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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종박(從朴) 아니면 종북(從北)이라는 '매카시 프레임'

등록|2013.11.25 08:58 수정|2013.11.25 09:17

▲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 ⓒ 연합뉴스


"그 사람들의 조국이 어디인지 의심스럽다."

지난 23일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이 춘추관에서 기자들에게 한 말이다. 전날 있었던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신부의 '연평도 포격' 발언을 겨냥한 것이다. 이 수석의 말은 정의구현사제단의 이념적 정체성에 대한 문제 제기였다. 듣기에 따라서는 '당신들의 이념적 조국은 북한 아니냐, 그러고도 사제냐'는 힐난으로 여겨진다.

정의구현사제단 전주교구 사제들의 '박근혜 대통령 퇴진 촉구 미사'가 열릴 예정이었던 22일 오전, 이 수석은 "기도는 잘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은총을 기원하는 것인데, 국민이 뽑은 대통령의 사퇴를 촉구하는 것은 잘되라는 것이 아니라고 본다"며 불쾌감을 표시했다. 이 발언에 한해서는 오랜만에 '오프 더 레코드(비보도)'나 '익명'이라는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다.

시국미사 이후, 이정현 수석의 가려움증을 긁어주는 듯한 직설적인 발언이 새누리당에서 터져 나왔다. 김태흠 원내 대변인은 "극소수 사제들이 북한과 통합진보당의 주장과 유사한 언행으로 사회와 국가를 분열의 길로 이끌고 있는 것은 아닌지 심히 유감스럽다"면서 "정의구현사제단의 일부는 '종북구현사제단'에 가깝다는 비판까지 나오고 있다"며 한 걸음 더 나갔다. '종북'이라는 단어까지 튀어나왔다.

한 번 트인 물꼬는 십자포화 발언으로 이어졌다. 국회 국방위원장인 유승민 의원은 "박창신 신부는 국민 앞에 고해성사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상현 의원은 "(정의구현사제단이) 대한민국 정통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군 장성 출신 새누리당 의원들도 "사제단의 망언에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국방부도 "북한 도발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국가안보를 위해 헌신한 이들에게 모욕감을 주는 비이성적 행위"라고 비난했다.

이정현 청와대 홍보수석과 새누리당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정의구현사제단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었다. 그 근거는 박창신 신부의 시국미사 강론 내용이었다. 더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전체 26분 동안의 강론 가운데 NLL(북방한계선), 천안함, 연평도 포격이 거론된 후반부 3분이었다. 그 3분마저도 전후 맥락은 들어내고, 입맛에 맞는 문장 몇 개만 취사선택했다. 그렇게 분절된 문장은 전체 강론의 맥락과 의미를 송두리째 삼켜버리는 도구로 쓰였다. 전형적인 '매카시 프레임'이다.

박창신 신부의 강론 전체를 살펴보면...

▲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박창신 전주교구 원로신부가 지난 22일 전북 군산시 수송동성당에서 열린 '불법 선거 규탄과 대통령 사퇴를 촉구하는 시국미사'에서 강론을 하고 있다. ⓒ 장재완


박창신 신부가 절대적인 시간을 할애했던, 언론에 의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23분 동안의 강론은 주로 이런 내용이었다.

"지금 이 땅에는 정의도 없고, 법도 없고, 폭력적인 불통의 힘만이 있습니다... 국정원과 모든 국가기관의 대선 정치개입으로 생긴 부정선거, 그로 인해 합법적이지 못한 대통령 당선으로 정권교체의 꿈이 깨지는, 민주주의가 붕괴되고 그 무서운 유신시대로 복귀하고 있는 현실, 남과 북이 갈라져 평화가 위협을 당하는 현실에서 하는 간절한 기도가 되어야 합니다."

"정당성을 잃은 권력은 봉사하지 않는 권력입니다. 정당하지 못한 부유함은 그러니까 부유한 돈은 민중, 도시서민과 노동자 농민의 생업을 공격합니다. 부당한 권력과 잘못된 재물인 세상의 죄는 많은 사람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인권을 침해하며 희망없는 세상, 억압과 착취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세상으로 만들어갑니다."

