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의 적나라한 실상, 교과서에 실렸다
[어서와, 노동은 처음이지?①] 경기 교육청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 발간
청소노동자들이 국회의원 앞에 머리를 숙였습니다. 국회가 이들을 정규직화 하겠다고 하자 "노동3권 보장되면 툭 하면 파업할 것"이라며 반대했기 때문입니다. 헌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노동'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우리사회는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은 알바가 태반이고, 파업만 했다면 큰 잘못처럼 생각합니다. 역시 '노동'을 몰라서입니다. <오마이뉴스>는 노동가치를 인정하는 사회를 위해 노동교육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 경기도 교육청이 최근 발행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 4종. ⓒ 경기도교육청
교과서가 뜨겁다. 여기저기 토론의 날이 서 있고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민감한 주제가 튀어나온다. 양심적 병역거부와 노동유연성, 인종차별, 미디어 공공성 등 사회전반에 뜨거운 이슈들이 가득 찼다. 읽고, 줄치고, 외우고, 시험 보면 끝나는 교과서가 아닌 게 분명하다. 어쩌면 학생들보다 끝없이 반목하고 충돌하는 어른들이 공부해야 할 교과서로 보인다. 그게 정치인들이라면 더욱 추천할 만하다.
지난달 26일 경기도교육청은 창의지성교과서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민주시민 교과서)을 개발해 발표했다. 경기도교육청은 '더불어 사는 창의적인 민주시민 육성'이라는 교육지표에 맞춰 수학, 음악, 철학 등의 과목에서 창의지성교과서를 개발해왔다. 기존의 교과서보다 말하기, 글쓰기, 체험하기 등 학생들이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강화했다. 이번에 발표한 민주시민 교과서 역시 마찬가지다.
교과서에는 사회에서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주제들이 담겼다. 학년별로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공통적으로 인권과 시민의 의무, 평등과 다양성, 노동인권과 직업 가치관, 환경보존과 개발, 미디어의 역할, 그리고 사회적 연대의 중요성 등이 다뤄진다. 사용자 측이나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다소 불편할 수 있는 주제지만, 민주시민 교과서에서는 어느 한쪽을 대변해서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대립되는 의견의 균형을 맞추려는 집필진의 노력이 보인다.
우리가 여기서 살펴볼 것은 '노동인권교육 '부분이다. 초등교과서에는 '사람들은 일을 해요'라는 단원에서, 중등은 '사람과 노동은 하나입니다', 고등은 '노동과 경제'라는 단원에서 노동의 가치, 노동자의 권리 등을 배운다. 그동안 기존 교과서에서는 파업과 같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가 사회에 부정적인 요인으로 서술되는 등 지나치게 기업경제 중심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관련기사 : '비정규직'이 금칙어? 천만명이 부끄럽나요?)
그렇다고 해서 민주시민 교과서가 노동 중심적으로 서술돼 있는 것은 아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오면 대부분이 부딪칠 수밖에 없는 주제를 다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 직업 선택에서 어떤 가치를 선택하느냐이다. 또한 학생들은 대다수가 노동자가 될 것이고, 그에 따라 자신에게 주어지는 권리와 의무를 배운다. 고등교과서에서는 '비정규직'으로 대표되는 노동유연성의 문제, 파업을 바라보는 관점과 같은 현안주제를 다루기도 한다.
<오마이뉴스>는 고등학교 민주시민 교과서를 중심으로 경기도교육청이 제시한 노동인권교육의 방향을 살펴보려고 한다. 여기서 교과서 내용이 일부 공개되면서 다소 논란이 생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교과서가 편향돼 있다든가, 노동 중심적이라는 비판이다. 그러나 교과서가 다루는 내용은 실제 한국사회의 모습이며 이를 부정하는 것이 보수의 가치는 아닐 것이다. 유럽에서는 이미 이와 같은 '시민교육'이 수십 년 전부터 시작돼 왔다는 것을 상기하며 교과서로 들어가 보자.
