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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의 정치'가 지속되고 있는 일본

[주장] 일본 우경화의 문화적 이유

등록|2013.11.22 16:48 수정|2013.11.22 16:48
일본이 급속히 우경화한다며 많은 이들이 염려한다. 일본 밖에서는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지속적인 반대를 한다. 일본 내에서도 반대 목소리가 작지 않지만, 그것은 국제 관계나 외교적 차원에서 자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 때문일 때가 많다. 참배 자체를 반대하는 이들은 드물다. 신사 참배는 일본인에게 문화적 차원에서 익숙한 행위이기에 야스쿠니와 같은 국가주의적 신사 참배로 인한 국제적 문제의 소지는 언제나 상존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은 일본 문화사적 차원에서 보면 일본의 국가주의화는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사실을 염두에 두고 일본은 왜 자국 중심의 국가주의적 정책을 펼치는지 그 문화적 뿌리를 살펴보고자 한다. 근대사상가인 고야스 노부쿠니(子安宣邦, 1933~)의 입장에서 배운 바 크다는 사실을 미리 밝혀둔다.

동양의 고전인 <논어(論語)>에는 계로(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죽음과 귀신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질문하는 장면이 나온다.

계로가 '귀신 섬김(事鬼神)'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했다. '사람도 잘 못 섬기면서 어찌 귀(鬼)를 섬기겠는가.'(<논어> 선진)

공자의 관심은 사후 보다는 삶, 귀신보다는 사람에 있었지만, 공자의 대답은 별 의심 없이 귀신을 긍정하던 이들에게 귀신의 유무 및 존재 방식과 관련한 논란의 원천으로 작용했다. 죽은 이의 영혼이 어떻게 산 이의 삶에 관여할 수 있는지와 관련한 담론도 생겨났다. 주자(朱子)는 죽은 자나 산 자나 기(氣)로 이루어져 있으되 형태가 다를 뿐이라는 입장을 펼쳤다.

이러한 해설은 동아시아 사상가들의 귀신 담론 및 민중의 조상 숭배 체계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고, 새로운 귀신 담론의 또 다른 기반이 되었다. 이러한 담론을 통해 일본에서도 사람들은 죽음과 그 이후에 대해 생각했고, 죽은 이의 영혼에 대해 이야기했으며, 조상의 혼령에 제사를 지내면서, 이른바 귀신 관념을 생활화했다.

'자국 중심' 국가주의 정책의 문화적 뿌리 

고야스에 의하면, 일본에서 귀신담론은 오랫동안 사회를 움직여가는 살아있는 실재였다. 귀신담론이 정치적 정책과 만나면서 사회 통합의 강력한 근거로 작용해왔다. 실제로 일본 근대화의 틀을 결정지어준 메이지유신(한국의 시월'유신'도 이 메이지유신이라는 말을 따다 만들었다)은 조상 제사를 기반으로 하던 유교적 질서를 민중적 종교인 신도(神道)의 정서와 연결시키고 다시 국가적 차원으로 확장시키면서 성립되었다.

'호국영령'(護國英靈), 즉 '나라를 지키다 죽은 꽃다운 영혼'을 국가적 담론 속에 살게 하고, 국가와 국민의 제사 대상으로 재구성하면서, 천황을 정점으로 수직적 통일 국가체계를 확립하려고 했던 정치적 시도가 메이지 유신이다.

우리에게도 익숙한 '영령'이라는 말은 메이지시대 이래 전쟁을 통해 국가의 모양을 갖추어가던 과정에 나라를 위해 죽은 전몰 군인을 지칭하기 위해 일본에서 발명된 언어이다. 한국에서도 이 말을 별 생각 없이 따다 쓰고 있지만, 영령이라는 말 속에는 자민족 혹은 자국중심주의적 성격이 강하게 들어 있다.

좁게는 국민으로 하여금 국가 중심적 사유를 하게 함으로써 정권 유지에 이용되어온 말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지만, 일본에서의 '호국영령'은 국가와 국민의 제사 대상으로 재구성된 일종의 '담론상의 전사자'이다. 국가를 위해 존재해달라고 국가에 의해 요청된 영혼, 일종의 담론상의 귀신인 것이다.

이른바 귀신에 대한 상상이 국가적 이데올로기 속으로 들어오고 전쟁까지 불사하게 만드는 정치적 역학은 일본에서만 보이는 현상은 아니다. 가령 국가적 희생자(忠)를 현양하는(顯) 날(日)이라는 한국의 현충일(顯忠日)도 죽은 이들을 드높인다는 외적 명분하에 실상은 정치권력을 정당화하고 국민의 정신적 통합을 도모하기 위한 정치적 장치로 이용되어온 측면이 크다. 호국영령이라는 말이 오늘날까지도 살아 있는 국민의 머리를 숙이게 만들지 않던가. 현충일 역시 '귀신의 정치학'의 연장인 것이다.

일본 미에현에 이세신궁이라는 신사가 있다. 일본의 개국신 및 황실의 조상을 제사하는 신사이다. 우리에게도 종묘가 있는 것처럼, 이세신궁은 황실의 종묘이다. 동시에 천황이 전쟁의 개시와 그 종결이라는 국가의 대사를 보고하고 국가의 흥륭을 원하는 제국 신민들에 의해 떠받들어지는 제국의 큰 사당[大祠]이기도 했다.

