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응자, 아프리카 만나고 달라졌어요"
[찜! e시민기자] '아프리카 보통사람들 이야기' 연재하는 이근승 시민기자
'찜! e시민기자'는 한 주간 <오마이뉴스>에 기사를 올린 시민기자 중 인상적인 사람을 찾아 짧게 소개하는 코너입니다. '인상적'이라는 게 무슨 말이냐고요? 편집부를 울리거나 웃기거나 열 받게(?) 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편집부의 뇌리에 '쏘옥' 들어오는 게 인상적인 겁니다. 꼭 기사를 잘 써야 하는 건 아닙니다. 경력이 독특하거나 열정이 있거나... 여하튼 뭐든 눈에 들면 편집부는 바로 '찜' 합니다. 올해부터 '찜e시민기자'로 선정된 시민기자에게는 오마이북에서 나온 책 한 권을 선물로 드립니다. [편집자말]
개인적으로 가본 적 없는, 오로지 TV와 언론들을 통해서 본 아프리카의 모습은 항상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니, 우리와 다를 바 없을 텐데 왜 많은 사람들은 '아프리카'를 불쌍하고 미개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고 생각할까.
최근 나의 이런 의문을 조금은 해소해준 시민기자가 등장했다. 바로 이근승 기자. 그는 아프리카에서 봉사활동으로 보낸 3년을 토대로 기사를 쓰고 있다. 연재명은 '아프리카, 보통사람들 이야기'. 잔잔하지만 뭔가 사람 사는 냄새를 풍기는 그의 기사를 읽고 있으면, 자연스레 미소를 짓게 된다.
이번 주 찜!-e시민기자의 주인공인 이근승 기자를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 이근승 기자가 쓴 기사 보러 가기
▲ 탄자니아 오지여행 중 마을 사람과 함께... ⓒ 이근승
-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합니다.
"아프리카를 좋아해서 지금도 들락날락하고 있는 소시민이며, 언젠가는 그곳에서 살고 싶습니다."
- 아프리카 보통사람들에 대해 연재하고 계신데, 아프리카에는 언제, 왜 가게 되신 건가요?
"중국에서 국제 NGO 소속의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가, 2008년 잠비아 지부로 파견되어,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아프리카 땅을 밟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그 인연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 아프리카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셨나요?
"잠비아에서는 헌옷을 판매하였는데 이 수익금으로 에이즈, 고아원 지원 사업을 하는 단체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탄자니아에서는 국내단체 소속으로 킬리만자로 산자락에 있는 중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아프리카 역사를 가르쳤습니다."
- 아프리카에 다녀온 후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지진 않았나요? 달라졌다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려주세요.
"저도 물론 어느 아무개처럼 아프리카에 대해 무서운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잠비아 루사카 공항에서 약속 장소인 시내로 혼자 버스를 타고 가는데, 새까만 사람들 모두가 도둑, 강도로 보여 얼마나 가슴이 널뛰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 달 전 케냐 나이로비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것은 고향의 향기, 따스한 사람들이 사는 땅이자 낯선 이에게도 웃으며 다가오는 아프리카 냄새였습니다."
"한인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조명해 봤으면..."
▲ 세계적인 쇼나조각가 실베스타 무바이와 함께 ⓒ 이근승
"중소도시라서 6명 정도였습니다."
- 한인들이 아프리카인들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던데요.
"아프리카에 사는 거의 모든 외국인들이 그렇습니다. 표면적으로는 안전과 위생문제 때문이고요. 역사적 사회적 배경으로는 인종차별 혹은 인종간의 분리 의식이 그대로 고착화된 탓이겠죠.
그리고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아프리카 사람들과 동떨어져 살고 있으니, 아프리카에 관한 외부인들의 얘기가 수 백년 간 변함이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원시, 야만, 기아, 병, 야생동물 등…. 최초 아프리카 탐험대가 유럽 본국에 보낸 보고서와 21세기 TV 보도가 매우 비슷합니다.
그리고 한인에 한정해서 말씀드리면… 좀 더 그렇다라고 생각합니다. '고된 시집살이 한 며느리가 더 하듯'이, 식민지를 경험한 나라 사람들이 타자에 대해 더 큰 차별의식을 갖게 된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전 여기에 동의합니다. 주제를 벗어난 얘기를 하고 싶은데요. 가끔씩 언론에서 '자랑스런 한국인', '한국인의 역동성'이라면서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조명하거나, 국내에 거주하는 우리의 자기만족적인 시각을 반영하는 프로그램들이 TV에 나오는데요. 그보다는 한인 사회의 실상을 제대로 조명해 봤으면 합니다. 세계 어디에나 뿌리내린 인도, 중국, 유대인들과 비교한다면… 한인사회는 해당 사회에 동화되지도 못하고, 한인 내부에 통합의 구심점도 없으니까요. 이상은 주제넘은 이야기였습니다."
- 아프리카에서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뭔가요?
"우리나라 봉고만 한 차를 개조해서 버스로 이용하는데, 열 명이 타도 시원찮을 판에 24명이 탑니다. 학교로 가려면 족히 한 시간 동안, 정말 사지를 접을 대로 접어서 꼼짝하지 않고 있어야 했습니다."
- 아프리카에서 만난 이들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군가요.
