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칠남매' 김장, 전국에 퍼졌으면 좋겠어요

[공모-김장이야기] 형제들이 매년 모여 김장을 하는 이유

등록|2013.11.22 17:55 수정|2013.11.22 17:55
우린 칠남매랍니다. 올해도 지난해, 지지난해처럼 칠남매가 친정에 모여 부모님 모시고 김장을 했답니다. 지난 11월 9일에요. 얼마나 했느냐고요? 지난해처럼 절이는 것부터 김치 속 넣는 것까지 했다면 몇 포기를 했는지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인데, 올해는 김치 속 넣는 것만 했습니다.

다른 해에는 토요일에 배추를 절여 일요일 아침 일찍 김치 속을 넣은 후 집으로 돌아오곤 했습니다. 제 고향(친정)은 전라북도 김제인데 바로 아래 동생만 포항에 살고 모두 서울과 경기도에 살고 있답니다. 이렇고 보니 김장을 끝낸 후 서둘러 오후 일찍 나서도 돌아오는 길에 차가 막혀 고생하기 일쑤였습니다.

특히 다른 집 김장 김치까지 실어 나르곤 하는 제부와 부천 언니는 그만큼 고생이 컸습니다. 자식들의 이런 고생을 줄여볼까. 올해는 엄마가 금요일에 배추를 절여 놓을 생각이었나 봅니다. 토요일과 일요일에 김장을 하자고 날짜를 잡은 것은 10월 초였는데요. 김장을 일주일쯤 앞둔 어느 날 친정엄마는 느닷없이 금요일에 절여 토요일에 속을 넣자고 했습니다.

▲ 절이는 것부터 김장속 만드는 것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양념 정말 중요하죠. 무슨 이야길 하며 이리 웃었었나? 김장 하는 내내 너무 많이 웃기 때문에 무슨 이야길 하며 웃었는지 생각이 나질 않네요. 여하간 웃고 또 웃었습니다. 그래서 늘 맛있나 봅니다. (2013.11.9) ⓒ 김현자


▲ 제부도 그간 김장 속을 넣고 싶었었나 봅니다. 자리가 비자마자 앉아 한참동안 속을 넣었습니다. 우리 제부 참 예쁘죠? ⓒ 김현자


매일 밤 마늘 100개씩 깐 부모님

배추를 뽑아 절이고 갖가지 양념 준비하는 일이 어디 그리 쉽나요. 김장 열흘 전이나 1주일 전부터 마늘이나 생강, 쪽파 등을 손질한다고 밤에 편히 쉬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거든요. 지난해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고요. 하룻밤에 깔 수 있는 마늘은 한 접(100개)이라고. 닷새 동안 매일 밤마다 한 접씩 깠다고.

그런데 준비할 양념이 어디 마늘뿐인가요. '토요일에 버무리면 올해는 고생 덜하며 올라올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자식들을 조금이라도 고생 덜 시키고 싶은 부모님의 마음이 헤아려졌습니다. 그러면서도 양념 준비며 배추를 뽑아 절일 부모님 생각에 걱정이 컸습니다. 다행히 오빠와 둘째 언니가 휴가를 내 오빠는 수요일에, 언니는 목요일에 친정에 가서 배추 뽑는 것부터 절이는 것까지 모두 했습니다.

이것도 모자라 둘째 언니는 형제들과 나눠먹을 추어탕까지 한 솥 가득 끓여놨더군요. 둘째 언니의 마음 씀 덕분에 김장을 하는 내내 시래기 듬북 넣어 끓인 추어탕을 맛있게 먹었는데요. 올라오던 날 아침상에서 아버지가 "김장 때는 올해처럼 해마다 추어탕 끓여먹자"고 말씀하시는 것이 매우 맛있게 잡수셨나 봅니다.

불과 5~6년 전까지만 해도 김장은 부모님 두 분이 하시곤 했습니다. '이왕 하는 김에 좀 더 해서 아들들에게 보내주자. 도시에서는 배추는 물론 마늘 한 쪽까지 죄다 사서 김장을 한다는데, 있는 배추에 있는 양념거리로 조금 더 해서 딸들에게도 나눠주자.' 이러다 보니 김장 양은 늘어날 수밖에 없었고, 때문에 두세 명의 일손을 사 김장을 해야만 했습니다.

물론 해마다 시간이 되는 딸이나 며느리들이 내려가 김장 일손을 돕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모두 멀리 떨어져 살다보니 김장 속을 넣는 날에나 갈 수밖에 없었고, 학교와 상관없이 내려갈 수 있는 형제는 어린 아이들을 둔 형제뿐이라 마음만큼 돕지 못했습니다. 도와줘봤자 김장하러 온 동네 어르신들 점심을 준비하는 정도였거든요.

