는 군중 장면 만큼 힘든 것은 없는데, 그 상황에서도 당위적인 힘과 위엄이 느껴져야 진정한 프로로서 내공이 쌓이는 것이 아닐까.

솔오페라단은 2014년 기획 공연 시리즈의 세 작품으로 기획공연 오페라 <사랑의 묘약>, 로마국립극장 공동제작 오페라 <가면무도회>, 로마국립극장 초청오페라 <카르멘>을 공연한다. 시즌 공연 시리즈 1탄으로는 어린이를 위한 감성오페라 <헬로우! 마에스트로>, <산타클로스는 재판 중>을 공연한다. 지난 10여 년 간 활발한 국내외 공연과 해외 팀과의 교류로 국내 오페라 발전에 앞장선 솔오페라단의 2014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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