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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정국을 보니, 웹툰 <산송장> 떠올라

현실에서 죽은 독재자 살려내려는 상황, 호러 영화 보는 듯

등록|2013.11.25 13:35 수정|2013.11.25 13:35
웹툰 작가 중에 강풀 작가를 좋아한다.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처럼 그의 작품은 마지막이 되어야 완성된 퍼즐을 확인할 수 있는데, 그 맛이 탁월하다. 강풀의 작품은 연재 일정에 따라서 보고, 마지막에 다시 전체를 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만큼 잘 짜진 복선에 의한 긴장감과 허를 찌르는 상상력, 그리고 감각을 울리는 대사들, 이런 것들이 보는 이로 하여금 공감을 가게 한다.

강풀 작가의 웹툰 중에 영화화 된 것이 많은데, <순정만화> <아파트> <바보> <26년>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등이다. 강풀 작가 외에도 요즘 영화는 다양한 장르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더 파이브> <주먹이 운다>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더 파이브>의 원작자이면서 영화를 연출한 정연식 감독은 "만화 시장의 위축의 돌파구로 생겨난 웹툰은 치열함 속에서 신선하고 파격적인 작품들이 나왔다"면서 웹툰이 영화화 되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웹툰 원작 영화웹툰의 영화화는 앞으로도 더욱 많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26년>, <주먹이 운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더 파이브> ⓒ 이철재


웹툰은 충무로의 보물 창고, 왜?

작가들이 생존을 위해 치열하게 조사하고, 그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그림을 그려내기 때문에 신선함과 파격적 주제의식이 돋보인다는 말이다. 이러한 특성은 웹툰이 소재 빈곤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 영화계의 보물섬이 되게 했다. 제작자 입장에서는 웹툰의 인기도를 통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다는 점이 검증됐고 이것이 영화 흥행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하는지도 모른다. 인기 소설을 영화화 하는 경우처럼 말이다.

하지만 소설과 웹툰은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흥행 저해 요인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텍스트로 구성된 소설은 영화화 되면 시각적 효과를 강하게 어필할 수 있지만, 상대적으로 웹툰은 이미 짜진 구도의 그림을 시각화 하는 것이기에 그 효과가 반감될 수밖에 없다.

그래도 웹툰의 영화화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만화적 상상력은 다른 매체보다 상대적으로 쉽게 표현할 수 있기 때문에 말이다. 개인적으로 좀비 영화를 좋아 하는데, 좀비를 소재로 한 웹툰도 영화화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강풀 작가의 <당신의 모든 순간>, 주동근 작가의 <우리 학교는 지금>도 좋지만, '금사리 백봉장군'이라는 특이한 필명을 지닌 작가의 웹툰 <산송장>(2011년 작)을 영화화 1순위로 후보로 꼽고 싶다.

<산송장>이 좀비라는 서양적 소재를 우리 상황(좀비=산송장)에 가장 잘 맞게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 이유에서다. <산송장>은 초장(땅이 부족한 섬에서 시신을 가매장하고 짚으로 덮어 둔 장례 형태)이 있는 외딴 섬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고향의 전설'이라는 방송을 만들고 있는 PD(배우 박상면의 모습으로 그려졌다), 도굴꾼, 보건소 의사, 마을 노인들이 등장해 섬에서 발생되는 기이한 현상, 즉 송장이 살아 움직이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웹툰 <산송장>서양적 소재인 '좀비'를 한국적 좀비(산송장)으로 만들면서 한국형 좀비를 만들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웹툰 산송장


사건의 발단은 섬에 매장된 보물을 노리는 도굴꾼이 섬에 숨겨진 보물을 훔치면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보물을 도굴하면서 전설이 깃든 요령을 떨어뜨린다. 전설에 의하면 요령은 죽은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힘이 있는데, 한 번 울리면 송장이 살아 움직이고, 또 한 번 울리면 다시 송장 상태가 된다는 것이다. 요령 소리에 초장에 묻혀 있는 노인이 살아 움직이고, 마을 사람들은 하나둘씩 감염되기 시작한다.

'좀비'라는 서양 소재를 한국화한 작품

방송사 PD는 시청률 대박을 노리면서 이런 상황을 취재하고, 보건소 의사는 산송장에게서 뽑은 피를 명성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고자 한다. 도굴꾼, PD, 의사 모두는 각자의 욕망에 사로잡혀 섬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다. 우연히 요령이 다시 움직여 산송장은 다시 송장이 되고, 일단락 될 것 같았던 이야기는 더 큰 문제로 발화한다. 보건소 의사가 갔고 있던 산송장의 피가 실수로 모기에게 옮겨지는데, 웹툰 <산송장>은 그 모기가 섬사람들에게 달려드는 장면으로 끝을 맺고 있다.

리얼한 사투리와 공들인 그림웹툰 <산송장>은 사투리를 제대로 구현했다는 점과 노인들의 잔주름 하나하나까지 세심하게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 웹툰 <산송장>


이미 좀비가 된 모기에게 살충제가 통할 리 없으니, 섬은 요령이 작동하지 않아도 그야말로 산송장의 섬이 되어 버릴 것이다. <산송장> 작가 '금사리 백봉장군'은 다른 좀비물과 달리 산송장, 즉 좀비가 되는 이유를 한국적 전설로 설명하고 있다는 점에서 탁월하다. 고립된 섬이라는 특수한 상황, 그리고 모기라는 매개체 등을 동원해 현실감을 잘 살리고 있다는 것도 뛰어난 점이다. 또한 인간의 욕망으로 상황이 악화되는 호러 장르의 기본적 규칙도 잘 따르고 있다. 현실에서도 인간의 그릇된 욕망이 재앙을 일으키듯이 말이다.

'한국형 좀비'를 만들어낸 웹툰 <산송장>은 독자들에게 두 가지 면에서도 인정을 받는다. 하나는 사투리를 거의 완벽하게 재현했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노인들의 잔주름과 염색이 빠지고 있는 파마머리 등 그림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는 점이다. 아쉽게도 현재 <산송장>은 작가의 요청으로 다음 웹툰에서 삭제되어 있는 상태다.

좀비를 떠올리다보니 현재 정국이 매우 좀비스러운 것이 아닌가 싶다. 죽은 독재자를 자꾸만 살려 내 산송장을 만들려고 이 땅의 권력자들의 모습을 보면서 말이다. 좀비나 산송장의 특징은 의식은 없고 오로지 욕망만으로 움직인다는 것인데, 현재 정국은 말 그대로 호러영화처럼 느껴진다. 나만 그럴까? 바라건대 웹툰 <산송장> 같은 좋은 작품을 다시 공개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영화로도 만들어지길 기대하면서, 산송장을 현실로 만드는 호로 정국은 중단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개인 블러그에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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