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평공원 관통도로 건설반대 싸움을 회상하며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다!"
지난 26일 대전환경운동연합 교육실에서 월평공원 지킴이 양성교육 마지막 강의가 진행되었다. 월평공원 갑천 지키기 시민대책위원회에서 주관하여 진행한 이번 교육은 지난 10월 2일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진행되어 왔다. 월평공원과 갑천 지역 보호지역이 최근 구체화 되면서, 주민들의 자체적 역량을 키워 민과 관이 함께 월평공원과 갑천을 지키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지킴이 교육을 수료한 14명의 수강생은 매월 진행하는 월평공원 정기모니터링에 함께하게 된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여의 싸움으로 지역의 큰 이슈가 되었던 월평공원 관통도로 건설 반대운동이 끝나고 3년 만인 지난 9월 개통된 월평공원 관통도로는 28일 대형 20중 추돌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터널 개통의 아픔이 있는 월평공원과 갑천지역은 대전환경운동연합이 2000년부터 줄기차게 보호지역 지정을 주장해왔다.
10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야 보호구역 지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에 씁쓸하기도 하지만 반가운 일이다. 대전에서 가장 생태적인 공간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월평공원이라고 할 것이다. 20여종의 천연기념물(미호종개, 참매, 큰고니, 수달 등)과 희귀식물(이삭귀개, 땅귀개)등은 월평공원의 생태적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이런 월평공원의 지킴이가 되기 위한 양성교육의 마지막 강의는 월평공원과 갑천을 지키기 위해 2007년부터 3년간 환경단체와 함께 대전시를 상대로 관통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조세종 민들레의료생협 이사가 진행했다. 조 이사는 2007년부터 관통도로 건설의 주민조직 대표로 활동하면서, 농성과 단식 등을 진행하는 강도 높은 대응 활동을 주도했다.
'주민들의 월평공원 갑천 지키기'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마무리 강의를 진행한 조 이사는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이다!'라는 성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를 화두로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통도로 싸움에서 활동의 가장 큰 축은 '정의'였다고 강조했다. 2007년 당시 시장은 서남부신도시에 50만 명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관통도로를 건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140만 명인 대전시에 50만 명이 추가로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 관통도로 건설 반대의 시작이 었다고 회상했다.
누가 들어도 이상한 인구예측을 입장하고 싶었고, 당시 통계청은 2020년 대전시 인구를 158만으로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허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현재 서남부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이 부족해 2, 3단계가 무기한 연기되며서 당시 주장했던 관통도로의 필요성은 절반으로 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과도한 수요예측으로 강행된 관통도로가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조 이사는 월평공원과 갑천의 생명들이 주는 진실에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작은 돌맹이와 풀, 나무, 새 등이 주는 주민감성은 관통도로에 반대하는 감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조 이사는 3년간 월평공원을 찾아다니면서 느꼈던 감성을 환경단체가 따라올 수는 없었다고 단언하면서, 월평공원을 지키는 데 앞장 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월평공원을 지키기 위해 3년간 활동하면서 미호종재, 수달 등의 생태계를 환경단체들로 부터 배웠지만 그곳에서 만난 생명들에 대한 감성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이 있다고 한다. 월평공원의 다양하고 경의로운 생명은 관통도로로부터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이 더 확보되면서 활동에 적극성을 높일 수 있었다.
조 이사는 3년간의 싸움을 진행하면서 가장 격렬했던 단식운동의 이야기 중 작성한 일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길바닥에 앉자 농성을 시작했다. 기자회견 후 천막 치는 일로 시청 청원경찰들과 심한 몸싸움을 하고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노력이 드는 일인가 하는 착잡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 마음에 미움과 적의는 담아두지 말도록, 쌓여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 조세종 이사 단식일지 중 일부
"나의 이성이 아무리 비관적이라도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다"(그람시)라는 말을 되새기며 다시 싸움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격려해주셔서 15일간의 단식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지지와 격려는 비관적임 싸움조차 낙관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회상했다.
