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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중동>은 왜 안희정에 꽂혔나

[서평] 안희정의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가 던지는 질문

등록|2013.11.21 19:20 수정|2013.11.21 19:20
정치인이 쓴 책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 정치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없는 것처럼 정치인이 출간하는 책 역시 극히 정치적인 행위의 한 부분으로 평가해야 한다. 여기서 정치적인 행위로 평가한다는 것을 반드시 은폐된 어떤 정치적 이해관계를 찾아내거나 그것의 숨겨진 의도를 파악하는 부정적인 의미로 볼 필요는 없다. 책을 내는 것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인 동시에, 그 자체를 국민에게 보내는 하나의 메시지로 봐야 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우리는 정치인의 책 속에 담긴 메시지를 정확하게 읽어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보궐선거가 끝나고 연말이 다가오면서 많은 정치인들이 출판기념회 소식을 알리고 있지만 책을 쓴 정치인들의 기대만큼 언론에 보도가 많이 되지는 않는다. 이유는 속된말로 너무 흔해빠졌기 때문이다. 특히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생각의 숙성 없이 참모들의 도움을 받아 급하게 쓴 책으로 열리는 예비후보자들의 출판기념회의 경우는 주목을 받기가 더더욱 어렵다. 근래에 나온 정치인의 책 중에 홍영표 의원의 <비망록>이란 책이 화제가 되었는데, 그나마 안철수 의원이 '미래의 대통령을 요구했다'는 폭로성 내용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기 때문이다.

보수언론이 더 주목한 안희정의 책  

▲ 안희정 충남지사가 낸 책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 ⓒ 위즈덤하우스


이런 분위기 속에 오랜만에 정치인이 쓴 책을 하나 펴들었다. 친노 정치인으로서 그리고 충청남도 도지사로서 3년의 경험을 한 안희정이 쓴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라는 책이다. 대표적 친노 정치인이 쓴 이 책은 의외로 진보 언론보다는 조중동을 비롯하여 종편 TV조선, 채널A 등 보수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그 이유는 그들이 뽑은 제목들을 나열해보면 잘 알 수 있다.

"친노 안희정 '대선 패배 변명 필요없어'" <조선일보>
"안희정 '박정희 전대통령 공칠과삼 평가해야'" <동아일보>
"친노 핵심 안희정, 출간 저서에 박정희 재평가" <채널A>

이외에 <중앙일보>는 논설위원 칼럼을 통해 안희정을 '친노에게서 발견한 희망'으로 추켜세웠고, <세계일보>도 비슷한 내용으로 사내칼럼을 게재했다.

보수언론이 취하는 보도 태도의 배경은 책의 대표적 메시지를 보여주는 겉표지의 글을 통해서도 쉽게 짐작할 수 있었다. 안희정은 '분노와 미움을 내려놓고' 그의 정치적 지향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내세우는 '더좋은민주주의'로 나아가자고 역설하고 있다. 이런 메시지의 현실적 걸음을 위하여 역대 대통령에 대한 공과를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취지의 이야기가 때 아닌 보수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이것을 노무현의 오른팔 안희정이 내미는 화해의 손길을 보수언론이 잡아서 화답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될까? 여전히 돌아가신 노무현 전 대통령과 싸움을 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에 비춰보건 데, 이것은 그들이 추앙하는 대통령에 대한 우호적 메시지에 대한 그들 나름의 성의 표시에 불과하다. 진정한 화해를 원한다면 노무현 대통령의 기록물을 둘러싼 치사한 시비는 걸지 않았을 테니 말이다. 똑같이 이 세상에 없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이승만, 박정희의 공적에 대한 평가는 당연한 것이지만, 노무현에게는 오직 비난거리만 존재한다는 그들의 이율배반적 태도가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안희정은 이 책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과 달리 싸우지 않는 정치를 해보겠다는 다짐을 국민에게 하겠다고 쓰고 있다. 싸우지 않는 정치는 싸우는 정치보다 더 어렵다. 안희정은 싸우지 않는 정치를 통해 노무현의 정치를 넘어서겠다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쉽지 않은 길이라 판단이 된다. 이를 통해 안희정은 '더좋은민주주의'의 내용을 구체화시켜 나가고 있지만, 이 길의 성공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안희정도 책의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지만, 분노의 날은 진보에게만 서 있는 것이 아니라 어쩌면 보수 세력에게 더 날카롭게 서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보면서 확인하려고 한 것은 그의 정치적인 생각들보다는 도지사로서 그가 가지고 있는 역량과 그리고 정치지도자로서 갖고 있는 시스템적 사고들이었다. 지방 정부를 운영해보는 것은 지도자에게는 행운과도 같은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국회의원들이 금배지보다는 광역자치단체장을 선호한다. 모든 정치인의 꿈이라 할 수 있는 대권 후보로서 자질을 향상시키고 국민들 앞에 검증받을 수 있는 기회가 부여되기 때문이다.

