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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 합작으로 만든 김치, 더 맛있어요~

[공모-김장이야기] 중국인 대학원생들, 한국 김장을 배우다

등록|2013.11.27 10:30 수정|2013.11.27 10:30

▲ 외국인들도 껌뻑 넘어가는 김장 보쌈이 등장했다. ⓒ 나영준


외국을 다니며 가장 주의를 기울여야 하는 점 중 하나는 음식을 대하는 태도다. 특히 입에 맞지 않는 음식이 나왔을 때 오만상을 찌푸리는 것은 자칫 대접하는 이에게 큰 결례가 될 수 있다. 사실 말은 이렇게 하지만, 나 역시 중국에 갔을 때 음식 때문에 고생을 했다. 독특한 향의 고수와 중국 특유의 향신료가 뒤섞인 냄새에 "휴~" 하며 한숨부터 쉬었던 것이다.

다행히 나를 맞아주던 중국인들은 친절했고 음식에 낯설어하는 모습에도 그럴 수 있다며 입에 맞을 법한 다른 음식들을 시켜주며 웃음을 잃지 않았다. 사흘 정도 지나 현지 음식에 적응을 하긴 했지만, 아직도 미안함과 고마움을 동시에 느끼는 겸연쩍은 기억이다.

그래서 문득 TV에서 아직 한국문화에 낯선 외국인들에게 김치를 '손'으로 쭉 찢어 내밀거나, 청국장을 떠서 억지로 입에 넣어주는 걸 보면 약간은 불편하다. 정색을 하기도 애매한 상황. 힘겹게 넘기고 "Good!"이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려야만 좋다고 박수를 치는 모습들. 어쩌면 유아기적인 우월감을 보는 듯해 씁쓸하다.

한국인들이 중국음식 특유의 향을 못 이기는 것처럼, 중국 사람들은 매운 걸 몹시 싫어한다. 내가 만나본 대부분의 중국인들은 낯선 한국 음식이 나오면 한결같이 "라(맵냐)?" 하고 묻는다. "뿌라(안 맵다)!"라고 하면 그제야 조심스레 맛을 본다. 이런 중국인들에게 한국의 김치는 참으로 고약한 음식이다. 매운데다 어딜 가나 밥상에 오르니 말이다.

한국 김장은 왜 이웃사람들이 함께 해요?

▲ 중국 보하이 대학교 한국 교류처에 근무하는 중국인 선생님들이 김장 돕기에 나섰다. ⓒ 나영준


그렇다면 한국에서 9개월 남짓 생활한 중국인들에게 김치는 익숙해졌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흔히 먹는 배추김치는 물론 깍두기, 물김치, 갓김치까지 모두 섭렵했단다. 특히 라면과 함께 하는 맛이 일품이라니 김치의 중독성은 대단하다. 그래서 이제는 먹는 것뿐 아니라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고 한다.

지난 16일 오전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중국 보하이(발해)대학교 한국교류처에서 한국학생들에게 중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중국인 대학원생들의 김치 담그기 현장을 찾았다. 장지애(27), 인씨초(27), 인웨이(26), 한이씨(26), 장차오(24), 수이림슈(23) 등 5명의 중국인들이 한국 김장에 손을 보태고 싶다고 나섰다. 그들의 좌충우돌 김장 도전기를 함께 했다.

"김치 담그는 순서니까 잘 들어요. 배추를 소금물에 절여 하루 동안 숨을 죽인 다음, 무를 채 썰어서 고춧가루와 젓갈에 갖은 양념을 더해 배추 속을 만들고, 그걸 절여 놓은 배추에 알맞게 버무리면 돼요. 알았지요?"

처음보다는 한국말이 늘었지만 아직은 손짓 발짓이 더해져야 하는 상태의 중국인 선생님들은 한국교류처 학장 사모님 말씀에 귀를 쫑긋 세운 채 토끼눈을 하고 있다. 처음 보는 김장 풍경에 여전히 호기심 가득한 눈동자를 굴리다가 "에브리싱 믹스(Everything mix)"같은 콩글리시를 더하자 고개를 끄덕인다.

이곳 기숙사에서 매일 먹던 한국 김치가 다소 복잡한 과정을 거쳐 탄생되는 것을 지켜보며 서로 한 마디씩 거드는 중국인 선생님들. 그래도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지 고개를 갸웃거리던 여선생님이 기어이 질문을 던진다.

"아주머니들이 왜 이렇게 많아요?"

평소 오며가며 인사하던 동네 아주머니들이 한데 모인 것이 신기한 모양이다. 단독주택이 여러 채 남아있는 지역이라 가능한 김장품앗이의 생경한 풍경이다. 힘겹게 여러 단어들을 이어가며 이해를 돕는다. 한국만의 전통적인 생산방식에 신기해하면서도 부러운 눈치다.

김장, 어쩌면 도시에서 사라져가는 모습들

▲ '한중 합작' 김장이 이루어졌다. ⓒ 나영준


설명은 그렇게 해주었지만, 일부 과장이 섞이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문 열다 앞집 주민과 마주치기라도 하면, 불편하게 고개를 숙이는 현대사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전해주었어야 하나 싶은 생각도 얼핏 스친다.