경기도교육청 민주시민 교과서는... |
경기도교육청의 민주시민 교과서는 초등학교 3~4학년, 5~6학년, 중학, 고등학교용으로 총 4종으로 개발됐다. 경기도교육감의 인정을 받아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에 등재 돼 다른 시도교육청에서도 이 교과서를 활용할 수 있다. 2014년 새학기부터 중고등학교에서는 '민주시민'이라는 선택과목 개설이 가능하며, 수업시간을 따로 만들지 않더라도 체험시간이나 사회와 같은 인문과목 수업시간에 연계해 가르칠 수도 있다. |
노동의 가치는 '임금'인가? 나의 삶을 구현하는 것인가?
고등학교 민주시민 교과서는 크게 1부 '시민의 가치', 2부 '시민과 제도'로 나뉘어 있다. 세부적으로 1부는 '인권과 시민', '다양성과 차이', '공감과 연대', '자연과 환경', '평화와 공존'으로 구성됐고, 2부는 '민주주의와 참여', '노동과 경제', '언론과 미디어'로 구성됐다. 각 단원은 전반적인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글인 '생각 열기'로 시작해, 정보를 제공하는 '지식&정보탐색', 상반되거나 다른 관점이 충돌하는 '쟁점 토론하기', 마지막으로 각자의 생각을 글로 정리하는 '생각정리' 순서로 진행된다.
▲ 민주시민 교과서 가운데 노동인권 부분에 실린 내용. 최저임금을 다루면서 노동가치를 토론할 수 있게 하고 있다. ⓒ 경기도교육청
노동인권교육 부분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바로 '노동과 가치'이다. 노동이 단순히 '임금으로 치환되는 교환 가치'인지, 자기 삶을 실현하는 가치인지를 학생들에게 묻고 있다. 단원 전반의 취지를 알리는 '생각열기'에서는 최저임금 제도와 '빅맥지수'가 등장한다. 빅맥지수는 각 국가의 시간당 최저임금으로 그 국가에서 판매하는 햄버거(빅맥)를 몇 개 사먹을 수 있는지 나타내는 지표다. 교과서에서는 2013년 기준 우리나라의 빅맥지수가 1.3개라는 것을 알려주고 다른 국가의 빅맥지수와 비교할 수 있게 해준다.
"2013년 우리나라의 최저임금이 4860원이고 빅맥 가격은 3700원이니 한 시간 일해서 빅맥 1.3개를 사 먹을 수 있는 수준이다. (중략) 다른나라를 살펴보면 호주는 최저임금 15.98호주달러, 빅맥지수는 4.68달러로 약 3.5개를 사 먹을 수 있다. 가까운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은 744엔이고 빅맥지수는 4.09달러로 약 2.5개의 햄버거를 사먹을 수 있다. 한편, 노르웨이의 빅맥지수는 7.06달러로 높지만 최저임금도 높은 수준인 21.79달러로 햄버거 약 3개를 사먹을 수 있다."
이후 노동의 가치는 최저임금에서 평균임금으로 확장된다. '지식&정보 탐색' 부분에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의 평균노동시간과 평균임금을 제시해 주면서 비교할 수 있게 만든다. 이러한 외국과의 비교가 한국만의 특수한 조건을 고려하지 않고 제시됐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지만 장시간노동과 상대적 저임금 문제는 정부에서도 인정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있는 사안이다. 또 이후 이어지는 '쟁점 토론하기'로 넘어 가면 이 교과서의 의도가 외국과의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것이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쟁점 토론인 '노동 가치' 단원에서는 '노동은 임금으로 환산되는 교환 가치이다'라는 글과 '노동은 자기 삶을 실현하는 가치이다'라는 두 개의 글이 실렸다. 전자는 "직업에는 귀천이 없으며, 노동이 가지는 본래적인 가치와 의미는 소중하다, 하지만 노동의 가치는 현실 사회에서 임금으로 환산될 수밖에 없다"고 설명한다. 다른 관점의 글은 "비정규직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더라도 더 낮은 임금을 받는다"며 "쉽게 해고될 수 있는 비정규직의 경우 비정규직이라는 사회적 조건이 노동의 가치를 더 낮게 만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 두 글을 놓고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렇다. "임금을 인위적으로 인상할 경우 기업과 경제에 악영향을 준다는 근거는 무엇인가?", "임금의 결정은 어떤 방식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주장하나?", "행복한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노동의 가치를 어떤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보는가?" 등이다. 이러한 질문들은 학생들에게 스스로 '노동이란 무엇인가'라는 근본적인 고민을 안겨준다. 결국 '노동가치'의 평가는 학생 자신이 정의하는 노동과 사회가 바라보는 노동을 정립하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교과서는 얘기하고 있다.