"노동자 농민, 빨갱이 아닙니다. 우리나라 산업을 위해서 열심히 몸바쳐서 일했던. 지금 기업인들은 정부에서 돈 대주고 해서 돈 벌지만, 이들은 몸으로 이 사회를 산업화로 일으킨 우리나라 일꾼들인데 왜 종북주의자로 모느냐, 그 말입니다. 이걸 가지고 대통령선거 때 써먹는다. 이걸 가지고 국회의원 선거 때 써먹는다. 자기들이 어려우면 종북주의자로 (만들고). 이런 유사한 사건이 많습니다."

"정권교체 이뤄져야 하는데 국정원이 대선 개입을 한 겁니다. 어제까지 뭐 122만 몇천... 오늘 신문에는 청와대 누가 그 사이버에 이렇게 사람들을 대줬다... 캐면 캘수록 엄청난, 국가의 중립을 지켜야 할 이들이 계획을 한 거예요. 심지어는 국가보훈처와 군인이. 심지어는 여행사에서 땅굴 견학시키면서 종북몰이 한 겁니다."

박 신부의 강론이 일방적 북한 편들기라고?

강론 마지막 부분에 이르자 비로소 박 신부는 '이명박 전 대통령 구속수사'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주장하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NLL, 천안함, 연평도 포격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NLL 지역에서 한미군사합동훈련 한단 말이에요. 여러분 군사훈련 하면 포 사격해야 하고 보초도 더 잘 서야 하고 그렇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이지스함에 1000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게 세 대나 있다는데 엄청난 그 눈을 가지고 훈련을 하고 있는데, 북한 함정이 와서 어뢰를 쏘고 갔다? 이해가 갑니까? 그러면 북한은 굉장한 기술이 있네, 세계를 정복할 수 있네, 이해가 갑니까, 여러분?"

"여러분 NLL 아시죠? NLL이 뭡니까, 여러분? 북방한계선이에요. NLL은 유엔군사령관이 우리 쪽에서 북한으로 가지 못하게 잠시 그어놓은 거에요. 북한 하고는 아무 상관 없고. 휴전협정에도 없는 거예요. 군사분계선도 아니에요. 군사분계선은 해상에는 없어요. 북한하고도 아무 상관 없지만, 북한에서는 이 NLL이 우리 공해상 우리 선이다, 왜 이리 와서 훈련하느냐(고 따집니다)."

"그러면 NLL, 문제 있는 땅에서 한미군사운동(훈련)을 계속하면 북한에서 어떻게 하겠어요? (청중이 '쏘아요'라고 대답하자, 이 양반이 국가보안법에 걸리네) 쏴야지. 그것이 연평도 포격 사건이에요. 그래 놓고 북한을 적으로 만들어가지고 지금까지 이 난리를 치르고 선거에 이용한 겁니다."

전반부 23분의 강론 내용은 차치하고, 후반부 3분가량의 내용만 자세히 들여다봐도 박 신부의 강론이 일방적으로 북한의 주장에 동조했다고 보기 어렵다. 오히려 지금까지 불식되지 않은 천안함 침몰의 의문점, NLL 논란, 남북의 적대적 대치 상황에 대한 박 신부의 주관을 밝힌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이러한 박 신부의 생각은 '틀리다'가 아니라 '다르다'로 해석돼야 한다. 전체주의나 독재국가라면 모를까, 적어도 다양한 생각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국가라면 말이다.

'친북'에서 '종북'으로, '친박'에서 '종박'으로

▲ 박근혜 대통령이 9월 16일 오후 국회 사랑재에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3자 회담을 마친 뒤 정진석 국회 사무총장과 윤상현 새누리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배웅을 받으며 차량에 오르고 있다. ⓒ 연합뉴스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지나 이명박 정부로 넘어오면서, '친북(親北)'이 '종북(從北)'이라는 프레임으로 변했다. 보수가 야당일 때는 다소 방어적인 '친북' 프레임을 쓰다가, 보수가 집권하자 공격적인 '종북' 프레임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박근혜 정부로 넘어오면서는 '친박(親朴)'이 사라지고 '종박(從朴)'만 남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식화되자, 수평적인 연대처럼 보였던 '친박'이, 수직적인 상명하복의 조직처럼 바뀐 것이다.

'친박'의 자리를 '종박'이 대체하면서 생긴 또 다른 변화는 '복고'다. 박근혜 대통령부터 솔선수범해 '새마을운동', '한강의 기적'이라는 단어를 부활시켰다. 청와대와 여당에서는 이에 질세라 새로운 냉전을 떠올리게 만드는 '종북'을 만병통치약으로 만들었다. 지금과 같은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이념적 잣대라면, 대한민국 국민은 딱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종박'이거나 '종북'. 그 둘을 구별하는 족집게 감별사는 다름 아닌 '매카시 프레임'이다.