사정이 이렇고 보니 평일에 김장을 하기도 했습니다. 요즘 시골에선 일손을 사기 무척 힘들거든요. 저마다 김장을 하고보니 돈을 줘도 일손을 사기 쉽지 않답니다. 때문에 일손 사정에 따라 평일에 김장할 수밖에 없었던 거지요. 여하간 아이들 학교 문제도 있고 그렇다보니 멀리 떨어져 사는 자식들은 더더욱 갈 수 없게 되더군요.

일손을 사 김장을 해도 엄마나 아버지가 기본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것들이 있을 수밖에 없고요. 이렇다보니 부모님께선, 특히 친정엄마는 김장 후 몸살도 앓곤 했습니다. 

전, 결혼 후 한동안 시댁에 가 김장을 했고, 시댁에서 김치를 가져다 먹곤 했습니다. 친정의 김치는 한두 통 맛보는 정도로나 얻어먹는 정도였죠. 그런데 언제부턴가 시댁에서 전혀 가져다 먹지 않아도 될 만큼 친정 부모님께서 많은 양의 김치를 보내주시곤 했습니다. 기억을 더듬어 헤아려 보니 막둥이가 결혼을 해 아들 삼형제 모두 가정을 이룬 12년 전 그 이듬해 겨울부터네요.

몇 년 동안 김치를 얻어먹으며, 김장 후 몸살을 앓는 어머니 소식을 들으며 죄송하고 죄스럽기만 했습니다. 고춧가루며 깨, 각종 콩 등 제대로 쉬지 못하고 피땀 흘려 농사지은 것을 1년 내내 먹을 수 있을 만큼 나눠 주시는 것으로도 모자라 일손을 사 김장까지 해 보내주시는 것을 받아먹으며 입에 익은 김치를 먹을 수 있음이 행복한 한편 마음이 무겁기만 했습니다.

▲ 지난해 양념거리들을 썰다 손이 다치는 바람에 일을 맘껏 하지 못한 큰 형부는 올해 그 한풀이를 하는 듯 가장 힘든 속 버무리기부터 나르기까지 눈에 띄도록 많은 일을 했습니다.(2013.11.9) ⓒ 김현자


▲ 무를 굵게 잘라 고춧가루와 굵은 소금만으로 밑양념만 해 김치 사이에 넣어 꺼내먹으면 정말 맛있지요. 100% 부모님께서 농사지은 것으로 담근답니다. (2013.11.9) ⓒ 김현자


▲ 마루에 김치를 채운 김치통들이 늘어가고....(2013.11.9) ⓒ 김현자


아무리 바쁘고 먹고 살기 팍팍해도 김장 때는 모이자

엄마의 김치를 얻어먹기 시작한 지 몇 년, 저희는 딸이 넷인데요. 차츰 친정으로 달려가 김장 일손을 돕는 딸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전처럼 '시간이 되면'이 아니라, 김장하는 날에 맞춰 꼭 내려가 일손을 돕는. 일손을 돕는 자식들이 많아지자 더 이상 일손을 살 일이 없어졌고, 엄마는 그때부터 자식들의 사정에 맞춰 김장 날짜를 잡기 시작했습니다.

친정아버지는 83세, 친정어머니는 78세랍니다. 한밤중에 전화벨이 울리면 나도 모르게 부모님 생각부터 나고, 듣고 싶지 않은 소식이면 어쩌나 싶어 가슴이 덜컹 내려앉곤 하는 그런 쓰리고 아픈 연세랍니다. 그런데 야속하게도 다시 한 해의 저물녘이네요.

몇 년 전 우리 형제들은 약속했습니다. 아무리 바쁘고 먹고 살기 팍팍해도 김장 때와 아버지 생신 때만은 모두 모이자고요. 그리하여 부모님 모시고 김장도 하고 맛있는 것도 나눠먹자고요.

몇 년째 칠남매가 모여 김장을 하다 보니 '누구하고 누가 김치 속을 넣고, 누구는 배추 꼭지를 따고 누구는 집집마다 다른 김치통을 정리하면 되겠다' 등, 첫해처럼 정하지 않아도 척척 진행되곤 합니다.

"아들이고 딸이고 사위 며느리 할 것 없이 너그들은 어찌 그리들 빨리 잘한다냐? 배추 좀 절여주려고 가봤더니 벌써 절여버렸네! 몽실 양반, 자식들 참 잘 뒀어!"

올해는 어쩌다 보니 속을 너무 많이 버무렸습니다. 그래서 김장을 하는 중에 김치 속을 넣는 우리 자매들과 달리 일손이 좀 느슨한 오빠와 제부 등이 내 친구 성애네 집에 팔기로 했던 70여 통의 배추를 밭에서 뽑아 절이게 되었고요. 남자들끼리 절이는 것이 못미더워 도와주러 갔던 동네 어르신이 이처럼 감탄하기도 했어요.