제국주의화에 부합하는 혼령들만 야스쿠니신사로...

문제는 연초가 되면 수상이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것이 정례화되다시피 했다는 것이다. 야스쿠니신사에 참배하는 것은 일본 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있기도 하지만, 이세신궁에 참배하는 데 대해서는 문제 삼지 않는다. 나아가 천황이 즉위해서 제사를 드릴 때는 전국의 신사가 천황의 즉위를 봉축하는 깃발을 내건다.

이세신궁이 천황 중심의 국가적 통합을 이루어온 일본 정치의 연장선에 있다는 뜻이고, 일본의 전통 문화인 신도가 그저 개인적 행위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여전히 국가의 정치 행위 속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국가신도는 패전 이후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진행 중이다.

야스쿠니신사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야스쿠니신사는 메이지유신을 위한 내전 희생자들의 혼령을 모시고 국가적 차원에서 제사지내기 위해 창건(1868)된 신사이다. 그 뒤 청일전쟁과 태평양전쟁 등에 걸친 전몰자들의 영혼을 합사해 제사함으로써 백성으로 하여금 호국의 정신과 자세를 갖게 하는 데 기여해온 국가주의적 신사이다. 야스쿠니신사에는 213만3823위(位)의 영혼이 모셔져 있다.

하지만 모든 전쟁 희생자들, 모든 전몰자들이 모셔져 있는 것은 아니다. 야스쿠니신사에는 일본 정치의 제국주의화에 부합한다고 판단된 혼령들만 선별적으로 모셔져 있다. 야스쿠니신사는 그 자체로 특정한 의도적 해석이 개입되어 창건되고 운영되고 있는 신사라는 뜻이다. 그 기준은 오랫동안 천황을 중심으로 수직적 체계를 이루어온 일본 중심의 호국(護國)이었다.

이때 호국의 기준은 천황제 하의 국가 이데올로기를 현양시키는 데 도움이 되느냐 아니냐에 있었다. 야스쿠니신사 내 박물관인 '유취관(遊就館)'이 "영령을 현창하고"(英靈顯彰) "근대사의 진실을 밝힌다"는 두 가지 원칙에 따라 조성되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해석의 원리를 잘 보여준다. 희생자의 영이 '아름다운 영(英靈)'이 되고, 일본의 근대사가 그들에게 '진실'이려면, 사자의 혼령이 일본의 정신을 긍정적으로 고취시킨다고 해석될 만한 사건에 연루되어야 하는 것이다.

당연히 패전으로 국가적 영광에 상처를 입힌 사건의 희생자들은 국가적 제사 대상이 되지 못한다. 2차대전 당시 미국과의 최후 교전이 벌어졌던 오키나와 전투에서의 희생자는 국가가 제사지내지 않는다. 오키나와도 국가적 전쟁으로 인한 희생자이지만, 자랑스럽지는 않은 역사이다. 이런 식으로 국가가 관련된 제사에는 이미 국가주의적 혹은 자국 중심적 해석이 들어 있다. 

'한국이 월권행위 한다' 생각... 신사 참배 심리적 정당성으로

메이지시대 이래 일본인은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게 적응해왔다. 가정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과 비슷한 느낌으로 야스쿠니신사나 이세신궁을 이해하고 참배해왔다. 이들은 정치인의 야스쿠니 참배가 자국 중심일 뿐만 아니라 정권 유지와 강화를 위한 정치 행위라는 사실을 별반 인식하지 못한다.

도리어 이에 대해 문제 삼는 한국이나 중국이 월권행위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도 많다. 이런 분위기 탓에 총리나 국회의원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가 이어져가고, 그 속에 전쟁을 정당화해온 군국주의적 분위기도 다시 심리적 정당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런 분위기를 타고 힘을 얻는다. 

일본군으로 강제 동원되어 희생당한 뒤 야스쿠니신사에 강제로 합사되어 있는 한국인 강제징용 피해자 유족들이 야스쿠니신사를 방문해 부모형제의 이름을 빼달라고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도쿄지방법원에 강제 합사 철폐를 위한 2차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 소송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렇지만 며칠 전 <아사히신문>이 외교 마찰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새로운 전몰자 추도 방식을 만들 필요가 있다는 사설을 실은 것은 이러한 운동의 영향이라고 생각된다. 소수이긴 하지만 신사참배로 인한 외교 마찰을 피하려는 일본 내 흐름을 일부 감지할 수 있게 해주는 일들이다.

2001년도에도 A급 전범만을 분사해 따로 모시거나 태평양전쟁 당시 사망한 무명 군인들이 안치되어 있는 인근 치도리가부치 묘원을 확대하자는 제안이 나온 적이 있지만, 보수적 국회의원들과 야스쿠니신사 측이 반발해 무산된 적이 있다. 한번 합사된 영혼을 분사해본 적이 없다는 이유에서이지만, 국가주의적 상징성을 지니는 야스쿠니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야스쿠니 신사의 역할이나 상징성이 위축 가능성은 적지만, 외교적 마찰이라도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유력 일간지를 통해 나오는 것은 작은 변화의 첫걸음은 된다는 점에서 다행은 다행이다. 일본에서는 보이지 않는 귀신의 정치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이찬수씨는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현재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에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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