이번 논란의 중심에 선, 박창신 신부는 광주민주화운동유공자다. 1980년 6월 전북 익산에서 성당 관할지역에 '전두환 광주 살육 작전'이라는 유인물을 뿌렸다가 사제관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무자비한 구타를 당해 중상을 입어, 그 후유증으로 지금도 다리를 전다. 당시 '빨갱이 신부'로 낙인찍혔던 그가 지금에 와서는 '종북 사제'라는 틀에 갇혀버렸다. 부당한 권력에 저항했다는 이유만으로.

박창신 신부 강론 중 일부를 문제 삼아 총공세를 퍼붓고 있는 청와대와 여당에 묻고 싶다. 대한문 앞에서 225일 동안 쉼 없이 진행된 매일 미사에 한 번이라도 참석해봤느냐고. 아니면, 225번의 대한문 미사 강론을 하루치라도 보거나 들은 적이 있냐고. 그것도 아니라면, 이 미사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기도하는 내용인지 아느냐고. 정작 청와대와 여당이 관심을 가졌어야 했던 건 대한문 미사였다. 그 미사 강론에, 박근혜 정부가 캐치프레이즈로 내건 '국민행복 시대'를 열어나갈 열쇠가 있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대한문 앞에서는 마지막 미사가 열렸다. 그동안 쌍용차 해고 노동자와 가족들, 이들과 함께하고자 하는 많은 이들을 하나의 가족으로 묶어 준 게 대한문 미사였다. 그 미사를 주관하고, 날씨가 맑으나 궂으나 한결같이 함께 했던 이들이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들이었다. 대한문 미사에 참석했던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은 "대한문 미사는 생명을 살리는 동아줄 같다"고 고백한다. 대한문 미사가 시작되고 나서, 쌍용차 노동자들의 잇따른 죽음 행렬이 멈췄다. 꺼져가던 희망의 불씨도 되살아났다. 대한문 미사는 소외되고 상처받은 많은 이들의 안식처였다.

매카시는 무엇 때문에 자멸했을까?

한국판 '매카시 프레임'을 전가의 보도처럼 쓰고 있는 청와대와 새누리당에 되묻고 싶다. '당신들의 조국은 어디냐'고. 매카시 공화국인지, 민주주의 공화국인지? 그리고 한 가지 꼭 알려주고 싶은 게 있다. 매카시가 어떤 종말을 맞았는지. 참고로, <한겨레>(11월 1일자)에 게재된 김연철 인제대 교수의 칼럼 '누가 매카시를 죽였을까?'라는 칼럼 내용을 소개한다.

"누가 매카시를 죽였을까? 아는가? 그는 자멸했다. 언제나 권력은 오만으로 무너진다. 그는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했다. 왜 육군에도 공산주의자가 있다고 떠들었을까? 발단은 징집영장이 나온 자신의 보좌관을 면제해 주거나 위원회에 파견해 달라는 요청을 육군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육군은 오히려 이를 계기로 삼아 육군-매카시 청문회로 반격했다. 매카시는 스스로 무덤을 팠다. 빨갱이 딱지를 개인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다, 들통이 난 것이다.

그리고 매카시를 정치적 자살로 이끈 것은 거짓말이다. 1950년 2월 국무부가 공산주의자들로 가득 차 있고, 205명의 명단이 있다는 주장은 뻥이었다. 매카시 위원회가 소환한 그 많은 사람들 중, 법원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매카시는 언제나 거짓말에 태연했다. 진실에 구애받지 않았고, 도덕을 중시하지 않았다. 매카시는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너무 자주 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보여주었다. 한두 번은 몰라도 모두를 반복적으로 속이기는 어렵다.

광풍이 지나갔을 때, 미국의 합리적인 보수주의자들은 매카시즘을 '안보를 희화화'해서 오히려, 안보를 위험에 빠뜨렸다고 비판했다. 단지 중국 연구자라는 이유로 위원회에 소환당했던 학자들은 더는 중국을 연구하지 않았다. 마찬가지다. 북한 변수를 국내정치적인 목적으로만 이용하는 사람들은 안보에 관심이 없다. 분단 이후 모든 북풍의 공통점은 국가의 미래를 걱정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권력만 유지하려 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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