참, 동네사람들이 오빠를 어렸을 때 몽실이라고 불렀대요. 그래서 우리 엄마아버지를 몽실 양반, 몽실네라고 부르고요. 우리들은 몽실이 동생이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지난해 양념꺼리들을 썰다가 손을 다치는 바람에 맘껏 일하지 못해 미안해했던 형부가 그 한을 풀기라도 하는 듯, 그 많은 양념을 모두 버무렸습니다. 해마다 차를 가져가지 못하는 집의 김장김치를 모두 배달하는 등, 궂은 일을 도맡아 하는 제부는 그동안 김장 속을 무척 넣고 싶었나 봅니다. 자리가 비는 순간 재빨리 앉아 한참 동안 김치 속을 넣는 걸 보니.

"엄마! 외갓집 김장 정말 재미있어. 사람 사는 냄새도 물씬 나고. 아무리 바빠도 해마다 김장할 때는 꼭 오고 싶어. 김장도 김장이지만, 이모들과 삼촌들 말하고 대답하는 것이 정말 재미있어. 그러고 보면 엄마네 식구들은 참 마음들이 참 잘 통하고. 화합이 참 잘 되는 것 같아. 외갓집 김치가 언제나 맛있는 이유를 이젠 알겠어!"

올해 처음 김장에 따라가 나대신 사진을 찍으며 김치가 모두 채워진 김치 통에 묻은 양념을 닦아 정리하는 일을 맡은 딸이 칠남매가 웃고 떠들며 재미있게 김장하는 모습을 보며 이처럼 말하더라고요. 정말 재미있어 하고 감탄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래서 어깨가 으쓱거리곤 했습니다.

김치를 별로 먹지 않아 때때로 잔소리까지 했던 딸은 요즘 친정의 김치 맛에 홀딱 빠져 "세상에서 가장 진실한 음식"이라며 '쟤가 김치를 저리 좋아했나?' 싶을 정도로 엄청 먹고 있습니다. 진실한 음식의 이유를 물었더니 "외할머니 외할아버지의 땀과 사랑으로 키워진 100% 재료로 칠남매 모두 모여 만든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그래서 더욱 맛있어 졌나 봅니다. 딸에게 우리 칠남매의 김장 모습을 보여줄 수 있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 김장을 도와주러 오신 동네 어르신들(2013.11.9) ⓒ 김현자


▲ 김장을 핑계로 부모님과 많은 시간들을 보내시는 동네 어르신들께 밥한끼 대접해드리곤 하는데 올해는 몇분 모시지 못해 너무 아쉽습니다(2013.11.9) ⓒ 김현자


▲ 지난해 김장 뒷풀이(2012.11.25) ⓒ 김현자


종삼이네도 형제들이 모여 김장을 한다네요

사실 우리 형제들이 이처럼 모여 김장을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자식들보다 더 많은 시간들을 함께 지내며 슬픔과 기쁨을 나누는 동네 어르신들께 김장을 핑계로 따뜻한 밥 한 끼 대접해드리고 싶어서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올해는 여러 어르신들께 대접해 드리지 못했습니다. 산에서 땔감을 마련하던 시절, 동네 사람들이 땔감을 마련하러 자주 가던 동네 가까운 '소똥재'라는 곳에 화장장이 들어설 예정이라는데, 이를 반대하는 시위에 동네 사람들 몇이 갔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죽게 마련이니 화장장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겠지요. 그런데 인근 주민들의 의견이 전혀 무시된 터라 시위를 할 수밖에 없나봅니다. 여하간 무척 아쉽기만 합니다. 내년에는 좀 더 많은 어르신들 모시고 밥을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참, 지난해까지만 해도 동네사람들과 품앗이로 김장을 해 자식들에게 보내곤 하던 한 동네 사는 이모님과, 내 친구 종삼이네도 올해부턴 형제들이 모여 김장을 할 거라고 하네요. 우리 칠남매의 이런 김장에 전염된 덕분이라 생각해도 되겠지요. 지난 몇 년, 우리 형제들이 모두 모여 김장하는 것을 동네 어르신들이 매우 부러워하곤 했거든요.

올해도 몇 년 전 혼자되신 사돈의 김장까지 했습니다. 올해도 칠남매 모두 모여 친정 부모님 모시고 김장을 할 수 있어서, 두 분 잡수실 김장을 우리가 해드려 무척 행복합니다. 부모님도, 몇 년 전 혼자 되신 사돈어른도 지금만큼의 건강만큼이라도 잃지 말고 조금이라도 더 함께 김장하고 함께 나눠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오마이뉴스>가 김장비 쏩니다' 공모, 응모 기사입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