"아무래도 같이 살던 킴비씨 가족입니다. 두 달 전 탄자니아에서 다시 재회했습니다."
- '아프리카'라고 하면, '못 사는 나라'라고만 생각하는 이들이 지금도 적지 않다고 보는데요. 아프리카에 대한 편견, 미개하다, 게으르다 등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아프리카의 종교와 철학>에서 존 음비티는 '미래란 아프리카인들에게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라고 합니다. 오지 않은 시간이기에 존재하지 않는 거죠. 또한 그들은 수천년 동안 수렵채집생활을 통해 자연에서 먹을 것을 얻었습니다. 많아도 필요한 만큼만 취하고, 부족하면 다른 곳에서 얻었습니다. 그러니 서두를 필요가 없고, 존재하지 않는 미래를 위해서 애써 준비를 하지 않습니다. 이렇게 아프리카인들은 현세적이고 현실에 만족하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우리를 비틀어 바라본다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으로 현재의 시간을 까먹고, 저마다 오지 않을 꿈을 갖기를 강요당하는 사회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너무 쉽게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너 그렇게 게을러 터져가지고 언제 집이라도 사겠어? 대체 뭐가 되려고 그래?'"
"아직도 영화나 매스컴은 아프리카의 부정적 이미지만 재생산"
- 최근 기사를 보면, '아프리카 사람들은 외지인들을 하늘같이 생각한다'고 돼 있던데, 그들은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걸까요?
"서양인들이 처음 아프리카에 등장한 시절, 그들은 아프리카 사람을 인간과 동물 사이에 위치한 별종이라고 생각할 정도였고, 나중엔 백인보다 열등한 인간으로 정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아무 부끄러움 없이 노예무역, 아파르트헤이트(남아프리카 공화국의 극단적인 인종차별정책과 제도) 등 비상식적인 일들이 계속되었고요. 이렇게 수 백년간 지속된 이러한 생각들은 서구인과 주변인에 쉽게 극복할 수 없을 만큼 두텁게 각인되었고, 역으로 피해자인 아프리카인들에게도 '외부인들은 자신들보다도 더 우월하다'고 생각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비록 '인종차별'이란 단어가 금기시될 정도로 많이 변했다지만, 아직도 영화나 매스컴은 아프리카의 어둡고 부정적인 이미지를 재생산하여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인들에게는 스스로에 대한 열등의식과 외부 세상에 대한 동경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거죠. 그리고 저처럼 이것이 동기가 되어 '불쌍한 아프리카를 돕는다'는 미명아래 찾아온 수많은 봉사자들 또한 아프리카 사람들에게는 일단 자신들보다 잘나고 똑똑하고 잘 사는 외부인들로만 보인다는 것입니다."
▲ 탄자니아 화산을 등반하다 초죽음이 되었다. 그 당시 얼굴이다. ⓒ 이근승
"단순함과 소박함이란 가치의 발견이겠죠. 저는 20년 전 배낭여행 이후 빠르고 복잡한 세상에서 현실 부적응자로 살다가, 다시 늦바람이 든 경우입니다."
- 집짓기 기사, 재밌게 봤습니다. 기사에 미처 쓰지 못한 에피소드는 없나요?
"기회를 주신다면, 모잠비크의 군대 막사에 며칠 동안 감금당한 일까지 쓰고 싶네요. 촛불도 없는 깜깜한 복도를 저벅저벅 걷는 순간, 심장이 말 그대로 땅바닥으로 떨어졌으니까요."
- 아프리카로 봉사를 떠나거나 여행을 가려는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아프리카에서의 봉사활동이 진짜 현지인들에게 도움이 되는지에 대해선 개인적으로는 의문이 있습니다. 다만 시간이 지나서 되돌아보면 그들이 오히려 내게 많은 도움이 되었구나, 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리고 아프리카를 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네요. '무서워하지 마세요. 순박한 사람들입니다'."
- <오마이뉴스>엔 지난 3월 첫 기사를 쓰셨어요. 초반엔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못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는데, 어떤 점이 가장 어려웠나요?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는데, 쉽게 풀어가는 게 만만치 않았습니다. 또 주관적인 경험과 이야기로 객관성을 끌어내는 데에 대한 부담을 항상 가지고 있습니다."
- 생나무와 잉걸 사이의 강을 어떻게 건너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딱딱하기 마련인 아프리카에 관한 깊은 이야기는 천천히 하기로 하고, 우선은 일반적인 여행 기사부터 써보자, 했는데 그때부터 잉걸로 당첨되었습니다."
- 기사를 본 독자 반응이나 지인 반응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쓴다 쓴다 하더만, 결국은 하네."
- 오마이뉴스 기사 중 인상 깊게 본 기사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오연호 기자의 <코펜하겐에서 걱정거리 없는 사람들을 만나다>입니다."
- 앞으로 어떤 내용을 다룰 예정인가요. 아프리카에 또 갈 계획이 있나요?
"할 얘기가 많은데요. 기회를 주신다면 오지 여행, 따스한 아프리카 사람들의 이야기 등을 중점적으로 쓰고 싶습니다. 현재 아프리카 수공예품과 짐바브웨 쇼나조각을 취급하는 보따리상을 하고 있는데, 운 좋게 올해도 세달 정도 있다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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