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한국 서양화가 1세대 김두환 화백, 작품으로 돌아오다

미공개작 포함 50여점 전시... 선양사업 첫발

등록|2013.11.25 16:48 수정|2013.11.25 16:48
한국 서양화가 1세대 설봉 김두환(1913-1994) 화백 선양사업이 첫발을 내딛었다.

16일부터 24일까지 아흐레 동안 충남 예산군문예회관 전시실에서 김두환 화백 탄생 100주년 회향전(回鄕展)이 열렸다.

다른 작가들에 견줘 유난히 많다는 자화상 속 그는 꼭 다문 입술에 어딘가를 응시하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

▲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한 사람들로 전시장 안이 북적이고 있다. ⓒ 장선애


경주 남산 마애조상군의 예처럼 한가지 대상을 무려 1948년 첫 작업 이래 1980년대까지 반복해서 여러 가지 기법으로 표현해낸 화백에 대해 사람들은 야수파, 인상파, 입체파, 외광파 등 다양하게 분류했다.

이와 관련 지난 16일 열린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박정구 큐레이터는 "선생이 다양한 서구 사조를 접하고 다양한 실험적 작품을 통해 목표로 삼았던 것은 '향토예술'이었다"라고 정리했다.

김두환만의 특색있는 작품세계가 구축됐으나, 미진한 연구로 이를 제대로 조명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반성도 잇따랐다.

이날 전시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어렵게 구한 50여 점의 작품들이 공개됐다. 이 가운데 10여점은 미공개됐던 작품으로 이번에 첫선을 보여 관심을 모았다. 생전 전시회 때의 낡은 도록과 방명록도 전시돼 그의 예술여정을 엿보게 했다.

전시회 개막행사에는 미술계 인사들 뿐만 아니라 정치인과 기관장, 단체장들이 대거 참석해 예산의 문화인물 발굴사업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최승우 군수는 개막식 축사에서 "이 시대에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과제는 토속적인 정서를 발전시켜 한국적인 것을 세계적인 것으로 승화발전시켜 나가는 것"이라면서 행사에 의미를 부여했다.

행사를 주최한 미협예산지부 이영옥 지부장은 이번 전시와 관련 "아흐레 동안 열린 전시회에 많은 분들이 다녀가셨는데, 예산주민들보다 오히려 다른 지역에서 오신 분들이 더 많았다. 특히 미술계 인사들과 수집가들 사이에 관심이 많았다"면서 "김두환 화백이 예산의 인물로 가치가 높다는 증거라는 생각이 든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김두환 화백 전시회는 생전에 개인전 13차례와 단체전 13차례, 사후에 한국근대미술 걸작전과 국립현대미술관 신소장품전 등이 공식기록으로 남아있다. 고향 예산에서 오랫동안 활동하면서 1970년대 후반 예산읍내에 있던 우리다방과 1980년 중앙다방에서 열린 단체전에 참여했으나, 따로 기록으로 남지 않아 아쉬움을 사고 있다.

설봉 김두환 연구회 고문을 맡고 있는 홍세영씨는 "기왕 의미있는 일을 시작한 만큼 1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갖고 한걸음씩 앞으로 나갔으면 좋겠다. 아직 남아있는 생가를 문화공간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해 유족들과 협의하면 실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 세미나 발제자와 토론자들. 박정구, 권현칠, 신현국, 김기융, 윤후영, 임재광, 이정우(왼쪽부터). ⓒ 장선애


설봉 김두환 화백 탄생 100년을 기념해 그의 삶과 예술세계를 톺아보는 세미나가 16일 오후 2시 예산군문예회관에서 열렸다.

세미나에는 화백의 유족과 미술계 전문가들을 비롯해 지역내 기관·단체장, 청소년 등 10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세미나에 앞선 인사말에서 행사를 주최한 미협 예산지부 이영옥 지부장과 예산지원에 힘 쓴 고남종 의원은 "이번 세미나가 예산의 문화예술적 수준이 한층 높아지고, 문화적 자원에 대한 가치를 살리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주제발표에 나선 박정구 큐레이터는 "오늘 행사는 예산 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현대미술을 조명하는 의의가 있다"면서 "선생이 1930년대 유학을 마치고 화가로서 발걸음을 내딛으며 목표로 삼았던 것은 '향토예술'이었다. 향토예술이란 우리나라 풍경과 사람들을 소재로 삼아 고유한 정서와 아름다움을 담아내는 미술이다. 선생은 다양한 서구 사조를 접하고 다양한 실험적 작품을 통해 김두환 특유의 양식을 만들어냈다" 고 정리했다.

이어 서양화가인 신현국 화백은 '어릴 적 은사를 생각하며'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유명대학에서 초청을 해도 지역의 후학을 양성하며 오로지 그림에만 몰두한 선생님의 작품은 자유로운 표현성과 순수한 서정성으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유족으로 발제자리에 오른 김 화백의 차남 김기융씨는 "아버지께서는 자식들에게도 작품을 안 남길 정도로 자신의 작품에 애착이 강했다. 실험정신이 대단해 다양한 시도를 하며 다작을 했지만, 전시회를 하면서도 작품을 잘 팔지 않았다. 그런데 말년에 이 작품들이 아버님 자신도, 가족들도 모르게 다른 사람에 의해 어이없이 처분돼 애통하다"고 고백했다.

토론회에서 임재광 공주대 교수는 고암 이응로와 설봉 김두환이 인근지역에서 비슷한 시기에 일본의 같은 대학으로 유학을 하고 서울에서 활동했었던 공통점을 들며 두 거장 화백을 연결하는 사업을 지역미술계가 고민해볼 것을 제안했다.

임 교수는 "글로벌리즘의 표상인 이응로 화백과 로컬리즘의 표상인 김두환 화백을 경쟁적 관계에서가 아니라 예술적 차원에서 함께 연구할만 하다"면서 "특히 설봉 김두환 화백 사업은 동상만들기가 아닌, 조형적·예술적 가치로 접근해야 한다. 겉핥기식 사업을 하면 본질을 놓치게 된다"고 당부했다.

덧붙이는 글 충남 예산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 <무한정보신문>과 인터넷신문 <예스무한>에도 실렸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