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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용 전 경찰청장 "댓글 중간수사발표 내가 승인"

김용판 국정원 사건 축소·은폐 공판..."의문 있었지만 실무자 말 믿어"

등록|2013.11.21 18:38 수정|2013.11.21 18:38
김기용 전 경찰청장은 지난해 대통령 선거일을 이틀 앞둔 상황에서 '국정원 여직원의 대선 관련 댓글을 발견 못했다'는 경찰의 중간수사발표가 자신의 승인 하에 이뤄졌다고 밝혔다. 그는 '컴퓨터를 조사하면 댓글도 다 나온다'는 경찰청 실무자들의 말을 믿고 그렇게 판단했다고 증언했다. 

21일 서울중앙지벙법원 형사합의21부(이범균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김용판 전 서울청장에 대한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김기용 전 경찰청장은 검찰측 증인신문에서 "보도자료를 발표하는 날(12월 16일) 당일 저녁 9시를 전후해 (김용판) 서울청장이 전화 해 '분석이 거의 끝나간다. 분석이 끝나는 대로 발표하고자 한다'고 보고받았다"고 말하며 자신의 승인이 있었음을 인정했다. 김 전 경찰청장은 "당시엔 여야 정치권과 언론에서 빨리 발표하라는 주문이 많았고 결과가 나오면 최대한 빨리 발표하는 데에 대한 공감대가 다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보도자료를 밤 11시경 발표하게 된 상황과 관련, 김 경찰청장은 "'너무 늦은 시각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국민 관심 많은 사안이니 하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김용판 서울청장에게) '법과 원칙대로 하라'고 정확히 그렇게 말했다"며 "국민들이 궁금해 하는 사안이니까 그대로 진행해도 된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간수사결과 발표 당시 '충분한 수사 없이 국정원과 박근혜 후보에 유리한 발표를 했다', '컴퓨터만 조사해 댓글을 남기지 않았다는 결론이 타당하냐'는 비판이 드높았다. 김 전 경찰청장은 중간수사발표 전 관련 보고를 받을 당시 자신도 그런 식의 의문을 가졌다고 밝혔다.

그는 "사전검토보고라고 할지 명칭을 어떻게 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내가 '임의제출된 컴퓨터를 분석한 결과로 댓글을 달았는지 안 달았는지 판단할 수 있겠는가, 컴퓨터만 분석해서 댓글이 나오겠느냐'고 문제를 제기했고 (경찰청) 실무 과장·계장이 '이것만 해도 댓글이 나온다'고 보고했다"며 "나는 의문을 가졌지만 실무 관계자가 이걸 분석하면 컴퓨터에 다 남아있다고 보고해서 (최대한 빨리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게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이후 수서경찰서 수사과정에서 국정원 여직원이 '오늘의 유머 사이트'에 찬반표시를 하고, 댓글과 게시물을 남긴 사실이 속속 드러나면서 국정원의 대선개입 의혹이 실체를 드러내기 시작했고 경찰은 대선 뒤인 1월 3일부터 관련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결국 김기용 전 경찰청장은 서울경찰청의 컴퓨터 분석 결과와 실무관계자들의 말만 믿고 성급한 중간수사결과 발표를 결심한 셈.

"압수수색 영장 신청 재검토 지시도 내가 했다"

김기용 전 경찰청장은 지난 대선 국정원 댓글 사건 발생 직후 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재검토하라는 지시도 자신이 했다고 증언했다. 지난해 12월 12일 국정원 여직원의 컴퓨터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신청이 필요하다는 수서경찰서의 의견을 전달받았지만 김 경찰청장 본인이 재검토를 지시했다는 것. 재검토 지시가 김용판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에 의한 것이라는 권은희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의 증언과는 배치된다.

'(지난해 12월 12일 오전) 김용판 서울청장이 보고하면서 '압수수색 영장 신청에는 소명자료가 부족한 게 사실이지만, 신청하지 않으면 사건에 대한 모든 정치적 책임과 부담을 경찰이 떠안을 수 있으니 영장을 신청해 검찰 의견을 들어보자는 취지로 말했느냐'는 변호인측 신문에 대해 김기용 전 경찰청장은 "그런 것 같다"고 확인했다.

'재검토 지침에 대해 김용판 서울청장이 재차 영장신청을 하자고 청했느냐'는 질문에 김 전 경찰청장은 "그런 일이 있었던 것 같다"고 답했다. 자신의 재검토 지침에 대해 김 전 경찰청장은 "실무과장(김헌기 경찰청 지능범죄수사과장)이 와서 '서울청에서 영장을 신청하려 하는데 영장신청 요건에 맞지 않고, 대검찰청에서도 적절치 않다고 한다. 영장신청을 재고하는 게 좋겠다'고 보고했다"며 "이에 대해 '그럼 법과 원칙에 따라 하라. 되지도 않는 걸 공 떠넘기기식으로 하면 되겠느냐'고 했다"고 증언했다.

한편, 이날 증인으로 채택된 박원동 전 국정원 국익정보국장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았다. 박 전 국장은 국정원 여직원 사건 초기부터 김병찬 서울경찰청 수사2계장과 수십 차례 전화통화·문자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으로 드러난 국정원 연락관의 직속상관이다. 재판부는 다음달 12일 공판에서 박 전 국장에 대한 증인신문을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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