단체장들이 내는 책에 대해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 소장은 다음과 같이 평가한다.

"(대선 후보들이 낸 책들은) 정책 참모(교수)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는다. 그래서 개인의 영혼, 안목, 특징이 그렇게 날카롭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광역, 기초 단체장들의 책은 다르다. 4000개가 넘는 사무 중에서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 자신이 잘했다고 생각하는 것을 선택한다. 이게 천차만별이다. 작가나 참모들의 도움을 받는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단체장들의 책은 그 영혼, 안목, 치적, 특징 등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필자도 이런 평가에 동의한다. 정치인들의 책은 남이 써주는 책이라는 편견이 강하지만, 지방 정부를 운영해본 정치인의 식견을 검증하는 데에 책만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정책 참모의 능력은 한 부분에 치중되어 있거나 책임 있는 자리의 경험의 부족이 여실히 드러난다. 리더의 식견이 없이 참모의 도움만으로 나오는 책은 고스란히 그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고, 결국 참모의 한계는 정치지도자가 이끌어가는 팀의 한계이자 그 정치인의 한계로 평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꾸로 책을 통해서 정치 지도자의 식견을 확인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온전히 그 정치인의 능력으로 충분히 볼만한 것이다. 

단체장의 식견과 지방행정이 중요한 이유

안희정이 쓴 <산다는 것은 끊임없는 시작입니다>(위즈덤하우스)라는 책은 그런 의미에서 비판적 독해를 시도해볼만 하다. 진보 진영도 이제 10년의 집권 경험을 가지고 있고 다수의 단체장을 배출하였다. 필자는 어느 글에선가 우리도 이제는 김대중과 같은 역사의 경험이 묻어나는 카리스마를 지닌 지도자와 헌신적 리더십으로 단숨에 국가 지도자의 위치에 뛰어오른 노무현의 시대를 넘어 화수분과 같이 정치지도자를 배출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화수분처럼 정치지도자를 키워내는 데에 지방정부를 이끈 경험은 매우 중요한 자양분이 된다.

단순히 명문이나 미사여구로 글을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단체장이 더 큰 정부를 맡을 수 있고, 작은 규모의 정부라도 통찰력과 바른 판단력으로 이끄는가를 확인하는 용도로 책을 읽어볼 필요가 있다.

단체장의 책을 읽어내는 데에 기자들의 식견도 매우 중요함을 느낀다. 앞서 조중동의 안희정이 내미는 화해의 손짓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단체장으로서의 식견과 지방행정, 그리고 국가 경영을 할 지도자로서의 안목까지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본인은 부인하고 있어도 단체장은 잠재적 대권 후보군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속한 정치 세력의 안목으로만 책을 읽어내는 것은 독해자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의 3장에서는 안희정이 경험한 지방 행정의 실상과 그것을 어떻게 타개해야 하는지가 구체적으로 나타나 있다. 필자가 지방 행정의 경험이 있다면 이에 대한 전문적 평가를 시도해보고 싶지만 그럴 역량은 없고, 다만 단체장 경험 3년이 치열한 고민과 실전 경험으로 무장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기업 권력을 대하는 정부의 자세에 대하여 시장 친화적이면서도 산업 생태계가 바르게 잡힌 올바른 시장 질서를 꿈꾸고 있었고, 여느 지도자와 마찬가지로 관료 조직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기를 바라고 이를 위해 구체적으로 실시했던 방법들도 제시하고 있다. 단체장답게 지방 분권에 대한 그의 의지도 책의 내용에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 고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 1주기를 앞두고 지난 2010년 5월1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 스튜디오에서 '사람사는 세상 노무현 재단' 주최로 열린 '노무현, 열 컷의 풍경' 추모 특집 좌담회에서 안희정 민주당 충남도지사 후보(노무현 대통령 당선자 정무팀장)가 '민주주의는 말이다'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모습. ⓒ 유성호