비정규직 문제와 노동시장유연성, 동시에 가르친다?
이어지는 단원에서는 조금 더 구체적이고 현안적인 문제를 다룬다. 바로 비정규직 확산으로 대표되는 노동유연성 문제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이라는 단원에 등장하는 '생각열기'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이야기가 담겼다. 교과서 저자들은 학생들이 토론을 제대로 할 수 있으려면 실제로 논쟁이 되는 사안이 실려야 한다고 판단했고, 이를 위해 최근까지도 주제를 계속 변경해 최종적으로 인천공항의 이야기가 실렸다고 한다.
"인천공항은 세계 최고의 공항으로 평가 받고 있다. 2012년 매출 1조6000억 원을 올렸고 순이익만 5100억 원에 달했다. 인천공항공사에 소속된 6600명의 직원 중 6000명은 비정규직으로 비정규직 비율이 87.4%이다. 해외의 민영화된 공항을 포함해도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다. 상시근무가 필요한 대부분의 분야를 용역업체에 하청을 주고 노동자들을 간접고용한다. 공항에 근무하는 노동자의 평균 근속은 7.4년이지만 대부분 1년마다 근로계약을 새로 맺고 근속수당도 없다. 용역업체가 교체될 때마다 노동자들은 고용불안을 느낀다."
이어 한국의 비정규직의 실상을 지표로 설명한다. '지식&정보 탐색' 부분에서는 각 국가의 정규직 비율이 등장한다.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이야기하는 유럽의 국가과 비교에서 23.8%에 달하는 한국의 비정규직 비율은 도드라진다. 폴란드(27%)를 제외하고 핀란드(15.7%), 독일(14.7), 덴마크(8.8), 노르웨이(7.9), 영국(6.2)은 한국보다도 한참 낮다. 그럼에도 한국의 노동 시장 유연성은 떨어진다고 한다. 단지 비정규직이 많다고 노동 시장이 유연해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노동시장 유연화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의미일까? 높은 비정규직율을 보여주는 동시에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비율이 매년 하락하고 있는 자료도 같이 보여준다. 정규직 대비 비정규직의 임금비율은 거의 매년 하락해 50%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비정규직 일자리는 늘고, 그 처우는 점점 나빠진다는 의미다. 그러면서 비정규직과 시간제 일자리로 노동유연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 받는 네덜란드와 각종 사회부조를 비교한다. 실업급여, 노동시장 정책 예산, 실업급여의 소득 대체율 등에서 한국은 네덜란드에 한참 밀린다.
▲ 노동시장 유연화를 쟁점으로 논쟁을 붙이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가 더욱 필요하다는 정부와 사용자측의 주장과 함께, 노동시장 유연화의 필요성을 인정하지만 그에 따른 안정망을 주문하는 주장을 비교해 보여준다. ⓒ 경기도교육청
이제 교과서는 "노동시장이 유연해야 기업경쟁력이 높아진다"는 주장과 "유연성과 함께 안정성이 양 날개가 되어 날아야"한다는 주장을 대비시킨다. 이 단원의 의도는 어느 정도 눈에 보인다. 노동시장의 유연성의 필요성에서는 사용자 측이나 정부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지만 무분별한 비정규직의 확산이나 고용불안을 야기하는 정리해고 등의 방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에는 "근로자가 자신의 사정에 따라 급여는 덜 받지만 일하는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있다면 받아들이겠는가? 이 제도를 위해서 필요한 전제조건은 무엇일지 의견을 써보자"라는 주문이 학생들에게 던져진다.
