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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생계비도 못 버는데... '정규직'이라고?

[주장] 시간제 교원 제도, 즉각 폐기해야 한다

등록|2013.11.27 20:10 수정|2013.11.28 15:14

▲ 26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시간제 일자리 채용 박람회'. ⓒ 김동환


[기사 보강 : 28일 오후 3시 15분]

'시간제 정규직 교원(시간제 교원) 제도'가 교육계에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름부터가 해괴하다. '시간제'는 '시간제'고, '정규직'은 '정규직'이다. 뒤에서 보겠지만, 그 실질을 따지면 '시간제 정규직'은 '시간제 비정규직'의 왜곡된 이름일 뿐이다. 구조적으로 그렇다.

시간제 교원 제도에 관한 최초 논의는 2013년 6월 4일에 있었다. 이날 교육부를 포함한 11개 정부부처 합동회의에서 '고용률 70% 로드맵' 논의가 진행되었다. 2017년까지 고용률 70% 달성은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다. 시간제 일자리 확대는 바로 이 공약을 달성하기 위한 주요 정책이다. 이날 합동회의에서 정부는 시간제 교원뿐만 아니라 시간제 공무원 추진 계획을 발표하였다.

정부는 손발을 빠르게 놀렸다. 합동회의 시점으로부터 4개월이 흐른 10월 14일, 교육부 국정감사에서 교육부 업무보고가 있었다. 그 자리에서 교육 분야의 시간제 공무원 근무 형태 등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었다. 주 20시간 근무(하루 4, 5시간 정도 근무)에 정년이 보장되며, 승진과 보수는 근무시간에 비례한다는 내용이었다.

교육부 안에 따르면, 시간제 교원은 하루 근무 시간의 절반 정도를 매일, 또는 격일로 근무하게 된다. 기본적으로 비정규 시간제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시간제 교원 제도 앞에 '정규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 홍보하고 있다. 정년과 승진 등이 보장된다는 이유에서다.

10월 말, 교육부는 각 시도교육청에 내년 시간선택제 교원 수요를 신규 채용인원 3%로 보고하도록 강요하였다. 이에 전북교육청은 시간제 교사 채용 거부 의사를 표명했다. 11월 13일에는 관계부처(교육부, 노동부, 안행부, 기재부, 보건복지부) 합동회의가 열려 시간제 교원 채용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금년 말까지 교육공무원 임용령을 개선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시간제 교원 제도의 전체적인 밑그림은 지난 11월 19일경에 언론 취재를 통해 비공식적으로 발표되었다. 이에 따르면 올해 11월 말까지 교육공무원 임용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하고, 내년 2학기부터 시간제 교원을 받아들이게 돼 있다. 전체 규모는 2014년 신규 채용 정원 1만여 명의 3%(300여명) 수준이다. 이는 300명의 정규교원 정원을 쪼개 시간제 교원 600명을 채용할 수 있는 규모다. 교육부는 앞으로 시간제 교원 채용 규모를 3600여 명까지 잡고 있다.

시간제 정규직? '시간제 비정규직'의 왜곡된 이름

교원 임용 제도는 학령 인구 변화 및 교육과정 등과 연계하여 장기적인 로드맵 속에서 수립되어야 한다. 신중하고 철저한 사전 준비도 필요하다. 더군다나 시간제 교원 제도는 교육 현장 및 교육 시스템 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불러올 것이 틀림없다. 교사와 학부모, 학생, 예비교사 등 교육 당사자들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 때문이다. 의견 수렴이나 공청회 등이 필수적으로 뒤따라야 하는 이유다. 하지만 교육부는 그 어떤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교원 임용 제도와 같은 주요 교육 정책은 사전 치밀한 연구와 시뮬레이션 등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교육현장에서 혼란이 일어날 것이 뻔하다. 제도 도입 이전에 연구 용역이나 시범 실시 절차를 거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시간제 교원 제도 도입 과정에서는 그 모든 절차가 생략되었다. 대통령의 공약 이행을 위한 제도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졸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다.

