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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별급여' 하면 환자 부담 줄어든다고?

[주장]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망각한 꼼수

등록|2013.11.21 19:43 수정|2013.11.21 19:43
건강보험 급여영역에 '선별급여'라는 새로운 급여항목이 도입될 계획이다. 지난 6월 정부가 발표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방안에 선별급여 도입이 처음 거론됐고, 현재 이를 시행하기 위한 입법예고도 끝난 상태다. 선별급여는 건강보험 급여 원리에 부합하지 않는 비급여 항목을 주 대상으로 하는데 정부가 이런 비급여 중 특정항목을 선별해 건강보험에서 비용의 일부를 부담하겠다는 것이다.

언뜻 보면 선별급여가 비급여 행위 비용을 건강보험에서 부담하는 방식이므로 환자들의 의료비 부담을 감소시키는 데 기여할 수 있고, 가격규제도 한다고 하니 비급여 관리 측면에서도 바람직한 대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선별급여의 선정기준이나 제도 운영방식을 찬찬히 살펴보면 선별급여가 환자를 위한 정책대안이기보다는 오히려 대형병원과 제약 및 의료기기 업계를 위주로 한 특정 자본의 이해와 상당히 맞물려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선별급여는 환자 부담 감소나 비급여 통제의 역할이 아닌 비급여 양산을 부추기는 수단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캡슐 내시경? 보편적 급여항목으로 확대하는 게 옳다

정부가 제시한 4대 중증질환 보장성 강화 방안은 급여체계 개편을 통해 급여항목의 범위를 넓히면서도 급여의 성격에 따라 환자 부담을 차등화하겠다는 것으로 요약된다. 급여체계 개편은 기존의 급여·비급여로 이원화된 급여체계를 필수급여·선별급여·비급여로 구분하되 필수의료는 환자 부담이 5~10%인 반면, 선별급여는 50~80%까지 적용하게 된다.

▲ 선별급여가 환자를 위한 정책대안이기보다는 오히려 대형병원과 제약 및 의료기기 업계를 위주로 한 특정 자본의 이해와 상당히 맞물려 있다는 인상을 갖게 한다. ⓒ 최은경


여기서 필수의료는 의학적으로 필요한 행위로서 비용효과성 등 급여기준을 완화해 급여확대로 연계되는 항목(MRI 등 검사, 고가항암제 및 희귀난치질환 지료제 등)들이 주가 되고, 선별급여는 그 성격을 달리해 의학적 필요성이 낮으나 환자부담이 높은 고가의료, 임상근거 부족 등으로 비용효과 검증이 어려운 의료행위들이 배치돼 있다.

선별급여 항목들은 현재의 건강보험 급여행위를 통해서도 충분히 대체가 가능한 행위고, 선별급여 항목에 사용되는 치료 재료 중 일부는 이미 동일 목적으로 건강보험에 등재돼 있는 재료로 환자나 보험자에게 별도의 비용 산정을 금지하던 항목들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제시한 선별급여 항목 중 '카메라 내장형 캡슐 내시경'은 가격이 100~200만 원에 이르지만 이와 효과가 유사한 '일반 내시경'은 이미 건강보험 급여 항목으로 그 비용은 8만 원 정도다. 효과가 유사하다면 급여권에서 검증된 적정가격의 '일반 내시경'을 사용하는 것이 환자의 비용부담이나 의료행위의 유효성 측면에서 맞는 대안이다. 만약 '캡슐 내시경'을 통해서만 정확한 진단이 가능한 질환이 있다면 관련된 적응증에 한정해 건강보험 급여항목으로 확대하는 게 보장성 강화에 도움이 되지 이를 선별급여로 분류하고 환자부담을 높게 책정하는 것은 온당치 않다.

또한 선별급여 항목과 동일한 목적의 재료가 급여등재 돼 있어 별도의 비용 산정을 불가했던 '초음파 절삭기'는 그 비용이 40~125만 원에 이른다. 반면 건강보험에 등재된 재료는 18만 원에 불과하다. '초음파 절삭기'는 비용효과성이 미흡하고 동일 목적의 재료가 급여권에 있음에도 선별급여라는 이름하에 환자부담이 합법화되는 것이다.

안전성·유효성이 확립되지 않아 논란이 되고 있는 '로봇수술'도 2015년부터는 선별급여 대상이다. 기존 수술 방법과 비교해서도 로봇수술이 우위에 있다는 근거는 충분치 않다. 지난 2월 미국의사협회지(JAMA)는 '로봇수술'이 '복강경수술'에 비해 치료효과는 비슷하나 비용은 33%정도 더 비싼 것으로 보고하고 있다.

이와 같이 선별급여는 비용효과성이나 안전성·유효성 측면에서 건강보험급여행위로 간주될 수 없는 항목들이다. 설사 4대 중증질환에 한정하더라도 이를 허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건강보험급여원리에 부합되지 않는 항목들을 선별급여라는 새로운 급여영역으로 진입시킨다면 타 질환 환자들과의 형평성 논란뿐 아니라 불필요한 비용부담을 건강보험 가입자나 환자에게 강제하는 꼴이다.

선별급여, '회색지대' 만들겠다는 뜻일 뿐

정부는 선별급여의 도입 명분으로 늘어나는 비급여 비용의 급속한 증가, 비급여의 가격 관리 등을 언급하고 있다. 특히, 비급여 의료 중에서도 필수적인 의료와 비필수의료가 혼재하고 비필수의료라 할지라도 의료현장의 현실적 수요가 존재한다는 것을 부각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현존하는 비급여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정상적인 급여전환 절차가 아닌 선별급여라는 회색지대를 인정하겠다는 것인데 접근 방법이 틀렸다.

