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20년 지기 친구가 있다. 초등학교 때 한 동네 살았는데 내 기억에는 희미하다. 하지만 그 친구에겐 뚜렷한 기억이라, 친구는 우리의 역사가 '친구하자' 맺은 고등학교 때가 아닌 초등학교 때부터라 말한다. 책을 좋아하는 취미도 같고 사는 모양새도 비슷해 우리는 말이 참 잘 통한다. 척 하면 착 하는 궁합에, 가끔 '우리 다음 생에는 너는 남자 나는 여자 이렇게 태어나자꾸나' 하며 우정을 다진다.
친구와 있으니 목으로 넘어가는 대포도 참 맛나다
요 근래 속 썩이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언짢았던 참에, 친구가 금요일 휴가를 내었다고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보기도 하지만 속 썩은 일을 푸념할 생각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발이 붕붕 뜬다. 반가운 친구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신촌 뒷골목으로 가다 대학교 때 우리가 잘 가던 바가 있었던 자리를 한번 가보았다. 꽤 단골이었는데 말 한마디 없이 가게가 없어져 우리는 볼 때마다 참 아쉽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산다는 건 우리가 원치 않은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우리는 술을 마실 수 있는 공식적인 나이가 되어서부터 줄창 신촌에서 술을 마셨다. 없어져 버린 바도 그렇지만 커다란 파전과 대나무에 찐 달걀찜이 일품인 막걸리 집은 지금도 종종 들르는 곳이다.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 삐걱대는 의자에 엉덩이를 간신히 앉히고 대포와 뜨끈한 조개탕을 주문한다.
몇 해 전부터 조금씩 불기 시작한 복고 바람에 복고를 주제로 한 케이블TV 드라마가 인기고 30~40대가 드나드는 전용 클럽이 유행이라지만, 이 막걸리 집에 앉아 있으면 우리는 슝 하고 다시 대학교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익숙한 노래와 익숙한 분위기 그리고 오래 못 보아도 어제 본 것 같은 친구와 있으니 넘어가는 대포도 참 맛나다.
잘 살아보자꾸나 내 친구야
이렇고 저렇고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가 오고 간다. 친구는 직장이 분당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바람에 거리도 멀거니와 인원도 감축돼 업무가 과하여 힘들다 했다. 얼굴도 수척하고 까칠하여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짠하다. 나는 나대로 사람 하나가 망쳐버린 일로 언짢아진 속내를 말하며 친구에게 원 없이 위로를 받는다.
대포가 비워지고 잘 익은 달걀찜이 나올 때쯤 우리는 서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묻는다. 친구와 나는 서로 10년이 넘게 해오던 일을 미루고 제2의 직장을 위해 공부 중이다.
친구도 나도 회사에서 중간 간부의 나이가 되니 앞으로 할 일 보다 그동안 해왔던 일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나는 더 달릴 수 있는데 회사는 고삐를 잡고 사회는 달리는 발목을 움켜쥔다. 서글프고 억울하지만 주저앉아 징징거릴 순 없기에 나와 친구는 신통하게도 같은 시기에 제2기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 사회에서 30대 중후반의 여자가 지금 시작해도 정년이 조금 더 보장될 거라 보이는 일을 찾았다. 친구는 친구의 적성을 살려 나도 나의 성향을 고려했고 우리는 열심히 숨을 고르는 중이다.
친구이지만 서로 "나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해" 하고 말을 떼기가 참 어려웠다. 주변에서 '잘하고 있는 일이나 하지 사서 고생'이라며 나무라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여 기운이 빠지던 참이었다. 모두 걱정되고 혹여 더 고생될까 하는 말이었지만 사실 우리도 확신이 없으니 더 기운이 빠졌을 것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터놓고 우리는 "역시나~ 너도 그렇구나. 너도 나도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하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선택한 길을 잘 걸어가라 등 두드려주며 기운을 돋고 있다.
친구야 이 세상 내가 너의 빽이 되어줄게!
세상은 흐르는데 이제 반도 살지 않은 우리가 과연 잘 걸어가고 있는지는 나도 친구도 아무도 모른다. 일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아까운 시기라는 것도 알고, 말만 좋은 제2의 직장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도 감내해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뻔히 보이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뒤 알몸으로 툭 던져질 내 모습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우리가 가진 것 무엇이겠는가. 앞으로 살아갈 까마득히 남은 날과 그 길을 함께 가는 친구가 있다. 세상은 참 무섭게 변한다. 무섭게 변하는 세상 우리 한탄만 하지 말고 "그래 네가 이렇게 변하면 나는 요렇게 살아볼게" 하며 대들며 살아가보자. 지 까짓 게 어쩌겠는가. 그래 봤자 내가 사는 세상일 뿐인 것을. 그리고 나에겐 동시대를 살며 같은 고민을 하는 든든한 친구라는 '빽'이 있다.