법률적 문제도 크다. 헌법 31조 6항은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을 포함한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에 관한 기본적인 사항은 법률로 정한다"고 되어 있다. 교육제도와 그 운영, 교육재정 및 교원의 지위 등에 관련된 사항들이 교육계 전반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고 중대하다는 사실의 반증일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시행령에 불과한 '교원임용령' 개정을 통해 시간제 교원 제도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 위헌 소지가 크다고 보는 이유다. '고작' 시행령 하나로 전교조를 법 밖으로 밀어내는 정부의 초법적 행태가 다시 한 번 드러나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이런 절차상의 문제도 문제지만 질적 차원의 한계와 문제점은 더욱 심각하다. 정부는 시간제 교원 제도가 학교 운영의 유연성을 높여 교육의 질을 높일 것이라고 주장한다. 육아 등으로 휴직이나 퇴직이 불가피했던 교사 자리가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로 대체되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시간제 교사로 대체되는 점도 장점으로 내세운다. 과연 그럴까.

정부는 시간제 일자리를 애초 경력 단절 여성을 위한 제도로 홍보하였다. 하지만 임신이나 육아 등으로 자신의 일을 그만두는 여교사나 여성공무원은 찾아볼 수 없다. 산전휴가와 산후휴가, 육아휴직 등의 대체 제도가 나름대로 잘 갖춰져 있기 때문이다. 결국 시간제 교사 자리는 경력 단절 상황에 놓인 여교사가 아니라 일자리를 구하기 힘든 청년층에게 돌아갈 공산이 크다. 시간제 교사가 그럴싸한 '알바' 자리로 비난받는 이유다.

정규 교원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는 문제도 있다. 시간제 교원이 해당 정규교원이 맡았던 일상적인 교육·행정업무나 담임업무를 맡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루 4, 5시간만 근무하고 귀가하기 때문이다. 결국 이들 업무는 다른 정규교원의 몫으로 돌아갈 게 뻔하다. 정규 교원의 입장에서 볼 때, 일상적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 등으로 인한 부담이 가중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사들로부터 양질의 교육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최저생계비도 안 주고 '겸직'해서 벌어 쓰라고?

시간제 교원이 학교와 학생들에게 온전히 마음을 쏟을 수 있을지도 장담할 수 없다. 시간제 교원은 말 그대로 시간제 비정규직 교사일 뿐이다. 이들이 완전한 정규 교원을 지향할 것임은 명약관화하다. 일상적으로 이직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규 교원 지위를 가진 완전한 교육자로서의 위상이나 정체성을 갖기도 쉽지 않다. 교사로서의 역할과 권리, 학생들과의 관계 형성 등 모든 측면에서 심한 차별과 제한을 받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피해 당사자는 시간제 교원 자신이다. 박근혜 정부는 시간제 교원을 정규직으로 강변한다. 맞는 말일까. 이들은 일을 하면 할수록 전일제 정규 교사와의 급여 격차가 크게 벌어진다. 신규 교사 호봉인 9호봉을 기준으로 비교할 때, 시간제 교사 월급은 118만여 원으로 전일제 정규 교사 월급 249만여 원(각종 세금 원천징수 전 금액, 세후 실수령 금액은 200만 원이 채 되지 않음)의 53%에 불과하다. 이 격차는 해를 지날수록 점점 커져 24년차에 이르면 시간제 교사의 월급이 정규 교사의 37%까지 떨어진다.

시간제 교원의 근무 형태는 주로 반일제나 격일제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시간제 교원의 호봉 승급은 정규 교사와 달리 구조적으로 최소 2년마다 이루어진다. 월급 격차가 크게 벌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시간제 교원이 정규직과의 승진 경쟁에서 앞자리를 차지하는 일 또한 거의 불가능하다.

