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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낙선하고 택시운전대 잡았다"

[저자와의 대화] <달리는 인생> 저자 김창현 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위원장

등록|2013.12.03 21:32 수정|2013.12.04 09:12

▲ <김창현의 택시일기 -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가 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권우성


그는 "죄송스럽다"고 했다. 자신이 낸 책과 관련해 하고 싶은 말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택시운전을 한 지 1년 만에 혼자 그 어려움 속에서 탈출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짠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3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 강의실에서 열린 <달리는 인생>(오마이북) '저자와의 대화'에 참석해 속내를 털어놓은 그는 김창현 전 통합진보당 울산시당 위원장이다. 이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달리는 인생>은 김 전 위원장이 2012년 여름부터 1년 가까이 택시운전을 하면서 승객들과 나눈 대화와 에피소드를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책이다.

원래 그의 직업은 정치인이다. 20년 가까이 진보정치 현장에서 뛰어온 김 전 위원장은 과거 울산 동구청장·민주노동당 사무총장까지 지냈다. 지난해 4·11총선 때는 진보정치의 '아성'이라는 울산 북구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했다. 하지만 결과는 '낙선'이었다. 이후 그는 당직에서 물러나 택시 운전대를 잡았다. "총선의 실패가 출발점이었다"는 김 전 위원장은 택시노동자의 길을 선택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정해진 임금','수당','연휴'... 택시노동자에게 없는 것

"그동안 '노동자들의 삶을 살겠다'는 마음은 있었지만, 땀 흘려 노동해본 적은 없다는 죄책감이 있었어요. 노동을 통해서 새롭게 살아보자 마음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어요. 울산에서 공장 취업한다고 해도 누가 저를 취업 시켜주겠습니까. 제 얼굴과 이름으로 들어갈 수 있는 데가 별로 없었어요. 이왕 노동할 거면 어렵고 힘든 일을 하자는 생각도 있었고요. 가장 돈 벌이가 안 되고 노동 강도가 센 게 택시노동자였습니다."

처음 몇 달 동안은 택시운전을 하며 겪은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지 않았다. 이후 접한 여러 일들을 페이스북에 일기 형식으로 올려봤는데 의외로 반응이 좋았다. 호응이 점점 커지면서 책까지 내게 됐다.

▲ <김창현의 택시일기 -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가 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권우성


일각에서는 "택시운전 1년 해본 거 가지고 책을 쓰냐"고 반문하기도 한다. 김 전 위원장은 "그래서 죄송스럽고 여전히 부끄럽다"면서도 "주변 택시노동자 동료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써 달라'고 권유해 용기를 내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날 저자와의 대화에서 택시운전을 하면서 겪은 고충, 승객들과 나눈 대화에서 얻은 점들을 소개했다. 이수호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비롯해 행사에 참여한 독자들은 김 전 위원장의 강연이나 답변에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하는 모습이었다.

김 전 위원장에게는 택시운전이 무척 "고된 일"이었다. 하루 반나절 동안 택시에 앉아서 일하다 보면 허리통증과 눈의 피로가 쉽게 찾아왔다. 건강문제뿐이 아니었다. 이외에도 택시노동자에게는 없는 게 많았다.

"택시노동자에게는 정해진 임금이나 수당이 없습니다. 밤과 낮 구분이 없어요. 휴일은 물론 명절이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아무런 사회생활 못했어요. 오로지 달렸습니다. 그러니 택시노동자가 저임금에 혹사당하다 죽는다는 말이 나오는 겁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사납금'이었다. 택시회사들은 노동자들에게 매일 '사납금'이라는 일정 금액을 거둬간다. 택시노동자들은 하루 벌이 중 사납금을 내고 남은 돈을 갖는다. 만약 하루 벌이가 내야하는 사납금보다 적으면 본인 자금으로 회사에 돈을 줘야 한다. 그는 매일 사납금 6만1000원을 냈다. 교통신호 위반 단속에 걸리기라도 하면 그날 돈 번의 대부분을 날리게 돼 심장이 내려앉았고, 손님이 잔돈을 안 받아 갈 때면 '감사합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그는 "중세봉건제도의 장원유지 방식처럼 택시노동자들은 하루 동안 번 돈을 회사에 바쳐야 하고, 심지어 몸이 아파 하루 일을 안 하더라도 회사에 무조건 사납금을 내야 한다"면서 본인이 겪은 택시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실태를 전했다.

"택시운전으로 뭐가 달라졌냐고? 들을 수 있는 자세 생겼다"

▲ '김창현의 택시일기 - 달리는 인생' 저자와의 대화가 3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 권우성


그러면서도 김 전 위원장은 "몸은 힘들었지만, 배운 게 많았다"며 미소 지었다. 택시노동자의 처우 외에도, 승객들이 전하는 여러 가지 사회 문제를 생생히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청소년 입시·부부 갈등·아르바이트에 지친 20대 등의 모습과 사연을 직접 마주했고. 나름대로 고민한 해법을 이 책에 그대로 풀어냈다.

정치인이 가져야할 자세도 배웠다. 그는 "택시운전을 하면서 정말 많은 이야기를 듣게 돼 '진득하게 듣는 자세'를 배웠다"며 "더불어 정치인은 시민들의 애환을 듣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 고통을 함께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1년 간의 택시노동자 생활을 마친 김 전 위원장은 현재 장애인과 노인 일자리를 만드는 사회적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틈틈이 역사공부를 하며 강연자로 나서기도 한다. 과연 그는 다시 정치판으로 돌아갈까. 이 질문에 다음과 같은 답을 내놨다.

"언제 정치를 다시 시작할 거냐에 대해서는 아직 계획이 없다. 기자들이 '내년 지방선거에 나올 거냐'고 묻는데, 그건 아니다. 택시운전을 한 이후 뭐가 달라졌을까? 모르겠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조급하게 뭘 이야기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어졌다. 느긋하게 허리띠를 푸르고 시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자세가 생겼다. 얼마나 큰 변화일지는 나중에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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