친구와 있으니 목으로 넘어가는 대포도 참 맛나다
요 근래 속 썩이는 사람이 있어 마음이 언짢았던 참에, 친구가 금요일 휴가를 내었다고 만나자고 연락이 왔다. 오랜만에 보기도 하지만 속 썩은 일을 푸념할 생각에 친구를 만나러 가는 발이 붕붕 뜬다. 반가운 친구와 다정하게 팔짱을 끼고 신촌 뒷골목으로 가다 대학교 때 우리가 잘 가던 바가 있었던 자리를 한번 가보았다. 꽤 단골이었는데 말 한마디 없이 가게가 없어져 우리는 볼 때마다 참 아쉽다. 그렇게 시간은 무심하게 흐르고 산다는 건 우리가 원치 않은 모양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 오랜 친구와 대포가 참 맛있다. ⓒ 조경희
우리는 술을 마실 수 있는 공식적인 나이가 되어서부터 줄창 신촌에서 술을 마셨다. 없어져 버린 바도 그렇지만 커다란 파전과 대나무에 찐 달걀찜이 일품인 막걸리 집은 지금도 종종 들르는 곳이다. 이제는 낡을 대로 낡아 삐걱대는 의자에 엉덩이를 간신히 앉히고 대포와 뜨끈한 조개탕을 주문한다.
몇 해 전부터 조금씩 불기 시작한 복고 바람에 복고를 주제로 한 케이블TV 드라마가 인기고 30~40대가 드나드는 전용 클럽이 유행이라지만, 이 막걸리 집에 앉아 있으면 우리는 슝 하고 다시 대학교 때로 돌아갈 수 있다. 익숙한 노래와 익숙한 분위기 그리고 오래 못 보아도 어제 본 것 같은 친구와 있으니 넘어가는 대포도 참 맛나다.
잘 살아보자꾸나 내 친구야
이렇고 저렇고 그동안 살아온 이야기가 오고 간다. 친구는 직장이 분당으로 이사를 가게 되는 바람에 거리도 멀거니와 인원도 감축돼 업무가 과하여 힘들다 했다. 얼굴도 수척하고 까칠하여 이야기를 듣는 내내 마음이 짠하다. 나는 나대로 사람 하나가 망쳐버린 일로 언짢아진 속내를 말하며 친구에게 원 없이 위로를 받는다.
대포가 비워지고 잘 익은 달걀찜이 나올 때쯤 우리는 서로 새롭게 준비하고 있는 일에 대해 묻는다. 친구와 나는 서로 10년이 넘게 해오던 일을 미루고 제2의 직장을 위해 공부 중이다.
▲ 동시대를 살고 있어 든든한 내 친구 ⓒ 조경희
친구도 나도 회사에서 중간 간부의 나이가 되니 앞으로 할 일 보다 그동안 해왔던 일이 더 많이 쌓여 있었다. 나는 더 달릴 수 있는데 회사는 고삐를 잡고 사회는 달리는 발목을 움켜쥔다. 서글프고 억울하지만 주저앉아 징징거릴 순 없기에 나와 친구는 신통하게도 같은 시기에 제2기를 준비하고 있다. 우리는 나름대로 이 사회에서 30대 중후반의 여자가 지금 시작해도 정년이 조금 더 보장될 거라 보이는 일을 찾았다. 친구는 친구의 적성을 살려 나도 나의 성향을 고려했고 우리는 열심히 숨을 고르는 중이다.
친구이지만 서로 "나 새로운 일을 해보려고 해" 하고 말을 떼기가 참 어려웠다. 주변에서 '잘하고 있는 일이나 하지 사서 고생'이라며 나무라기도 하고 말리기도 하여 기운이 빠지던 참이었다. 모두 걱정되고 혹여 더 고생될까 하는 말이었지만 사실 우리도 확신이 없으니 더 기운이 빠졌을 것이다. 친구와 이야기를 터놓고 우리는 "역시나~ 너도 그렇구나. 너도 나도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하며 반겨주었다. 그리고 이제는 서로 선택한 길을 잘 걸어가라 등 두드려주며 기운을 돋고 있다.
친구야 이 세상 내가 너의 빽이 되어줄게!
세상은 흐르는데 이제 반도 살지 않은 우리가 과연 잘 걸어가고 있는지는 나도 친구도 아무도 모른다. 일을 다시 시작하기에는 아까운 시기라는 것도 알고, 말만 좋은 제2의 직장을 위해 포기해야 할 것도 감내해야 할 것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뻔히 보이는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뒤 알몸으로 툭 던져질 내 모습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우리가 가진 것 무엇이겠는가. 앞으로 살아갈 까마득히 남은 날과 그 길을 함께 가는 친구가 있다. 세상은 참 무섭게 변한다. 무섭게 변하는 세상 우리 한탄만 하지 말고 "그래 네가 이렇게 변하면 나는 요렇게 살아볼게" 하며 대들며 살아가보자. 지 까짓 게 어쩌겠는가. 그래 봤자 내가 사는 세상일 뿐인 것을. 그리고 나에겐 동시대를 살며 같은 고민을 하는 든든한 친구라는 '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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