우리는 정책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는데 시는 기술적 판단으로 대답한다. 우리는 거시적으로 대전을 보자는데 시는 공간과 시간을 조각내어 보자고 한다. 우리는 결국 생태와 환경이 삶의 조건인데 시는 개발과 건설로 결론을 내린다. - 조세종 이사 단식일지 중 일부
20년 전에 만들어진 도로계획을 사회가 변화하고 바뀐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채 도로를 건설하는 환경을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 앞으로 20년 후에 터널을 뚫는다고 한다면 현재처럼 관통도로가 건설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조 이사는 토목 등의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우리를 지지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한탄했다. 실제 전문적 영역에서 활동을 지지하지 못하면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조 이사는 인구 210만이라는 이루어지지 않는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가 현재 완공된 월평공원 관통도로라고 일갈했다. 현재 완공된 광통도로를 보면 시장님의 성덕비를 보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조금 운치 있게 돌아가는 것을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 위정자들이었다고 한다.
우회도로가 있었고 대안도 있었지만, 뚜렷한 해명 없이 강행된 것이 월평공원도로이다. 조 이사는 앞으로 가칭 '월평갑천사랑센터'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주민공동체가 유지되기를 희망했다. 건강하게 공동체가 유지가 되면서 마을과 환경을 접목한 주민공간이 될 것이라고 바람을 애기하며 강의를 마쳤다.
3년간 처절한 싸움을 통해 관통도로를 반대했던 주민의 이야기는 구구절절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관통도로를 막아내지 못한 아쉬움보다 주민들의 좌절감은 더 컸음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대전에 이런 첨예한 대립을 만드는 행정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개발논리를 앞세운 신세계유니온스퀘어나 고가경전철 등 모두가 정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나 지방정부의 정의가 없다면 도적떼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와닿는다. 도적떼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지방정부가 되기를 바라본다.
2007년부터 2010년까지 3년여의 싸움으로 지역의 큰 이슈가 되었던 월평공원 관통도로 건설 반대운동이 끝나고 3년 만인 지난 9월 개통된 월평공원 관통도로는 28일 대형 20중 추돌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터널 개통의 아픔이 있는 월평공원과 갑천지역은 대전환경운동연합이 2000년부터 줄기차게 보호지역 지정을 주장해왔다.
10년이 훨씬 지난 시점에서야 보호구역 지정이 가시화되고 있는 것에 씁쓸하기도 하지만 반가운 일이다. 대전에서 가장 생태적인 공간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없이 월평공원이라고 할 것이다. 20여종의 천연기념물(미호종개, 참매, 큰고니, 수달 등)과 희귀식물(이삭귀개, 땅귀개)등은 월평공원의 생태적 가치를 입증하고 있다.
▲ 대전도시 중심에 위치한 월평공원과 갑천의 모습도솔산 정상에서 바라본 월평공원(숲)과 갑천의 모습 ⓒ 이경호
이런 월평공원의 지킴이가 되기 위한 양성교육의 마지막 강의는 월평공원과 갑천을 지키기 위해 2007년부터 3년간 환경단체와 함께 대전시를 상대로 관통도로 건설을 반대했던 조세종 민들레의료생협 이사가 진행했다. 조 이사는 2007년부터 관통도로 건설의 주민조직 대표로 활동하면서, 농성과 단식 등을 진행하는 강도 높은 대응 활동을 주도했다.
▲ 강의중인 조의사6년전의 기억을 더듬으며 열강을 했다. ⓒ 이경호
'주민들의 월평공원 갑천 지키기'라는 주제로 2시간 동안 마무리 강의를 진행한 조 이사는 '정의 없는 국가는 강도떼이다!'라는 성아우구스티누스의 이야기를 화두로 던지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관통도로 싸움에서 활동의 가장 큰 축은 '정의'였다고 강조했다. 2007년 당시 시장은 서남부신도시에 50만 명이 들어올 것이기 때문에 관통도로를 건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당시 140만 명인 대전시에 50만 명이 추가로 들어온다는 이야기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의문을 갖기 시작한 것이 관통도로 건설 반대의 시작이 었다고 회상했다.
누가 들어도 이상한 인구예측을 입장하고 싶었고, 당시 통계청은 2020년 대전시 인구를 158만으로 예측하고 있었기 때문에 상당한 허수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고 한다. 현재 서남부사업의 경제성과 타당성이 부족해 2, 3단계가 무기한 연기되며서 당시 주장했던 관통도로의 필요성은 절반으로 줄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런 과도한 수요예측으로 강행된 관통도로가 의미를 찾을 수 있을지 두고 보아야 할 일이다.