조중동은 안희정이 내미는 화해의 손짓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해석해냈지만, 더 중요한 작업은 단체장들이 갖고 있는 문제의식과 그것을 실현해 낼 구체적인 역량과 준비 정도를 알아보는 것에 더 많은 독해의 비중을 가져야 할 것이다.

단체장으로서 실무적인 역량 측정이 지방 정부의 수장이 낸 책을 읽은 두 번째 독해라면 마지막으로 세 번째 독해로서 정치지도자로서 가지는 비전이랄까 철학을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노무현의 직계 정치인으로 맨 먼저 떠오른 사람은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고 그 다음은 문재인 전 민주당 대선 후보였을 것이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두 사람은 노무현과 함께 정치를 한 사람은 아니었다.

대통령 시절 참모를 하긴 했지만, 그보다 더 긴 시절을 노무현에 정치를 배운 사람은 안희정이다. 물론 노무현은 그 이전에 김대중으로부터 오랜 기간 정치를 배워왔다. 안희정이 민주당사에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아야 한다고 주장을 한 배경을 알 수 있다.

안희정의 정치 비전에는 멀게는 김대중의 흔적이, 가깝게는 노무현의 흔적인 남아 있다. 시장 경제의 기본 원리를 강조하며 실리적인 대미관계가 김대중과 노무현에게 공통으로 발견되는 유산이라면, 정신과 물질의 조화와 패자의 자세를 강조하는 것 등에서는 직접적인 노무현의 자세를 느낄 수 있다.

진보의 시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럼에도 안희정은 노무현의 시대를 넘어서고자 하는 의지가 보인다. 그것은 앞서 조중동이 주목한 화해의 손짓이다. 시장 질서에 바탕을 두면서도 시장의 패배자에 대한 배려나 실리적 대미 관계를 강조하면서도 남북통일의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고스란히 김대중과 노무현의 노선을 잇겠다는 의지일 것이다.

이제 그는 박정희, 김대중, 노무현을 넘어 새로운 지도자로 서고 싶어하는 의지를 살짝 내비치고 있다. 안희정은 화해와 통합, 그리고 대한민국의 새로운 질서를 꿈꾸는 것으로 보인다. 동수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헌법 개정에 합의하자는 그의 중요한 제안도 그것의 일환일 것이다.

안희정은 할 수 있을까? 물론 답은 앞으로의 정치 상황에 달려 있을 것이다. 노무현이 유고에서 '운명'을 말했듯이 정치 지도자의 앞날은 어쩌면 많은 부분이 하늘이 내려준 운명에 달려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결과는 하늘이 정해준다 해도 사람은 자신의 할 일을 다 해야 한다. 그래야 기회도 주어지는 것이다. 그 핵심은 실력을 키우는 일이다. 많은 신문들이 그의 정치적 비전과 화해의 손짓에만 주목을 했지만, 더 시급한 일은 그의 식견과 쌓인 경륜을 평가하는 일이다.

안희정도 책에서 말했듯이 이제는 진보와 보수가 국민 앞에서 정당하게 실력을 겨뤄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정말로 진보의 시대는 다시 올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그 시대를 다시 맞이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일까? 책을 덮으면서 나는 이 질문을 계속해서 스스로에게, 이 땅의 진보세력에게, 그리고 이 책을 지은 안희정에게 묻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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