근로계약서 쓰기로 마무리... '배운 학생'들 사회가 어떻게 받을까?
예민한 주제가 이어진다. 바로 '파업'이다. '노동자와 책임'이라는 단원에서 다뤄지는 내용은 헌법에 보장된 '노동3권'의 이야기다. 최근 국회에서 '노동3권'을 부정하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여당 의원에게 필수적인 단원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단원은 그리스 공무원들의 파업이야기로 시작한다. 일반노동자도 아닌 공무원의 파업 문제를 실은 것 또한 논쟁지점을 명확히 만들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리스의 경찰과 소방관 등이 주축을 이룬 일부 공공 부문의 파업에 판사와 검사들도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판사와 검사들은 이틀간 잇따라 회의를 열어 파업 가담 여부와 단체행동방안 등을 논의한다고 그리스 일간지 카티메리니가 보도했다. (중략) 앞서 판사들은 어떤 방식으로 단체 행동을 할지 논의했으나 확실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로소스 파파다키스 아테네 판검사 협의회장은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다만 사무실에서만 업무를 보고 밀린 업무를 집에서는 처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법조계 소식통은 판사들이 닷새간 한시 파업을 벌일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이어서 학생들은 취업포털에서 조사한 파업 관련 인식조사 결과를 접하게 된다. 2012년 조사된 이 통계에서 직장인들은 '습관적 파업이나 시위는 옳지 않다' 35.9%, '권리를 찾기 위해 당연히 해야 한다' 30.3%, '노사 갈등의 효율적 해결을 위함이다' 22.5%, '자신만의 이익을 찾으려는 집단 이기주의이다' 9.9%로 답했다. 교과서는 파업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보여줌과 동시에 '헌법에서 노동3권을 보장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이라는 것을 강조한 것이다.
쟁점 토론에서는 최근에도 불거진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파업을 다룬다. 이 문제는 학생들에게도 직접 영향이 있는 사안이다. 한쪽 시선에서는 "학생들을 고려하지 않은 이기심"이라는 의견과 다른 한쪽에서는 "책임 있는 노동자가 되기 위해 파업한다"는 의견을 내놓는다. 쉽게 판단할 수 없는 문제지만 학생들은 "교육부가 파업 자제 요청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려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세워 갈 수 있다.
이상 경기도교육청의 고등학교 민주시민 교과서의 '노동인권' 교육은 위 세 개 단원으로 정리된다. 노동자들의 권리와 책임을 물은 데 이어서 사회 환원을 통한 기업의 사회적 책임, 공공서비스를 통한 국가의 사회적 책임을 다룬다. 이 과정에서 기업의 사회 책임 경영을 바라보는 관점과 정부의 공공서비스 민영화 문제를 토론할 수 있게 돼 있다.
▲ 노동인권 교육의 단원 마무리는 학생들이 직접 근로계약서를 작성해 보는 것이다. ⓒ 경기도교육청
종합적으로 '노동과 경제'라는 큰 단원을 마무리하며 학생들에게는 과제가 주어진다. 바로 근로계약서 작성하기다. 'OO버거 청소노동(여, 17세), XX피자 주말 배달 노동(남, 19세)'이라는 조건을 던져주고, 계약기간, 근무장소, 업무내용, 근무시간, 임금, 유급휴일 및 휴가 등 근로계약서에 들어가야 할 항목을 알려준다. 학생들은 각자가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발표하고 단원을 최종 마무리한다. 당장 아르바이트를 하는 학생들에게는 꼭 필요한 내용이다.
이제 남은 문제는 어떻게 '배운 학생'들을 받아 줄 수 있는 사회가 될 것이냐다. 어른들의 과제다.