조 이사는 월평공원과 갑천의 생명들이 주는 진실에 마음을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강변했다. 작은 돌맹이와 풀, 나무, 새 등이 주는 주민감성은 관통도로에 반대하는 감성을 높이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조 이사는 3년간 월평공원을 찾아다니면서 느꼈던 감성을 환경단체가 따라올 수는 없었다고 단언하면서, 월평공원을 지키는 데 앞장 설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월평공원을 지키기 위해 3년간 활동하면서 미호종재, 수달 등의 생태계를 환경단체들로 부터 배웠지만 그곳에서 만난 생명들에 대한 감성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삶이 있다고 한다. 월평공원의 다양하고 경의로운 생명은 관통도로로부터 생명을 지켜야 한다는 당위성이 더 확보되면서 활동에 적극성을 높일 수 있었다.
조 이사는 3년간의 싸움을 진행하면서 가장 격렬했던 단식운동의 이야기 중 작성한 일지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했다.
길바닥에 앉자 농성을 시작했다. 기자회견 후 천막 치는 일로 시청 청원경찰들과 심한 몸싸움을 하고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우리가 바라는 것을 주장하는 것조차 얼마나 힘든 노력이 드는 일인가 하는 착잡한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 마음에 미움과 적의는 담아두지 말도록, 쌓여지지 않도록 해야겠다. - 조세종 이사 단식일지 중 일부
"나의 이성이 아무리 비관적이라도 나의 의지는 낙관적이다"(그람시)라는 말을 되새기며 다시 싸움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격려해주셔서 15일간의 단식을 이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런 지지와 격려는 비관적임 싸움조차 낙관적으로 만들어주었다고 회상했다.
우리는 정책적 판단을 요구하고 있는데 시는 기술적 판단으로 대답한다. 우리는 거시적으로 대전을 보자는데 시는 공간과 시간을 조각내어 보자고 한다. 우리는 결국 생태와 환경이 삶의 조건인데 시는 개발과 건설로 결론을 내린다. - 조세종 이사 단식일지 중 일부
20년 전에 만들어진 도로계획을 사회가 변화하고 바뀐 상황을 고려하지 못한 채 도로를 건설하는 환경을 바꾸고 싶었다고 한다. 앞으로 20년 후에 터널을 뚫는다고 한다면 현재처럼 관통도로가 건설되지 않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조 이사는 토목 등의 도시계획 전문가들이 우리를 지지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한탄했다. 실제 전문적 영역에서 활동을 지지하지 못하면서 분명한 한계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조 이사는 인구 210만이라는 이루어지지 않는 환상에 의해 만들어진 도로가 현재 완공된 월평공원 관통도로라고 일갈했다. 현재 완공된 광통도로를 보면 시장님의 성덕비를 보는 것 같다며 씁쓸해했다. 조금 운치 있게 돌아가는 것을 더 좋은 것을 알지 못한 위정자들이었다고 한다.
우회도로가 있었고 대안도 있었지만, 뚜렷한 해명 없이 강행된 것이 월평공원도로이다. 조 이사는 앞으로 가칭 '월평갑천사랑센터'를 만들고 지속가능한 주민공동체가 유지되기를 희망했다. 건강하게 공동체가 유지가 되면서 마을과 환경을 접목한 주민공간이 될 것이라고 바람을 애기하며 강의를 마쳤다.
▲ 교육을 마친 수료생들수료증을 들고 함께 사진을 찍었다. ⓒ 대전환경운동연합
3년간 처절한 싸움을 통해 관통도로를 반대했던 주민의 이야기는 구구절절했다. 대전환경운동연합 활동가로 관통도로를 막아내지 못한 아쉬움보다 주민들의 좌절감은 더 컸음을 이번 강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앞으로는 대전에 이런 첨예한 대립을 만드는 행정은 재발하지 않기를 바란다.
앞으로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개발논리를 앞세운 신세계유니온스퀘어나 고가경전철 등 모두가 정의를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나 지방정부의 정의가 없다면 도적떼가 될 수밖에 없다는 말이 와닿는다. 도적떼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지방정부가 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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