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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 858기는 지금도 슬프게 날고 있다

돌아오지 않은 115명의 시신들... 어느 연구자의 일기

등록|2013.11.28 10:31 수정|2013.11.28 16:27
<26년>. 영화로도 만들어진 광주 5·18에 관한 강풀 작가의 이야기. 적어도 내게는 여러 가지 면에서 '26년'과 비슷하게 들리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바로 김현희-KAL 858기 사건. 꼭 올해가 사건 발생 26년이어서가 아니다. '약자'들의 고통이 어떻게 잊혀지는가, 그리고 그 고통과 한을 알리는 데 따르는 대가는 무엇인가. 1987년 11월 29일, 참으로 많은 이들의 삶이 순식간에 뒤틀렸고 지금도 그 뒤틀림은 이어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나는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모른다. 솔직히 '진실'이라는 개념 자체도 잘 모르겠다. 이 사건으로 석사와 박사 논문도 썼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알려고 하면 할수록, 나는 '모르겠다'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된다. 하지만, 어렴풋이 아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이 사건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회장님이 추모제에 못 나가시는 이유

멀리서 인사를 드렸다. 시신도 하나 없는 사건, 그래서 재조사가 필요하다며 실종자가족회를 이끌어오신 차옥정 회장님. 이번 26주기 추모제에 못 나가신다고 한다. 깜짝 놀라 왜냐고 여쭤보니, 많이 편찮으시다고 어렵게 말씀을 꺼내신다.

회장님을 만난 지 거의 10년이 되는데, 추모제에 못 나가실 정도라면 보통 심각한 것이 아님을 직감한다. 나름대로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결국 이런 날이 오고야 말았다. 대화를 어떻게 이어가야 할지. 그저 가슴이 무너질 뿐이다.

모든 가족 분들을 만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내가 이제까지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가족들 대부분은 억누를 수 없는 한과 분노로 고통을 받고 있다. 직접 뵌 것은 아니지만, 홧병으로 돌아가신 분들도 있고, 또 돌아가실 때 한이 뼛 속 깊이 서려 눈을 뜨고 가신 분도 계시다.

정신적·신체적 충격으로 병원에서 약을 드시는 분도 있고, '비행기' 소리만 들리면 떠오르는 기억에 고통을 호소하는 분도 계시다. 죽을 것 같은 심정에 종교에 귀의하신 분은 또 어떠한가. 이 사건뿐만 아니라 억울함과 한을 동반한 다른 사건들에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참으로, 화가 난다. 그리고 슬프다. 26년…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고, 끝날 수도 없다. 실종자 가족분들의 삶과 고통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무엇보다 비행기에 타고 있던 115분이 돌아오지 않았기에, 이 사건은 '종결'되기 어렵다. 기존 안기부 수사 결과가 맞냐, 틀리냐의 이야기가 아니다. 다른 비극적 사건들처럼, 처음부터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일이 일어났고,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수많은 이들이 여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KAL 858과 '종북'

몇 년 전부터 한국에서 '종북'이라는 말이 유행인 것 같다(논쟁이 필요한 단어지만 일단은 그대로 쓴다). 최근에는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 신부님들 소식이 들린다. 그 누구보다 성심껏 가족들의 한과 이야기에 귀기울이셨던 분들. 그런데 그분들이 가족들과 함께 하셨다는 것이 '종북'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어떤 변호사분도 마찬가지다. "벌레만도 못한 취급"을 받았던 가족들을 사람답게 대해준 것, 그리고 도대체 납득이 되지 않으니 잘 좀 이해시켜 달라고 국가에게 외쳤던 것이 뭐가 잘못인가.

'진짜' 폭파범이든 아니든, 김현희씨도 고통스러울 거라 생각한다. 공식 수사결과에 따르면, 김씨는 당시 26살이었고, 그 뒤 전혀 예상치 못한 26년을 더 살아왔다. 이 사건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의 인생을 바꾸어놓았다. 삶은 통제 불가능하며, 앎은 불완전하다. 그렇더라도, '회장님'의 한이 서린 그 목소리와 건강 악화는 해도 너무한 것이다. 2013년, KAL 858기는 지금도 슬프게 날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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