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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 17cm짜리 인간이 태어난다면?

[서평]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신간 <제3인류>

등록|2013.11.24 15:12 수정|2013.11.24 19:23
프랑스 현지보다 국내에서 더욱 유명한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가 새로운 소설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제3인류>라는 소설 제목처럼, 그의 작품에는 현재의 인류와 더불어 또 다른 인류에 대한 상상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소설 <제3인류>는 수천 년 전에 멸종된 '거대인류'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샤를 웰즈 연구팀의 탐사로 시작된다. 그는 남극의 얼음 밑에서 빙하기에 얼어죽은 동물이 생생한 상태로 보존도 있음을 발견한다. 이 생물은 현생 인류의 10배 크기인 17미터 신장의 또 다른 인간이다. 그러나 이 충격적인 발견을 세상에 미처 알리기도 전에 그는 불의의 사고로 동사하고 만다.

의문의 사고가 발생한 지 얼마 뒤, 프랑스 대통령은 인류가 처한 위기상황에 대한 보고를 받고 오비츠 대령에게 즉각 비밀프로젝트를 구성할 것을 명령한다. 현재로부터 멀지 않은 미래, 인류는 한층 심해진 환경파괴·자원고갈·기아로 고통받는다. 이에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여성화'와 '소형화'라고 귀결되고, 두 명의 과학자를 중심으로 연구가 이어지게 된다. 벌과 개미의 사회가 안정적으로 위기 상황을 타계하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다.

그리하여 연구팀은 결국 인간보다 10배 작은 17센티미터 신장의 또 다른 인류 '에마슈'를 탄생시킨다. 소설 속에서 에마슈는 핵무기 투하를 통해 종교적 야망을 드러내는 이란의 군사행위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지만, 작전 도중 정체가 발각되자 '다른 행성으로부터 온 외계인'으로 신분을 위장한다. 그러나 이마저도 거짓임이 드러나고, 에마슈에 대한 인식은 당초 그들의 탄생 이유였던 '인류의 희망'으로부터 멀어지게 된다.

한편, 2011년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전을 줄이려던 노력이 무산되고 여전히 원전을 고수하던 일본에 또 다시 쓰나미가 덮치고, 망가진 원전으로 수만 명의 목숨이 위기에 처한다. 윤리적 문제로 '에마슈를 제거하라'는 요구가 커지던 와중에 '에마슈'들은 그들의 진가를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생각에 사고 수습에 재빠르게 투입된다. 과연 미니 인간 '에마슈'와 현생 인류의 관계는 어찌 될까. 현재까지 발간된 두 권의 <제3인류>는 여기까지의 우여곡절을 담은 1편이다.

인류는 과연 어디로 나아갈 것인가

▲ <제3인류>의 표지. ⓒ 열린책들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신간 <제3인류>는 작가의 팬이라면 충분히 즐길만한 요소가 많이 녹아들어 있다. 그의 과거작품 <개미>부터 최초의 인류를 소재로 삼은 <아버지들의 아버지>, 전생과 사후세계를 담은 <타나토노트>는 물론이고 지구 밖으로 14만 명의 탑승자를 태우고 떠나는 우주비행선 이야기 <파피용>까지. 베르베르가 지금까지 써왔던 소설들의 소재가 마치 영화나 드라마의 '까메오 출연'처럼 곳곳에서 등장하기 때문이다.

또한 소설의 구성 역시 지난 작품들처럼 여러 개의 시점이 번갈아서 이어진다. 마치 여러 개의 실이 엮이면서 하나의 옷감이 되듯, 전혀 상관관계가 없을 것 같은 이야기들이 어느 시기에 이르러서 연결되며 하나의 긴 이야기를 만든다. 다만 평소 두 개의 시점으로 이뤄지던 게 이번에는 세 개로 늘어났는데, '지구'에도 생명과 의식이 있다고 가정해 하나의 시점으로 추가한 게 인상적이다.

소설 <제3인류> 속에서 지구는 스스로의 의지로 생명을 진화시키고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를 원하는 존재다. 그러나 인류는 점점 그의 메시지를 듣는 일로부터 멀어지고, 지나치게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환경을 파괴하고 자원을 고갈시킨다. 이에 분노한 지구는 스페인 독감과 각종 자연재해로 인류에게 경고 메시지를 보낸다.

아마 작가는 '끊임없는 개발과 자연파괴 때문에 인류가 자멸하지 않을까'라는 의문을 던지고 싶은 것 같다. 씁쓸하게도 현재 시점에서, 인류의 미래가 밝아보이지 않는 것 또한 마찬가지의 이유기 때문이다.

전작 <파피용>에서 주인공들은 인류로 인해 파괴된 지구를 포기하고, 거대한 우주함선을 타고 지구를 탈출한다. 또 다른 행성을 찾아 떠나면서, 14만 명이 오랜 우주항해를 겪는 동안 고스란히 인류의 역사를 되풀이하는 우화를 보여줬다. 이번 <제3인류>에서는 아마도 포기하지 않고, 지구 안에서 행성과 인류 간의 소통을 그려내는 쪽으로 이야기의 가닥을 잡아가는 듯하다.

<제3인류>에서 베르베르는 다시 한번 상상력을 마음껏 펼치면서 인류의 다양한 가능성을 그려냈다. 비록 픽션이지만, 저자가 과거 과학잡지 기자로 근무하면서 얻은 지식이 담겨있다. 이 소설을 통해 한번쯤 인류의 행위를 되돌아보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작가의 메시지처럼, 더 늦기 전에 '우리는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라는 물음을 던져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제3인류> (베르나르 베르베르 씀 |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13.10. | 1만3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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