▲ 경기도교육청 <더불어 사는 민주시민> 교과서를 집필한 허진만 삼일상업고등학교 교사. ⓒ 최지용
"시민교육에 대한 외국시민교과서 연구부터 시작됐습니다. 그러다 2008년 학생인권조례가 나왔지만 진보적인 교사들 내부에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죠. 민주시민으로 권리와 의무를 제대로 배우지 않은 상태에서 조례만 던져주니까 학생들의 인권과 교권이 마치 충돌하는 것처럼 됐습니다. 조례를 잘못 이해한 거죠. 내가 공동체에 가지는 의무가 무엇이고, 자유는 무엇이고 책임은 무엇인지 학생들은 합의한 게 없습니다. 이런 것은 도덕이나 기존의 수업으로 채울 수 없는 부분이 아니었으니까요.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이미 이런 교육을 20세기 초반부터 실시하고 있습니다. 현대 시민사회의 시민성 함양을 중요한 기본인성으로 생각하고 교육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럴 때가 충분히 됐다고 생각합니다."
- 민주시민 교과서만의 특징이 있다면?
"토론수업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것이 찬반 토론입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렇게 명확하게 찬성과 반대로 나뉘지 않습니다. 각자 다양한 의견을 갖고 있죠. 교과서 지면에 두 가지 의견을 실었습니다. 두 의견의 대립을 통해 쟁점의 성격을 분명히 파악하는 것이 합리적 결정을 하는 핵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결과로 학생들은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복수의 의견을 잘 듣고 자신의 생각을 정립하게 되는 거죠. 그걸 글로 쓰고 표현하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수업과정은 학생들에게도 정말 필요한 것입니다. 대입에서 입학사정관제로 지원하거나 논술, 면접을 볼 때 자기 생각을 이야기 하는 게 정말 중요하죠. 그것을 위해 방향타 역할을 하는 게 민주시민 교과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민주시민 교육이 사회적으로 필요한 이유는?
"기성세대의 가치관과 자라나는 세대의 가치관은 항상 충돌합니다. 문화적 충돌도 가치관의 충돌이죠. 그런데 '요즘 애들 참 문제야'하고 방관할 건 아닙니다. 기성세대가 옳다고 생각한 것은 전수해야 하고, 새로운 세대에 맞춰 더욱 신장할 것은 신장해야 하는 게 교육이라고 봅니다."
- 노동인권 부분을 서술할 때 가장 중점에 둔 사안은?
"노동인권부분은 크게 세단원입니다. 노동은 어떤 가치인가. 노동시장 유연성을 어떻게 볼 것인가. 파업을 어떻게 볼 것인가. 기본적으로 가르치려고 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이 스스로 판단하게 하는 방향으로 잡았습니다. 노동의 가치를 먼저 판단하고, 그걸 판단했다면 사회 가장 큰 관심사인 노동 시장 유연화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하려고 했습니다. 무작정 '비정규직 없는 세상'은 아이들에게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노동유연성은 무조건 안 된다고 설명할 수도 없죠. 노동유연성과 사회안전망이 어떻게 균형을 잡을 것인가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끝으로 파업에 대해 다룹니다. 보통 노동조합을 이익집단이라고 배우지만 한국에서는 시민사회의 성격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자의 권리와 책임을 둘 다 바라보자는 취지로 만들어졌습니다. 최근에는 파업이 무작정 나쁜 것으로만 보도되는데, 파업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균형을 맞춰 들을 수 있는 자세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 사용자 측이나 보수적인 관점에서 보면 비판도 나올 수 있을 거 같은데요.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번 교과서가 어디로 쏠려 있는 건 아닙니다. 상황을 드라이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글을 읽고 쓰는 훈련을 시키는 겁니다. 보수는 진보가 말하는 진의를 듣고, 진보는 보수가 말하는 진의를 한 번 들어보자는 거죠. 정치적으로 휘말릴 수도 있겠지만 그게 무서워 이런 얘기를 못한다면 변화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 가르치는 교사들에 대한 교육도 필요해 보이는데.
"학습지도서가 중요합니다. 이 수업이 어떻게 기획된 수업이고 어떤 방향을 제시할지, 어떻게 소개하고 어떻게 논쟁을 이끌어 나갈지가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학습지도서를 만든는 작업을 진행할 예정이고, 경기도교육청에서 주관하는 연수도 관련 계속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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