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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찬현 임명안' 날치기, 얼어붙은 여의도

[분석] 기습상정에다 필리버스터 거부당한 민주... 예산심사 '후폭풍' 시작됐다

등록|2013.11.28 18:35 수정|2013.11.28 18:40

강창희 의장에게 항의하는 전병헌 원내대표강창희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 하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의장석으로 다가가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여의도가 꽁꽁 얼어붙었다. 국회는 28일 본회의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통과시켰다. 임명동의안은 총 159명 무기명 투표에 찬성 154표, 반대 3표, 무효 2표로 가결됐다. 압도적인 찬성이었다. (관련 기사 :황찬현 임명안 본회의 통과... '필리버스터' 거부하고 강행)

그러나 새누리당의 의지만 구현된 표결이었다. 몸싸움만 사라졌을 뿐이었다. 과정을 살펴보자면 사실상 날치기나 다름 없었다. 앞서 "여야 논의된 합의점은 존중·수용하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시정연설 발언은 무색해졌다.

새누리당은 이날 오전 국회 감사원장 인사청문특별위원회를 단독 개최했다. 민주당 측이 '여야 간사 협의'를 주문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민주당 특위 위원들이 불참한 가운데, 인사청문 경과보고서는 단 10분 만에 처리됐다.

양당의 시선은 공을 넘겨 받은 강창희 국회의장에게 향했다. 새누리당은 "정당한 이유 없이 기간 내에 인사청문특위가 인사청문 내지 심사를 마치지 못한 때 국회의장이 이(임명동의안)를 바로 본회의에 부의하는 것이 '직권상정'"이라며 임명동의안 상정을 거듭 요구했다. 또 "본회의에 자동부의되면 의사일정을 작성하는 권한은 국회의장에게 있다, 여야 합의에 의해 의사일정을 정하는 것은 관행"이라며 규정에 맞춰 처리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 민주당은 "새누리당의 주장은 '(본회의) 부의'로 이는 안건 심의를 위한 준비행위일 뿐"이라며 "국회 개원 이래 130여 건의 임명동의안 중 단 한 건도 직권상정이 된 사례가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고 반박했다.

강 의장은 '친정' 새누리당의 손을 들었다. 본회의 처리예상안건 중 마지막 순서에 있던 임명동의안을 본회의 첫 머리로 올려 상정했다. 의원총회를 하던 민주당은 강 의장의 '기습상정'에 뒷통수를 맞고 급히 본회의장으로 입장했다. 그러나 민주당의 수모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강 의장은 "인사 관련 안건에 대해서는 토론을 허용하지 않는 게 관례"라며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요구를 거부했다.

투·개표 과정에서도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박범계·김광진·서영교 등 일부 민주당 의원들은 임명동의안 표결을 위한 명패와 투표용지를 배부 받았다. 투표권 행사를 늦춰서라도 임명동의안 표결을 막기 위한 '최후의 방법'이었다. 강 의장이 "투표 다 하셨습니까"라고 물었을 때도 "다 안 했다, 투표 안 했다"고 의사를 표시했다. "빨리 투표하시라"고 한 강 의장은 세 번 이상 묻지 않았다. 그는 일부 민주당 의원들이 투표하지 않은 상황에서 "투표 다 하셨냐"고 물은 뒤 곧장 '투표 종료'를 선언했다.

명패와 투표 가부를 확인하는 감표위원들조차 모두 새누리당 의원으로 선정됐다. 박범계 의원은 이와 관련, "달리 얘기하면, 실시 여부를 놓고 논쟁이 있는 중차대한 선거에 있어 한쪽 정당의 참관인과 한쪽 정당의 투·개표인만 배석한 채 투표가 실시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항의' 밖에 못하는데 마이크마저... "19대 국회 첫 날치기 통과다"

강창희 의장에게 항의하는 전병헌 원내대표강창희 국회의장이 28일 국회 본회의에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직권상정한 뒤 한 표를 행사하자,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가 다가가 항의하고 있다. ⓒ 남소연


결국 민주당이 할 수 있는 일은 항의뿐이었다. 앞서 새누리당이 '야당의 무기'라고 했던 국회선진화법은 민주당의 손발을 꽁꽁 묶었다. 지난해 신설된 국회선진화법 조항에 따르면, "국회 회의를 방해할 목적으로 회의장 또는 그 부근에서 사람을 상해하거나 다중의 위력을 보일 경우 등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명시돼 있다. 

