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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걷고 싶은 길' 명예 어디로? 자동차길 된 덕수궁길

[주장] 덕수궁길 차량 위주의 가로정비 유감

등록|2013.11.28 10:18 수정|2013.11.28 10:18

▲ 차도정비 후 차량 위주의 덕수궁길 ⓒ 김성균


최근 서울시와 중구에서는 덕수궁길을 보행자 우선의 가로에서 차량 위주로 차도로 정비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이를 설계한 사람으로서 깊은 유감을 표하고자 합니다.

덕수궁길은 생활가로에서 차를 인위적으로 천천히 달리게 하여 가로 전체를 보행자가 우선적으로 이용하도록 하는 보차공존도로입니다. 이를 위해서 덕수궁길에는 S형 가로구조, 볼라드, 사괴석, 험프, 바닥패턴 등 물리적, 심리적으로 차량이 속도를 늦추게 하는 여러 기법들이 도입되어 있습니다.

이번 덕수궁길의 정비에서 차량감속을 위한 원래의 설계의도를 무시하고 차도를 바꾼 것이 문제입니다. 사괴석, 험프, 바닥패턴 등 여러 가지 차량감속 장치를 제거하고 차량이 최대한 빨리 편하게 달릴 수 있도록 변경하였습니다.

원래 있었던 덕수궁길 입구의 사괴석(정육면체 형태로 돌담·보도 조성에 사용되는 돌) 교차로와 차도 양쪽의 사괴석은 심리적, 물리적으로 운전자가 속도를 줄이도록 설계된 것인데 이번 공사에서 이들을 완전히 제거하고 아스팔트를 입혔습니다. 이 사괴석을 제거하면 경관적으로도 나빠질 뿐만 아니라, 운전자는 속도를 빨리 내게 되어, 감속장치 없는 S자형 가로는 교통사고의 위험이 높아집니다.

"대형버스 출입 감안했다"는 해명... 이 길은 '걷고 싶은 길'입니다

▲ 차도정비 전 보행자 위주의 덕수궁길 ⓒ 김성균


이번 공사에서 서울시에서 얘기하고 있는 차도 및 보도의 폭 자체는 논란의 핵심이 아닙니다. 덕수궁길은 차도, 인도 모두에서 사람들이 느리게 달리는 차와 함께 안전하게 사용하도록 설계된 보차공존도로입니다. 이번 공사로 인해 보행자 위주의 보차공존도로가 차량위주의 보차분리도로로 바뀌게 된 것이 문제입니다.

26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 측은 "걷고 싶은 거리가 조성될 당시 미관만 고려한 측면이 있다"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이 오는데 대형 버스들이 출입하기에 어려운 점도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합니다. 그리고 떨어진 사괴석이 날아가 사람이 다칠까봐 사괴석을 없앴다고 하는데 원래 설계대로 차량의 속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수가 없습니다.

오히려 지금처럼 차량이 빨리 달리도록 만들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겠지요. 그리고 사괴석이 떨어지면 떨어지지 않도록 튼튼하게 시공을 해야지 이것이 귀찮다고 무조건 제거하는 것은 그야말로 행정 편의주의적 발상입니다.

덕수궁길은 건교부가 주최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길 공모에서 국민들이 최우수상으로 뽑은 대한민국의 문화유산입니다. 이번의 공사결과, 우리나라 걷고 싶은 길 제1호인 덕수궁길이 차량 위주의 길로 돌아가버렸습니다.

덕수궁길은 이곳을 찾고, 걷는 많은 국민들의 길입니다. 길을 변경한 이유라고 하는, '정동극장으로 가는 관광버스가 편하게 달리도록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 후손을 위해서라도 덕수궁길은 원래의 형태대로 돌려놓아야 합니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서울대 조경지역시스템공학부 교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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