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시민은 기자다

김장에 대한 짧은 소회

깨끗하고 안전한 밥상을 위한 축제!

등록|2013.12.02 19:24 수정|2013.12.02 19:24
우리나라의 겨울은 춥고 길어 신선한 채소를 구하기 어렵다. 아마 김치는 그런 겨울을 나기 위해 채소를 절여 저장하는 방법에서 시작되었던가 싶은데 고구려시대에도 기록이 보인다는 점으로 미루어볼 때 그 역사가 오래된 민족의 지혜라는 생각이 든다.

김치를 담그는 일을 김장이라고 하는데 그 김장하는 방법이나 시기는 우리나라 안에서도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한다. 오늘날처럼 다양하고 맛깔스러운 김치로 발전하기까지 과정은 알 수 없으니 대체로 지역에서 생산되는 채소, 젓갈의 종류 등에 따라 조금씩 달라진 것이 아니냐고 본다.

어느 지역에서나 일반적으로 김장은 여성들의 몫이었다고 본다. 마을 집의 김장 모습도 그렇고 텔레비전에서 보여주는 김장하는 풍경도 여성들이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김장을 주도하는 이유는 아무래도 섬세한 솜씨와 뛰어난 미각, 그리고 음식을 다룬 경험 때문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사실 김장은 어려운 일이다. 맛있는 배추를 고르는 일, 폭을 가르는 일은 단순한 노력으로 하는 일이 아니다. 감각적인 경험을 요하는 일이다. 거기에 배추를 간하는 일은 김치의 맛을 결정한다는 점에서 교과서적인 지식만으로 어려운 일이다. 간수가 빠진 소금을 챙기고 그 소금을 물과 적절하게 배합하는 기술, 그리고 배추에 따라 간수의 양을 조금씩 조절하는 기술은 상당한 경험 없이 배울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김치를 비빌 때 들어가는 양념은 또 어떤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다지만 고춧가루, 마늘, 생강, 젓갈, 청각, 쪽파, 갓 등 속재 료를 준비하는 과정도 시간이 걸리지만 그것을 배합하는 기술은 웬만큼 축적된 '노하우' 없이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배추 포기와 들어갈 양념의 양을 남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조절하여 준비하는 일도 여성의 특별한 경험과 재치 없이는 어려운 일이다. 

김장 며칠 전부터 아내는 김장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젓갈을 사오고 냉장고 깊숙이 숨은 청각을 찾아내고 쪽파를 다듬고 마늘을 까고 양파와 생강을 챙겼다. 사실상 김장에 돌입한 것이다. 배추를 뽑아 다듬기, 배추절이기, 절인 배추를 밤중에 일어나 한 번 뒤집은 것은 간이 고루 배이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했다. 배추를 건져 물을 빼는 것은 그 다음의 일이었다.

그러면서 아내는 김장이란 양이 많건 적건 준비하는 것은 똑 같다고 했다. 그리고 거쳐야 하는 과정도 다르지 않다고 했다. 뭔가 해야 될 것 같아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했더니 가만히 있으란다. 그러니 물 빠진 배추에 갖가지 양념을 버무린 소를 넣고 비비는 아내의 모습을 그냥 구경하는 수밖에.

텃밭의 모습 우리는 생굴과 새우젓 등 수산물 외에 김장에 필요한 배추 무 등은 물론 고추 마늘 등 모든 양념을 직접 생산하여 김장을 한다. 비용도 절약되지만 무엇보다 깨끗하고 안전한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낀다. ⓒ 홍광석


김치는 쌀밥을 위주로 하는 한국인의 식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등 반찬이면서 한겨울 갖가지 영양분을 공급해 주는 음식의 보고라고 하겠다. 그래서 김장은 일 년을 마무리하는 한 가족의 중요한 행사라고 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주부들 중에는 김치 담그는 법을 모르는 경우도 많고, 사먹는 주부들이 많다는 소식이다. 아마 김장하는 일도 그렇지만 김치의 맛까지 신경을 쓰다보면 여성의 입장에서는 "차라리 사먹고 말지!"라는 말이 저절로 나올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대량 생산 기술이 개발되어 직장을 가진 여성들로서는 손쉽게 김치를 구할 수 있다는 이점 때문에 힘들다는 김장을 피하고 싶었을 것이라는 점을 이해 한다.

그러나 바깥일을 열심히 하거나 김장 대신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과연 기회비용의 측면에서 경제적일까? 생각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주부들이 가족을 위한다는 마음으로 김장을 하는 것은 가족을 위한 따뜻한 희생이요,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있는 가족의 축제라는 생각을 한다. 며칠간의 희생으로 한 겨울 온 가족이 잘 숙성된 김치에 따뜻한 밥을 먹을 수 있다면 밖에서 열심히 일하여 돈을 조금 더 버는 일보다 가족의 화합과 평화를 지키는 일이라는 생각도 한다.

요즘 김치를 먹지 않는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말들을 한다. 그런 이면에 준비하는 시간, 담그는 수고 그리고 정성이 담긴 엄마의 김치 맛을 모른 채 아이들이 원하면 바로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패스트푸드에 길들여진 입맛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이제 우리 마을 대부분의 집에서 김장을 마친 것 같다. 노인들만 사는 마을이라 도시에 사는 며느리와 딸들이 돕는 집도 있었지만 대부분 김장도 노인들의 품앗이였다. 집마다 김장의 양도 많다. 도시에 사는 자녀들에게 보내기 위해서 많게는 배추 200포기의 김치를 담근다고 했다.

또 아파트는 김치가 빨리 시어지기 때문에 시골에 두고 조금씩 가져다 먹는다는 말도 들렸다. 도시 주부들이 김장 안 하는 또 한 가지 이유를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구부러진 허리에 다리를 절면서 김장하는 노인들을 보면서 그 노인들마저 세상을 뜨면 김치를 먹는 인구가 팍 줄겠구나 하는 생각을 안 할 수 없었다.

지금도 음식점의 김치 대부분은 중국산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담아오지 않더라도 배추는 물론 김치에 들어가는 고추 마늘 심지어 젓갈까지도 중국에서 수입되는 물건을 쓴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 업자들은 안전성이나 맛은 젖혀두고 김치 단가를 낮추려고만 해서 공업용 소금으로 간하고 불량 고춧가루와 상한 젓갈을 마구 쓴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알 수 없다. 이러다가는 우리 김치가 사라지고 마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는 김치. 그 김치를 담그는 일을 가족 성원이 모두 참여하는 김장을 가족의 축제로 자리매김할 수는 없을까? 김장을 가족의 건강을 지키고 가족의 정을 깊게 하는 창조적인 예술 활동으로 봐줄 수는 없을까? 그래서 정부와 기업체는 김장하는 가족에게 이틀 정도 유급휴가와 함께 김장 보너스라도 주면 안 되는 것일까?

김장은 여성들에게 머리 복잡하고 육체적으로도 피곤한 일이다. 준비할 것도 많고 일일이 손으로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부들이 한 번 더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건강한 김치를 먹인다는 마음으로 김장을 한다면 어떨까? 여성들의 눈총 받을 이야기일까? 조금은 걱정이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한겨레 필통, 다음 블로그 등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원문 기사 보기

주요기사

오마이뉴스를 다양한 채널로 만나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