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대 사이 땀구멍... 지구는 숨이 가쁘다
[디카詩로 여는 세상 17] <순천만 갈대밭>
▲ 순천만 갈대밭 ⓒ 이상옥
모공을 뚫고 비죽 비죽한 갈대 사이로
여기 저기 땀구멍이 숭숭,
지구는 연신 숨이 가쁘다
- 이상옥의 디카시 <순천만 갈대밭>
몇 주 전 바람처럼 순천만 갈대밭을 다녀왔다. 비가 부슬부슬 오는 가운데 사람들은 갈대숲으로 모여든다. 도시의 아스팔트를 밟고 사는 사람들. 흙이, 그리워서 그런 것일 게다. 물과 흙으로 빚은 순천만 습지만큼 생의 본원적 그리움을 일게 하는 게 또 있을까, 싶다. 순천만 갈대숲 군락은 세계 5대 연안습지를 기반으로 하여 약 2.3km의 국내 최대 규모로 장관을 이루고 있다.
순천만은 70만 평의 빽빽한 갈대밭과 끝이 보이지 않는 800만 평의 광활한 갯벌로 이루어져 있어, 농게, 칠게, 짱뚱어 등과 같은 갯벌 생물 서식하며 겨울이면 흑두루미, 재두루미, 노랑부리저어새, 큰고니, 검은머리물떼새 등 희귀 철새가 찾아와서 노니는 정말 특별한, 에덴동산의 원형과 같은 곳이다.
갈대숲 나무테크길을 걸으며 마음을 풀어 놓다
어느 계절이든 다 아름답겠지만 특히 순천만 갈대는 늦가을에서 초겨울까지가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갈대숲 나무테크길을 따라 걷는 기분은 마치 태초의 아담과 이브가 된 듯하기도 하다. 눈앞에 펼쳐지는 무한한 습지, 아스팔트에 경직되고 긴장된 마음 여기에다 다 풀어놓고 가도 좋을 듯하지 않는가.
▲ 비 오는 만추 순천만 갈대숲 나무테크길을 걷는 사람들 ⓒ 이상옥
습지는 겉으로 보기에는 별 것 아닌 듯하지만, 로마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은 것처럼 습지는 오랜 세월의 누적에 의해서만 만들어졌다. 수많은 시간이 퇴적되어, 많은 양의 퇴적물이 쌓이고 쌓여 수많은 수생식물들이 자랄 수 있는 최적의 생태환경이 조성된다.
순천만은 그 역사가 8천 년이나 된다고 하니.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습지의 퇴적물은 수 천 년의 세월을 담고 있다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득하기만 하다. 우리는 왕왕 개발이라는 미명 하에 한 순간 8천 년을 현실에서 지워버리기도 하지 않았던가.
순천만은 8천 년 동안 바닷물과 민물이 섞여 염분이 적어졌고, 강물을 따라 유입된 토사와 유기물이 바닷물의 조수작용을 일으켜 지금 같은 거대한 갯벌을 형성했다는 것.
순천만 연안습지... "와서, 보라!"
순천만 습지를 와서 보니, 왜 습지의 날이 제정되었는지 알겠다. 1971년 12월 이란의 람사르(Ramsar)에서 국제습지조약인 '람사르협약'을 채택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1997년 습지의 날이 매년 2월 2일로 제정됐는데, 우리나라도 1997년 7월 28일 101번째로 람사르협약에 가입해 2002년부터 환경부 주관으로 습지의 날 행사를 개최한다.
▲ S자형으로 흐르는 물길을 따라 배도 흐르고 하늘도 흐르는 가운데 갈대밭이 섬처럼 보인다 ⓒ 이상옥
왜, 습지의 날이 중요하고, 환경이 중요한지, 책에서 읽은 관념적 지식만으로는 실감이 나지 않는다. 순천만 연안습지 갈대숲에 "와서, 보라!" 그러면 관념적 지식이 육화된 지식으로 바뀐다.
지구라는 거대한 유기체도 피부호흡을 해야 생명을 유지할 텐데. 점점 아스팔트로 지구의 땀구멍을 막아버리니, 지구는 숨이 가쁠 수밖에. 순천만 갈대밭에 숭숭 나 있는 숨이 가픈 지구의 땀구멍을 보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예나지금이나 의연한 지구인 것 같지만 실상은 몇 남지 않은 땀구멍으로 피부 호흡을 하느라, 지구는 숨 가쁜 것이다.
덧붙이는 글
디카시는 필자가 2004년 처음 사용한 신조어로, 이제는 채호석 교수가 쓴 <청소년을 위한 한국현대문학사>(두리미디어, 2009)에 새로운 시문학의 한 장르로 소개되어 있을 만큼 대중화되었다. 디카시는 스마트폰으로 자연이나 사물에서 시적 형상(날시)을 순간 포착(영상+문자)하여, SNS 등으로 실시간 순간 소통을 지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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