어쩌면 도시에서는 김장 자체가 보기 힘든 풍경이기도 하다. 대형마트에 가면 먹기 좋게 숙성된 김치들이 종류 별로 즐비하니 말이다. 지갑만 열면 되니 일부러 사서 고생할 필요가 없다. 아쉬운 것은, 품을 줄이는 건 좋은데 맛을 통일시킨 탓에 그 집만의 독특한 맛들이 사라져 가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이 지역에서는 유효한 사실이다. 이웃뿐일까. 요 앞집은 지난 주말 시집간 딸이 와서 엄마의 김장을 도왔다고 한다. 김장은 고된 노동이지만 집 떠난 자식을 불러들이기도 하니, 세상사는 맛도 덤으로 묻어나는 만남의 장이기도 하다.

"김치에 굴은 왜 넣어요?"
"고춧가루 많이 넣으면 너무 맵지 않아요?"

질문이 쏟아진다. 김치에 넣는 게 어디 굴뿐일까. 지역과 입맛에 따라 생선을 통째로 넣기도 하고 문어, 오징어, 배와 사과, 대추, 밤, 잣, 고추씨 등을 함께 버무리기도 한다고 설명한다. 곁가지로 들어가는 재료와 숙성 기간에 따라 빚어내는 맛은 천차만별.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다양한 김치 맛을 한 번에 이해시키는 건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를 일이다.

사모님이 담그는 김치는 평균에 비해 조금 매운 편이다. 중국 선생님들은 평소 김치를 즐기지만, 매운 탓에 많은 양을 먹지는 못한다고 한다. 맵다는 건 맛이 아니라 혀가 느끼는 고통, 결국 혀가 아프다는 건데 이날 '맛있게 맵다'라는 말을 설명하기 위해 무던히 애썼지만 혹 '혀가 맛있게 아프다'로 들렸을까 걱정이 된다.

배추 속을 잎사귀 사이로 쓱쓱 묻혀내는 모습들이 제법 진지하다. 김장은 어머니들의 손길에서 맛이 좌우된다. 소금의 양이며 고춧가루와 젓갈, 갖은 양념의 양은 오직 손의 감각만으로 정해진다. 물론 남자들의 몫도 있다. 절인 배추를 옮기고 속을 버무린 배추를 알맞게 재놓는 일은 힘센 남자들의 역할이다. 실제 이날 한 선생님은 큰 대야에 담긴 속을 버무리느라 끙끙 앓는 소리를 냈다. 나머지 인원들도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닦아가며 자신의 몫을 해냈다.

대망의 뒤풀이, '한중합작' 김장이 완성되다

▲ 중국인들이 김치를 '먹는 것'에서 '담그는 것'으로의 체험에 나섰다. ⓒ 나영준


"자, 대충 끝난 것 같은데, 막걸리에 보쌈 하나씩 드시고 하세요."

기다리던 순간이다. 이 순간을 위해 일하는 것 아닐까. 노동의 진정한 즐거움은 새참거리에서 더해진다. 초겨울 날씨를 이기고 김을 모락모락 피워내는 삶은 돼지고기가 큰 접시 한 가득이다. 때깔 노랗게 절여진 배춧잎에 고기 한 점 척 얹고, 배추 속을 덮어 만든 보쌈을 입안으로 밀어 넣는다.

"하오 츠~ 한구어 라빠이차이!(한국 김치 맛있어요!)"

동시다발적이다. 선생님들은 누구랄 것 없이 엄지손가락을 치켜들며 "하오 츠(맛있다)"를 연발한다. 한국어를 제법 하는 선생님에게 과장해서 얘기 안 해도 된다고 하니, "노노 진짜 맛있어요!"라며 고개를 젓는다. 동네 아주머니들이 "까르르" 하며 막걸리도 한 잔씩 권한다. 꿀떡꿀떡 거침없이 목으로 넘긴다. 이럴 때 마시는 막걸리 한 잔은 술이 아닌 밥이라고 설명하자 크게 동의하는 표정이다.

기분 좋게 취기가 오르자 여선생님 한 명이 이렇게 맛있는 비결을 묻는다. 누군가 "그건 모두가 아침부터 땀 흘려 열심히 일한 한중 합작품이기 때문"이라고 말해주자 다들 "아~아"라며 박수를 친다. 웃음에 술 한 잔, 이야기 속에 고기 한 점. 어느덧 음식은 말끔히 동이 났다.

이날 김장에 참여한 중국 선생님들은 산둥성(山东省) 출신의 인씨초를 제외하면 모두 동북 3성 중 하나인 랴오닝성(辽宁省) 출신이다. 남방 지역과 내륙 지역의 중국인들은 모르겠지만, 이들은 평소 매운 맛에 익숙지 않다. 그런데도 스스로 담근 김치가 대견한지 먹성을 부린다.

물론 개인차는 있다. 장지애 선생님은 평소 잔치국수나 짜장밥을 먹을 때 한국라면 중 가장 매운 라면 스프를 뿌려 먹는단다. 인씨초 선생님은 한 술 더 뜬다. 매운 파뿌리를 통째로 고추장에 찍어 먹는다고 한다. 놀란 얼굴로 혀를 빼물자 김장을 마무리하던 장지애 선생님이 서툰 한국말로 떠듬떠듬 외친다.

"한국 김치 너무 맛있어요. 중국 가면 이제 김치 만들어 먹을 수 있어요. 진짜 맛있어요."
덧붙이는 글 '김장' 응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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