비급여 행위 관리에 1차적 접근은 '항목정리'가 우선돼야 하고, 이를 위한 '퇴출'기준을 마련하는 게 핵심이 돼야 한다. 필수급여와 선별급여의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급여권과 비급여 행위를 포괄하는 범위에서 의학적 타당성을 재평가하고 일정기간 동안에 유효성 검증에 실패한 의료행위의 경우에는 '퇴출'을 강제해야 한다. 즉, 의학적 타당성도 없으면서 고가의 의료행위를 고집할 경우 시장에서 퇴출될 수 있다는 '신호'를 제약 및 의료기기 업계에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비근한 예로 미국의 공공부문(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에서 외래 지불보상체계는 우리나라와 유사한 행위별수가제를 근간으로 하는데 의료행위(CPT)의 관리에 있어서는 행위의 성격에 따라 크게 세 가지 카테고리로 범주화할 수 있다. 매년 개정되는 카테고리Ⅰ은 급여행위를 의미하며, 카테고리Ⅱ는 성과측정을 위해 선택적으로 사용되는 코드로서 단독으로는 사용 못하며 카테고리Ⅰ코드와 결합해 사용된다.

카테고리Ⅲ는 신의료기술을 보고하고 치료방법을 반영하기 위한 임시 코드로 근거 창출이 필요한 데이터 수집이 목적이다. 여기서 카테고리Ⅲ에 등재된 의료행위는 5년이 경과될 때 까지 카테고리Ⅰ인 급여권으로 진입하지 못할 경우, 그 기한이 연장되지 못하고 재사용되지 못한다. 즉, 근거 창출에 실패할 경우 의료행위로 간주되지 않으며 사실상의 '항목삭제'를 의미하는 것으로 의료행위의 퇴출기전이 작동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별급여, 건강상 위해·비용발생 위험을 환자에게 전가한다

비급여 비용 변동은 '행위항목수', '가격', '진료량'에 의한 영향이 모두 반영된 것으로 이 세 가지 요소를 모두 통제해야만 비급여 비용 급증을 막을 수 있고 환자 부담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정부가 제시한 선별급여는 세 가지 요소를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되지 못한다. 선별급여의 경우 3년 주기로 재평가를 통해 필수급여의 진입 또는 본인부담률을 조정하겠다고 했으나 이는 문제가 있다.

일단, 필수 급여의 진입조건은 '임상적 유효성의 확립'이어야 하고 3년 내에 근거창출에 실패했다면 관련 항목은 퇴출되는 것이 맞다. 그런데 정부 대안은 필수급여 진입이 안 될 경우 환자 본인부담을 조정하면서 관련 항목을 그대로 인정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발상은 비용효과성의 불확실성에 따른 건강상의 위해나 비용 발생의 위험을 그대로 환자에게 전가하는 것으로 타당하지 않다.

가격 통제의 실효성을 선별급여가 담보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비용효과성이 없는 고가의 의료행위라면 상당한 수준의 가격 하락이 수반돼야 할 텐데 그 기준과 원칙이 모호하다. 정부가 발의한 선별급여 관련 입법예고에 따르면 별도의 심의위원회의 심의·의결을 거쳐 곧바로 보건복지부령으로 가격을 고시하겠다고 한다. 그렇다면 심의위원회 구성이나 가격결정 방식의 투명성이 전제돼야 하는데 이 부분이 명확하지 않다.

우려되는 의료상업화... 시행중단이 답이다

또한 정부의 설명대로 선별급여가 급여범위의 한 범주라면 가격결정은 요양급여 비용의 심의·의결에 대한 결정권한이 있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의 소관 사항인데 이 단위가 배제됐다. 건강보험권의 대표적인 사회적 합의 기구가 배제됐다는 것은 정책 투명성을 저해하는 것으로 수용하기 어렵다.

정부는 '선별급여 항목이 기존 가격에 비해 하락됐을 경우 이와 대체되는 급여항목의 가격을 상향조정하겠다'는 원칙도 발표한 바가 있다. 이는 선별급여 항목의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분을 급여권 행위의 가격상승을 통해 보상해 주겠다는 발상으로 전체적으로 선별급여를 통한 가격 통제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다.

오히려 급여권 수가체계의 불균형과 왜곡을 가속화시킬 가능성이 더 크다. 비급여 행위에 대한 진료량 통제에 대해서는 전혀 대책이 없다. 선별급여 항목을 중심으로 한 유인수요의 발생은 충분히 예견된다. 선별급여 항목은 기존의 급여항목에 비해 여전히 원가마진이 높은 항목이다. 불충분한 근거를 가지고 임상적 유효성을 확대하거나 편의성 등을 이유로 의료기관이 환자에게 선별급여를 강제할 가능성은 농후하다.

선별급여는 보장성 강화나 비급여 통제 목적으로 도입된 대안이라고 보기 어렵다. 정말 재정적인 이유로 급여확대에 포괄되지 못한 행위들이 있었다면 정부 재정 부담을 확대하서라도 정상적인 절차에 따라 급여범위로 포괄하면 된다. 선별급여는 "4대 중증질환 100% 국가 책임" 약속을 망각한 채 도입된 꼼수에 지나지 않는다.

비급여 행위의 항목 퇴출과 실효성 있는 가격통제가 아닌 현존하는 비급여를 그대로 인정하면서 관련 행위의 임상 적용에 따른 위험성을 고스란히 환자에게 전가하고 있는 제도이다. 선별급여는 무분별한 비급여 행위 창출로 득을 보고 있는 특정자본에 좀 더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의료상업화의 또 다른 주범이 될 수도 있다. 환자를 담보로 오히려 비급여 양산을 부추기는 선별급여 시행은 중단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글을 쓴 김준현님은 건강세상네트워크 환자권리사업단 정책위원, 무상의료운동본부 정책위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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