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수시-정시 전쟁, 이 정도일줄 몰랐다고?
수능 점수에 눈물 쏟고 수시모집에 매달린 나의 지난겨울 이야기
▲ 2013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시행된 2012년 11월 8일 오전 인천 연수구 인천여고 정문에서 문일여고 2학년 학생들이 수험생을 위해 율동을 하며 응원하고 있다. ⓒ 조재현
2012년 11월 8일 오전 7시 30분.
"정아 다 챙겼나? 늦겠다. 얼른 가라~!"
"어 잠깐만! 수험표, 시계, 초콜릿, 도시락, 또 뭐 있지? 아 맞다, 학생증!"
"니 이러다가 늦겠다. 엄마가 택시 불러놨다. 얼른 타고 가자~."
"알겠다! 나간다 나간다."
그렇게 나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길 바라던 수능 날이 밝았다.
오후 4시 30분. "수고하셨습니다" 하는 한마디와 함께 드디어 수능이이 끝났다. 나도 결국 수능을 보고야 말았다. 아마 대부분 수험생은 수능이 끝나면 모든 입시가 끝난다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때부터 입시를 시작할 뿐이었다.
"수능 치느라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이 "입시 시작 열심히 하세요!"라고 들리는 학생들 적지 않을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나였다. 11월 8일 오랜 수험생활의 끝인 수능이 끝난 후, 이제 새벽같이 안 일어나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은 편했다. 하지만 그날 저녁 수능 답을 매기는 건 모의고사나 마찬가지로 불편했다. 평상시에 쳐봤던 모의고사도 가슴 졸이며 매기는 나였다. 결국 1시간은 두려움과 설렘으로 보내다가 간신히 답을 펼쳐서 매기기 시작했다.
언어, 수리, 외국어, 사회탐구를 차례차례 매긴 후 나는 정말 큰일 났다는 게 무슨 말인지 실감했다. 재수의 '재'자도 내 얘기는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진짜 재수가 내 얘기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신이 번뜩 들었지만 내 눈에서 나오는 건 멈출 수 없었다. 눈물. '왜 더 열심히 하지 않았을까'라는 자책감.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까지 쪼개가며 공부했던 고3 시절. '고2 때부터 정신 차리고 고3 때만큼 공부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정시로 가겠다고 내신 하나 제대로 챙겨둔 게 없는 성적. 아무리 울어보고 후회해봐도 결국 답은 하나였다. '수시'였고 '수시'였다. 그렇게 나는 우울한 수능 후 한 달의 첫날을 시작했다.
재수는 내 얘기가 아닐 거라 생각했는데... 눈물만 한 바가지
다음 날부터 수능이 끝났다고 학교에서는 많은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당히 수능을 잘 치고 재밌게 수험생 '잉여'생활을 누리려 했던 건 모두 수포로 돌아갔다. 뮤지컬을 보고 영화를 봐도 마음 한 구석은 찝찝하고 불편했다. 여러 대학들의 입학설명회에 가봐도 '우리 학교는 네가 올 곳이 아니야'라는 말이 들리는 듯했다. 그 어떤 대학에서도 수시모집 얘기는 잘 나오지 않았다. 모두 정시모집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나에게 길은 하나였다. 9~10월에 모집해 수능 전에 발표가 나는 수시 1차는 이미 끝났고, 수능 후 2주 정도 진행되는 수시 2차밖에 길이 없었다. 일부 대학은 수능성적을 약간 보기도 하지만 주로 수시 2차는 내신 성적만 반영했다.
일주일 동안 구구절절한 변명과 그동안 입시상담을 경시했던 나에 대한 자책감을 담은 멘트를 준비했다. 그리고 담임선생님에게 수시 2차로 지원하고 싶은 대학과 학과 이름이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쌤 저 수시 2차 넣겠습니다."
막상 선생님 앞으로 가니 나오는 말은 고작 그 한마디뿐이었다. 건들면 당장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읽으셨는지 담임선생님은 한참 동안 말이 없으셨다. 그리고 "알겠다"라는 말과 함께 "주말 동안 알아볼 테니까 다음 주에 상담하자"라는 말을 덧붙였다. 생각보다 따뜻하게 말해주신 덕에 마음 한편이 놓였다. 결국 집에 와서 눈물 한 바가지를 쏟긴 했지만.
그렇게 주말을 보내고 학교에 간 날, 생각보다는 좋은 소식을 접했다. 내가 적어둔 학과와 대학보다는 커트라인이 높은 곳에 지원가능하고, 커트라인이 낮은 다른 대학이지만 원하는 학과에 지원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물론 수능성적도 들어가지만 그 기준은 넘었으니 가능하다고 했다. 물론 보통 사람들은 잘 모르고 고3 수험생들만 아는 대학 이름도 몇 있었지만 그래도 내가 생각하던 학과에 지원이 가능하다니 꿈만 같았다.