전병헌 원내대표 등 민주당 의원들은 의장석 아래로 가서 고함을 쳤다. 서영교 의원은 "대통령이 시킨 겁니까, 국회에서 소통하고 대화해야 하지 않냐"고 항의했다. 은수미 의원은 "어떻게 관례가 법을 규정하나, 유신 국회 하는 겁니까"라며 "왜 청와대 나팔수 역할을 국회의장이 나서서 자행하나"고 소리쳤다. 홍익표 의원은 "19대 국회 첫 날치기 통과"라고 개탄했다.

강 의장은 시선을 위로 향한 채 이들을 외면했다. 새누리당 일부 의원은 "잘 안 들려, 더 세게 얘기해" 등 이들을 비꼬기도 했다. 본회의장 마이크는 의사진행 때만 켜졌다. 민주당의 항의는 외부로 '방송'되지 않았다.

이 가운데 투표는 계속 진행됐다. 대다수 새누리당 의원과 새누리당 출신 '무소속' 의원들이었다. 안철수 무소속 의원도 투표에 참여했다. 안 의원 측 관계자는 이날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는 함량미달이지만, (문 후보자 문제를)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엮는 것에 반대 입장이었다"며 "그래서 찬반 입장대로 투표하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민주당은 투표 종료 후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2012년 회계연도 결산 등에 대한 '반쪽 본회의'가 시작됐다. 다만, 이번 임명동의안 처리를 무효로 규정하고, 이와 관련, 윤찬현 감사원장 후보자의 직무효력을 정지하는 가처분 등을 강구하기로 했다. 또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요구를 일축한 강 의장에 대해서도 법적인 절차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형표·김진태 임명강행까지 하면... 여의도의 '겨울' 길어진다

활짝 웃는 최경환28일 국회 본회의에서 새누리당 단독으로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상정된 가운데, 최경환 원내대표가 김기현 정책위의장과 얘기하며 활짝 웃고 있다. ⓒ 남소연


후폭풍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반드시 국회 동의를 얻어야 했던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이날 처리된 만큼, 청와대는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김진태 검찰총장 후보자 임명도 조만간 강행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황찬현 임명안'으로 이미 상처를 입은 야당이 더욱 강력하게 반발할 수밖에 없다. 향후 예정된 예산 및 법안심사의 향방도 가늠하기 힘들다.

이번 임명안 처리 과정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감사원장 후보자 인사청문특위 사례에서 보듯, 새누리당이 과반을 점하고 있는 상임위의 경우, 단독 개회-단독 처리-기습 상정으로 이어지는 관례를 만든 셈이다. 더구나 새누리당은 청문경과보고서 채택 과정과 민주당의 필리버스터 거부 과정에서 자신들의 필요에 따라 관례를 적용했다.

여야 간 불신이 더욱 고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새누리당은 오히려 '대결정치'를 더 강화하고 있다. 홍지만 새누리당 원내대변인은 이날 본회의 후 브리핑을 통해 "민주당은 자신들의 요구를 들어줄 때까지 국회를 파행으로 몰고 가겠다고 으름장만 놓고 있지 타협 가능한 해결책 제시는 하고 있지 않다"며 "무조건 보이콧하며 정국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국민을 핑계 삼아 민주당 지도부의 무능을 숨기려는 악수일 뿐"이라고 비난했다.

또 "민주당이 예산을 볼모로 정쟁을 지속하는 것은 국민을 기만하고 우롱하는 처사"라며 "'준예산'을 편성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현실화된다면 이는 민주당이 지속적으로 국민을 볼모로 정쟁을 일삼은 결과"라고 경고했다. 황찬현 임명안 처리에 대한 갈등이 향후 예산심사에 미치는 것에 대한 책임을 미리 민주당에 넘긴 셈이다. 

이미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관련 특별검사제 도입 등을 다루는 '여야 4인 협의체' 제안도 새누리당 강경파에 의해 일축된 상황이다. 특검부터 예산, 법안심사까지 험난한 12월이 기다리고 있다. 민주당은 이날 임명동의안 처리 후 열린 의원총회를 통해 오는 29일부터 정기국회 일정을 전면 보이콧 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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