한 번 시간제는 영원한 시간제일 뿐이다. 승진에서 낙오하고, 해가 갈수록 임금 격차가 커지는 자리를 어떤 '숭고한' 사명을 가진 교육자가 계속 있을 수 있을까. 시간제 교원은 계층화한 교원 카스트의 맨 밑바닥에서 평생 동안 '땜방' 구실을 할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형편없는 급여 수준이다. 시간제 교원이 받게 되는 월급은 최저 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이다. 현재 4인 가족을 기준으로 한 최저생계비는 154만6399원이다. 그런데 시간제 교원의 월급을 신규 9호봉 정규 교사 월급의 50~70% 수준에 맞춰 계산하면 109만5235원~153만3329원 구간에 놓인다. 처음에 131만여 원을 받는 시간제 교원은 12년 동안 교직 생활을 해도 고작 150만여 원 정도밖에 받지 못한다. 모두가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교육부는 '겸직 허용범위 확대' 카드를 내놓았다. 최저생계비에도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 알바 수준의 임금을 '겸직'을 통한 수익으로 벌어들이라는 논리다. 하지만 공무원 겸직은 더 큰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 뻔하다.

교사 자격증을 가진 이들에게 허용할 수 있는 겸직은 결국 가르치는 일밖에 없다. 그렇다고 학교 교사가 학원에서 강사 노릇을 하는 경우를 상상할 수 있겠는가. 우둔한 내 머리로는 교육부가 '허용'을 고려하고 있는 '겸직 범위'가 어떤 것인지 도저히 떠올릴 수 없다. 결국 '겸직 허용범위 확대'는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에 지나지 않는다.

속이 훤히 보이는 말장난... '영전강' 전철 밟을 것 뻔해

시간제 교원 제도는 영어회화 전문강사(영전강사) 제도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이명박 정부가 영어 몰입교육의 일환으로 2009년 9월부터 학교 현장에 배치한 영전강사 수는 현재 6100여 명에 이른다. 처음에 정부는 이들에게 교육공무원법에 따라 만 62세 정년 보장을 약속했다.

하지만 1기 강사 526명은 4년 계약이 끝나면서 지난 8월에 이미 해고를 당했다. 내년 4월에 계약기간이 마무리되는 2기 강사들의 수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상황이 이러한데도 교육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고 있다. 끌어안을 수도, 버릴 수도 없는 '계륵'이 돼버린 것이다. 믿는 도끼에 발등 찍히는 영전강사들의 심정을 정부는 도대체 알기나 할까.

시간제 공무원·교원 제도는 박근혜 정부의 시간제 일자리 확대 방안의 하나로 추진되고 있다. 그 배경에는 '고용률 70% 달성'이라는 목표 수치가 자리잡고 있다. 정부가 제도의 질과 내용은 무시한 채 일자리 수 등 외형적인 지표만 채우려는 조급증을 보이는 이유다.

하지만 그 어떤 정책이나 제도도 졸속적으로 추진되어서는 성공할 수 없다. 정부는 지금 '70%'라는 수치에만 초점을 맞춘 채 그 어떤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고 있다. 법적 문제도 있다. 학교현장의 갈등과 분열이 번연히 예상되는데도 실질적인 대비책을 내놓지 않은 채 장밋빛 청사진만 강조한다. '정규직 시간제 일자리'에서 '정규직'이라는 말만 강조할 뿐 '시간제'로 인해 파생되는 문제는 애써 외면한다. 참으로 비겁한 태도라고 아니할 수 없다.

'시간제'는 '비정규'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비정규'는 노동자의 영혼을 갉아먹는다. 상시적인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권리의 차별과 제한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나는 시간제 교원을 '정규직'이라고 강변하는 정부에게 묻고 싶다. '진짜' 정규직과 해가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일자리를 진정 정규직이라고 할 수 있는가. 승진 경쟁에서 구조적으로 밀릴 수밖에 없는 '비정규 시간제 교원'을 도대체 정규 교사로 보는 논리는 무엇인가.

정부는 속이 훤히 보이는 '말장난'으로 사태의 본질을 호도해서는 안 된다. 교원 임용 및 수급 문제는 학급당 학생 수 감축과 교원 전체 정원 확대 등의 정도(正道)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륵이 돼버린 영전강 제도처럼 정부의 발목을 잡고, 해고 위기에 놓인 수천 명의 전문 인력들을 피눈물 나게 만들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다수 교사, 학부모가 반대하는 시간제 교원 제도를 즉각 폐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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