며칠 후, 수시 2차 전형 날이 왔다. 멀리서 대학을 다니는 언니도 전화로 꼭 붙을 거라고 응원해주고 엄마도 내 옆에 붙어서 함께 지원하는 과정을 지켜봐주셨다. 그동안 공부 못한다고 구박하고 닦달만 했는데 막상 막내딸이 대학 원서를 넣는다니 다들 함께 설렜던 것 같다. 그런데 두 번째 고비가 찾아왔다. 수시전형의 주의사항을 잊은 거다. 한 대학에 한 학과만 지원 가능하다는 것. 내가 원하는 학과는 신문방송학과였는데 실수로 광고홍보학과를 먼저 지원해 기회가 끝난 것이다.
순간 머릿속에는 빨간불이 켜졌다. 신문방송학과보다 광고홍보학과의 경쟁률이 더 높아 떨어질 가능성이 꽤 컸다. 엄마와 함께 "어떡해 어떡해"만 연발하다 정신을 차리고 다른 대학 광고전공으로 지원을 했다. 실수 때문에 다시 수능 후 일주일간의 막막한 심정으로 돌아간 듯했다. 그래도 좋은 결과 나올 거라 내 자신을 믿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추가합격자 발표 전화만... 그 얼마나 간절했던가!
▲ 2012년 수능 때의 수험표 ⓒ 하선정
합격자 발표가 나는 날. 두 손 모아 제발 예비번호 100번대, 200번대만 받지 않길 바라는 마음으로 수시 2차 지원 때 실수를 한 A대학 누리집에 먼저 들어갔다. 결과는 예비번호 7. 역시 생각대로 경쟁률도 높았고 지원학생들도 많았다. 그 다음으로 지원한 B대학은 제발 합격이 뜨길 바라면서 확인하러 대학 누리집에 들어갔다. 예비번호 2번이었다. 예비번호 7번을 받은 학과는 작년의 경우 입학을 포기한 학생이 없다고 해서 포기를 했다. 마음을 비우고 예비번호 2번을 받은 B대학에서 좋은 소식이 오기를 기다렸다.
수험생들이 가장 많이 찾는다는 '수만휘'라는 카페에 들어가 작년 추가합격자 수를 찾아보고 '붙을까요?'라는 글을 썼다. 생각해보니 "고3인데 지금 공부하면 수능성적 올릴 수 있나요?"라는 질문과 같은 느낌이었다. 고맙게도 '2번 정도면 붙을 수 있겠다'라는 응원의 메시지가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불안했다. 친구들과의 전화로 마음을 안정시키려 해도 '떨어지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추가합격은 따로 합격 공지가 뜨지 않는다고 했다. 오로지 전화로만 알리는데 그것도 세 번 통화가 안 되면 무조건 탈락이라니, 돼도 불안하고 안 되면 더 불안한 상황이었다. 추가합격자 발표는 수시 2차 합격자 발표 후 5일까지만 진행된다 했다. 하루가 지나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 예비번호 수는 줄지 않았고 내 마음은 졸아들어만 갔다.
그리고 2012년 12월 11일 저녁. 발신자 번호가 부산 지역번호(051)로 시작하는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여보세요?"
"아, 하선정 학생인가요?"
"네. 맞는데요."
"축하드립니다. B대학 추가합격하셨습니다."
드디어, 나도 대학생이 되었다. 이 전화 한 통을 얼마나 간절히 기다렸는지 모른다. 대학 입시 공부가 매듭을 짓는 순간, 그날은 수능을 친 지 정확히 한 달 하고도 3일 뒤였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고3 수험생활, 수능 친 날 그리고 담임선생님이었다. 고등학생 시절 자주 듣던 말이 있다. 고3 담임선생님이 가장 기억에 많이 남고 추억이 많을 거라고. 그 말은 백배 아니 천배 공감한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고3 때의 담임선생님이 너무도 그립고 감사하다.
여기저기 합격 소식을 알리고 나니 이제야 입시가 끝났다는 것이 실감이 났다. 수험표 들고 할인받으러 가야지, 화장 배워야지, 여행 가야지 하는 내 계획을 이제야 실행하다니 늦은 감은 있었지만 마음이 너무도 홀가분했다. 겨우 한 달이지만 앞으로의 4년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인생에서의 중요한 선택 중 하나를 수능 이후에 해냈다.
2013년 11월 말, 아마도 지금쯤 많은 수험생들이 수시 2차, 정시 준비에 한창일 것이다. 대부분 수능이 끝나면 입시준비가 끝났으리라 생각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입시의 벽 때문에 좌절하고 있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쪼록 수험생 모두 최선을 다해 좋은 결과를 얻고, 즐거운 고3 잉여생활을 보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오마이뉴스 1기 대학통신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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